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네이버에서 신문검색 서비스(뉴스 라이브러리)를 이용해 확인해 보니, 1973년 말에 정부(당시 보건사회부)에서 내년(1974년)부터는 당분간 에너지 절약과 낭비를 막기 위해 더 이상 전자유기장업허가를 내어 주지 않기로 하였다는 기사(아래 이미지)가 확인됩니다(1973년 12월 26일자 경향신문 7면).
기사의 말미에 ‘전국에 등록된 전자유기장의 수는 정확히 파악되지 않고 있다’는 내용도 함께 확인됩니다. 여기서의 전자유기장이란 아케이드 게임기 등을 이용한 전자오락실을 말하는 것이니 이 무렵 전자유기장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에 있었던 것은 확실해 보입니다. 나아가 전자유기장을 하려면 정부에서 허가를 받아야 했으니, 관련된 법도 아마 있었을 것입니다.
이 당시에는 ‘유기장법’이라는 법이 있었습니다. 이 법은 1961년에 처음 제정된 법이었습니다. 그런데 1961년은 미국에서도 비디오게임의 태동기에 불과한 때였으니 우리나라에 오락실이 있었을 리는 없던 때입니다.
확실히 1973년에 전면 개정된 유기장법시행규칙을 보면 여기에는 ‘전자유기시설’이라는 말이 나오고 ‘사용료를 유기기구에 투입하거나 지불하여 일정한 시간 유기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비사행성 전자식 유기기구를 말한다’는 구체적인 설명까지 괄호에 덧붙여져 있습니다.
법문에서의 표현이 이쯤 되면 여러분께서도 아마 제법 구체적으로 ‘동전투입구가 있는 오락실 아케이드 게임기’를 상상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이상과 같은 사정을 종합해 보면, 우리나라에서 전자유기장이 등장한 것은 1973년을 전후한 무렵이었던 것으로 추측됩니다. 그러나 이 때만 해도 게임기 그 자체가 곧 게임을 말하는 것이었고,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아케이드 게임기 기판)을 분리해서 따로 규제한다거나 하는 법은 없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또한 ‘스트레스 해소 두더지 잡기 게임’이나 ‘펀치 게임’ 등도 전자유기시설의 범주에 들어가는데 지금 시대의 관념으로는 이런 게임은 게임의 범주에 속하지 않는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말하자면 길지만, ‘유기장법’은 이후 ‘유기장업법’이 되었다가 ‘공중위생법’에 그 내용이 통합됩니다. 유기장이 공중위생법에 의해 규제를 받았다는 사실을 보면, 당시에 오락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읽을 수 있습니다.
사회적으로 위생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던 시절, 불특정 다수의 사람이 모일 수 있는 공간이니 위생관리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면에서 정부가 이를 규제하고 허가를 받도록 한 것이 아닌가 추측이 됩니다. 나아가 오락실(유기장)과 오락기기(전자유기시설), 게임콘텐츠(게임의 내용)는 별 구분 없이 ‘오락’으로 통용되었던 것이라고 하겠네요.
이후에 정부는 게임 콘텐츠, 즉 게임 소프트웨어를 영화 음반 등과 같이 하나의 콘텐츠산업의 범주로 보아 통합적인 법률로 규율하기도 하다가(1999년, 음반,비디오물 및 게임물에 관한 법률제정), 2006년에 들어와서 게임에 대한 내용만을 독립된 법률로 만들어 게임산업법을 제정하게 됩니다.
법제사적으로 보면 25년이 넘는 시간 동안 우리나라의 ‘게임’은 유기장, 즉 오락실속에 머물러 있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 법이 ‘게임’을 처음 만났을 당시의 기술적인 한계이기도 했고, 그래서 법적으로도 그랬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후 제정된 게임산업법은 이전의 법들과는 달리 오로지 게임만을 다루는 법이지만, 그 속에서 게임은 콘텐츠로서 아케이드 게임부터 온라인 게임을 지나 모바일 게임까지, 즐기는 장소로서 동네 오락실부터 PC방까지 매우 폭넓은 스펙트럼을 포괄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모든 것을 아우르는 유기장법의 흔적은 남아 있습니다.
법은 그 규율대상에 대한 사회의 인식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합니다만, 한 시대의 단면을 보여주는 한편 규정된 법을 바꾸어 개정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을 필요로 합니다. 이런 점에서, 게임에 대한 우리나라 법의 인식은 유기장 허가를 내어 주던 과거에서 아직 많이 벗어나 있지 않은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출처: 동아일보 8월 21일
저는 초·중학교 시절 학교 선생님들과 부모님들께서 그렇게 가지 말라고 하시던, 전자오락실의 풍경을 생생히 기억하는 세대입니다. 구석 허름한 작은 공간에서 동전을 교환해 줬습니다. 관리 아저씨는 아이들이 전기라이터 튀기기 등을 하지 않는지 감시하고, 간혹 고장이 나면 기계를 수리했습니다. 대개는 무서운 인상으로 항상 오락실을 살피고 있었습니다.
<보글보글>이나 <람보이카리>, <카발> 류의 게임에 몰두하다 보면, 어떤 날은 소위 ‘껌 좀 씹는 형들’이 조용히 따라오라고 뒷문으로 데리고 나가서 으슥한 곳에서 겁을 주며 주머니의 동전을 털어가기도 했습니다.
처음 오락실에 갔던 날은 조금은 무섭기도 하고 두렵기도 했던 것이 사실이긴 합니다.
도심에 있는 오락실에선 담배연기가 자욱했던 때도 생각나기도 하고요. 나중에 고등학생이 된 이후의 오락실은 꽤나 깔끔해진 느낌이 있는 곳이었습니다만, 그래도 선생님들이나 부모님들은 여전히 오락실에 가는 것을 좋아하진 않으셨습니다.
오락실이 절대로 탈선의 현장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고등학생이 되었을 때에도 오락실 구석에선 친구들이 담배를 피곤 했고, 가끔 옆 학교 친구들과 싸움이 나서 주먹다짐이 오가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경험상 그런 일은 아주 가끔 있었고, 그렇게 위험하기만 했던 곳만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머리 속에는 여전히 오락실에 관한 한은 ‘부모님 몰래 가는 곳’의 이미지가 남아 있습니다.
인식과 고정관념이란 쉽게 바뀌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 법은 ‘게임’을 25년간 오락실에 한정하여 두었다가 최근에 와서야 다양한 게임을 구분하기 시작하였지만, 여전히 이들을 같은 ‘게임’으로 보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기판을 갖춘 아케이드 게임을 만들든, 대형 게임사가 대작 PC 온라인 게임을 만들든, 앱스토어나 구글플레이에 올리기 위한 인디게임을 개인이 만들든, 아버지가 지체장애를 가진 아들을 위한 게임을 집에서 만들든, 기본적으로 우리 법의 취급은 동일하고, 세부적인 차이만이 있을 뿐입니다.
이런 생각이 억측일 수도 있겠지만, 우리나라 법이 게임을 바라보는 시각은 여전히 게임이 오락실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보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모바일 게임의 등장으로 인한 저작권 침해 위험성의 증가에 대해 얘기해보려 합니다. 오늘 이야기는 다음에 다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