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텐센트의 1위 탈환을 위한 닌자 용병, <나루토>
<나루토>가 모바일게임으로 나왔다. <화영닌자>라는 중국판 애니메이션 제목 그대로다. 중국 최대 게임 퍼블리셔 텐센트가 개발 및 퍼블리싱을 했다.
출시한 지 1주일이 지났다. 초반 성적 정도는 가늠할 수 있다. 둘째 날 9위로 출발해서 4일만에 3위까지 올라갔다. 최근 반 년간 텐센트가 내놓은 모바일게임 중 가장 좋은 페이스다. 내 관심은 과연 이 게임이 1~2위를 차지하고 있는 '쌍서유기'의 자리를 빼앗을 수 있는가다. 이는 텐센트를 포함한 중국 게임 업계 관계자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 전형적인 '텐센트형 모바일게임'에 IP를 더했다
게임은 무난하다. 사실 너무 무난하다. 새로운 시도가 없다. <나루토>를 좋아하는 팬층이 자연스럽게 즐길 수 있는 구성이다.
최근 텐센트와 미팅을 해 본 회사들은 알 것이다. 요즘 그들이 모바일게임을 평가하는 기준은 다음과 같다.
1. 한국에서 서비스 중인 게임 - 한국에서의 성적
2. 제작 중인 게임 - 그래픽 퀄리티, 콘텐츠의 양, 효과적인 BM 설계 여부
<화영닌자>는 원작에 충실한 그래픽 퀄리티, 꾸준하게 플레이할 수 있는 콘텐츠의 양, 그리고 돈 벌기 좋은 BM(Business Model, 수익모델) 구조를 갖췄다. 이게 전부다. 넷마블이 한국에서 자신들의 성공 방정식을 확실하고 밀어붙이는 것처럼 텐센트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 나루토를 팬을 위한, 반다이남코에 의한, 텐센트 게임
지난 5일 동안 33레벨까지 올렸다. 적지 않은 시간을 플레이 했다. 심지어 결제도 했다.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가장 신기했던 점은 일본어 더빙을 그대로 사용한 것이다. 오리지널 성우의 목소리가 그대로 쓰였다. 이 점이 신기한 이유는 중일 간의 외교관계가 별로 좋지 않음에도 게임 내에서 왜색을 진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이런 선택을 한 이유가 무엇일까?
두 가지 정도 추측해 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저작권사인 반다이남코의 고집(일본은 IP 사용 시 가이드라인이 몹시 보수적인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주). 그리고 두 번째는 원작 애니메이션의 느낌을 최대한 살리기 위한 선택.
원작인 <나루토>는 중국 내에서 해적판으로 떴다. 당연히 중국어 더빙은 없었고 일본어 더빙에 자막을 입히는 수준이었다. 이렇게 퍼진 <화영닌자>(나루토의 중국식 이름)는 중국 내 인기 순위 1~2위를 다투는 수준으로 성장했다. 이렇다 보니 퍼블리셔 입장에선 원작을 최대한 수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기존 팬들에게 더 익숙하리라 판단한 것 같다.
◆ 게임 전반에서 느껴지는 짙은 일본색, 정말 괜찮을까?
<나루토>는 일본의 닌자 만화다. 당연히 일본색이 짙을 수밖에 없다. 이는 게임 내에서도 나타난다. 언어, 그림, 소재 모든 것에서 일본의 느낌이 물씬 풍긴다. UX도 중국과 우리에게 친숙한 좌에서 우로 넘어가는 방식이 아니라 일본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우에서 좌로 구성됐다. 마치 일본 만화의 책장을 넘기는 것과 비슷하다.
반다이남코의 고집인지, 텐센트 자체의 판단인지 혹은 양쪽 모두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인지 모르지겠지만, 이 게임은 철저하게 일본향 게임으로 제작됐다. 그래픽 전반에서 콘솔용으로 나온 '나루토 게임'을 떠올리게 한다. 그래픽 소스를 그대로 쓴 게 아니겠느냐는 생각이 들 정도로 유사점이 많다.
이 때문에 <화영닌자>의 성공은 의도치 않은 후속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다. 이 게임의 성공이 다른 일본 IP 기반 중국 게임의 출시로 이어진다면 과거 한국 온라인게임에 가해진 규제가 생길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PC 온라인게임 출시를 하기 위해선 중국 정부로부터 '판호'를 취득해야 한다. 이는 자국 게임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도 있지만, 게임 세계관이 중국의 정치, 문화, 역사를 훼손 하는지를 확인하는 검열 과정을 포함한다. 현재 모바일게임은 이런 규제가 상대적으로 덜한 것으로 알려졌다, 편집자 주)
이미 일본 애니메이션을 향한 중국 젊은층의 높은 관심에 대해 우려 섞인 이야기가 중국 정부에서 제법 나오는 상황이다.
◆ 전통 일식집에서 파는 흉내 내기 어려운 맛의 짜장면
게임 전반의 느낌은 일본풍이지만 BM만큼은 중국 게임이 확연하다. 중국향 BM을 넣지 않으면 돈을 벌기 어려운 만큼 반다이남코도 그것만큼은 인정했을 것이다. 그렇다. 텐센트 입장에선 이게 핵심이고 한국 게임사가 공부해야 할 것도 이 중국식 BM이다.
별다를 것은 없다. 중국 게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BM이다. 거기에 과금 밸런스까지 쏙 빼다 박았다. 콘텐츠의 구성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별다를 게 없는 이 BM과 과금 밸런스가 얼마나 어려운지는 한국 게임이 여전히 중국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는 걸 보면 알 수 있다. 특별할 게 없는 넷마블형 RPG가 유독 한국에서 잘 되는 것을 보면, 보이는 것과 실제로 하는 것이 큰 차이가 있기 때문일 거다.
◆ 노오력을 해도 이길 수 없는 금수저의 벽, BM
콘텐츠는 싱글 시나리오, 여러 종류의 PVP, 레이드 등으로 구성됐다. 싱글 시나리오는 원작 스토리와 같고 심지어 중간에 애니메이션 장면까지 삽입했다. (일본어 애니메이션을 그대로 삽입한 것이 다소 위험해 보인다. 마치 게임이 짝퉁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오버하는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PVP는 직접 캐릭터를 컨트롤하면서 대결하는 '1:1 매치'와 자동전투를 통해 '대결하는 3:3 매치'로 구분됐다. 솔직히 PVP는 한국 게임과 비교해도 손맛이 있다. 비슷한 수준의 유저와 자동으로 매칭되니 하는 맛이 제법 있다. 레이드의 경우 경험치 및 돈 따먹기가 목적이다. 조금 지루하긴 해도 리워드가 확실하니 주어진 하루의 노가다를 충실하게 이행한다.
주요 BM은 수집과 성장에 몰렸다. 그런데 이게 꽤 독하다. 결제 허들이 상당히 일찍 찾아와서 마치 '돈 쓰기어려운 유저는 오지 마세요'라고 외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초반에 결제할 수밖에 없었다.
원작의 닌자 캐릭터가 생각보다 많지 않은 지 초반에는 캐릭터가 A, B, C의 3단계 정도로 나뉜다(현재는 S등급 캐릭터도 등장했다, 편집자 주). 그런데 일주일 '빡시게' 돌렸어도 B는커녕 C의 강화석을 3개 이상 모은 캐릭터가 없을 정도다. 각 단계 별로 승급을 위해선 일정 수준의 강화석을 모아야 하는데, 어림잡아 한 달은 노가다에 가까운 플레이를 해야 승급할 수 있어 보인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초반에 B급 캐릭터를 만드는 것은 몇만 원 수준으로는 어림도 없고 최소 50만 원 정도는 결제해야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로 결제하기 어렵다면 초반에 얻은 C급 캐릭터를 레벨업을 하거나 장비 및 능력치를 강화로 키워야 한다. 이것도 '겁나 빡시다'.
여기서 텐센트의 마법이 나온다. 성질나서 때려치울 무렵에 기대하지 않은 곳에서 경험치나 돈이 나오면서 막혔던 구간이 뚫리게 된다. 역시 중국의 BM 설계와 밸런스 조절은 귀신같다는 걸 새삼 느끼는 대목이다.
헤비 과금 유저는 강화석 뽑기를 통해 어떻게든 캐릭터를 강력하게 만드는 것에 목적이 있을 것이다. 라이트 과금 유저는 장비를 강화하는 정도로 결제하면서 콘텐츠 소모에 집중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이들이 지금의 매출 3위 성적을 만들었다.
◆ '나루토' 팬은 Very Good, 나머지는 글쎄...??
유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원작의 팬들은 'Very Good'를 외치고 일반 모바일게임 유저는 'bad'를 외친다. 좋다고 말하는 유저들은 게임이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살린 것에 큰 점수를 줬다. 부정적으로 보는 유저들은 기존 모바일게임과는 달리 일본색이 짙고 BM도 독한 데다 소극적인 게임 이벤트에 실망했을 가능성이 높다.
문제는 부정적으로 보는 유저들이 앱스토어 후기를 테러 중이라 높은 순위에 비해 평점은 나쁜 편이다. 애플 입장에선 피처드를 줬지만 낮은 평점 탓에 계속 밀어주기엔 살짝 부담될 것이다. 물론 피처드 정도에 일희일비하는 텐센트가 아니겠지만 말이다.
<화영닌자>는 '좋은 IP + 독한 BM + 무난한 게임성 + 강력한 마케팅 지원'을 무기로 초반부터 좋은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1위를 넘보기엔 게임이 너무 무난하다. 1위가 되기 위해선 위에서 언급한 네 가지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제 5 원소.
바로 '도전적인 혁신'이다. 이래서 1등은 참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