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시 2주만에 구글플레이 매출순위 5위. 다시 2주가 지나고 매출순위는 한 단계 오른 4위. <검과 마법>의 경이로운 흥행은 기존의 국내 게임 관계자들에게는 '충격' 그 자체였다.
인기가 대단한 IP를 사용한 것도 아니고, 엄청나게 참신한 시스템을 만든 것도 아니다. 게임플레이는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모두 자동으로 진행되고, 그래픽은 괜찮지만 설정은 평범한 판타지 세계관에, 스토리도 크게 다를 것 없다.
태연을 내세운 대대적인 마케팅 덕은 봤지만 사실 요즘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그 정도 마케팅비용을 쓰는 게임은 많다. 오히려 <검과 마법>은 국내 모바일게임 시장에서 하반기 이후 집중적으로 쏟아져 나올 모바일 MMORPG들에 한 발 앞서 시장을 선점하는데 성공했다.
지금까지 모바일 MMORPG가 처음 나온 것도 아니다. 그런데 유독 <검과 마법>이 이처럼 크게 뜰 수 있었던 이유는 뭘까? 디스이즈게임에서 '기존 논법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검과 마법>의 흥행을 살펴봤다. 먼저 지금까지의 '모바일 MMORPG의 시도'에 대한 이야기부터 시작해보자.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왜떴을까? 왜못뜰까?]는 예상보다 큰 성공을 거둔 게임이나, 기대에 비해 좋은 성적을 올리지 못하는 게임들의 이유를 집중적으로 알아보는 리뷰 코너입니다. 본 코너는 게임의 시스템이나 방식에 대한 소개보다는 게임의 흥행 자체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1 모바일기기에서 MMORPG를 찾는 유저들에 대한 고민
모바일게임과 PC게임은 다르다. 일단 기기의 성능부터가 다르다. 그래서 지금까지 여러 개발사들이 모바일에 맞춘 MMORPG를 새롭게 만드는 데 노력을 기울였다.
작은 화면에서도 플레이가 쉽도록 시야를 (주로 쿼터뷰로) 제한했고, 시스템도 최대한 단순화했다. 필드는 작아졌고, 캐릭터는 아기자기했고, 파티플레이는 꼭 필요한 구간에만 들어갔다. 대규모 전장이나 공략이 필요한 인스턴스 던전처럼 번거로운 조작이 필요한 콘텐츠도 모바일에 맞춰 간소화됐다.
<아크스피어>나 <라그나로크: 발키리의 반란>, <리버스월드>, <여우비> 등 지금까지 출시했던 숱한 모바일 MMORPG처럼 말이다. 모바일게임을 즐기는 라이트유저도 쉽게 접근할 수 있는 MMORPG를 만들어보자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모바일 MMORPG가 눈에 띄는 성과를 내진 못 했다. 이유는 생각보다 간단했다. 모바일 기기에서까지 MMORPG를 즐기는 유저들은 모바일에 맞춘 새로운 MMORPG를 원하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기기와 상관없이 그저 자신이 즐기던 MMORPG의 추억을 되살리고 싶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때마침 PC가 멀어지고 모바일기기가 가까워지던 시기였던 것뿐이다.
이를 증명한 게 <드래곤가드>와 <암드히어로즈>처럼 3D 캐릭터와 기존 PC MMORPG 시스템을 최대한 채용한 일부 MMORPG의 흥행이다. 이들 게임은 잠시나마 매출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며 모바일 MMORPG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그리고 (주로 중국에서 개발된) 최근의 모바일 MMORPG들도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본격적으로 PC MMORPG의 추억을 보여준 <뮤 오리진>이나 <천명>은 구글플레이 매출 기준으로 10위권 안에 안착했다. 각각 원작 <뮤>의 IP와 대규모 PVP라는 PC MMORPG의 추억을 내세운 게임들이다.
반면 후속 주자인 <검과 마법>은 유명 IP를 갖지 못 한 게임이었다. PVP처럼 특정 콘텐츠에만 매달린 게임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2주 만에 구글플레이 매출순위 5위를 기록했다.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2 결국 MMORPG는 MMORPG다워야 하더라.
<검과 마법>도 게임을 플레이할 대상을 확실하게 이해했다. 게임의 콘텐츠는 모바일 MMORPG만의 독특한 시스템을 보여주는 것보다 PC MMORPG 수준의 방대한 콘텐츠를 모바일에서 보여주는 데 집중했다.
초반부터 퀘스트 위주의 진행이 이어지고, 인스턴스 던전부터 아이템거래, 실시간 길드전, 탈것, 투기장, 전장, 결혼 등의 콘텐츠가 쏟아진다. 필드는 모든 유저가 함께 쓰고, 서브퀘스트는 잊을만하면 몇 개씩 튀어 나오며 이어진다. 이동과 시야를 별개로 돌려서 시야를 돌려가며 주변을 확인할 수도 있고, 캐릭터를 꾸미기 위한 '아바타'도 있다.
후반 던전에서는 파티원의 직업구성까지 고민해야 하고, 정해진 시간마다 열리는 방어전과 전장에서는 100명 이상의 대규모 전투가 벌어진다. 특히 중반 이후에는 다른 건 몰라도 '보스만큼은' 확실한 조작이 필요하도록 설계됐다.
심지어 마을에서 다른 유저와 호흡(?)을 맞춰야 하거나, 숱한 일일퀘스트와 현상금퀘스트 등을 받아놓고 동선을 고민해야 하는 상황도 찾아온다. 모바일기기에 맞춰 자동조작과 자동진행을 넣은 점만 빼면 영락없는 PC MMORPG에서 경험하던 것들이다.
국내 퍼블리셔인 룽투코리아가 <검과 마법>을 홍보하면서 PC급 MMORPG라는 문구를 계속 사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일단 여기까지는 <검과 마법>도 (국내에서 성공을 거둔) 다른 모바일 MMORPG와 크게 다르지 않다.
#3 <검과 마법>의 첫 '승부수' 라이트유저 확보
<검과 마법>은 여기에 하나의 '승부수'를 띄웠다. 당연한 말이지만 MMORPG는 유저 숫자가 많을수록 재미있다. 유저층이 넓고 다양할수록 게임에도 깊이가 생긴다. 그래서 <검과 마법>은 홍보를 '라이트유저 확보'에 집중했다. 지금까지 모바일게임에는 큰 관심이 없던 유저들이다.
소녀시대의 태연을 내세워서 'PC MMORPG에 익숙한 삼촌팬'들을 적극적으로 겨냥했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홍보 과정에서도 연예인을 보너스 정도로 내세우던 기존 모바일게임과 달리 태연을 아예 전면에 배치했다. 게임에 대한 내용은 철저히 뒤로 숨겼고, 모든 관심을 태연에만 집중했다.
대신 알맹, 베스티의 유지 등을 이용한 영상과 OST를 내밀며 '모바일게임에는 많은 관심이 없던 아이돌팬'들의 덕심을 노렸다. '게임화면'에 대해 정보를 보고 판단하거나 선입견을 갖기 전에 유저들을 먼저 접속시키고 보는 방식이다.
<검과 마법>이 지금까지 캐주얼게임의 전유물로 여겨지던 카카오와 손을 잡은 것도 라이트유저층을 보다 쉽게 겨냥하기 위해서였다.
#4 제대로 적중한 <검과 마법>의 첫 승부수
<검과 마법>의 승부수는 적중했다.
"예상대로 20대 후반부터 30대 초반의 남자가 제일 많았다. 어린 유저들은 역시 조금 적은 편이다. 대신 여성 비율이 높았다. 특히 20대 후반 여성이 꽤 많았고 MMORPG 자체가 아예 처음인 유저도 많았다" 문동호 PM의 설명이다.
MMORPG는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비중이 작을지 몰라도 온라인게임까지 놓고 보면 유저들에게 가장 친숙하고 오랜시간 다듬어 온 장르 중 하나다. 게다가 (대부분 자동조작에 의존해) 1명의 캐릭터만을 움직이는 조작방식은 굳이 게임에 많은 이해도가 없는 유저라도 어렵지 않게 시작할 수 있다.
최근의 모바일게임에 친숙한 유저가 아니라면 오히려 PC MMORPG의 기본구조에 자동조작을 더한 <검과 마법>의 시스템이 더 쉽고 익숙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덕분에 <검과 마법>은 출시 이후에도 홍보에 관련된 아이돌의 게시판이나 카페 등에서 기존 모바일게임유저에게는 굉장히 당연한 내용을 묻거나 고민하는 글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유저 폭은 넓어졌고, 소위 말하는 '달리는 유저' 이외의 유저층도 확보했다.
문동호 PM은 "내부적으로 MMORPG 초심자인 여성유저를 확보한 계기로 카카오플랫폼을 택한 것과 태연의 팬 중에 의외로 게임 경험이 적은 여성 유저가 많았던 것을 보고 있다"고 밝혔다. 유저층을 넓히기 위한 선택이 모두 적중했다는 뜻이다.
<검과 마법>의 첫 도박은 성공으로 끝난 셈이다.
#5 그럼 게임을 원하는 게이머는?
연예인을 전면에 내세우고, 게임을 숨기는 방식은 이미 많은 모바일게임들이 사용한 방식이다. 그리고 이 방식을 사용한 게임 대부분이 첫 게임화면부터 유저에게 심각한 위화감을 주며 성공에서 멀어졌다. 정작 게임에 오랜시간 남아줘야 할 헤비유저들일수록 반발이 심하기 마련이다.
여기서 <검과 마법>은 두 번째 승부수를 걸었다. 게임에 대한 취향이 아직 불분명한 라이트유저는 광고로 모으지만, 취향이 확실한 헤비유저는 게임성으로 승부를 본다.
"처음에 게임을 봤을 때 자신감이 어느 정도는 있었다. 결국 결정을 내려야 했는데, 게임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헤비유저들에게는 충분히 어필할 수 있겠다는 판단을 내렸고 조금 더 과감해지자고 판단했다" 문동호 PM의 설명이다.
광고에 움직이는 유저, 그것도 최근 모바일게임이 집중하는 연예인을 이용한 대중매체 광고에 영향을 받는 유저는 대부분 라이트유저다. 자신이 이미 플레이중인 게임이 있거나, 게임을 보는 눈이 높은 헤비유저들은 광고보다는 자신의 경험이나 주변의 판단을 믿는다.
<검과 마법>은 튜토리얼부터 괜찮은 그래픽을 보여준다. 일단 기본적으로 '중국색을 찾아보기 어려운 그래픽'인데다가 모바일게임으로는 완성도도 높다. 최소한 태연으로 도배된 로딩화면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나오는 게임화면부터 실망할 수준은 아니다.
인터페이스도 깔끔하다. 아이콘은 플랫 디자인처럼 단순화했고, 그마저도 평소에는 시야를 가리지 않게 접혀있다. 굳이 개발사를 알리기 전에는 이미지로만 봐서는 중국에서 만들었다고 생각하기는 어렵다. 게임의 구조나, 시스템도 PC MMORPG의 경험이 있는 유저라면 충분히 만족할 만하다.
#6 모바일에서 '어떻게든 끌어낸 상호작용'
과거 PC MMORPG의 경험을 억지로 끌어내기 위한 카드인 '반 강제적인 상호작용'도 갖췄다. <검과 마법>에서는 게임 내 감정표현 기능을 이용한 일일 퀘스트를 줌으로써 유저 사이에 자연스럽게 상호작용이 일어나도록 유도했다.
<검과 마법>의 일일 퀘스트 중 하나는 다른 유저를 안고 지정된 지점까지 수 차례 이동하는 퀘스트다. 하지만 지정된 지점은 품에 안겨 있는 유저에게만 표시되기 때문에, 이동을 맡은(?) 유저는 자신이 안고 있는 유저의 말을 듣고 지정된 지점까지 움직여야 한다. 한 명은 방향을 말해주는 눈이, 다른 한 명은 그에 맞춰 이동하는 다리가 되는 셈이다.
게임에서는 기본적으로 음성채팅을 지원하며, 음성채팅을 한 유저에게 꽃을 선물하면 서로 보상을 주고 받는 일일퀘스트도 마련돼있다. 이런 퀘스트를 매일, 그것도 거점마다 주기 때문에 원하든 원하지 않든 다른 유저와 대화를 나누거나 교감할 기회가 만들어진다.
퀘스트를 진행하지 않을 때도 각 거점이나 길드, 파티 내에서도 상시로 다른 유저의 (퀘스트를 위한) 채팅이 노출되는 만큼 자연스럽게 유저들이 부대끼며 살아가는 느낌을 받는다. 길드에 가입하거나 적극적으로 대화에 나서지 않는 이상 놓치기 쉬운 다른 유저와의 상호작용을 이런 방식으로 일부나마 풀어낸 셈이다.
피로도 때문에라도 자동전투와 자동이동 중심으로 플레이할 수밖에 없는 모바일 MMORPG에서는 굉장히 소중한 상호작용이다.
누군가를 매일 1번 안고 대화에 따라 보이지 않는 장소까지 찾아가야 한다. 거점마다 있는 일일퀘스트다.
#7 완성도를 미끼로 던진 승부수, 제대로 성공한 도박
결국 룽투코리아는 서비스 전부터 <검과 마법>의 완성도에 대한 확신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이 '완성도'라는 카드를 그대로 활용하기보다는 약점인 인지도와 라이트유저층을 보완할 수 있는 '태연'이라는 홍보수단을 덧붙여서 몇 배로 뻥튀기하는 승부수를 택한 셈이다.
게임의 완성도나 태연을 통한 홍보 어느 한쪽이라도 기대 이하라면 라이트유저만 어중간하게 모으다가 끝나버리거나, 양쪽 유저 모두로부터 버림받는 이도저도 아닌 상황이 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승부'다.
다행히 승부수는 먹혔고 순위는 치솟았다. 모바일게임의 변화에 민감하지 않은 유저층을 흡수했고, 중국에서 이미 서비스를 진행 중인 게임인 만큼 이후 보여줄 콘텐츠가 많이 남아있다는 것도 장점이다. <검과 마법>은 다음 단계로 게임 내 커뮤니티 강화를 위한 결혼 시스템을 업데이트했다. 이후에는 토너먼트와 신규 직업, e스포츠를 고려한 PVP 활성화 등을 통해 기존의 PC MMORPG에 가까운 자리매김에 주력할 예정이다.
"IP가 없는 게임이다보니 오히려 게임에 집중한 부분이 더 많다. 그래서 이젠 오히려 IP를 만들기 위한 시도도 해볼 생각이다. 특히 가을부터는 국내에서도 유명한 IP를 가진 모바일 MMORPG들이 출시되는 만큼 그때까지 최대한 자리를 굳혀놓는 게 큰 방향이다"
문동호 PM이 고민 중인 다음 목표는 <검과 마법>의 e스포츠화다. 일부 유저에게는 하는 재미를, 다른 유저에게는 보는 재미와 응원하는 재미를 살려서 커뮤니티가 더 활성화되는 틀을 쌓겠다는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