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 하늘에서 내려온 자
‘아바타’는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는 뜻으로 힌두교에서 사용하던 산스크리트어 ‘아바타라(Avatara, अवतार)’에서 유래했다고 합니다. 본래 종교적인 의미로 ‘지상에 강림한 신의 분신'을 일컫는 말이었는데, 1992년 닐 스티븐슨이 발표한 SF 소설 '스노우 크래시(Snow Crash)'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사용자가 자신의 모습을 묘사한 분신’이란 개념으로 확장되었습니다.
힌두교에서 ‘지상으로 내려온 신의 화신’을 뜻하는 아바타라(avatara).
*사실 이 연재물은 원래 “메타버스, 그리고 아바타 제네시스(Genesis)”라는 거창한 제목의 A4용지 13페이지짜리 글이었으나 ‘학회 키노트 스피치 같다’, ‘무플 예상’, ‘메타 어쩌고 하자마자 뒤로 가기 각’ 등 단호한 주변 반응으로 인해 몇 편으로 나누어 풀어낼 예정입니다. 두 편이 될 수도 있고 다섯 편이 될 수도 있고 이번 편 쓰고 지쳐 나가떨어져서 남은 내용 안 쓸 수도 있고 뭐 그렇습니다… 댓글과 공감은 글쓴이에게 큰 힘이 됩니다… 저… 계속 연재하고 싶어요… 작은 도움의 손길이 여러분의 이웃을 살립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전시팀 A모님 : 제가 학교 다닐 때만 해도 두발규정이 있었어요. 파마, 염색은 당연히 금지고 “귀밑 3cm 단발머리”보다 긴 머리는 무조건 까만 고무줄로 묶어야 했어요. 방울 달린 것도 안 되고, 곱창 머리끈도 안되고... 까만색 스타킹에 까만색 아니면 하얀색 신발, 무릎 밑으로 내려오는 교복 치마에 질려버린 친구들과 함께 세이클럽에서 폭주했죠. 무조건 짧은 치마에 민소매를 입히고, 하이힐을 신겼어요. 눈동자 색깔도 파란색 아니면 주황색 (ㅋㅋㅋ) 뭐 헤어스타일은 말할 것도 없었죠. 무조건 화려하게!
2000년대에 들어서며 초고속인터넷이 급속도로 보급되고, 컴퓨터 학원이 우후죽순 생겨날 때쯤 이미 인터넷은 아바타의 세상이 되어 있었습니다. 텍스트 위주의 공간에서 그래픽 중심의 가상사회로 변화함에 따라, 자신만의 개성을 표출하기 위한 그래픽 개체로 가상의 분신인 아바타가 사용된 것입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디자인팀 B모님: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렇게 저나 친구들이나 아바타 꾸미기에 열을 올렸는지 알 것 같기도 해요. 버디버디나 세이클럽 같은 거로 채팅할 때 모르는 사람이랑 얘기 많이 했었잖아요. 진짜 완전 익명으로. 사실 그게 아바타를 보고 얘기하는 건데, 버디버디에서는 결국 그 아바타가 나니까요. 현실에선 그렇지 못해도 아바타만이라도 잘생겼으면, 예뻤으면 한 거죠. 그리고 다른 예쁘고 잘생긴 아바타랑 얘기하고 이런 게 그냥 재밌었던 것 같아요. 내가 못 타는 차 너라도 타라, 내가 못 입는 옷 너라도 입어라... 하면서. 그때 아바타 꾸민다고 그림판에 도트 찍던 애들 상당수가 현직 디자이너인데.. 연관이 있는 건가...!
'프리챌'은 2002년 6월에만 아바타로 3억∼3억 5천만 원의 매출을 올렸고, 이는 '프리챌'의 전체 매출액 중에서 약 20∼25%였습니다. 또한, 최초로 아바타 유료화를 도입한 네오위즈의 경우, 2002년 1분기 전체 매출 58억 원 중에서 아바타를 주력으로 하는 '세이클럽'의 매출이 36억 7천만 원, 약 63%를 기록했습니다. 이러한 수익모델이 가능했던 것은 아바타를 메신저 서비스와 모바일 캐릭터 서비스에 연동시켰기 때문이라고 분석됩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 교육팀 C모님: 저는 커플 아바타요. 왜 어렸을 때는 남자친구 여자친구 사귀는 거 걸리면 엄마한테 등짝 맞고 폴더폰 뺏겨서 문자 못하고 그랬잖아요. 중고생 시절엔 세이클럽 커플 아바타랑 싸이월드 커플 미니미에서 그 한을 풀었던 거죠(ㅋㅋㅋ) 하트가 막 움직이는 아바타를 사서 서로 꾸며주고 자세랑 옷이랑 배경까지 다 맞추고. 헤어지면 이불 뒤집어쓰고 비공개 아바타로 바꿔서 잠적하고. 참 순수했던 시절이었네요.
쿨남쿨녀의 상징이던 커플 아바타에 긁어먹은 문화상품권만 수십 장.
네, 바로 여러분과 저, 우리 모두의 이야깁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 가상 공간의 주인공이었던 아바타들도 사양길에 들어서게 됩니다. 자신의 분신을 만들고, 일상을 탈피하기 위해 사이버 공간을 찾던 사용자들이 인터넷으로 연결된 더 넓은 세상에서 더욱 주도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일상을 누리는 것을 선호하게 됨에 따라 온라인 커뮤니티의 형태가 웹 게시판과 채팅프로그램에서 실시간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로 변화했습니다. 따라서 아바타를 서비스하던 주력 커뮤니티와 프로그램들도 점차 서비스를 종료하게 되었죠.
넥슨컴퓨터박물관 컨저베이터 D모님: 실제로 <퀴즈퀴즈>를 엄청 했었는데... 안 그래도 아바타 얘기하길래 궁금해서 찾아봤어요. 근데 그때 당시 사용하던 아이디가 라이코스 계정이어서 그런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더라고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내 아이디여... “잘했어, 라이코스!”… 뭔가 엄청 나이 든 것 같아 슬퍼지네요.
또한, 사용자의 ‘분신’은 기존 아바타의 형태에서 온라인 게임 속 ‘캐릭터’의 모습으로 옮겨갔습니다. 그림판을 10배 확대해서 도트를 하나하나 찍어 만들던 ‘움짤’ 아바타는 다양한 커스터마이징 시스템을 통해 구현되는 ‘진짜 사람 같은’ 게임 캐릭터로 진화했죠. 사용자들은 단순히 ‘나를 표현하던 아바타’를 넘어서 ‘완전히 새로운 나’를 창조해냄으로써 한 발자국 더 신에 가까이 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출처: <검은사막> 커스터마이징 인벤 작성자 ID: Rosenorie.
인터넷 커뮤니티와 채팅프로그램을 휩쓸던 아바타. 그러나 어느새 우리는 주변에서 ‘아바타’를 찾아보기 힘들어졌습니다. 이제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아바타가 뭔지 아세요?”라고 물어본다면 십중팔구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아바타'를 얘기할 것 같습니다.
익명성이 지배하던 공간에서 나의 얼굴이 되어주던 아바타. 그 많던 아바타는 다 어디로 갔을까요. 무한하다고 알려진 가상 공간에 과연 얼마나 많은 아바타들가 잊힌 존재로 남아있을까요. 왜 우리는 더 ‘아바타’를 찾지 않고 ‘캐릭터’를 만들게 되었을까요? 비슷한 듯하면서도 다른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 우리의 사이버 분신에 관한 이야기는 좀 더 고민해서 다음 연재물을 통해 의견을 나누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 제주에서, 넥슨컴퓨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