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 노래 불러 잠재우고 싶다.
언제나 그 곁에 앉아 있고 싶다.
너를 어르며 조용히 노래하고
자나깨나 같이 있고 싶다.
지난밤이 추웠음을 아는,
이 집에서 단 한 사람이고 싶다.
네 가슴과 이 세상과 숲에
가만히 귀 기울이고 싶다.
<라이너 마리아 릴케, '자장가'에서>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린 걸까…
정신없이 질주하던 하얗고 작은 마법의 재봉틀이
렌의 한숨을 따라 파르르 떨렸다.
코끝에 탐라국의 바람 향기가 머무는 것 같았다.
그랬다. 너무나도 파란. 파랗고 파란 그곳의 바람.
떠나온 것이 바로 며칠 전이라고 생각되지 않게.
모든 것이 너무나도 그리웠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Amaranth]
따뜻한 햇살. 바다의 냄새가 조금 섞인 공기의 향기.
그리고 탐라국의 나의 예쁜 성.
식탁 가득한 산해진미.
갸르릉 거리며 따뜻한 무릎 위에서 놀던 예쁜 고양이들.
그리고.
묵묵히 재봉틀을 따라 달리던 렌의 손이 잠시 멈춰졌다.
그를 생각하니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고 눈앞이 잠시 흐려졌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명]
흔쾌히 나의 모험을 밀어주던 그의 따뜻한 미소.
좋은 추억을 가득 쌓고 멋진 모험을 많이 하라고.
렌마저도 잠시 주저하게 한 미완성의 의상에도 괜찮을 거라고.
조금 걱정은 되지만 너라면 해낼 거라고.
그렇게 렌의 등을 떠밀어주며
잘 다녀오라며 든든하게 말하던 그였는데.
내가 이곳에서 뭘 하는 것일까.
이렇게 길게 신세를 질 생각은 아니었는데.
나는 언제쯤이면 다시 돌아갈 수 있는지.
렌은 작업의 손길을 멈추고 잠시 얼굴을 감싸 안았다.
마음이 끝없이 밑으로 밑으로 떨어져 내리는 듯.
절망적인 기분이 들었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군]
남들은 그를 일러 전생에 세상을 구한 그라고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사의 용모는 정말 빼어났다.
게다가 단순히 미모 뿐만 아니라
마법사로서의 실력도 엄청났다는 것.
다양한 마법을 다양하게 구사하는 렌이었지만
특히 그녀는 소환 능력이 엄청났는데.
누구든 그녀가 원하는 소환마로서의
변신 능력은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J]
제작 능력은 말할 것도 없고.
그 소환마 그 자체를 훌륭하게 불러내어
현신이 된 듯한 기분마저 들게 했던…
그야말로 다방면으로 많은 것을 갖춘 그녀.
게다가 더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얻어낸 이유는
그런 그녀가 그가 좋아하고 애정을 쏟는 캐릭터들을, 소환마들을
아낌없이. 열정을 쏟아 불러낸다는 것.
그것도 놀라운 퀄리티의 기술로.
그런 그들을 세상 사람들은 부러움이 섞인 시선으로 바라봤으며
그래서 그를 ‘전생에 세상을 구한 남자’로 불렀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Amaranth]
세상 사람들은 마냥 그런 그를 부러워했다.
그렇지만 사실은.
그녀 또한 그가 있기에 어려움을 견디고
행복을 이룰 수 있었다.
그로 인해 그녀 마음속 어둠을 감추고
밝은 빛 속에 그녀의 마음을 놓아둘 수 있었다.
사실 그랬다.
피하기는 불가능했으리라.
심연을 오랫동안 들여다보면,
심연 또한 그를 보게 된다고 했다.
흑마술을 하고 있는 마법사로서는
심연 속의 그들을 다루면서
그녀 또한 그녀 안의 어둠을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불과 같은 검투사의 분노와는 다른
얼음과 같이 차디찬. 서늘한 어둠의 마법.
그녀가 좌절하고 힘들거나 마음에 큰 상처를 받게 되면
간신히 가두어 놓은 심연 속의 어두운 그녀가
서서히 그녀의 슬프고 어두운 마음을 양분 삼아
서서히 커지고 커져서 그녀를 지배했다.
그렇게 심연 속 어두운 그녀가 비집고 나올 때면
그녀는 정말 얼음보다 차디찬 미소를 띄고
상냥했던 원래의 마법사를 대신 가둔 채
잔혹한 어둠의 흑마술을 가감 없이 사용하곤 했다.
푸른 바람의 마법사.
하지만 그 속 어딘가의
차디차고 어두운 암흑의 마법사.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군]
그러한 어둠이 그녀를 지배하고, 그래서 폭주할 때는.
악마의 마법이, 날개가 서서히 펼쳐지듯.
차디찬 냉소와 함께 무자비한 마법이
벼락같이 내렸다.
그리고 그럴 때의 그녀는
정말이지 잔혹하리만큼 차가운
미소를 입꼬리에 띄웠다.
그걸 기억하는 사람이 지금은 없을 뿐이다.
그를 제외하고는.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그런 그녀를 잘 이해하고 제어하고
늘 응원해주었던 그녀 곁의 그 사람.
그 사람이 있기에 자신의 어둠을 제어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없는 이 낯선 곳에서 이틀 밤을 새며.
그녀는 묵묵하게 일할 뿐이었다.
솔직히 그랬다. 힘겨웠어.
몸은 당연하고 마음이 너무 무거웠어.
[REN, LILITH, Photography by J]
찬찬히. 곰곰이 따져 생각해보니
그래. 음유시인이었다.
모든 것은 음유시인의 노래로 시작되었다.
탐라국에서 조용히 다양한 모험을 계획하고
새로운 흑마술을 고안하고 매진하던 중의 나를
이 절망의 구렁텅이로 불러낸 것이.
호시탐탐 나의 스케줄을 엿보던 음유시인이
잠시 일정이 빈 틈을 타서 모험에 함께할 것을 요청해왔다.
정말이지. 음유시인 맞는가 싶을 정도로 집요했었지.
사실 아이템도 상당히 매력적이었고.
평소에 친해지고 싶어 눈여겨보던
선혈의 검투사가 같이 하자는데.
그래서 생각 없이 음유시인이 건넨 거대 떡밥을 물고 만 것이었다.
이렇게 하드한 일정일 줄이라곤…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군]
게다가 준비에도 사실 탐라국은 살기에는 좋은 나라였으나
모험을 하기에는 다양한 방해 요인들이 존재하던 곳.
그중에 가장 큰 문제가
모험을 하기 위한 재료나 의복, 무기 제작에 필요한
재료의 수급이었다.
바다를 타고 산을 건너 뭍에서 구해와야 할 판이었기에,
대부분의 준비는 차곡차곡 평소에 쌓아둔
가지고 있는 재료로 미리 제작한다지만
큰 소품이나 무기는
하루 이틀 정도 먼저 뭍으로 나와 폭풍처럼 제작하곤 했다.
그래서 뭍에 나올 때마다 일정이 그야말로 몰아치곤 했는데
이번에는 그 강도가 정말 만만치 않았다.
잘해야 한 달에 한 번 정도 나오는
인기 많은 마법사인 그녀를
다른 일정들조차 놓아주지 못했기에…
그녀는 그야말로 대 패닉과 강행군의 상황.
정말 버티기가 힘들었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Amaranth]
그렇게 탐라국에서 뭍으로 올라온 후
신세를 졌던 것은 다름 아닌 구디의 신전.
처음에는 망설였었다.
낯선 신전은 가지 않는 것이 마음이 편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낯도 가리는 편이었고. 두렵기도 했다.
모두 입을 모아 칭송하는 구디의 성녀.
모두가 그녀의 따스함을 칭송했지만
범접할 수 없는 그녀의 아우라가…
그리고 어딘가 차가울 듯한 성녀의 미모까지 어우러져
사실은 다가가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처음에는 연금술사의 집에 신세를 져야지 하고 생각했었지,
신전은 절대 갈 리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그런데 연금술사 역시 하드한 스케쥴에 대 패닉.
게다가 J군과 연금술사의 팽팽한 긴장감에
발조차 디디기 어려웠고.
정작 이 모든 혼란을 만든 장본인인 음유시인은
룰루랄라 현실 도피 중.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와중에
만신창이가 된 검투사가 적극적으로 제안했다.
같이 합을 맞출 예정이니 무기 제작도, 전투복 제작도 같이 하자고.
신전에서 하루면 가능하지 않겠냐고.
그리고 이 스칠듯한 제안이 그녀를 구할 줄이야.
아니, 정말 구디의 신전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이미 짐을 싸서 탐라에 있는 그녀의 성으로,
그리고 그와 고양이 곁으로 돌아가 버렸을 것이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J]
이번에 가장 큰 문제는 다름 아닌 날개.
날개라는 큰 장비를 검투사와 함께 착용하는바.
어느 정도 그 날개의 모습과 성능을 함께 맞추어야 했고
허투루 만든 날개는 마법사와 검투사 모두의 높은 기준에
적합하지도 못했고 용납할 수도 없었다.
게다가 그녀는 드래곤 덕후.
전설의 드래곤을 강렬하게 사랑하고
드래곤을 소환하는 일에 가장 공들이는 푸른 바람의 마법사로서.
정말 보통의 날개는 만들고 싶지 않다는 욕망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부터 솟아올랐다.
진짜. 진짜의 최상의 날개를 만들고 말겠다는 그 마음.
[REN, LILITH, Photography by J]
아무렇게나 만드는 건 절대 용납지 못한다네
게다가 옆에서 음유시인은 왜 이렇게 종알대는지.
하도 ‘기대한다. 믿는다. 너라면 할 수 있어’라고
시도 때도 없이 종알대는 탓에.
그리고 그것이 은근히 부담이 되는 탓에 정말 괴로웠다.
사실 어딘가 헐랭이인 듯하면서도
이 녀석. 계속 일은 만들어서 더 벌리고 크게 만드는지.
그 어마어마한. 어떻게 감당할까 싶은 에너지에
정말 넋을 놓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자신의 선택으로 된 일.
“김하루. 언젠가 저 녀석에게
저주의 반짝이 가루를 보내버리겠어…” 라고
중얼거릴 수 밖에 없었지.
이럴 때 모든 것을 제작해주는 마법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아.
소환해서 대신 제작을 맡길 수도 없고.
하고 그녀는 힘이 빠진 웃음을 지으며 중얼거렸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명]
어쨌거나.
그렇게 일은 더 커져만 갔고.
제작은 오히려 그냥 넘어갈 수도 있던 부분이
더 꼼꼼하게 자세하게 보게 되고 만들게 되었으며.
신전에서 하루면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시간이 늘어져
신전에서 이틀 내내 밤새게 되는.
그야말로 스파르타식의 일정으로 달리게 된 것이다.
가물거리듯 지쳐 깜빡이는 눈.
흐려진 시야.
지진처럼 흔들리는 동공.
끊임없이 나는 왜 여기서.
낯선 신전에서 무엇을.
이란 질문을 스스로에게 거듭하다 보니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군]
난 꼼짝없이 붙잡혔어.
드래곤의 재료를 쥐고. 놓고. 쥐고, 놓고.
끊임없이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다.
포기하듯 어깨가 무너져 축 처졌다.
그렇게 마음 속의 어두움이 서서히 그녀를 물들기 시작했다.
마음속의 위험한 마물이
냉소적인 미소가 입가에 물들고
차가운 빛이 눈에 서렸다.
내면의 그 악마가 이빨을 드러냈다.
이제 아무래도 괜찮아.
어둠이 조금씩 그녀를 집어 삼키고
그 기운을 알아차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조용히 조용히. 그렇게
까만 어둠 속으로 물들며 흑화되는 순간.
그 순간 어깨에 따스한 기운이 느껴졌다.
성녀였다.
이렇게 아름다운 미소가 세상에 존재했었나?
그녀는 환한 미소를 가지고
고운 입술을 열어 마법사에게 무언가를 말하려 했다.
뭐야.
이젠 아무래도 상관없지만.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명]
“...닭.”
“....네?”
“...닭고기 조림을 들어요.”
.....
닭고기 조림?
닭고기 조림이라고?
내가 잘못 들었나?
닭고기 조림?
이 무슨 뜬금없는.
그녀는 믿기지 않는 듯 다시 재차 물었다.
“성녀님 무슨 말씀이신지…”
성녀는 다시 빙그르르 웃으며 저 너머를 가리켰다.
먹음직스러운 양배추가 보였다.
짭짤하고. 알맞게 구워진 버섯 파프리카구이.
그리고
닭고기 조림.
...............에?
진짜 닭고기 조림이었어!
그제서야 정신을 차리고 보니
성녀가 눈부신 미소를 보이며 성스러운 에이프런을 착용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매우 아름다워서
마법사는 자신도 모르게 넋을 잃을 지경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화도 났다.
“성녀님. 무슨 농담이 이렇죠? 갑자기 이게 무슨...”
“당이 떨어지면 기운이 빠져요.
지금 당신은 한계에 다다른 상태.
정신 없이 달려야 하는 자.
가끔은 쉼도 있어야지요.
그 기운을 가지고 또 달릴 수 있어요.
자… 사양 말고 어서.”
나긋나긋 상냥한 말씨.
그녀는 그 목소리에 끌리듯 식탁 앞으로 다가가 앉았다.
진수성찬의 음식들.
성녀는 그녀를 위해 손수
하나하나 다 준비하고 만든 것이리라.
눈물이 고였다.
어딘가 짠 눈물을 삼키며 큰 한술을 떠서
입을 벌려 그 음식을 집어넣은 순간.
연금술사가 수만 번 들었다는 바로 그 <상투스>가 들렸다.
그리고 조금씩 나오던 그녀 안의 차가운 악마가
다시 발톱을 거두어들이고 다시 어둠 속으로 숨겨져 가는 것을 느꼈다.
그랬다. 닭고기 조림이었다.
짭쪼름하고. 달콤 매콤하고.
무너지려 하던 그 정신이
화가 나던. 분노로 가득했던 지난 순간이.
돌아가고 싶어. 그를 보고 싶어. 하며 괴로워하던 마음이.
스르르 풀렸다.
해탈이란 것이 이런 것일까.
닭고기 조림이었다.
(...이거 그냥 당이 채워진 거 아냐?)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쉿. 의문을 갖지 마. 어쨌든 예쁘니 되었다.
어떻게 그릇을 비웠는지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그냥 부지런히 숟가락을 놀렸고.
환희의 눈물이 같이 목구멍으로 삼켜졌다.
나에게 필요한 것은 휴식이었을까?
정신없이 바쁜 와중이지만 작은 여유는 꼭 필요한 것이었을까?
이 여유가 바로 원동력을 만드는 것이었을까?
정신없는 스케줄에 빠져 나조차도 나를 옭아매고 있었던 걸까.
깨달음이 파도처럼 밀려왔다.
마음이 편안하게 비워졌다.
무소유의 마음.
그리고 닭고기 조림.
그리고 성녀는 눈부시게 환한 미소를 띤 채
말없이 그녀의 따뜻한 잠자리와 목욕물을 준비하고 있었다.
왜 이 분은 정말 이렇게까지
몸소 나에게 깨달음을 안겨주는 것일까.
삶에서의 여유는 꼭 필요한 것이었는데.
나는 나 자신을 너무 놓지 못하고 가열하게 달려왔었다.
생각해보면 그랬다.
음유시인 탓에 정신없이 낚여 허우적거렸지만
마법사 또한 너무 바빴고. 여유를 찾기는 힘들었다.
하지만 여유는 꼭 필요했다.
그게 꼭 장시간의 휴식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잠깐이라도 누군가를 배려해주고 생각해주는 마음.
그것에 기대는 것 또한.
지금의 닭고기 조림처럼.
주의: 본 연재는 이 작품이 아닙니다.
새로운 의욕이. 넘치는 에너지가
마법사의 마음에서 다시 살아났다.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것이었다.
동기. 그리고 내 마음.
맛있게 그릇을 비운 후
따뜻한 물에 번민을 흘려보내고
조금이나마 잠을 청하고 나자
없던 기운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그 마음이 다시 살아나자
눈앞의 작업물도 더이상 버거운 숙제로 보이지 않았다.
금방 이 부분만 하면 마무리될 것 같았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Amaranth]
최고로 즐거운 시간이 될 거야. 이 모험은.
그리고 이 모험을 끝내고 탐라에 다시 돌아가면.
나도 그에게 작은 휴식처가 될 거에요.
맛있는 음식도 잔뜩 해주고..
어제 먹은 것 레시피 알 수 있어요?
같이 새로운 차원으로의 여행을 떠날 생각이에요.
조만간 그.. 페르소나의 차원이 열린다던데… 알죠?
하고 재잘재잘 즐겁게. 듣는지 마는지 모를 성녀에게 떠들면서
마법사 본인도 모르게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이제까지와는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다시 날개는 점점 더 그 모습을 갖추어 가기 시작했다.
새로 태어난 기분.
그리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마움.
큰 힘을 얻은 그녀의 등 뒤에서
성녀가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To be continue...>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갑자기 닭고기 조림 편의 <심야식당>이 되어버린…
이 산뜻한 기분. 아핫.
우리네 이웃들의 따뜻한 정과
사람 사는 냄새가 흠뻑 묻어나오는 이야기들을
음식이라는 것을 통해 나눌 수 있었던
심야식..이 아니라.
푸른 바람의, 탐라국에서 온 마법사.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렌.
사실 이번 코스프레의 주인공들이
몽마 자매?남매?; 아무튼 꿈과 밤의 악마들이어서
분위기에 맞춰 쓰느라
불과 얼음의 상반된 이미지?
모리건과 리리스의 이미지?
에 맞춰서 쓰느라고 ‘폭주’를 주제로 잡고 썼더랬다.
그..그래서 이건 단순히 설정일 뿐
실제로 디도언니나 렌이나
저런 성격인 건 아니에요.
<오해금지> ㅎㅎㅎ
[REN, LILITH, Photography by Amaranth]
모두 영혼까지 코스프레되었다.
사실 렌은 내가 <큐라레>로 다시 코스프레로의 재시동을 걸 때부터
계속해서 언제 한번 같이하나 눈여겨 왔고,
함께 놀기를 고대해왔던 아이.
하지만 거리라든지 스케줄이라든지 좀처럼 맞지 않아
매번 새우는 계획에서 어긋나기를 여러 번.
언제나 같이 재미있게 해 볼 수 있으려나… 하고 기다리던 와중에
기적처럼 시간이 딱 맞아 이루어지게 된 케이스이다.
그래도 캐릭터 선별 과정부터 고민은 많았는데
우선 렌이 최초로 고민했던 캐릭터는
남편님께서 좋아하시는 캐릭터 중에 쿨라라는 캐릭터.
하지만 뭔가 제작하기에도, 맡기기도 촉박한
애매한 상황에…
좋아하기는 좋아하지만 정말 하고 싶어서 견딜 수가 없는
그런 상황은 아니었던지라
‘이대로 안되나…’하던 와중에
디도언니가 <모리건>이라는 대형 떡밥을 던진 것.
그 순간 14여년전.
생생히 푸르르고 푸르르던 아주 어린 날의 언젠가.
준비는 다 해놓고 만들기도 다 만들어 놓고서는
일이 터져 할 수가 없었던 <리리스>가 생각난 것이다.
떡밥을 던져 준 디도언니에게 무한 감사를…
둘의 트윈이라니!!!
생각만 해도 가슴 뛰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캐릭터도 엄청 잘 어울려!!!!!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그렇지만 쉽게 일이 풀리면 코스프레가 아니니라.
우선 모리건과 리리스의 의상은 레오타드.
레오타드.
아하하하.
의상을 만들기는 몸에 붙을 수록 어렵다.
난이도 최상, 레오타드가 아닌가.
그래서 기존 레오타드를 리폼할 것을 생각하고 구매했는데.
모양새가 영...
그냥 일반의 수영복 라인이었다고 한다.
워낙 원작 충실을 1번으로 삼고 있는 렌이다 보니.
원작 충실! 원작 충실!!
원작 충실!!!!!!!!!!을 외치면서
리리스는 골반 위까지 수영복 라인이 있군요!!!!
라면서 용감하게 삼각라인을 가위질…
…
대참사가 일어났다.
뭐 그렇습니다.
원작 충실입니다 사실.
하지만 그 원작이 3D로 구현되면
잘못하면 큰일 납니다.
이게 현실로 구현되니까…
엄청 야해.
등줄기에 흐르는 식은땀을 느끼며
입어보면 괜찮을 거야.
괜찮겠지, 괜찮을 거야.를 천 번 외치며
우선 염색 전의 살색 스타킹에 우선적으로
빨간 레오타드를 착용해 보았더랬다.
어머나.
코피 퐉.
이건 진짜.
심각하게 야했다.
그날 우리는 메신저로 사진을 봤었는데.
정말 어떻게 해야 하나 곡소리가 날 정도로
야했어요. 야했다고
왜 하필 타이즈가 피부색이어서 더 (오열)
잔뜩 불안해진 우리는
렌의 남편이 허용치 않을거야아아아아아아
렌의 리리스를 보고 싶은대애애애애애애애애
렌의 남편님의 배려를 구합니다아아아아아아
우리 이대로 렌의 리리스 못보나요오오오오오오
라고 오열을 했고
오히려 침착해진 렌은 소란스러운 좌중을 달래가며
컴퓨터로 우선 피부색 타이즈 부분을 보라색으로 변경해 보았더랬다.
그런데 색상을 변경했더니.
완벽 리리스 느낌 물씬.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모두 쉴 수 있었다.
남편님에게도 무난히 컨펌.
아 역시 색상이란 중요한 것이구나.
하긴 하다못해 피규어 도색할 때에도
피부색으로 바꾸면 수위가 달라지지..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
렌의 리리스를 못 볼까 봐
너무 무서웠어 (눈물)
[REN, LILITH, Photography by J]
내가 그리웠구나
그리고 자매님 커플룩 아니랄까 봐.
역시 같은 문제에 둘 다 봉착.
여러 번 이야기하지만 몸에 붙는 옷일 수록 정말 난이도가 높아진다.
사방으로 늘어나는 옷이니까
잘못 자르면 작은 구멍이 엄청 크게 되어버리거든.
모리건처럼 리리스 가슴에도 파진 무늬가 있는데
모리건은 하트, 리리스는 다이아몬드이다.
적당한 사이즈라고 생각하고 또 용감하게 서걱서걱 잘랐는데..
엄청난 구멍이…
그래서 할 수 있는 각종 방법을 총동원해서
살색 천으로 덧대고 메꾸었더랬다.
살색 천에 심지 박고 오버로크에 어휴.
정말 쉬운 게 하나도 없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무명]
어찌 됐건 그래서 하루면 충분할 줄 알았던 일정이
2박 3일이라는 하드한 일정으로 늘어나 버렸고
유카는 지쳐가는 렌을 잘 도닥이고 챙긴 모양이다.
사실 밥도 잘 챙겨 먹기 힘들고
하드한 일정에, 제주도에서 서울에 와서 이것저것 하느라
무척 힘들고 지쳤을 텐데.
유카가 옆에서 많은 도움을 줬다.
진짜 성녀 현신한 줄. (오열)
대신에 우리는 중간중간 렌이 보내는
행복에 가득 찬 유카의 음식 사진들과
그 맛있음에 대한 찬양으로
마치 밤 중에 먹방을 보거나 음식 사진을 보는 것과
동일 등급으로 괴로워했고.
특히 닭고기 조림에 대한 찬사는
당장 구디의 신전으로 달려가게 하고 싶픈 욕망을 부채질했더랬지.
그것이 <심야식당> 편을 쓰게 한 시작인 건가…
꼭 한번 먹고 싶습니다 유카의 닭고기 조림…
먹고 싶어 유카야…
나도 요리해줘…
어렸을 때, 막 코스프레를 막 시작하고, 한참 즐겁게 하고 있을 시절
렌과 늘 맞닿는 듯 아닌 듯 하는 관계로 지냈었다.
서로 친한 친구들이 이어져 있었지만
같이 코스프레를 준비하거나 했던 적은 많이 없었으니까.
그래서 그렇게 내가 코스프레가 소원해지면서
‘그냥 이렇게 아는 아이로 남겠구나’하고 생각했었더랬다.
아마 렌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랬던 관계도. 세월이 지나고 나서
우연하게도 이러한 계기로 같은 프로젝트를 준비하면서
다시 이어지고 돈독해진다.
함께 좋아하는 것을 같이 준비하는 시간 속에서
이전에는 서로 몰랐던 서로의 모습도 알게 되었고,
서로가 익숙해지고 이야기도 많이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인연이라는 것은 사람과의 만남을 가지는 것에서 시작한다.
등지고 현실에 바빠 챙기지 못할 때는 놓치고 있던 자잘한 것들이
다시 소중하게 이어지고 새롭게 연결된다.
그렇게 우리는 인연을 다시 잇고
새로운 추억을 만든다.
[REN, LILITH, Photography by 가람과달]
To be contin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