나는 원래 야구나 영화를 취재하고 싶었다. 신문사는 생각이 달랐다. 나를 IT 2진으로 배치했다. 1진 선배는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인터넷을 맡았다. 나에게는 멸해가던 PC통신과 흥하기 전인 게임이 떨어졌다.
신문사가 나를 IT 쪽으로 보낸 사연이 있었다. 수습기간 때 나는 선배들 PC의 바이러스를 많이 잡았다. 당시 바이러스 중에는 BIOS(Basic Input Output System) 영역을 건드려, 부팅이 안 되게 하는 녀석들이 많았다. 기사를 쓸 수 없는 선배들은 발발 동동 굴렀다. 마감이 코앞이면 '멘붕'에 빠졌다.
전혀 그럴 만한 상황은 아니었다. V3와 부팅 디스켓으로 바로 해결될 문제였다. 편집국에는 그것을 아는 선배가 거의 없었다. 정보화는 신문기사에서나 보는 이야기였다. 컴퓨터가 안 켜지면 전부 나를 불렀다. 나는 디스켓 두 장을 가져가 뚝딱 문제를 해결했다. 그게 나를 야구와 영화에서 멀어지게 했다.
1999년 초반은 그런 때였다. 바이러스는 쉽게 퍼져나갔다. 주고받는 디스켓, 배포되는 무료 CD, PC통신과 인터넷에서 다운받은 셰어웨어, 프리웨어 등에는 바이러스가 많이 묻어있었다. 백신업체들이 경고했다. 대중매체들은 별로 신경을 쓰지 않았다. 일반인들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주기적인 백신 업데이트 같은 개념이 생소하던 시절이었다. 1999년 4월 26일 전까지는 더 그랬다.
이날 CIH 바이러스가 창궐했다. 당시에는 '체르노빌 바이러스'라고 불렸다. 바이러스가 활동을 시작하는 날짜가 1986년 구소련 체르노빌에서 참혹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있었던 날짜와 겹쳤기 때문이었다.
바이러스 제작자는 천잉하오(陳盈豪)이라는 타이완 대학생이었다. 백신 프로그램을 구입했는데 바이러스가 안 잡히자, 화가 난 그는 백신회사에게 복수하기 위해 바이러스를 만들었다. 1998년 여름 이후 CIH라고 명명된 파일이 여기저기 퍼져갔다. 당장의 피해는 없었다. 천잉하오의 생일인 4월 26일에 터지도록 설계됐기 때문이었다. 공명심 탓이었는지, 자신의 이름 이니셜을 따서 파일명을 지었다. 체포될 때 결정적인 힌트가 됐다.
당시 국내에는 약 800만 대의 PC가 있었다. 그중 약 32만 대가 CIH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을 추정됐다. 난리가 났다. 개인도 문제였지만, 부팅이 안 되거나 데이터가 날아간 컴퓨터 때문에 기업과 공공기관에서는 더 큰 피해가 발생했다. 국내는 물론 전세계적으로 바이러스에 대한 공포와 백신 업데이트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계기가 됐다. 천잉하오의 의도와 정반대로, 백신회사들은 더욱 흥하게 됐다.
2000년 4월 26일에는 국내에서는 약 2만 대의 컴퓨터가 CIH 바이러스에 다시 감염됐다. 많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꽤 많은 숫자였다.
CIH 바이러스 탓이었는지, Y2K(밀레니엄) 버그에 대한 공포가 더욱 확산됐다. 구식 컴퓨터가 날짜를 두 자리 연도로 코딩돼 있는 탓에(1999년를 99) 2000년(00)이 되는 순간 큰 재앙이 발생할 것으로 염려됐다. 비행기가 날다가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바뀌는 순간 추락할 것이라는 풍문도 돌았다. 문제의 코드를 찾아내 네 자리로 바꾸기 위해 각국 정부와 기업들은 IT 기술자들을 대거 고용했다. 엄청난 돈을 쏟아부었다. 다 고쳤는지 확인할 길도 없었다. 2000년 1월 1일, 거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사람들은 안도했다. 인도를 중심으로 전 세계 IT 전문가들만 떼돈을 벌었다.
CIH 바이러스를 마든 천잉하우는 1999년 4월 29일 타이완 경찰에 체포됐다. 위 사진에서 앉아있는 젊은이가 경찰에서 조사받고는 천잉하우다. 타이완 내부에는 별 피해가 없어 그는 처벌받지 않고 풀려났다. 초창기 해커들이 많이 그랬듯, 이 일이 언론에 알려진 뒤, 그는 IT업체에 핵심 개발자로 취직했다. 디스켓 두 장으로 바이러스를 잡던 나는 여전히 IT 언저리에서 게임 기자를 하고 있다.
- 1999년 4월 26일, CIH 바이러스 발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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