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은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초딩 게임에서 대딩 게임이 된 방학의 전령, 계속되는 변화로 거듭나는 현역 RPG. 서비스 16년 차를 맞이한 넥슨의 MMORPG <메이플스토리>를 설명하는 데 어떤 수식이 더 필요할까요? <메이플스토리>의 성공 뒤에는 플랫폼 게임의 맵을 MMORPG에 성공적으로 구현한 게임 월드와 꾸미는 재미가 있는 귀여운 캐릭터가 있었을 것입니다.
'검은마법사'의 뒤를 잇는 '어드벤처'의 업데이트를 앞두고 월드부터 캐릭터까지 12년 동안 <메이플스토리> 한길만을 걸어온 넥슨의 이민규 <메이플스토리> 일러스트 파트장을 만났습니다. 그가 12년 동안 몸담았고 있는 <메이플스토리>의 매력은 무엇일까요? 그는 어떻게 그림을 그리고 있을까요? 작년 12월 19일, 판교 넥슨 사옥에서 이민규 파트장을 만났습니다.
# 만화 보며 자연스럽게 SD에 접근, 넥슨 입사 후 12년 '메이플' 한길
그는 2007년, <메이플스토리>의 배경 일러스트 디자이너로 넥슨에 입사했습니다. 3년 동안 리엔, 에레브, 레지스탕스 등 인게임에 삽입되는 배경과 오브젝트에 대한 작업을 맡았던 그는 2010년 우연치 않게 '에반'의 일러스트를 맡으면서 <메이플스토리>의 캐릭터를 디자인하게 됐습니다.
12년 동안 <메이플스토리> 하나의 게임만 맡아서 작업했던 그에게 "다른 게임의 일러스트를 그려보고 싶지는 않은가?"라고 물었을 때, 이민규 파트장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아직도 <메이플스토리> 일러스트를 그리면서도 배울 점이 많기 때문에 오래도록 <메이플스토리>에 머물며 다양한 시도를 하고 싶다"였습니다.
# SD 캐릭터의 매력을 구현하는 이민규 파트장의 방법
SD 디자인은 얼핏 보기엔 쉬워 보이지만, 단순한 캐릭터의 외형 속에 캐릭터의 성격과 비하인드스토리를 녹여내야 하기 때문에 결코 쉬운 디자인이 아니라고 이 파트장은 부연했습니다. 캐릭터의 비율이 전부 비슷하기 때문에 표정과 액세서리, 포즈까지 전부 꼼꼼히 설계해야 할 뿐 아니라. '<메이플스토리> 캐릭터는 귀엽다'라는 대전제를 유지하기 위해 '샤프하지만 귀엽고', '강력하지만 귀여운' 같은 일종의 중간선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새로운 캐릭터를 맡게 되면 아트유닛 콘셉트파트에서 먼저 1주일 동안 초기 콘셉트를 잡는 시간을 갖는다고 합니다. 캐릭터의 주요 설정을 읽어보고, 여태까지 작업했던 다른 캐릭터를 참고하고, <메이플스토리> 전체 스토리도 돌아보며 캐릭터의 얼개를 맞추는 시간입니다. 그다음 원화가가 실제로 그림을 그리는 작업 시간은 2주 정도 소요됩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메이플스토리>의 디자인은 어떤 부분을 비약적으로 확대하거나 축소시켜야 그 매력이 살기 때문에 2주 동안 확대, 축소의 기준을 조율하는 게 중요한 요소라고 합니다. 이러한 작업 과정은 '상대방이 내 디자인을 잘 느낄 수 있는가?'라는 이 파트장의 작업 철학과도 연결됩니다. 그는 '상대방이 내 디자인을 잘 느낄 수 있는가?'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민규 파트장은 작업할 때 러프스케치부터 도색 작업까지 오로지 포토샵만 사용합니다. 작업이 풀리지 않을 땐 음악을 들으며 작업을 하는 편인데, 작업이 잘 풀리지 않으면 캐릭터나 성격이나 분위기에 맞는 음악을 찾아서 들으면 좀 풀리는 것 같다고 하네요. 그러기 위해 장르는 케이팝부터 클래식까지 가리지 않고 합니다.
이민규 파트장은 SD 디자인 캐릭터를 전문적으로 다루고 있지만, SD가 아니더라도 실사, 카툰 가릴 것 없이 다양한 작품에 관심을 열어두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이 파트장은 최근 <스파이더맨 뉴 유니버스>의 영상미와 표현에서 많은 영감을 얻었습니다.
# "기준은 언제나 변한다. 하지만 유저가 납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민규 파트장은 "기준은 언제나 변한다"라는 짧은 대답을 남겼습니다. '히오메' 시나리오에 무게감이 있었기 때문에 마냥 귀여운 일러스트만 내놓기에는 우려가 있었고 그에 따라 진지하고 날카로운 방향으로 변화를 취했다는 게 그의 설명. 이 파트장은 "'히오메'를 기점으로 스토리 분위기에 따른 디자인을 더 다양하게 연출할 수 있게 됐다"고 밝혔습니다.
이 파트장은 이러한 작업 방식의 변화를 "SD의 큰 틀을 유지하면서 게임의 기조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는 것"이라고 정의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유저들이 납득할 수 있는 폭의 변화가 중요하다"고 말했습니다. 가령 '시크함'과 같은 특색이 강조된 캐릭터를 그렸는데, 이후 일러스트에서 그 캐릭터에게 '시크함'이 전혀 없다면 유저들이 받아들이기에 혼란스러울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 이민규 파트장이 말하는 <메이플스토리>의 '단순하고도 귀여운' 세계
그는 '리엔' 지역의 예를 들어 <메이플스토리>의 디자인 철학이 인 게임에 구현되는 사례를 설명했습니다. 그가 디자인한 '리엔' 마을의 중앙에는 거대한 장병기 마하가 놓여있는데 이것은 세계관의 영웅 '아란'이 사용하는 무기입니다. 리엔 마을의 마하는 얼핏 보기엔 다소 과장돼 보이지만 이를 본 유저는 직관적으로 "이곳은 아란의 이야기와 관련이 있는 곳"이라고 떠올릴 수 있습니다.
또 메이플 월드 곳곳의 상점에는 그곳이 어떤 곳인지 알 수 있는 정보 (물약 = 잡화상점, 칼과 방패 = 무기 상점)가 그려져있습니다. 굳이 글로 설명하지 않아도 누구나 잡화상점이나 무기 상점의 존재를 알 수 있는 것입니다. 플랫폼 게임에서 차용한 메이플스토리의 월드 역시 대체로 쉽게 이동할 수 있지만, 공간마다 저마다의 특징이 잘 살아있는 것을 목표로 제작했습니다.
# 키네시스에게 가장 큰 애착, 2차 창작물 함께 보며 영감 얻기도
이민규 파트장은 실제로도 핼러윈, 크리스마스 이벤트에 쓰이는 시즌 일러스트를 그릴 때도 애착이 가는 캐릭터를 모델로 씁니다. 하지만 특정 캐릭터를 이벤트 포스터에 계속 쓴다고 해서 해당 캐릭터가 되살아난다든지 관련 이야기 갈래가 추가되는 것은 아니라고 하네요. 특정 캐릭터가 시즌 일러스트에 자주 나온다는 평가가 있어 이 파트장은 앞으로 비주류 몬스터나 캐릭터도 이벤트 일러스트에 등장시키려고 계획 중입니다.
이민규 파트장이 창조한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는 바로 키네시스입니다. 그 배경에는 자신의 기획과 유저의 해석이 조금 달랐기 때문에 빚어진 에피소드가 있습니다. 2015년, 그가 처음 키네시스를 구상할 때 캐릭터는 긴 머리를 가진 모범생 이미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후에 키네시스가 '염력을 쓰는 초능력자'라는 콘셉트가 굳어지며 '염력 때문에 머리가 살짝 떠있는' 방향으로 일러스트 방향을 수정하게 됩니다.
원래 이민규 파트장이 생각한 키네시스의 이미지는 장발을 가진 샤프한 느낌의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었다고 합니다. 그는 "키네시스의 경우, 내 생각과 팬들의 해석이 달랐지만 팬의 2차 창작물과 소통해 방향을 수정했고, 그렇게 인게임에 구현된 결과물도 좋았기 때문에 잘 된 일"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인터뷰는 자연스럽게 2차 창작물 이야기로 이어졌습니다. 이민규 파트장은 <메이플스토리>와 관련한 2차 창작물을 항상 찾아보고 있습니다. 그는 "유저 '금손'들의 그림을 보고 많은 영감을 얻고 또 많이 배우고 있다"며 유저의 2차 창작물이 "현재의 디자인 트렌드라던지 유저들이 원하는 캐릭터 설정 방향을 살펴볼 수 있는 단서"로 쓸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실제로 이 파트장 뿐만 아니라 <메이플스토리> 디자인을 맡는 모두가 팬들의 2차 창작물을 함께 돌려보기도 한다네요.
# "자기 느낌을 찾아라"
지망생들에게 하고픈 말은 곧 이민규 파트장 자신의 이력을 설명하는 말이 아니었을까요? 그는 일찌감치 SD 디자인이라는 '자기 느낌'을 찾았고, <메이플스토리>를 만나 12년 동안 '애착'을 가지고 <메이플스토리>의 원화를 그리고 있습니다. 이민규 파트장의 이러한 노력 덕분에 <메이플스토리>가 오랜 세월 유저의 사랑을 받아온 건 아닐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