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이즈게임이 ‘게임미술관’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지지 않은 게임업계 금손 아티스트들을 소개합니다. 작품과 함께 작품의 목적과 작업 과정을 소개함으로써 유저들에게는 흥미로운 읽을 거리를, 지망생들에게는 참고가 될 자료를 제공하고자 합니다.
한복 차림을 한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씨름하는 토르와 헐크 등 선뜻 상상하기 힘든 소재를 아름다운 ‘동양화’로 풀어내는 ‘흑요석’ 우나영 작가. 우나영 작가는 한복의 아름다움을 살린 그림을 그리는 건 물론이고 동∙서양이 어우러진 개성적인 느낌의 그림으로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화제가 됐습니다.
올해로 프리랜서 아티스트 생활 7년 차에 접어든 우나영 작가. 게임미술관 13화에서는 우나영 작가를 만나 그간의 작품 활동과 가장 기억에 남는 그림에 대한 생각을 들어봤습니다.
학창 시절부터 그림을 공부했기에 장래희망 역시 화가나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을 것 같은 우나영 작가. 하지만, 대학을 졸업하고 직장에 다닐 때까지도 ‘그림 그리는 일’을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었다고 합니다. 미술 입시를 겪으며 그림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렸던 우나영 작가는 게임회사에 다니면서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이미 본인에게 있어 그림은 직업이나 성공의 수단이 아닌 개인적인 만족을 이뤄주는 취미생활이자 ‘나’의 일부였기 때문입니다.
우나영 작가의 그림은 종이에 붓과 먹을 이용해 ‘전통 방식’을 고수하며 그린 작품으로 보이기에, 컴퓨터를 이용해 작품을 완성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습니다. 하지만, 의외로 다른 작가들과 마찬가지로 ‘포토샵’을 이용해 그림을 그리며, 이 역시도 별도 브러시 프로그램이 아닌 포토샵 ‘기본 브러시’로 작업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종이에 직접 그린 것 같은 느낌은 그림을 완성한 뒤 ‘텍스처 작업’을 통해 종이 질감을 덧입히기 때문입니다.
작품을 그리는 방식도 놀라웠지만, 작품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포인트도 의외의 답이었습니다. 우나영 작가는 인물 그림을 주로 그리기에 작품을 그리는 데 있어 얼굴 표현에 주로 집중할 것 같았지만, 얼굴 표현 못지않게 ‘손 표현’에도 신경을 쓴다고 합니다. 손은 인물을 설명하는 ‘제2의 표정’이라고 강조한 우나영 작가는 손을 어떤 모양으로 어디에 두고 있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과 분위기를 준다고 설명하며 “과거에는 손을 잘 그리지 못해 뒷짐을 지는 등으로 숨기곤 했지만, 손의 중요성을 알고 난 뒤부터는 이 역시도 세심하게 표현하고자 한다"라고 전했습니다.
# 기억에 남는 작품,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콜라보레이션 작을 떠올리며
우나영 작가는 지난해 블리자드 엔터테인먼트가 서비스하는 게임 <월드 오브 워크래프트: 격전의 아제로스> 콜라보레이션 그림을 발표하며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당시 공개한 작품은 ‘실바나스 대 안두인’, ‘제이나의 겨울’, ‘와우사인도’ 총 3점. 이중, 가장 화제가 된 건 얼라이언스와 호드의 전쟁을 한국적으로 재해석한 ‘실바나스 대 안두인’이었습니다.
작품에서 가장 강조하고자 했던 부분은 단연 ‘역동감’. 우나영 작가는 작품을 구상하는 단계에서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격렬한 싸움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면서 떠올린 작품은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신이 생명을 주면서 ‘역사’가 시작하는 순간을 표현한 ‘천지창조’처럼, 얼라이언스와 호드 간 끊임 없는 전쟁 속에 ‘역사’가 탄생하기에 이를 오마주한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이에 대해 우나영 작가는 "실바나스의 옷은 무당 중에서도 큰 무당만이 입을 수 있다는 무복으로 원래는 하얀색이다. 다만, 작품에는 적의 피로 물들어 실바나스 상징색 '붉은색'이 나타난 상황이다"라고 전했습니다. 파도가 휘몰아치고 두 진영 대표가 서로를 향해 무기를 겨누는 모습까지. 구도부터 표현까지 모두 신경 쓴 작품이어서 그런지 시네마틱 트레일러 이상의 '역동감'이 전해지는 듯합니다.
# 뜻 깊은 작품, <확산성 밀리언 아서> '어우동'과 조니 워커 블루라벨
'어우동' 일러스트가 기억에 남는 이유는 또 있습니다. 당시 ‘어우동’이 공개된 직후 인터넷 커뮤니티에서는 작품이 게임과 맞지 않는 것 같다며 각종 악플이 쏟아지던 상황. 막 첫발을 내딘 프리랜서 일러스트레이터로서, 작품과 자신을 분리하지 않았던 우나영 작가는 이를 보며 그림에 대한 악평이 자신에 대한 평가로 느껴져 크게 좌절합니다.
“회사에 다니면서 회사 작업에 대해서는 분리가 익숙했는데, 일러스트레이터로서는 그러지 못했다.당시 일로 얻은 교훈은 ‘나’와 ‘내 작품’을 분리할 줄 알아야 건강한 멘탈로 오래 일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내 작품은 나에게서 나왔지만 ‘나’인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클라이언트는 당연히 내 작품을 지적할 수 있는데 그때마다 마음이 상하면 어떻게 일을 하겠는가. 또 작품이 많이 알려질수록 호평과 함께 악평도 피할 수 없다고 본다. 어떻게 모든 사람이 내 그림을 좋아하겠는가? 그렇다고 내 그림에 대한 평가가 내 존재가치를 다르게 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게임 일러스트 외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작품이 있냐는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스카치위스키 ‘조니 워커 블루라벨’ 캐스크 에디션 '인천' 패키지 작업이라고 말했습니다. 이는 인천공항 면세점 한정 상품으로, 2015년 조니워커 영국 담당 에이전시로부터 직접 연락을 받고 제작한 작품입니다.
스카치위스키병이지만 하얀 배경에 파란 잉크로만 그려져 있어 마치 한국 '백자'를 보는 듯한 작품. 분명 외국 술이긴 하지만 작품에서 한국 특유의 향취가 느껴집니다.
# '좋아서 시작한 그림'에 '내 그림을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기까지, 보람과 책임감 느껴
해당 질문에 우나영 작가는 다른 사람들이 내 작품을 보고 한복이나 동양화를 좋아하게 되는 이른바 '입덕' 했다는 소식을 접할 때라고 전했습니다. 그러면서 '입덕'을 넘어 자신의 작품이 다른 사람의 인생에 희망을 주고 있다는 걸 알았을 때 큰 감동 했다고 전하며 겪었던 일화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고 서양 동화나 만화, 게임 캐릭터에 한복을 입히는 것이 좋아서 시작한 일. 하지만, 그와 동시에 누군가에게 한복과 한국의 아름다움을 알리는 건 물론 희망과 감동을 줄 수도 있게 된 일. 우나영 작가는 누군가에게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으로 인해 어깨가 무겁기는 하지만, 자신의 작품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오늘도 보람을 느끼고 새로운 작품을 위해 노력한다고 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