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월, 라이엇게임즈(이하 라이엇)는 대회 규모에 따른 상금 크기와 규정 등이 포함된 <발로란트> e스포츠 대회 지침을 발표했다. 이는 구체적인 리그 계획이 언급되지 않은 '큰 그림'에 가까웠지만, 핵심은 '서두르지 않겠다'라는 라이엇 e스포츠 디렉터 웰런(whalen)의 메시지였다.
하지만 e스포츠에는 여러 가지 크고 작은 장벽이 존재한다. <플레이어언노운스 배틀그라운드>(이하 배그)는 많은 인원이 참가하는 구조상의 문제로 인해 '스타 선수 부재', '높은 중계 난이도' 등에 부딪혀야 했다. <오버워치> 역시 '중계 퀄리티'로 인해 팬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리고 있다.
<발로란트> e스포츠 역시 이와 비슷한 문제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다. 서두르지 않겠다던 <발로란트>가 과연 e스포츠가 마주해온 장벽을 돌파할 수 있을까. <발로란트> e스포츠를 전망해봤다.
# 발로란트에도 임요환과 페이커가 필요하다
'스타 플레이어'는 e스포츠 성공의 핵심 요소로 꼽힌다. <스타크래프트>와 <리그 오브 레전드>가 10년 이상 e스포츠를 운영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임요환과 페이커 같은 스타 플레이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그들의 화려한 플레이는 두꺼운 팬층을 만들었고, 게임의 인기를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 됐다.
<발로란트> e스포츠에도 이러한 스타 선수가 생길 가능성은 충분하다. 2019 <오버워치> 정규시즌 MVP이자 많은 팬의 사랑을 받았던 '시나트라' 제이원(Jay Won)을 시작으로 타 종목에서 <발로란트>로 전향하는 선수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팀 창단도 이어지고 있다. 8일 창단한 한국 최초 <발로란트> 프로팀 '비전 스트라이커스'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글로벌 오펜시브>(이하 CS:GO) 프로 경력을 가진 선수들로 구성됐다. 특히 감독을 맡은 편선호는 위메이드 폭스, 이스트로 등에서 활동하며 수많은 <CS:GO> 대회 우승을 차지한 인물이다. e스포츠에서 잔뼈가 굵은 T1, 젠지, C9 등도 <CS:GO> 선수들을 영입하며 팀 구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창단된 <발로란트> e스포츠팀은 대략 20여 개다. 지난 4월 라이엇이 <발로란트> e스포츠 대회 지침을 발표한 만큼, 많은 팀이 공격적으로 선수 인프라를 구축하고 있다. 그만큼 리그를 대표할 '스타 선수'가 탄생할 확률도 높다.
한국 최초의 발로란트 프로팀, 비전 스트라이커스는 CS:GO 출신 선수들로 구성됐다 (출처: 비전 스트라이커스 SNS)
# e스포츠 발목잡은 옵저버, 과연 발로란트는?
오버워치 리그 중계 장면. 보스턴 업라이징이 주도한 한타 대신 상대 팀 파라의 화면만 잡혔다 (출처: 오버워치 리그 트위치)
'옵저버'는 e스포츠에서 게임을 관전하며 화면을 비춰주는 카메라맨과 같은 역할을 한다. 이에 따라, e스포츠에서 옵저버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높다. 쉴 새 없이 벌어지는 상황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야만 경기의 재미를 온전히 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러한 옵저버가 문제가 된 경우도 있다. <오버워치> 리그 옵저버는 경기 중 펼쳐지는 주요 교전 장면 대신 리플레이를 틀거나, 중계진 멘트와 다른 장면을 잡는 등 몰입감을 떨어뜨리고 있다. 이는 원활한 중계로 많은 팬의 찬사를 받은 '<오버워치> APEX'와는 사뭇 다른 흐름이다.
배그는 수류탄 궤적에 색깔을 반영했다 (출처: 배틀그라운드 이스포츠 유튜브)
<배그> 역시 비슷한 문제에 직면해있다. 백 명에 가까운 인원이 펼치는 게임의 특성상, 모든 선수의 플레이를 잡아내거나 전황을 파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에 펍지 주식회사는 2018년 하반기부터 수류탄 궤적에 팀 컬러를 반영하거나 대미지를 선수 위에 띄우는 등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배그> e스포츠는 여전히 특정 선수의 세세한 플레이에 집중하기 어렵다. <배그> e스포츠가 시작된 지 상당 시간이 흘렀음에도 게임을 대표하는 선수가 쉽사리 떠오르지 않는 이유다.
반면, <발로란트>는 이러한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롭다. <발로란트>는 <배그>처럼 하나의 전장에 투입되는 인원 숫자가 많지 않고, <오버워치>처럼 쉴 새 없는 공수전환도 없다. 게다가 이동속도까지 느리다. 관전자가 충분히 따라갈 수 있는 구조인 셈이다.
# e스포츠 '10년 차', 라이엇의 노하우
라이엇은 2011년 첫 번째 롤 월드 챔피언십(이하 롤드컵)을 시작으로 10년째 <리그 오브 레전드> e스포츠를 운영하고 있다. 변화를 거듭하던 e스포츠 역시, 스프링 - 미드 시즌 인비테이셔널(Mid Season Invitational, 이하 MSI) - 서머 - 롤드컵 구조로 안착했다.
그만큼 라이엇이 쌓은 e스포츠 경험과 노하우도 상당하다. 라이엇은 어떻게 해야 e스포츠에서 '스타'를 만들 수 있는지, 어떤 식으로 조명을 비춰야 하는지를 확실히 알고 있는 회사다.
대표적인 사례가 중국 <리그 오브 레전드> 프로 리그(League of leagend Pro League, 이하 LPL) 대표 원거리 딜러 '우지' 젠쯔하오(Jian Zi-Hao)와 지난해 롤드컵 우승팀 '펀플러스 피닉스'다. 유독 국제대회와는 연이 없었던 우지가 2018 MSI에서 한국의 킹존을 꺾고 우승을 차지하자, 라이엇은 '우지는 왕이다'(Uzi is king)이라는 영상을 올리며 팬들의 이목을 끌었다.
또한, 지난해 롤드컵에서 LPL 펀플러스 피닉스가 우승하자, 2019 롤드컵 주제가 피닉스(Phoenix) 가사인 'Fly Phoenix fly'를 개사해 'Fly Fun Phoenix fly'라는 제목의 영상을 업로드하기도 했다.
애나 던런(anna donlon) 총괄 프로듀서는 <발로란트> 정식 출시를 맞아 진행된 간담회에서 "<발로란트> e스포츠를 급하게 진행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유저들의 관심이 높고, 프로 선수들도 주목하는 만큼 기존 계획보다는 빨라질 것"이라고 언급한 바 있다. 이는 급하게 몸집을 키웠다가 나쁜 선례를 맞이한 타 종목의 사례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보인다.
다만, e스포츠 이전에 <발로란트> 유저가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발로란트>는 외부 프로그램과 충돌하는 안티 치트 프로그램 '뱅가드'를 필두로 다소 떨어지는 그래픽 퀄리티와 지나치게 큰 발소리 등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이 계속해서 제기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로란트>는 순항하는 것'처럼' 보인다. 출시 6일 만에 신작 FPS치고는 이례적으로 10위 진입에 성공했으며, 출시일 0.98%에 불과했던 점유율 역시 11일 현재 1.50%까지 상승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것이 '오픈빨'에 그치지 않으려면 <발로란트>에 대한 의문부호를 확실히 걷어내야 한다.
<리그 오브 레전드>는 지난 10년간 유저들의 목소리에 꾸준히 귀 기울이며 발전해왔다. 만약 <발로란트>가 같은 길을 걸을 수 있다면, 그들이 꿈꾸는 '<발로란트> e스포츠 생태계 구축'도 해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