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넥슨컴퓨터박물관’과 함께하는 새로운 연재를 준비했습니다. 넥슨컴퓨터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수많은 소장품의 사연이나 박물관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에피소드는 물론, 컴퓨터와 관련한 IT업계 인사들의 이야기가 담길 예정입니다. / 디스이즈게임 편집국
패배의 순간 / Photo Credit : STAN HONDA/AFP/Getty Images
1996년, 체스 세계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Garry Kasparov)가 IBM의 슈퍼컴퓨터 딥블루(Deep Blue)와의 체스 경기 직후 밝힌 소감입니다.
사람과 기계, 사람과 인공지능(AI)의 대결은 역사가 깊습니다. 인공지능이 발전하기 전까지 대부분의 대결은 사람의 승리로 끝이 났지만, 1996년 2월 10일, IBM의 딥블루가 체스 세계 챔피언 카스파로프를 상대로 역사적인 첫 승리의 기록을 남깁니다.
가리 카스파로프(55)는 22살의 나이에 체스 세계 챔피언에 올라 무려 16년간 그 자리를 유지한 천재적인 인물입니다. ‘인간계’에서는 거의 적수가 없었던 그는, 인공지능과의 대결에도 상당히 적극적인 면모를 보였습니다.
러시아 대선에 출마할 정도로 활동적인 인물인 카스파로프는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객원 연구원으로 인간과 기계의 의사결정을 연구하고 있다.
IBM은 1989년, 딥쏘웃(Deep Thought, 깊은 생각)이라는 컴퓨터로 그에게 처음 도전장을 냅니다.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에서 이름을 따온 딥쏘웃은, 세계 컴퓨터 체스 대회의 우승자(..혹은 우승 컴퓨터)였을 뿐만 아니라 처음으로 정식 시합에서 체스 그랜드마스터를 이긴 컴퓨터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카스파로프는 이 대결에서 4:0으로 가볍게 승리를 거듭니다.
1996년, IBM은 딥블루(Deep Blue)와 함께 그에게 두 번째 도전장을 내밉니다. 펜실베니아주 필라델피아에 열린 시합의 첫 경기에서 카스파로프는 처음으로 인공지능에 패배합니다. 그러나 그는 이내 마음을 가다듬고 이후의 다섯 경기에서 3승 2무를 만들며, 합계 4:2로 승리합니다.
(좌) 1996년 대결 (Photo by Laurence Kesterson) / (우) 컴퓨터 역사박물관에 전시된 딥블루
1997년, IBM은 업그레이드된 딥블루(Deep Blue), 속칭 딥퍼블루(Deeper Blue)로 카스파로프에게 세 번째 대결을 청합니다. 뉴욕주 뉴욕에서 열린 이 시합에서, 새로운 딥블루는 세계 최초로 인간 체스 챔피언을 꺾은 컴퓨터가 됩니다. 3.5:2.5라는 근소한 차이였기는 하나, ‘처음’이라는 점에서 상당히 충격적인, 긴 여운이 남는 파장을 인간 사회에 남깁니다.
기계는 이미 인간의 신체적 능력을 오래전에 넘어섰습니다. 더 많은 양의 정보를 더 빠르고 정확하게 처리하고 기억하며 찾아내지요. 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경외심도 느끼지 못하며 그렇다고 자만하지도, 안주하지도 않습니다. 기계와 마주한 인간은 그 완벽한 포커페이스를 읽어낼 도리가 없겠지요.
‘딥블루 vs 카스파로프’의 체스 대국은 어느덧 23주년을 맞이했습니다. 그동안 인공지능은 경우의 수를 계산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스스로 규칙을 학습하는 수준으로 엄청난 성장을 했습니다.
카스파로프는, '게임을 치르는 여섯 시간 동안 지치지 않고, 시계 초침 소리에 신경 쓰지도 않으며, 허기가 지거나 집중력이 흐트러지는 일도 없고, 게다가 화장실에 갈 필요도 없는 상대와 겨루는 것은 상당히 당혹스러운 경험이었다'고 회고합니다. 그가 느꼈던 당혹감은 그간 눈부시게 발전한 인공지능을 마주한 현대인들 사이에서도 조금씩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카스파로프는 ‘이길 수 없다면 함께 하라’고 조언합니다. <인간 vs 기계>라는 경쟁 체재를 넘어서 보다 적극적으로 기계와 기술의 힘을 빌리는 것이 인간 지성의 미래를 담보한다고 주장합니다.
컴퓨터와 인간이 한 팀을 이뤄 경기를 펼치는 ‘어드밴스드 체스(Advanced Chess)’는 카스파로프의 주장과 일맥상통하는 결과를 보여줍니다. 2005년 어드밴스드 체스 대회의 우승자는 슈퍼컴퓨터와 프로 체스 기사의 조합이 아니라, 일반 컴퓨터 3대를 동시에 가동한 ‘프로그래밍 능력이 있는’ 아마추어 체스 기사 2명의 팀이었습니다. 단순히 가장 성능이 좋은 컴퓨터, 혹은 가장 체스를 잘 두는 사람이 아닌 서로의 잠재 능력을 가장 잘 활용할 수 있는 인간과 기계가 함께 이룬 팀이 우승을 거뒀다는 사실은 상당히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2016년 3월 13일, 이세돌 9단이 ‘알파고’와의 4번기에서 180수 만에 불계승을 거둔 뒤 환하게 웃고 있다. 작은 사진은 ‘알파고’가 팝업창을 통해 ‘AlphaGo resigns(알파고 포기합니다)’라며 패배를 시인하는 장면. 사진 출처: 국민일보
이세돌 바둑 9단 역시 알파고와의 첫 대국 이후, 인공지능의 예측할 수 없는 수에 대해 놀라움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알파고를 이긴 유일한 인간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세돌의 78번째 바둑돌, 전 세계 모든 대국 기록을 학습한 알파고가 단 한 번도 본 적 없던 새로운 하나의 수로 알파고를 꺾었던 것이죠.
우리에게 필요한 ‘제78수’는 무엇일까요? 창의력과 상상력, 인공지능과 기계가 접해본 적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능력일까요? 아니면, 그 인공지능과 기계를 최대한 활용하고, 그것들과 공생하는 환경에 적응하는 것일까요? 인공지능과 함께하게 될 피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댓글로 남겨주세요.
제주에서, 세상을 바꾼 아이디어 넥슨컴퓨터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