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5년 4월 27일 지관에서 <하프>(Harp)가 출시됐다. 밸브의 <하프 라이프>(Half Life>가 아니다. 아둑시니 노리팀이라는 국내 개발팀에서 만든 게임이었다.
막 국산 RPG나 액션게임이 많이 나오던 무렵 등장한 <하프>는 좀 특이했다. 게임잡지에 소개됐는데, 정말 뜬금없이 튀어나온 느낌이었다. 국산 게임 중에는 찾아보기 힘든 스타일이었다. 흔치 않은 국산 어드벤처 장르였던데다가, 주인공인 요정 하프가 희생하는 스토리 역시 당시에는 무척 특이했다.
이 게임은 게임잡지를 통해 소개됐다. 90년대 게임잡지의 공략은 게이머가 게임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였다. 문제는 어드벤처 게임의 특성상 공략에서 모든 스토리가 다 나오면 사람들이 게임에서 어드벤처를 즐길 요소가 많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
유통을 맡은 지관은 <삼국연의> 같은 게임을 만든 대만 회사였다. 요즘은 지관이라는 이름보다 소프트월드로 더 잘 알려져있다. 패키지게임 때부터 해왔던 회사지만, 요즘도 대만에서 감마니아와 함께 양대 게임 퍼블리셔의 자리를 유지하고 있다.
90년대 대만 PC 패키지게임이 한국에서 좀 먹혔다. 지관은 다른 대만 게임들을 한국어화해 발매해서 한국 게이머들 사이에 인지도가 꽤 있었다. 다음 작품도 준비했는 듯 <하프> 패키지에는 vol.1 이라고 적혀있었지만 두 번째는 없었다.
PC통신을 일찍 시작한 사람들이라면 이미 알았겠지만. <하프>는 원래 PC통신에 공개된 게임이었다. 허큘리스(해상도가 좋은 흑백 그래픽카드)용으로 93년 겨울에 공개된 흑백 게임이었다. 허큘리스가 아니면 실행하기가 힘들었다. 스토리를 중시한 어드벤처였고, 책을 모티브로 한 디자인 등이 다른 게임과 차별성이 있어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었다.
지관에서 패키지로 출시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지관에서 출시될 때는 93년의 흑백버전과는 많은 점이 달라졌다. VGA로 그래픽이 업그레이드됐고, 음성이 지원됐다. 책 방식의 인터페이스는 스토리를 진행할 때만 나오도록 되었다. 공개버전에는 없던 전투가 추가됐다. 매뉴얼에는 원래 의도하지 않던 전투가 들어가서 정말 싫었다는 언급이 있다. 그 때나 지금이나 퍼블리셔 입김이란 것은 마찬가지였던것 같다.
<하프>는 상업적인 성공은 하지 못했다. 국산 어드벤처라는 특별한 기억으로 남게 됐다. 개발을 맡은 스튜디오 아둑시니는 자신들을 대외적으로 알리는 노력이 전혀 없었던 것 같다. 어떻게 한국 게임 산업의 초기에 어드벤처 게임 만들려고 했는지, 그 분들이 그후 어떻게 되었는지도 궁금하지만,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이 좀 아쉽다.
지금은 구할 수 없지만 하이텔 게제동에 올라와 있던 파일이 있어서 dosbox로 돌려보면서 이러한 시도들이 이어지지 못해 왔다는 것이 몹시 아쉬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