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를 돕기 위해 평어체로 썼음을 밝힙니다.
트럼프가 대체 뭘 한 거야?
트럼프 대통령이 6일 백악관에서 행정명령을 발동했어. 미국은 연방국가인 거 알고 있지? 미국 헌법의 행정명령(executive order)은 오직 대통령만 가지고 있는 강력한 권한이야. 의회를 거치지 않고 연방법률에서 입법을 한 것과 똑같은 효과를 가지면서 대통령에게 연방의 행정권을 실어주는 제도지. 트럼프는 미국에서 '행정명령 중독'이라고 부를 정도로 의회를 거치지 않고 이 제도를 사용하고 있어.
이번 행정명령은 9월 15일부터 틱톡과 위챗의 소유주와 거래를 전면 금지하겠다는 내용이야. 틱톡은 바이오댄스, 위챗은 텐센트가 만들었어. 최근 트럼프가 틱톡이랑 위챗을 중국 공산당이 악용하고 있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었거든? 어플리케이션으로 미국인의 스마트폰 정보를 몰래 가져가서 중국이 유리하게 쓸 수 있다는 주장이지.
대통령이 직접 명령을 내려버리면서 미국 관할권 안에서는 텐센트와 일절 거래할 수 없게 됐어. 텐센트는 게임 업계에서 엄청나게 거대한 공룡이라서 거래를 못 한다면 시장에 엄청난 타격이 올 수 있다는 주장이 나왔지.
정확히 텐센트가 어떻게 공룡이야?
우선 인포그래픽을 보여줄게.
<롤>을 만든 라이엇게임즈 지분의 100%를 텐센트가 가지고 있어. <브롤스타즈>의 슈퍼셀 대주주도 텐센트지. 언리얼 엔진과 에픽 스토어의 에픽게임즈의 지분 40%도 가지고 있어. 한국 회사들도 보이지? 넷마블 지분의 17.5%, 카카오게임즈 지분의 5.6%를 텐센트가 확보했지. 인포그래픽엔 없지만 크래프톤(옛 블루홀)의 2대 주주도 텐센트(13.3%)야. <배그> 거기 맞아.
이 정도면 공룡 인정이지? 텐센트는 게임만 하는 게 아니라 위챗 같은 메신저, 결제 서비스, AI 등등 IT에서 큰 손이 된 지 오래야. "텐센트 시가총액이 삼성전자 2배가 넘는다"라는 말은 우스개가 아니야. 2020년 텐센트 시총은 약 659조 3,301억 원, 삼전 시총은 324조 1,592억 원이야.
텐센트가 어떻게 이렇게 큰 회사가 됐는지 궁금하다면 이 기사 시리즈를 보면 도움이 될 거야. (바로가기)
그럼 텐센트랑 저 회사들에게 전부 영향이 있는 거야?
트럼프의 이번 명령으로 텐센트에는 당장 안 좋은 영향이 갔어. 8월 8일, 텐센트 주가가 홍콩증시에서 10% 넘게 하락했어. 시가총액이 하루 새 89조가 떨어지기도 했지. 거래 자체를 못 하는 건 엄청난 악재 아니겠어? 중국 IT의 '대장주'라고 할 수 있는 텐센트 주식이 떨어지면서 알리바바와 XD 주식도 같이 떨어졌지.
그런데 텐센트가 지분을 확보한 관계사들에게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은 확실하지 않아. 아마 가장 큰 이슈는 '텐센트가 지분 100%를 가지고 있지만 본사는 미국 LA 산타모니카에 있는 라이엇게임즈와 관련한 거래를 막을 수 있느냐'겠지? 그런데 행정명령 문구가 너무 애매모호해서 현재로서는 시장에 미칠 영향을 제대로 가늠하기 어려워.
애매모호하다고?
이번 행정명령에는 "위챗의 텐센트, 틱톡의 바이오댄스와 관련된 모든 거래를 중단한다"라고 쓰여있는 게 다야. 제재의 대상이 "미국 관할의 '모든 재산'"이라고 되어있는데, 구체적인 적용 범위는 미국 상무부가 담당한다고 되어있지. 자회사, 관계사에도 똑같은 행정명령을 적용할지도 상무부가 결정하게 돼.
'유라시아 그룹'의 애널리스트 폴 트리올로는 "전례가 없는 규제"라면서 "45일 뒤에는 구글과 애플의 미국 마켓에서 위챗과 틱톡이 금지될 것" 정도로 봤어. '컨트롤리스크' 컨설턴트 벤 우트리프는 "미국에 진출한 모든 중국 기술 기업에게 자기 사업이 미국의 안보를 해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해야만 할 것"이라고 분석했지.
'차이나 르네상스'의 홍콩 무역담당자 앤디 메이너드는 행정명령 문구가 "아무 의미도 없을 정도로 모호하다"면서 텐센트 퇴출과 위챗 사용 금지는 전혀 다른 의미"라고 봤어. 싱크탱크 '뉴 아메리카'의 그레이엄 웹스터는 "트럼프 행정부에서는 행정명령을 내릴 때 각종 미사여구를 동원해가며 일을 지연시킨 적 있다"라면서 실제로 제재가 시행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이야기해.
LA타임즈가 취재한 백악관 관계자는 "행정명령은 텐센트 자회사와 관련된 거래가 아니라, 위챗 관련 거래만 차단하는 것"이라고 말했어. 위챗은 카카오톡처럼 단순히 메신저 기능만 있는 게 아니라 결제나 송금 기능도 지원하거든.
미국에서 틱톡은 많이 쓰지만 위챗을 쓰는 경우는 많지 않아. 그런데 적지 않은 미국계 기업이 중국에서 위챗페이 결제를 지원하고 있지. 한국에서 카카오페이로 커피를 살 수 있는 것처럼, 중국 스타벅스에선 위챗페이로 커피를 살 수 있어. 백악관 관계자의 말을 풀어보면, 트럼프 행정명령이 저격하려던 부분이 게임 같은 다른 분야가 아니라 여기에 있다는 해석을 해볼 수 있지.
트럼프는 왜 그랬을까?
아까 트럼프가 '행정명령 중독'이라고 불린다고 이야기했잖아? 재선이 목마른 트럼프가 행정명령을 급하게 때려서 돌아선 민심을 회복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이야기를 해. 트럼프는 임기 내내 행정명령을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고 있는데, 임기 막판에 재선을 위해서 표를 벌어올 행정명령을 몰아붙이고 있는 거지.
이번에도 구체적인 실행 방법 없이 일단 행정명령을 때려버린 걸로 보여. 수습은 45일 안에 상무부에서 알아서 하라는 거지. LA타임즈도 트럼프의 이런 행태에 대해 "(행정명령을) 졸속으로 만들다 보니 부처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태반이다"라고 비판했어.
사실 미국 법에 따르면, 후임 대통령은 전임 대통령의 행정명령을 무력화시킬 수 있어. 트럼프도 전임자의 오바마케어를 무력화하는 행정명령을 준비했던 적 있지. 11월 대선에서 바이든이 당선되면 트럼프가 통과시킨 행정명령을 없던 일로 만들 수도 있다는 뜻이야.
중국에서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어?
당연히 반길 리 없겠지? 행정명령 발표를 본 왕웬빈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미국은 아무 근거도 없이 국가안전을 이유로 외국기업에 타격을 가하고 있다"라면서 "(미국의) 패권적 행태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어. 그러면서도 구체적인 보복 조치를 발표하지는 않았어.
텐센트 대변인은 "행정명령을 완전히 이해하기 위해 검토를 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했어. 제재가 위챗에 그치는 것인지 텐센트를 전방위로 압박하는 건지, 아니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넘어갈지는 지켜봐야겠지? 손에 쥔 게 많으면서도 미국과 중국 입장을 두루 살펴야 하는 텐센트는 신중할 수밖에 없어.
바이트댄스는 텐센트랑 상황이 조금 달라. 바이트댄스는 이미 수준급 AI 알고리즘 기술을 갖춘 기업이지만, 텐센트와는 달리 세계 시장에서 틱톡 말고 그럴싸한 무기는 마땅히 없어. 8월 7일, 바이트댄스는 이번 행정명령을 내린 미국 정부를 고소하겠다고 밝혔어.
참고로 마이크로소프트와 트위터가 틱톡을 인수하겠다고 나선 상황이야. 9월 15일까지 틱톡을 놓고 바이트댄스와 MS가 협상을 진행하는데, 트럼프는 거래가 성사되면 미국 정부가 도운 일이라며 수익의 일부를 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지.
그러면 앞으로 어떻게 될까?
상무부에서 어디부터 어디까지 행정명령을 적용하는지 가이드라인이 나오면 게임 업계에 미칠 영향을 가늠할 수 있을 거야. 지금으로서는 틱톡과 위챗을 미국에서 퇴출하고 싶고, 그렇게 하게 위해서 이들 회사와 거래를 틀어막겠다는 수준으로 이해하는 게 좋을 것 같아.
사실 대선이 코앞으로 다가왔기 때문에 상무부에서도 조치하는 시늉만 하다가 유야무야 끝날 수도 있어. 트럼프 행정부의 이런 결정이 전례가 없을 정도로 막무가내라서 엄청난 비판을 받고 있거든. 국경을 초월한 시장 경제가 당연한 사회에서 특정 국가 기업을 핀셋으로 골라내서 '거래 중지' 시키는 것은 정치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쉬운 일이 아니야. 텐센트 같은 공룡에게는 더더욱.
미국에서 틱톡이나 위챗을 못 쓰게 될 수는 있을 거 같아. (여담이지만 중국과 국경 분쟁 중인 인도에서도 틱톡이 금지야) 위챗이야 미국에서의 영향력이 크지 않다지만, 틱톡을 걸어 잠근다면 가뜩이나 트럼프를 싫어하는 미국인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될 거야.
조치가 이 정도 선에서 마무리되면, 게임 업계에 미칠 파장은 생각만큼 크지 않아. 텐센트가 지분을 상당 부분 가지고 있는 크래프톤의 <배틀그라운드>와 넷마블의 <일곱 개의 대죄>가 미국에서 문제없이 서비스되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