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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발매 연기만 11년... 이번엔 진짜 나오겠죠?

<스토커> 시리즈 역사를 돌아보다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4랑해요) 2021-06-02 16:40:48

첫 공개로부터 11년이 지났다. 마치 모 개발사의 3편의 정황을 코스프레한 느낌마저 든다. 아니 <듀크 뉴켐 포에버>의 정황도 느껴질 정도. 하지만 둘 다 아니다.

 

전자는 따뜻한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같은 존재이고, 후자는 15년 5개월 만에 발매는 했으니까. 이 이야기는 <스토커> 시리즈의 최신작 <스토커 2>에 대한 이야기다. 개발사는 2021년엔 꼭 출시할 것이라 한다. 그래서 시작되는 이야기다.


<스토커> 시리즈는 체르노빌 사건 이후 방사능에 오염된 지역을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주요 무대는 존(Zone)이라고 불린다. 존에는 방사능 영향을 받은 위험한 괴물이 돌아다니지만, 희귀한 자원을 팔아 일확천금을 챙길 수도 있다. 

게임 제목에 들어가는 '스토커'(STALKER)는 Scavenger(부랑자), Trespasser(침입자), Adventurer(모험가), Loner(외톨이), Killer(살인자), Explorer(탐험가), Robber(강도)의 약자.​ 돈을 위해 존에 목숨을 걸고 들어온 사람들이다. 

다소 생소할 수 있지만, <스토커> 시리즈는 동유럽 게임 팬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스토커> 팬들이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 불법으로 들어가는 일이 발생할 정도. 11년 동안 시리즈 신작이 업데이트되지 않았음에도 관련 모드가 꾸준히 만들어지고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만큼 역사도 다사다난했다. 첫 작품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부터 6년간의 기나긴 개발 기간 끝에 겨우내 출시할 수 있었다. 최신작인 <스토커 2>는 첫 공개로부터 11년이 지난 지금도 출시되지 않았다. 과연 <스토커 2>는 나올 수 있을까? 시리즈 역사를 정리해 본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우리만의 게임을 만들자"

 

<스토커> 시리즈의 개발사 'GSC 게임 월드'는 1995년 우크라이나에 설립된 개발사다. 회사의 첫 작품은 RTS <코삭>. 18세기를 배경으로 전열보병 전투를 구현한 것이 특징이다.

 

세계적인 대성공을 거둔 것은 아니지만, <코삭>은 동유럽 게이머의 관심을 끌며 성공했다. 신생 개발사의 첫출발로는 나쁘지 않은 결과였다. 이에 자신감이 찬 GSC는 자신들만의 새로운 게임을 만들기로 결정했다. 이때 개발된 게임이 <스토커> 시리즈의 시작점인 <오블리비언 로스트>다.

당시 유출된 <오블리비언 로스트>의 개발 버전 스크린샷

 

본래 <오블리비언 로스트>는 SF FPS 게임으로 기획됐다. 하지만 GSC는 자신들이 만들고 있는 게임이 첫 다짐과는 맞지 않다고 느꼈다. 이들은 이내 재작업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러시아 소설 <노변의 피크닉>, 그리고 이를 영화화한 <스토커>(1979)에 영감을 얻은 게임을 만들기로 했다.

해당 소설과 영화의 스토리는 이렇다. 어느 날 운석이 떨어졌다. 운석에 떨어진 땅에 이상 현상이 발생하는 구역(존)이 만들어졌다. 정부는 군대를 동원해 이곳을 봉쇄하고 일반인의 출입을 막았다. 소설과 영화는 여기서 물건을 훔치거나, '소원을 이뤄 주는 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존에 들어가고자 하는 인물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스토커>의 설정은 대부분 여기서 비롯했다. 소원을 이뤄 주는 돌도 그대로 게임에 등장한다.

 

스토커(1979)

 

이들은 게임 개발을 위해 직접 체르노빌과 프리피야트에 찾아가기까지 했다. 현장 답사를 마친 개발진은 체르노빌을 배경으로 삼은 자신들의 결정이 옳다고 확신했다.

그만큼 계획도 커졌다. <스토커> 시리즈는 GSC가 자체 제작한 '엑스레이'(X-Ray) 엔진을 사용한다. 엑스레이 엔진이 자랑하는 시스템은 'A-Life' 인공지능이다. 플레이어 간섭이 없어도 몬스터들이 동선을 짜 돌아다니며 스스로 생태계를 만들거나, NPC들이 자체적인 생활 루틴대로 행동하는 등 세세한 AI 구현에 힘썼다. 

게임 개발 기술이 발전한 지금에는 놀랍지 않은 개념일 수 있지만, 게임이 한창 개발돼던 때는 2000년대 초기였다.

 

실제 체르노빌 사진과, 게임에 구현된 모습

X-Ray 엔진은 실시간 인공지능 시스템이 특징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FPS를 개발한 경험이 적었다는 것이었다. 오픈월드 개발 경험은 아예 없었다. 그나마 2001년 외계인과의 전투를 다룬 FPS <코드네임: 아웃브레이크>를 출시한 사례가 있으나, 해당 게임은 전체적인 완성도가 부족하단 지적을 받으며 실패했다.

 

게임 문제도 예상한 그대로였다. A-Life는 심심하면 버그를 뿜었다. 스크립트가 꼬여 게임이 종료되거나, NPC가 제대로 행동하지 않는 경우가 흔했다. 개발 당시엔 운전 가능한 차량도 있었는데, 운전 중 하늘을 날거나 갑작스레 땅속으로 처박히는 등 제대로 된 탈것이라 부르기 힘들었다. 

 

발매가 느려지자 유통사 'THQ'에서는 인원을 파견해 개발에 간섭했고, 결국 개발자들은 자신들이 기획했던 시스템을 하나하나 삭제해야 했다.

 

탈것 시스템은 너무나 문제가 많았고, 결국 최종 개발 단계에서 삭제됐다. 해당 사진은 삭제 콘텐츠를 구현한 모드 <스토커: 로스트 알파> (출처 : FANDOM)

 

2003년 12월에는 알파 버전이 통째로 커뮤니티에 유출되는 수모를 겪기도 했다. 개발이 지지부진해지자 개발사 상황도 나빠져만 갔다. 회사 재정이 바닥을 드러냈다.

월급은 낮았고, 이마저도 제대로 지급되지 않았다. 결국, 2005년 말 개발진 일부는 GSC를 퇴사한 후 '4A 게임즈'를 설립했다. THQ에서 파견했던 인원인 '딘 샤프'는 4A의 CEO가 됐다. 이들이 처음 출시한 게임이 바로 <메트로 2033>이다.

진통 끝에 게임은 2007년 3월 20일 <스토커: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이라는 이름으로 출시됐다. 계속된 개발 연기에도 초창기 게임 품질은 그다지 좋지 않았다. 출시 후에도 버그 수정을 위해 매달려야 했다. 하지만 게임은 성공했다. 

수많은 문제점에도 불구, <스토커> 시리즈만의 음울한 배경과 독특한 설정, 당대에는 혁신적이었던 A-Life 시스템이 호평을 받았다. 유니크한 게임을 만들겠다는 포부가 제대로 먹힌 것이다. GSC 공식 자료에 따르면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은 2008년 9월 8일까지 200만 장 이상의 판매량을 올렸다. 

GSC의 CEO '세르게이 그레고로비시'(Sergiy Grygorovych​)도 "<스토커>는 단순한 게임 하나가 아니다. 재정적 성공을 통해 다양한 방향으로 <스토커>를 개발하겠다"고 밝혔다. 게임 하나로 재정 위기에 몰렸던 GSC가 부활한 것이다.

특유의 음울한 배경이 호평을 받으면서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은 성공했다. THQ코리아를 통해 국내에도 정식 발매됐다

특히 <스토커> 시리즈는 동유럽권에서 성공했다. 판매량 200만 장 중 100만 장이 동유럽에서 팔렸다. 

 

체르노빌 관광에도 영향을 미쳤다. 본래 체르노빌은 일반인에게 개방되어 있지 않지만, 우크라이나 정부에서 인정한 관광 프로그램을 통해서 들어갈 수 있다. 물론 까다로운 사전 예약 절차를 통과하고, 사망해도 이의 제기를 하지 않겠다는 각서를 써야 한다.

 

문제는 게임에 나온 모습처럼 불법으로 체르노빌 지역에 들어가는 경우가 생겼다는 것. 이들을 안내하는 불법 가이드가 자신을 '스토커'라 호칭하기도 했다. 물론 불법 관광은 게임과는 전혀 다르다. 그래서 몇몇 관광객들은 경찰에 자수하기도 하는데, 당국은 20달러의 벌금을 물고 자수한 사람들은 근처의 '이반키브' 지역으로 돌려보낸다.

 

실제 스토커들은 이를 '이반키브행 택시'라고 부른다. 불법 관광객이 끊이지 않자 결국 우크라이나 정부는 2020년 법률 개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이 통과되면 불법 관광이 행정 범죄에서 형사 범죄로 격상된다. 기존에 체포됐을 때 지불하던 벌금이 약 100배 증가하며, 최대 징역까지 가능할 예정이다.

 

공식 행사에서 코스플레이 중인 팬들. <스토커> 시리즈는 동유럽에서 인기가 높다 (출처 : GSG)

 

 

# 후속작 <클리어 스카이>와 <콜 오브 프리피야트>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의 성공에 고무된 GSC는 재빨리 후속작 개발에 착수했다.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의 프리퀄인 두 번째 작품 <스토커: 클리어 스카이>는 2008년 9월 15일에 발매됐다. 

 

<클리어 스카이>는 전작의 시스템을 한 단계 발전시켰다는 평가를 받았다. 엑스레이 엔진이 1.5 버전으로 업데이트되면서 그래픽, AI 등 많은 부분이 개선됐다. 장비 개조 시스템, 팩션 가입 시스템 등 신규 요소도 대거 포함됐다.

 

<스토커: 클리어 스카이>

엑스레이 엔진 1.5 버전의 광원 효과

 

하지만 개발이 빨랐던 만큼 대부분은 전작에 있던 요소를 재활용했다. 신규 지역이 몇 개 추가된 것 빼고는 대부분의 지역이 전작과 같았다.
 
여전히 많았던 버그도 문제였다. 가장 심각했던 것은 '팩션 워' 시스템이다. 한 팩션에 가입해 적대 팩션의 본거지까지 점령하는 콘텐츠인데, AI가 제대로 동작하지 않았다. 플레이어가 혼자 적 거점을 소탕하더라도 아군이 와서 해당 거점을 장악해야 점령이 완료되는데, 아무리 오래 기다려도 NPC가 오지 않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2010년에는 세 번째 작품 <스토커: 콜 오브 프리피야트>가 발매됐다. 이번에는 충분한 개발 기간이 있었던 만큼, 이전 작품에서 지적받은 내용을 대부분 개선했다. 전체 맵 크기는 전작보다 작지만 모든 지역을 새로 만들었다. 그리고 지역마다 다양한 서브 퀘스트를 담아내 호평을 받았다. 버그가 전작보다 확실히 줄어들었단 점도 컸다. <콜 오브 프리피야트>의 메타크리틱 점수는 80점, 유저 평점은 8.7점이다.

 

<스토커: 콜 오브 프리피야트>


# 끝없는 개발 연기 속에 빠졌던 <스토커 2>

 

<스토커> 시리즈는 GSC의 대표작이 됐다. 2010년 GSC의 CEO 세르게이 그레고로비치는 우크라이나의 올해의 기업가 중 한 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출처 : GSC)

 

GSC의 대표작이 된 게임이니 계속해서 후속작이 나오는 것도 당연했다. <스토커 2>는 2010년 8월에 처음 발표됐다. 출시 예정일은 2012년. GSG는 <스토커 2>가 새로운 자체 개발 엔진을 통해 만들어지며, 콘솔로도 발매될 것이라 공언했다.

하지만 GSC는 2011년 12월 9일 갑작스럽게 문을 닫았다. GSC의 직원은 인터뷰를 통해 "단순한 금전적인 문제가 아닌, 복합적인 문제"라고 밝혔다. CEO도 "개인적인 결정" 이상의 이유를 밝히지 않았다. 게임 개발을 중단한 사유도 "<스토커 2>가 팬들이 원하는 수준에 미치지 않아서"였다. 

정확한 내막은 밝혀지지 않았다. 몇몇 개발진들이 인터뷰를 통해 밝힌 내용을 종합하면 프로젝트 규모에 비해 개발 진척도가 느려서로 보인다. 

<클리어 스카이>나 <콜 오브 프리피야트>는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 기반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개발 기간이 짧았다. <스토커 2>는 새로운 엔진으로 처음부터 게임을 만들어야 했기에 개발 과정이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면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 때 발생했던 문제를 반복할 가능성이 높았다.

GSC가 사라지자 <스토커> 개발진들은 다른 회사로 떠나갔다. 핵심 개발진 중 몇몇은 '보스토크 게임즈'를 설립해 <서바리움>을 발표했다. <이스케이프 프롬 타르코프> 개발에 참여한 인원도 있다. 4A 게임즈로 이동해 <매트로> 시리즈 제작에 참여하기도 했다.

 

<서바리움>

 

<스토커> 개발진을 사칭한 사례도 있었다. '웨스트 게임즈'는 자신들이 <스토커> 개발진이 모여 만든 회사라 주장하며 <에어리얼>이라는 게임의 킥스타터를 시작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드러났다. 

 

GSC에서 근무했던 개발자는 "<스토커 2>를 개발하던 시절 웹 게임에 관한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해당 프로젝트에 참여한 인원으로 보인다"라고 밝혔다. 게임 본편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것이다. 웨스트 게임즈는 펀딩에 실패한 후 <스토커: 아포칼립스>로 게임 이름을 바꿨지만, 2021년까지 아무 소식을 내놓지 않았다.

 

사실상 <스토커> 시리즈는 명맥이 끊긴 셈이 됐다. 

 

하지만 팬들은 포기하지 않았다. <스토커>는 모드를 지원하는 게임이다. <스카이림> 정도는 아닐지라도, 2021년 지금도 모드 사이트에서 다양한 모드가 계속 업데이트되고 있다. 게임 전반적인 시스템을 뜯어고치고 신규 요소를 대거 추가한 <스토커: 어노말리>나 게임 난이도를 극한까지 올린 <미저리>가 유명하다.

 

<스토커: 어노말리> (출처 : MODDB)

<미저리>의 스크린샷. 전체적인 색감을 회색으로 바꾼 것이 특징. 총알 한 두대 맞으면 쓰러지는 높은 난이도에, 총에 따라 개별 수리킷을 사용해야 하는 등 등 세세한 요소도 대거 추가됐다 (출처 : MODDB)

 

GSC는 해체로부터 3년이 지난 2014년에 돌아와 활동을 재개했다. GSC는 그동안 복잡한 이유로 잠시 개발을 중단했을 뿐, 개발 당시 자료는 그대로 가지고 있다고 발표했다. GSC의 첫 게임 <코삭>을 리메이크한 <코삭 3>를 발매한 후 <스토커 2> 개발에 전념하겠다고 밝혔다.

이번에는 진심이었을까? 2020년 6월 24일, Xbox 게임 쇼케이스 중 드디어 <스토커 2>의 공식 트레일러가 공개됐다. 이번에는 자체개발 엔진 대신,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했다. 트레일러에서는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에 등장했던 장소 '코돈'도 등장해 팬들을 설레게 했다. 코돈은 게임 첫 부분에 등장하는 만큼 팬들의 애착이 깊은 지역이다.

6년간의 진통 끝에 출시됐지만, 특유의 마니아층을 형성할 수 있었던 첫 작품 <쉐도우 오브 체르노빌>처럼, 과연 <스토커 2>는 팬들의 기대감을 만족시킬 수 있는 작품이 될 수 있을까? <스토커 2>는 2021년 Xbox와 PC로 출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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