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2020년 5월, 편집국은 신입 기자를 뽑고 있었습니다. 좋은 이력서가 하나 있어서 열심히 읽었는데요. 그런 이력서는 써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었습니다. 포트폴리오를 포함해 수십 페이지에 달했던 글의 마지막에는 " ㅈㅅ, 사실 대학을 졸업하지 못해서 지금 붙어도 너네 회사 못 갈 것 같아"라는 내용의 문장이 적혀있었습니다. 뭐지? 자기 과시?
홀린 듯 전화를 했습니다. 둘 중에 하나라고 생각했습니다. 못 먹는 감 찔러 봤거나, 지금 디스이즈게임이 하고 있는 일을 절실하게 하고 싶거나. 다행히 후자였습니다. 그렇게 시작하는 디스이즈게임 새 연재는 '김승주의 방구석 게임'입니다.
방구석에서 편하게 이야기를 나누듯 각종 게임에 얽히고설킨 스토리를 하나의 글로 정리하는 코너입니다.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재석 기자
2020년 6월 6일, 일본을 중심으로 중국, 미국의 인디 게임 개발사가 모여 개최한 '인디 라이프 엑스포'가 성황리에 마무리되었다. 코로나 이슈로 인해 온라인으로 중계를 해야 했지만, 1만 개가 넘는 인디 게임 중 기대작들을 엄선해 소개해 줬다는 점에서는 많은 의의가 있었다.
행사에는 게임계의 유명 인사들도 참여했다. <언더테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토비 폭스'나,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로 유명한 'ZUN'이 생중계에 얼굴을 비췄다.
<동방 프로젝트>는 일본의 1인 게임 개발자인 ZUN이 제작하는 탄막 슈팅 게임이다. 탄막 슈팅 게임은 슈팅 게임의 하위 장르로, 적들의 총알이 화면을 빽빽하게 채운다는 특징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그리고 '동방'이라는 이름은 게임 전체적으로 동양풍의 이미지가 많이 드러나기에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동방 프로젝트>는 1995년에 첫 출발을 알렸으며, 2020년인 지금도 새로운 공식 작품이 계속해서 발매되고 있다.
오타쿠 문화에 관심이 있는 게이머라면 동방 프로젝트라는 이름을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것이다. 시작은 간단한 동인 게임이었지만, 적극적인 2차 창작의 힘을 통해서 아직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게임이니까.
동인 게임이란 동인 행사에서 판매하기 위해 만들어진 게임을 뜻한다. 그리고 지금은 스팀이나 콘솔로 발매되는 인디 게임 중에서도 <동방 프로젝트>의 2차 창작 게임을 찾아보기 어렵지 않다. 도대체 동방 프로젝트는 어떤 역사를 겪어 왔길래 계속해서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내리며 인기를 얻고 있는 걸까?
<동방 프로젝트>는 당시 대학생이었던 ZUN이 "자신이 제작한 음악을 게임에 사용하고 싶다"라는 이유로 제작한 동인 게임이다. 무려 첫 작인 <동방영이전>의 프로토타입은 1995년에 만들어졌으니 올해로 프로젝트의 25주년이다.
게임의 플랫폼도 NEC(일본전기)에서 만들어진 'PC-98'를 삼고 있을 정도다. 그리고 게임의 장르도 현재 동방프로젝트가 추구하는 '탄막 슈팅 게임'이라는 장르가 아닌 '벽돌 깨기'의 형식에 가까웠다. 기본적인 스토리는 세상에서 잊힌 요괴들이 사는 '환상향'의 무녀인 '하쿠레이 레이무'가 여러 이변을 해결한다는 설정.
이후 ZUN은 대학교를 졸업하기 전까지 다섯 개의 작품을 만들었다. 마지막으로 제작한 작품은 <동방괴기담>이다. PC-98 기종으로 발매된 동방 시리즈의 마지막답게, 과거의 작품에서 최종 등장했던 인물도 선택할 수 있으며, 과거 작품들의 OST도 전부 들을 수 있는 등 ZUN의 대학생 시절 개발 능력이 마음껏 발휘된 작품이었다. 괴기담을 이후로 대학교를 졸업한 ZUN은 일본 아케이드 게임의 대부인 '타이토'에 취직하게 되고 동방 시리즈는 잠시 자취를 감추게 된다.
첨언하자면, 첫 작품인 <동방영이전>부터 <동방괴기담>까지는 '구작'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이후의 시리즈인 <동방홍마향>부터는 게임의 기본적인 베이스부터 변화가 있었으며, 등장하는 주요 인물들도 바뀌었기 때문이다.
구작 시리즈에 등장했던 인물은 대부분 신작에 등장하지 않는다. 팬층에서는 '구작 결계'라는 단어로 이를 통칭하곤 한다. 구작에 나온 등장인물이 신작에 등장하더라도 설정 면에서는 수정이 있었다. 주인공인 레이무도 성격이나 디자인 면에서는 구작과 신작 사이의 모습이 조금 다른 편이다.
당시 ZUN은 타이토를 퇴사하지는 않은 상태였지만, 회사 생활을 하면서 게임 개발에 많은 회의감을 느끼는 상태였다. 본인이 언급하길 "제 마음대로 게임을 만들지 못하면 스트레스를 받기 때문"이다. 상업성 면에서도 신경을 써야 했기에 '팔리는 게임'을 만들어야만 했고, 흥행이 부진하다면 책임은 오롯이 사원들에게 돌아갔다.
그랬던 ZUN은 우연히 코믹 마켓에 참여하게 되었고, 윈도우 운영 체제로 나온 게임들이 활발하게 공유되는 모습을 보며 흥미를 가졌다. ZUN은 다음 코미케에 참가하기로 한다. 2001년 코미케에 '음악 CD'만을 가지고 출품을 신청했으나 아쉽게도 낙선했다.
그리고 "다음 코미케까지는 시간이 있는데, 게임을 만들어 볼까"라는 생각으로 다시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를 제작하게 된다. 그렇게 2002년, 신작 시리즈의 첫 작인 <동방홍먀향>이 코미케에 발매되었다. 구작 시리즈부터 마니악한 팬층을 확보한 덕에 게임은 완판되었다.
동방 프로젝트의 '탄막 슈팅 게임'이라는 틀은 <홍마향>에서 정립되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스펠 카드' 설정의 도입. 스펠 카드란 슈팅 게임에서 보스가 패턴을 구사하기 전에 "이런 공격을 사용하겠습니다"라고 언급하는 것이다. '탄막 슈팅'이라는 개념이 게임의 설정에 녹아들었다고 보면 된다.
작중에서 등장하는 전투는 '탄막 놀이'라고 불린다. 엄청난 힘을 가진 요괴들이 서로 진지하게 싸운다면 여러 부수적 피해가 일어날 것이 뻔하니 탄막 놀이로 싸움을 대신하고, 공격을 시작하기 전에 '스펠 카드'를 제창함으로써 특정한 공격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것이다.
또한, 작중 보스들이 '스펠 카드'로 공격해 올 때 피탄당하지 않거나, 폭탄을 사용하지 않으면 '스펠 카드 보너스'를 받기 때문에 스코어링 면에서도 신경을 써야 할 필요성이 있는 설정이다.
캐릭터들이 보여주는 스펠 카드는 성격에 따라 다양하다. 화면 전체를 뒤덮을 정도로 화려한 탄막을 자랑하는 캐릭터도 있다. 화려함과는 거리가 먼 탄막을 펼치는 캐릭터도 존재한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별것 아닌 공격을 가해 오는 캐릭터도 있다.
덧붙여, <홍마향>에서 정립된 동방 프로젝트의 가장 큰 특징은 진지하지 않은 스토리다. 주인공이 이변을 해결하기 위해 나서긴 하지만, 대부분 해프닝인 경우가 많다. 게임 오버를 당하더라도 "다음에는 반드시!"와 같은 느낌의 엔딩이 나오거나, 최종 보스가 "연습 좀 더 하고 오거라"라며 보내주는 경우가 대다수다.
인류나 환상향의 존망과 같은 대단한 이유로 싸우는 것이 아니다. 물론 파고 들어가면 꽤 진지한 설정도 많지만, 게임은 보통 유쾌한 분위기에서 스토리를 진행한다. 13번째 작품인 <동방신령묘>부터는 시리즈가 변화를 겪으면서 조금 어두운 설정이 등장하기는 했다. 그렇다고 게임의 전반적인 분위기가 완전하게 뒤바뀐 것은 아니다.
시리즈의 이런 특성은 ZUN이 일본 게임 개발사인 '타이토'에서의 경험에서 기인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타이토의 슈팅 게임들은 엄청나게 어두운 스토리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그도 <동방풍신록> 발매 기념으로 성사된 일본 잡지와의 인터뷰에서 "밝지 않은 것은 탄막 게임엔 어울리지 않는다. 원래 탄막 자체가 장난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는 것이니까"라고 언급한 적이 있다.
홍마향이 새로운 동방 시리즈의 시작을 알렸다면, 가장 명작으로 손꼽히는 작품은 <동방영야초>다. 영야초에서는 플레이어 캐릭터가 2인 1조로 태그를 이루어 게임을 진행하는데, 전작에서 보스로 등장했던 '야쿠모 유카리'나 '사이교우지 유우코', 아니면 <홍마향>의 최종 보스였던 '레밀리아 스칼렛'을 플레이어블 기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관심을 끌었다.
그리고 보스의 화려한 스펠 카드, 스코어링과 같은 파고들기 시스템, 정점을 찍은 동방 특유의 OST가 많은 호평을 사면서 <동방 프로젝트>는 일약 동인계의 메이저에 오르게 된다. 온게임넷의 프로그램 'Do the G'에서도 '<동방 프로젝트> 초고수'편을 방영했다.
이후 시리즈는 탄막 슈팅이라는 틀 아래 많은 변화를 시도하며 발매되었다. '대전 탄막 슈팅'을 표방한 <동방화영총>도 있었고, 동인 서클 '황혼 프런티어'와 협력해 외전작으로 <동방비상천칙>이나 <동방빙의화> 같은 대전 액션 게임을 제작하기도 했다.
물론 ZUN이 혼자서 제작하는 정규 시리즈도 계속해서 만들어졌다. 최신작은 2019년 8월 12일에 발매된 <동방귀형수>. 가능하면 하나하나 설명하고 싶지만, 구작을 제외한 신작 게임만 따지더라도 24개에 달하기에 이 글에서 전부 설명하긴 힘드리라 생각한다.
<동방 프로젝트>에서 '음악'이야기를 빼놓으면 굉장히 섭하다. 제작자 ZUN도 자신이 작곡한 게임 음악을 사용하고 싶어서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하지 않았는가?
구작은 'SC-99 Pro'등의 MIDI 음원칩을 사용해 OST를 제작했지만, 신작부터는 'Roland'사의 사운드 스튜디오 'SD-90'을 활용해 만들고 있다. 특히 'ZUN럼펫'이라는 이름으로 불릴 정도로 '동방풍'의 음악에서 자주 들을 수 있는 트럼펫 샘플링 또한 이 사운드 스튜디오에서 왔다.
참고로 SD-90은 널리 사용된 사운드 스튜디오도 아니고, 제조된 수량도 많지 않아 중고 가격이 어마어마한 수준이다. 매물조차 거의 없어 지금 SD-90을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와 같다.
동방 시리즈의 가장 유명한 OST를 말한다면, 당연히 <홍마향>에서 사용된 'U.N 오웬은 그녀인가?'를 들 수 있다. 워낙 유명한 음악이기에 동방 시리즈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듣더라도 "아, 이거?"와 같은 반응을 자연스럽게 보일 수 있을 정도다.
그리고 이런 '동방풍 음악'이 정점을 찍었던 작품은, 시리즈의 대표작인 <동방영야초>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최종 보스인 '호라이산 카구야'의 테마곡인 '죽취비상'이 동방 프로젝트의 느낌을 가장 잘 살리지 않았나 싶다.
<동방 프로젝트>의 흥행 요인으로 꼽을 수 있는 요소는 꽤나 많다. 수많은 일본 설화들을 한데 모아 매력있는 '미소녀 캐릭터'로 치환시킨 점을 예로 들 수도 있고, 위에서 언급했던 화려한 '스펠 카드'나 ZUN 특유의 OST를 꼽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2차 창작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로 여겨진다.
<동방 프로젝트>는 2차 창작이 굉장히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보통 다른 게임이라면 2차 창작을 어느 정도 제한하는 편이다. 저작권법에 의거해 '상업적 용도'의 2차 창작은 처벌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이나, 전문가가 주체가 되는 것이 아니라면 상업적 활동이 허용된다. 오히려 제작자인 ZUN이 "팬들이 만들어준 작품을 볼 때, 날아갈 듯이 행복하다"라며 동인 활동을 장려하고 있다.
음악 관련해서도 동인 활동이 상당히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단순히 <동방 프로젝트> 풍의 음악을 만드는 것을 넘어, 게임에 등장한 OST를 어레인지해 동인 음악을 만드는 서클도 상당히 많다. 대표적으로 '유폐 새틀라이트'나 'FELT'를 들 수 있다. 곡의 퀄리티 또한 무시무시한 수준.
마지막으로, 게임 쪽에서도 동인 활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글의 첫 운을 인디 페스티벌 이야기로 뗀 이유도 같다. 스팀 그린라이트를 통해 수많은 인디 게임들이 스팀에 올라오고, 동방 프로젝트의 공식 작품들도 스팀을 통해 정식 발매되면서, 코믹 마켓 등지에서만 배포되던 동인 게임들도 메이저 시장으로 진출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예로 <동방 루나 나이츠>나, 인디 라이프 엑스포에서도 소개되었던 <동방췌야제>를 들 수 있다. 특히 오타쿠 산업이 급격하게 발전하고 있는 중국 쪽에서의 인기가 굉장하다.
한국에서 만들어진 동인 게임들도 있다. 스타크래프트 2 유즈맵으로 만들어진 <동방월령전>이나, 동인서클 DDS에서 제작한 <환상탄막무쌍> 등 조금만 관심을 가져보면 국내에서도 제작된 동인 게임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25년에 가까운 세월 속에서 활발한 2차 창작을 통해 현재의 위치까지 오른 동방 프로젝트 시리즈. '상업화'의 수많은 유혹 속에서도, ZUN은 <동방 프로젝트>를 통해 수많은 아마추어들이 자신의 상상력을 뽐낼 수 있도록 2차 창작의 문을 열어 두었다.
메이저한 오타쿠 문화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공식적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 없다. '환상만화경'이나 '동방몽상하양'과 같이 팬들이 자발적으로 모여서 만든 애니메이션은 있지만 말이다. 국내 창작자 중에서도 '블랜더'라는 프로그램으로 동방 프로젝트의 3D 애니메이션을 만들며, 압도적인 퀄리티로 전 세계 팬들의 호평을 받고 있는 'minusT'가 있다.
여러 소규모 게임 개발자나, 창작자들에겐 눈에 띌 수 있는 무언가가 필요한 법이다. 아무리 게임이나 창작물을 잘 만들었더라도, 먼저 사람들의 관심을 끌어야 하는 법. 대단한 게임이 아니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게임을 플레이해주고 피드백을 해 주는 과정이 있어야 창작자들은 자신의 능력을 한층 더 발전시켜 나갈 수 있다.
그리고 ZUN은 <동방 프로젝트>라는 이야기를 모든 사람에게 개방해 둠으로써, 그들이 동방이라는 요소를 활용해 자신들의 재능을 펼치도록 만들었다. 그러면서도, 자신의 동인 활동 또한 포기하지 않았다. 본가인 슈팅 시리즈도 '1인 개발'을 통해 지속적으로 제작되는 중이다.
"만드는 사람이 게임을 만들어서 다행이라고 느낄 수 있는 세상이 인디게임 속에는 있지요.그러니 모두들 이 세상을 동경해 들어오고자 하는 거고요. 결론적으로 말씀드리자면, 팔리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실례되는 발언일 수도 있겠지만요."
"첨언하자면, 아예 재밌지 않아도 괜찮은 거예요.게임을 만드는 행위만으로 행복해진다는 것이 인디게임 속에는 있으니까요. 화가들은 곧잘 「이런 걸 그리고 싶었어」라고 생각하며 그림을 그리잖아요. 그 생각은 인디 게임계에도 통용되지요. 부디, 제작자분들께선 그 행복을 누리셨으면 합니다. 팔리지 않아도 괜찮아요. 재밌지 않아도 괜찮아요. 평가받지 못해도 괜찮아요. 본인에게 재밌으면 된 거고, 본인만 즐거우면 되는 거예요. 그런 사실을 깨달으셨으면 합니다."
-INDIE Live Expo 2020중 ZUN의 발언.
(출처- 동방가라쿠타총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