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IT 선진국'이라고 부를 만한 법이 통과된 걸까요? 아니면 가장 먼저 사서 고생하는 나라가 될까요?
한국 입법부가 세계 최초로 구글, 애플 등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을 방지하는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조승래 의원이 입안한 '구글갑질방지법'이 8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입니다.
이 법이 통과 소식을 한국은 물론 전 세계의 주요 언론들이 앞다투어 보도했습니다. 애플과 세기의 소송을 벌이는 에픽게임즈 팀 스위니 대표는 "나는 한국인이다"라며 격한 환영의 뜻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구글갑질방지법은 왜 이렇게 뜨거운 걸까요? 그리고 앱 생태계에 어떤 여파를 미치게 될까요? QnA 형식으로 알아봤습니다.
Q. 그래서 구글갑질방지법이 뭐야?
구글갑질방지법의 공식 명칭은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입니다. 이 법을 대표발의한 민주당 조승래 의원은 앱마켓 사업자의 인앱결제 강제 등 갑질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스마트폰에서 디지털 콘텐츠를 구매할 때 구글, 애플의 결제 수단만 사용하고, 그 수수료를 30% 징수하는 것이 오랜 질서였는데요. 통과된 개정안을 읽어보면, 특정 결제방식 강제, 부당한 앱 심사 지연 및 삭제, 타 앱마켓 등록 방해 등 앱마켓 사업자의 대표적인 갑질 사례로 지적되던 행위를 할 수 없습니다. 결제와 환불 등 앱마켓 사업자의 이용자 보호도 의무로 규정됐습니다.
해당 의무를 담당하는 정부 기관은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입니다. 방통위는 앱마켓 사업자의 의무 이행 실태를 점검하고, 자료 제출 명령, 시정명령 등의 권한을 부여할 수 있습니다.
이 법은 꽤 따끈따끈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수많은 법이 나오고 묻히는 한국 국회에서 이번 개정안은 2020년 9월 8일 발의되어 2021년 8월 31일 본회의를 통과했거든요. 1년도 걸리지 않은 겁니다. '그만큼 플랫폼 사업자의 갑질에 대한 문제의식을 여야가 동감하고 있었다, 법의 통과가 절실한 이들이 많았다' 정도의 해석을 해볼 수 있습니다.
민주당 조승래 의원
Q. 이게 게임이랑 상관이 있어?
그렇습니다. 구글플레이와 앱스토어(애플) 양대 마켓에서 가장 많은 인앱결제가 일어나는 분야는 단연 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유명 조사기관 센서타워 자료를 볼까요? 2021년 상반기 앱결제 전체를 집계해봤더니 게임 관련 지출이 447억 달러로 전체 637억 달러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상반기 구글플레이 및 앱스토어 전체 수입
그중 모바일게임 결제 수입 (출처: 센서타워)
모바일게임으로 주로 먹고사는 국내 주요 게임사들은 구글과 애플에 굉장히 많은 '통행세'를 내고 있습니다. 한국모바일산업연합회가 국내 모바일 사업자를 조사해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국내 게임사들이 2020년 구글에 납부한 수수료는 7,655억 원, 애플에 낸 수수료는 2,635억 원에 달합니다. 연합회가 추정한 바로는 올해 구글과 애플에 각각 9,529억 원과 2,635억 원을 내야 할 것 같다고 합니다.
많은 분들이 아시겠지만, 그간 모바일게임 사용자들이 결제해왔던 패키지, 다이아, 시즌패스의 금액은 전부 판매자인 게임사가 가져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수수료를 떼갔던 것이고요. 꼭 특정 도로로만 지나가야 해서 톨게이트 비용을 내야 했는데, 다른 길로 운행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게이머들은 이 질문을 해볼 수 있죠: 그러면 돈받고 파는 패키지랑 다이아도 저렴해지는 거야?
이 문제에 대해서는 게임사들이 직접 답변해야겠지요. 아무쪼록 앱 제공자들에게는 한국에서 구글과 애플에 수수료를 납부할 의무에서 벗어날 길이 열립니다.
Q. 구글이랑 애플이 수수료는 왜 가져갔는데?
구글과 애플은 중간에서 스토어 안정성, 해킹 프로그램 차단, 유지, 개선 등의 각종 비용이 들어간다며 결제가 일어날 때마다 30%의 수수료를 가져갔습니다. 두 회사는 원칙적으로 스토어 운영을 위해선 수수료 징수가 불가피하다는 태도를 견지하고 있습니다.
애플 CEO 팀 쿡은 에픽게임즈와 반독점법 위반 소송 중 직접 법정에 출석해 15만 개 API를 운영하고, 거래를 처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도구와 서비스가 필요하다"며, "만약, 그것이 문제가 된다면 지적재산권으로 얻은 수익을 모두 포기하는 셈이다. 우리는 돈이 아닌 이용자를 생각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나 세계적으로 이 비용이 너무 많고 부담이 되며, 두 글로벌 플랫폼 사업자가 사실상 다른 방법을 허용해오지 않았기 때문에 독점적이라는 비판이 일고 있습니다. 구글, 애플 양사는 기존에 30% 통일이던 수수료를 매출 100만 달러(약 11억 원)까지 15%로 받기로 하는 등 한 발짝 물러났지만, 갑질은 여전했습니다.
Q. 구글이랑 애플이 무슨 갑질을 했어?
다양한 갑질이 지적되고 있습니다. 요약하자면, 매출이 일어날 때마다 30%를 떼어가서 불만스러운데, 스토어 운영마저 제멋대로라는 것입니다.
개발사들은 구글과 애플의 자체 심의 규정과 반려 사유, 스토어 인기·매출 순위의 기준, 게임 출시 이후 사후 지원 등에 대해서 알 수 없습니다. 한 개발사 관계자는 이에 대해 "앱마켓 사업자와 게임사의 관계는 명백하게 갑과 을이다. 구글의 정책이나 행위에 문제를 제기하고 싶어도 개발사는 소통할 수 있는 창구 자체가 막혀 있다"고 말했습니다.
법을 낸 조승래 의원실은 "글로벌 앱마켓 사업자는 국내 모바일 게임 <리니지M> 등에 독점 출시를 강요하거나, 국내 웹툰 앱 ‘레진코믹스’를 성인용 콘텐츠를 제공한다는 이유로 해당 앱마켓에서 일방적으로 삭제하는 등 시장 지배력을 남용한 갑질행위를 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고 설명합니다.
두 회사는 그간 개발사의 여러 요구에 '글로벌 원칙'과 '약관대로'라는 말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며 구체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통과된 법에 따르면, 앞으로 '갑질'은 금지되며 방통위가 중간에서 감시자 역할을 맡습니다.
법이 잘 작동한다면, 업계에서 갑질이라고 부르던 행태는 상당 부분 줄어들 공산이 큽니다.
Q. 한국에만 별도의 법이 생겼는데 구글이랑 애플은 괜찮대? 떠나는 거 아냐?
구글코리아는 빠르게 성명을 냈고, 애플은 아직 입장을 내지 않고 있습니다. 구글 측이 디스이즈게임에 보내온 입장 전문을 보시죠.
구글플레이는 단순한 결제 처리 이상의 다양한 기능을 제공하며, 구글 플레이 서비스 수수료는 구글이 안드로이드를 계속 무료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물론 개발자가 여러 툴과 글로벌 플랫폼을 활용해 전세계 수십억 명의 소비자에게 보다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는데 사용됩니다.
이는 소비자가 기기를 합리적인 가격으로 사용하고 플랫폼과 개발자 모두가 재정적으로 성공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비즈니스 모델입니다. 개발자가 앱을 개발할 때 개발비가 소요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글도 운영체제와 앱 마켓을 구축, 유지하는 데 비용이 발생됩니다.
구글은 고품질의 운영체제와 앱 마켓을 지원하는 비즈니스 모델을 유지하면서 해당 법률을 준수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으며 향후 수 주일 내로 관련 내용을 공유할 예정입니다.
수수료 징수에는 이유가 있고, 앞으로도 그 모델을 유지하겠지만 고쳐진 법은 준수하겠다는 것입니다.
구글 코리아 사옥 (출처: 2rabbitdesign)
한국은 세계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힐 정도로 인앱결제가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고, 무수히 많은 인기 앱의 생산기지이기도 합니다. 한국에서 장사를 접는 대신 "법률을 준수하는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는 게 구글 입장입니다. 옛날 셧다운제가 처음 시행되던 시절처럼 '한국에만 있는 규제법 때문에 장사 못하겠다'고 나서는 상황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서드 파티 스토어를 원천 금지하고 있을 정도로 구글보다 강경한 태도의 애플은 어떻게 나올지 모르겠습니다. 이 부분은 빅테크 기업의 독점 이슈로 한국만큼 시끄러운 미국 상황을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애플과 에픽게임즈의 소송전을 끝까지 주목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디에선가 듣기로 도심 한복판에는 사설 주차장에 내는 월주차 비용보다 한 달에 구청에 무는 주정차위반 과태료가 더 저렴해서 대놓고 불법주차를 하는 운전자가 간혹 있다고 합니다. 견인의 공포가 없다면, 앱마켓 사업자가 이렇게 배짱을 놓을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그간 게임 생태계에는 회색지대에서 이윤을 챙긴 플레이어들이 더러 있었잖아요?
Q. 고친 법은 언제 어떻게 시행돼?
(출처: pixabay)
법은 입법부의 손을 떠나서 행정부로 갔습니다. 행정부 절차를 짧게 정리하자면, 법제처에서 법안을 검토한 뒤, 국무회의에서 의결해, 대통령 재가를 받습니다. 끝으로 행정안전부에서 관보를 게재하면 시행입니다. 거기까지 걸리는 기간이 15일 이내입니다. 따라서 9월 중순이 법 조항이 효력을 발휘하는 시점이 될 것입니다.
뒤이어 자세한 '어떻게'가 담긴 시행령이 나오죠. 그 시행령에 "사업자는 언제까지 어떻게 방안을 마련하라"는 예고도 함께 들어갈 텐데요. 새로운 법에 따라 부과된 의무에 관한 규정이 시행령에 담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시행령이 얼마나 촘촘하게 잘 만들어졌나 봐야겠습니다. 시행령 제정은 법 공포 이후 6개월 이후에 이루어지는데, 내년 3월 이전에 시행령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방통위는 "앱마켓 사업자가 확대된 영향력에 걸맞은 사회적 책무와 이용자 보호를 수행하도록 법 개정에 따른 시행령 등 하위 법령을 차질 없이 준비하고,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신속하고 엄중하게 법을 집행해 나간다"고 합니다. 방통위가 평가한 이번 법안의 4가지 의미는 아래와 같습니다.
① 앱마켓 사업자가 모바일콘텐츠 등의 결제 및 환불에 관한 사항을 이용약관에 명시하는 등 이용자의 피해를 예방하고 권익을 보호해야 한다는 의무규정이 신설
② 방송통신위원회·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앱 마켓 운영에 관한 실태조사를 실시할 수 있는 근거가 마련
③ '앱 마켓에서의 이용요금 결제, 결제 취소 또는 환급에 관한 분쟁'이 방송통신위원회의 통신분쟁조정위원회 분쟁조정 대상에 포함
④ 앱마켓 사업자가 거래상의 지위를 부당하게 이용해 특정한 결제방식을 강제하는 행위, 모바일 콘텐츠 등 심사를 부당하게 지연하거나, 모바일 콘텐츠 등을 부당하게 삭제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규정이 신설
방통위는 "미국·유럽에서도 유사한 내용의 법안이 발의되고 있는 만큼 세계적으로 앱 마켓 등 플랫폼 규제정책 입법화의 시금석이 될 것이다"며 "이번 개정안은 법 시행의 시급성과 필요성을 감안해 관계부처와 협의를 통해 마련된 만큼, 부족한 부분은 향후 법 집행 등의 과정에서 관계부처와 협력해 규제 사각지대가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이런 입장을 냈습니다.
사단법인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앱마켓의 인앱결제 강제를 금지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안’의 국회 본회의 통과를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생태계의 최상단에 있는 플랫폼의 성장 동력은 바로 모든 구성원과의 신뢰관계입니다. 앱 마켓사업자의 정책변경예고 이후 지난 1년간 창작자, 개발자 등 생태계 내 구성원의 메시지들은 그들이 만든 혁신이 퇴색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봅니다.
이번 법안 통과로 창작자와 개발자의 권리를 보장하고, 이용자가 보다 저렴한 가격에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 있는 공정한 앱 생태계가 조성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또한 앱 마켓사업자의 정책을 친(親) 개발자, 친(親) 사용자로 다시금 정립하여 혁신의 아이콘이었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전기통신사업법의 통과를 위해 힘써주신 많은 창작자와 개발자, 대한민국 국회 및 정부 관계자분들께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한국인터넷기업협회는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환경 속에서 콘텐츠 산업의 혁신이 지속될 수 있도록 더욱 힘쓰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로 '인기협'이라고 줄여 부르는 이 협회에는 네이버, 카카오는 물론 넥슨, 엔씨, 넷마블 등의 기업이 회원사로 있습니다. 국내 매출 비중이 높은 기업이라면 환영할 만한 일이기는 합니다.
그렇지만 해외 진출을 노리는 기업의 셈법은 복잡합니다. 구글갑질방지법에 마냥 함박웃음을 짓기는 어려울 겁니다. 지금 통과된 건 엄연히 한국법으로 해외는 변화가 일어날 조짐만 보일 뿐이지 변화가 일어나지는 않았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소송의 나라이니만큼 애플과 에픽의 송사가 수년에 거쳐 진행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생각할 거리가 하나 더 있습니다.
Q. 갑자기?
구글과 애플은 한국으로부터 날아든 견제구에 살펴볼 수(數)가 많지만, 토종 앱마켓 원스토어는 한국 시장에 충실한 곳으로 이번 조치로 져야 할 의무를 그대로 가져갈 겁니다. 이번 조치로 이동통신 3사와 네이버가 함께 출자해 세운 원스토어가 구글의 점유율을 일부 가져가면서 내수가 커지는 구조를 바라는 입장도 분명 있을 텐데,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왕 노릇 한다'는 속담을 여기 놓을 수 있을 겁니다.
이미 2020년 원스토어는 앱스토어의 지분을 넘어섰죠. 작년 8월 원스토어 시장점유율은 18.4%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같은 기간 구글과 애플은 점유율은 각각 71%, 10.6%였죠. 구글과 애플이 한국에만 고쳐진 법이 부담으로 작용하는 조건에서, 20%의 수수료만 거두는 원스토어가 어떤 행보를 보일지 주목할 만합니다.
원스토어가 대안일 수는 있어도, 유일한 돌파구가 되는 미래를 경계해야 한다고 봅니다. 피쳐폰 시절부터 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원스토어를 만든 통신 3사는 앱 개발자와 '친화적'이었다고 부르기는 어렵습니다. 그저 아직 한국 시장만을 대상으로 영업하는 원스토어가 수수료를 덜 받아오고 있을 뿐이죠.
통신 3사(53.9%), 네이버(26.3%), 재무적투자자(18.6%) 로 구성된 원스토어. IPO를 준비 중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Q. 이 문제에 대해서 더 읽을 거 없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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