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세월 애플과 구글은 각자의 앱마켓에서 발생하는 결제 수수료 30%를 유지했다. 2020년, 에픽게임즈가 '#Freefortnite' 운동을 전개하며 균열을 내기 시작했다.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대표를 필두로 앱마켓 수수료 인하를 재고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전부터 30%의 수수료가 비싸다는 불만은 많았지만, 에픽게임즈의 '어그로'가 제일 성공적이었다. 수수료의 가치를 두고 여론전은 물론 법정 공방까지 진행 중이다.
기자가 작년에 내다봤던 것처럼 수수료 30%의 아성은 이미 깨졌다. 새 아이폰에 번들 충전기를 제거한 것처럼, 앞서 나가기를 좋아하는 애플이 이번에도 먼저 액션을 취했다. 작년 11월, 애플은 '중소 규모 개발사 지원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애플에 따르면, 2021년 1월 1일부터, 한 해 수익금이 약 11억 원(100만 달러) 이하인 앱스토어 등록자는 15%의 수수료만 지불한다.
이에 따라서 적지 않은 중소 기업이 수수료 감면 대상이 될 것이다. 수수료가 절반이나 줄어든 셈인데, 애플은 "코로나19로 인한 경제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지원책"이라는 단서를 달았다. 임시 조치라고 하더라도 확실히 이례적인 행보다. 묶어 팔고, 나눠 팔고, 떼어 팔고, 정 그러면 안 팔아버리는 애플이 값을 깎은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반대로 구글은 아직 기미가 없다. 구글은 애플과 반대로 결제 수수료 30%를 게임 바깥의 모든 콘텐츠에 확대하기로 한 기조를 유지 중이다. 인앱 결제는 구글 빌링 시스템을 통해서만 지원할 계획이다. 이 조치로 외국 기업들은 일제히 항의했다. 안드로이드의 열린 방침과는 비교된다는 것이다. 비판을 마주한 구글은 30% 수수료 전면 도입을 이번 1월에서 9월 말로 한 차례 연기했다. (게임은 이미 30%의 수수료를 구글에 지불 중이다)
구글의 수수료 강제는 외국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굉장히 민감하게 받아들여졌다. 이같은 확대를 막는 법안이 제출됐으며, 공정위는 앱마켓 안에서 자사 시스템만 허용하는 것이 공정한지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
참고로 이 조사는 공정위가 먼저 나선 것이 아니다. 공동소송 플랫폼 '화난사람들'이 작년 11월 24일 공정위에 사건을 신고했고, 이에 따라 공정위가 조사에 나선 것이다. 공정위의 시장지배력 남용 조사는 통상적으로 1년 가까운 기간이 소요된다.
공정위가 (신고에 의해) 움직이게 됐고, 국회에서도 구글에 제동을 걸려고 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움직임을 평가절하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마(大馬)는 한국이 아니라 미국에 있다. '2021년은 앱마켓 수수료 15%의 원년이 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답하기 위해서는 미국을 봐야 한다.
최근 미국 무역대표부(USTR)가 우리 국회가 구글 갑질 방지법을 발의한 것에 유감을 표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비공개 문건으로 구체적인 내용을 알 길은 없지만, USTR이 한국 국회의 입법에 우려를 간접적으로 표명한 것이다.
새 행정부가 빅 테크를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서 앱마켓의 수수료는 바뀔 수 있다. 민주당의 조 바이든은 예상치 못했던 진통 끝에 차기 대통령으로 인준됐다. 트럼프 극렬 지지자들은 국회의사당에 침범하는 초유의 무리수를 뒀다. 6명이 숨지고, 100여 명이 체포된 끝에 의회는 대통령 인준 절차를 밟을 수 있었다.
민주당은 상원에서도 다수 당에 올랐는데, 대통령은 물론 상·하원을 모두 주도하는 '블루 웨이브'를 뜻한다. 블루 웨이브가 가시화되면서, 민주당의 정책에 추진력이 붙을 것이라는 예상이 여러 곳에서 나왔다. 미국 정치지 폴리티코의 보도에 따르면, 민주당은 빅 테크에게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할 방침이다. 빅 테크보다 훨씬 더 많은 기업들이 경쟁하는 환경이 IT 생태계에 건강하다는 것이다.
사실 작년 10월, 구글과 애플의 마켓 수수료에 제동을 걸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 것도 민주당 주도의 하원이었다. 빅 테크는 트럼프의 공화당보다 상대적으로 민주당에 호의적이지만, 반독점에 대한 방침은 양당이 크게 다르지 않다. 민주당은 빅 테크에 일부 제동을 걸 계획이다.
하원 반독점위원회가 제출한 보고서를 잠깐 보자. 보고서는 "한때 기존 질서(Status Quo)에 도전했던 산만한 언더독 스타트업들은 이제 석유 부호나 철도 거물들의 시대에나 봤던 독점자(Monopolies)가 되어버렸다"라는 강한 문장으로 시작된다. "이들 기업은 사회에 분명 혜택을 주었지만, 이제 대가를 치를 때가 됐다"며 "다른 회사들도 그들의 규칙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문구도 있다.
더불어 보고서에는 30%의 플랫폼 수수료를 맨 처음 주장한 애플의 초기 주장도 담겨있다. 2008년 스티브 잡스 전 CEO가 "앱스토어로 돈을 벌 생각은 없다"라며 "모든 돈은 기본적으로 개발자에게 주고 나머지 30%를 운영 비용으로 쓰면 좋겠다"라고 한 말이 실려있다. 위원회는 이랬던 애플이 이제는 다른 태도를 보인다고 비판했다.
위원회는 보고서 말미에 독점적 관행의 개혁을 위한 몇 가지 권고사항을 적었다. 플랫폼 내 차별 금지, 지배적 플랫폼에 의한 인수합병 제한, 기존의 반독점법 강화, 플랫폼 기업의 강제 집행 금지 등이 그것이다. 상원을 공화당이 주도했던 과거와 달리, 블루 웨이브가 달성된 현재 구성에서는 이 반독점 보고서가 힘을 쓸 수 있다.
빅 테크는 움직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들 기업이 마주한 가장 큰 이슈는 '섹션 230조'다.
민주당은 통신품위법 230조를 개정, 빅 테크의 사회적 책임을 강화할 방침이다. 조 바이든 캠프에서도 중요 공약으로 나왔던 것이다. 이들이 고치겠다는 법 230조는 SNS 이용자의 게시물에 플랫폼 기업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된다는 면책 조항이다.
이 면책 조항을 고치기 전부터 빅 테크는 움직이고 있다. 의사당이 점령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있고 나자, 빅 테크들은 조치에 나섰다. 트럼프와 극성 지지자 큐어넌들에게 '영정'(영구정지)을 걸었고, 애플과 구글은 대피소로 지목된 '팔러'의 다운로드를 중단시켰다. 아마존도 AWS에서 팔러의 호스팅을 중단했다.
하지만 뒤늦은 조치라는 비판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페이스북과 트위터 직원들을 인터뷰했다. 이들은 "민주당이 블루 웨이브를 이룬 뒤에야 대책을 내놨다"라고 토로했다. 이렇게 빅 테크들은 전에 없던 신속함으로 '할 수 있었지만 굳이 하지는 않았던 일'들을 하고 있다.
기자는 앱마켓 수수료에도 장기적인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고 예상한다.
장기적이라는 단서를 단 이유는, 애플이 코로나19를 언급하면서 단기적인 지원책인 듯한 뉘앙스를 풍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서 살펴본 것과 같은 분위기라면, 코로나19가 깔끔하게 끝난다고 하더라도 애플이 다시 수수료를 '정상화'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물론 팀 쿡의 애플이라면 충분히 수수료를 30%로 돌려놓을 수 있다는 생각도 들지만, 애플에 좌표를 찍은 에픽게임즈는 현 상황에서 만족할 생각이 전혀 없다. 에픽게임즈는 애플을 고소했고, 애플은 맞고소했다. 고소에 고소에 고소가 꼬리 물듯 이어지는 형국이지만, 당하는 쪽은 애플이다. 이미 <포트나이트>는 앱스토어에 없고, 에픽게임즈는 언리얼엔진을 지켰기 때문이다. 둘의 싸움에서 잃을 것이 많은 쪽은 애플이다.
게다가 작년 9월, 에픽게임즈는 스포티파이, '틴더'의 매치그룹, 동명의 소지품 분실 방지 앱을 만든 타일과 함께 앱 공정성을 위한 연합(Coalition for App Fairness, CAF)을 발족하고 단체행동에 나섰다. CAF 소속 기업들은 대기업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여전히 수수료 30%를 지불하고 있다. 이들의 다음 목표는 '우리도 15%'일 것이다.
잡스의 30%가 오랜 업계 기준이 되었던 것처럼, 오늘날 애플이 꺼낸 15%가 앱마켓 수수료의 새 기준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빅 테크는 자기 '갑질'을 지적하는 정부, 기업, 단체와 다투는 대신 다른 수단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앱마켓 수수료 30%에 대한 불만의 단위는 번들 충전기를 넣고 빼는 것보다 크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다큐멘터리 <소셜 딜레마>가 지적한 것처럼, 빅 테크는 인간 그 자체로 돈을 번다. 다수의 의지에 반하는 노선을 오래 유지하지는 못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