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 시장이 난리다. 전세계를 놀라게 하고 있다.
최근 2주 동안 주가가 1,006% 폭등한 미국 ‘게임스탑’ 때문이다. 이 회사는 전세계 약 6,700여 점포를 운영하는 미국 최대 규모 게임 판매점이다. 6개월 간 주가 변화는 더 극적이다. 4달러에서 347달러가 됐다. 8,566% 상승이다. 2020년 최저가와 2021년 1월의 현 최고가는 120배가량 차이 난다.
이미 수많은 기사가 쏟아졌다. 떡상 전의 기구했던 역사와 최근 이슈를 함께 둘러봤다.
지난 6개월 간 게임스탑 주가 흐름
# ‘구시대의 유물’
게임스탑은 최근 몇 년간 위기론이 거듭 제기된 회사다. 오프라인 쇼핑 프랜차이즈는 온라인 쇼핑이 대세가 되며 내리막길을 걸었다. ‘구시대의 유물’로 몰락하리란 전망이 대다수다.
체제 전환이 느렸다. 오프라인에 힘을 준 결과 온라인을 신경 쓰지 못했다. 게임스탑이 성공했던 이유는 미국 전역에 깔린 오프라인 유통망 덕이었다. 도서산간만 아니면 어디서든 게임스탑을 접할 수 있었다. 다양한 게임과 콘솔을 매장 한 곳에서 접할 수 있어 많은 게이머가 찾았다. 게임 홍보 및 유통을 게임스탑이 알아서 해주니 많은 개발사가 애용했다. 게임스탑도 개발사와 특전, 한정판 판매 등 계약을 맺어 더 많은 사람들이 게임스탑을 찾도록 했다. 이런 강점은 닌텐도 Wii, PS3가 발매된 시절 가장 빛을 발했다.
온라인 쇼핑이 성장하며 내리막이 시작된다. 게임을 사기 위해 굳이 집 밖을 나갈 필요가 없어지자 자연스레 게임스탑이 가진 매력이 빛을 잃었다. 주가는 2015년 11월을 시작으로 쭉 하락세였다. 2015년 11월 45달러를 기록한 주가는 2개월 만에 45% 떨어져 25달러가 됐다. 공교롭게도 그해 아마존은 세계에서 가장 큰 소매업 체인 월마트의 시가총액을 뛰어넘었다.
2010년 게임스탑 내부 풍경 (출처: 위키피디아 BrokenSphere)
# 2015년부터 시작된 하락세
잠시 시간을 거슬러 2015년 연말 대작을 살펴보자. <헤일로 5>, <어쌔신 크리드: 신디케이트>, <폴아웃 4>,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등 대작들이 발매됐다. 기대작이 많은 만큼, 게임스탑은 게임 소프트웨어 판매가 전년 대비 34% 증가할 것으로 예상했다. 결과는 딴판이었다. 실적은 3% 감소했다.
게임이 안 팔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게임 판매 대부분이 온라인으로 이뤄졌다. 그해 판매된 <헤일로 5>는 역대 가장 빨리 판매된 <헤일로> 게임이지만 판매량 절반은 다운로드 판이었다.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3> 유통사 액티비전 블리자드도 전년 대비 다운로드 구매가 100% 증가했다.
이후 게임스탑 관련 리포트에는 항상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판매량은 늘었지만 실적이 줄었다. 개발사가 디지털 다운로드에 초점을 두고 있다. 온라인 판매를 강화해야 한다. 매장 수를 줄여야 한다. 이런 내용이 반복될수록 투자자들의 마음도 게임스탑을 떠났다.
게임스탑은 실적보고를 통해 <헤일로5> 판매가 기대 이하였음을 밝혔다.
# “게임스탑 심상치 않은데?”
이렇듯 대다수 투자회사는 게임스탑 전망을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이들이 게임스탑 공매도에 나선 이유다. 공매도는 주식을 빌려서 판 뒤, 만기일에 주식을 구매해 다시 갚는 투자 방법이다. 게임스탑의 향후 주가가 내려가면 투자사가 이득을, 그 반대라면 차액을 지급해야한다.
전망이 부정적일수록 공매도가 빛을 본다. 투자회사들의 예측대로 게임스탑의 전망은 쉽게 나아지지 않았다. 40달러 선을 지키던 주가가 4달러까지 하락하는 데 4년이 채 걸리지 않은 이유다. 몇몇 투자회사는 4달러마저 고평가됐다고 여겼다.
실적도 주가도 망했다. 하지만 주가는 폭등했다. 개인 투자자들이 몰려들었기 때문이다.
투자회사들의 공매도는 몇몇 유저들의 이목을 사로잡았다. 미국 커뮤니티 사이트 레딧의 ‘월스트리트배츠’ 게시판 사용자들이다. 이곳은 주식 거래와 관련 밈(Meme)을 다루며, 투자 역시 고위험-고수익 주식을 선호한다. 한국으로 치면 디시인사이드 ‘주식갤러리’ 같은 곳이다.
이들은 게임스탑을 구매하라며 선동에 나섰다. 앞서 설명했듯, 투자 문외한이 봐도 게임스탑은 매력적이지 않다. 그렇기에 처음 추천글이 올라온 2019년 9월에는 모두 장난으로 여겼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사람들은 매달 작성되는 추천글에 점차 공감하기 시작했다.
게임스탑 주가가 2020년 10월 9.36 달러에서 13.49달러로 급등했다. 몇몇 유저가 공개한 수익은 사람들의 관심을 사로잡기 충분했다. 곧 추천글은 예언글로 불렸다. 반쯤 장난으로 무시했던 전망 분석글이 진지하게 읽혔다. 투자회사들의 공매도를 역으로 이용하면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주장이 힘을 얻기 시작한다.
게임스탑 주식은 밈으로 자리잡았다. (출처: 월스트리트배츠, 1월 21일 캡쳐)
# 개미 vs 기관
본격적인 전쟁은 2021년 1월 시작됐다.
첫 시작은 유명 투자자의 합류다. 2011년 1월 11일 월스트리트 유명 투자자 라이언 코헨(Ryan Cohen)이 게임스탑 이사회에 참가했다. 그는 애완동물 사료회사 ‘츄이(Chewy)’ 창립자로 유명하다. 이 소식과 최근 게임스탑 실적이 나쁘지 않다는 의견 덕에 많은 사람이 매수에 나섰다.
두 번째는 ‘월가 현상금 사냥꾼’과 신경전이다. 공매도 투자기관 ‘시트론 리서치’는 월스트리트 현상금 사냥꾼으로 불린다. 업계에서 거품과 부실경영을 가장 잘 찾아내는 기관으로 정평이 났기 때문이다. 실제로 시트론 리서치의 투자 대상 50곳 중 21곳은 회계부정, 사기 등으로 미국 증권 거래 위원회 조사를 받은 바 있다.
시트론 리서치는 1월 19일 트위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게임 스탑 매수자가 멍청한 이유 5가지를 생방송할 예정이다. 주가는 20달러 선으로 빠르게 복귀한다.”
월가에서 가장 유명한 공매도 투자기관도 참전했다. 이로 인해 월스트리트배츠 유저들이 더 단결하게 된다. 힘이 모인 결과일까? 40달러 선을 뚫지 못한 주가는 유저들의 단결에 힘입어 1월 23일 76.35달러로 급등한다.
팽팽한 전황은 테슬라 CEO 일론 머스크의 참여로 급격히 변했다. 평소 ‘공매도’에 비판적이었던 그가 27일 개인투자자들의 응원에 나섰다. 트위터에 월스트리트배츠 게시판 URL을 남기며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게임스탑 떡상!(Gamestonk!)”. 그가 개인투자자를 도운 이유는 투자기관에 ‘한 방’을 날리고 싶어서다. 옛날부터 투자기관의 공매도에 집중적으로 공격당한 바 있기 때문이다. 그의 응원 덕에 주가는 하루 만에 360달러를 달성한다.
지난 1월 29일 일론머스크는 공매도를 비판하는 트윗도 작성했다.
# 상처뿐인 싸움으로 끝나나?
개미와 기관의 싸움이 절정에 접어들었다. 치열한 전쟁은 개미의 승리로 끝났다. 1월 한 달 만에 주가가 1,700% 상승하며 공매도를 주도한 멜빈캐피털과 시트론 리서치는 공매도 중단을 선언했다. 만기일인 1월 30일이 다가오며 느끼는 압박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번 게임스탑 공매도로 투자기관 들은 약 5조 6,000억 원 손해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공매도의 중심에 있던 멜빈캐피털은 4조 1,325억 원 피해를 보았다. 막대한 피해를 본 투자기관들은 다른 보유 주식을 판매하며 수습에 나섰다. 여파는 미국 증시 전체로 퍼졌다. 28일 DOW, S&P 500, 나스닥 모두 2%가량 하락했다.
게임스탑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공매도 세력의 공격 대상이 된 종목들로 전장이 확대됐다. 코로나19로 부도 위험에 몰린 AMC엔터테인먼트는 주가가 28일 하루 만에 300%가량 상승했다. 특별한 호재가 없는 블랙베리, 노키아, CDPR 등도 급격히 상승했다.
싸움의 승자는 개미가 됐지만 입은 상처가 적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언론과 정치권의 관심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28일에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서 모니터링에 나섰다. 백악관 역시 상황을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며 언급했다.
상황이 이렇게 변하자 디스코드가 월스트리트배츠 채널을 차단했다. 레딧은 사이트 특성상 의사소통이 불편하다. 이들이 디스코드 등 별도 프로그램을 주로 쓰는 이유다. 디스코드 측이 내 건 폐쇄 사유는 주식 및 금융 관련은 아닌 지속된 혐오 및 차별 콘텐츠 작성이다. 한편 채널 운영자는 “25만 명이 모인 채널을 금칙어, 봇을 사용해 최대한 통제해왔다. 이런 조치는 비윤리적이다.”며 조치에 반발하고 있다.
결정타는 증권사다. 무료증권앱 ‘로빈후드’가 게임스탑 등의 신규 매수를 차단했다. 29일 새벽 “게임스탑, AMC 블랙베리 등을 비롯한 몇몇 종목은 매도만 가능하고 새로 매수할 수 없다”고 공지했다. 로빈후드는 월스트리트배츠에서 애용하는 무료증권앱으로 압도적 사용율을 보인다. 다른 무료증권앱 ‘인터렉티브 브로커스’, ‘찰스 슈왑’ 등도 “회사 및 고객 안전을 위한 조치”라며 비슷한 방침을 발표했다.
해당 조치에 게임스탑 주가가 곤두쳤다. 29일 469달러까지 치솟은 주가가 한 시간 만에 73% 급락해 126달러가 됐다. AMC, 블랙베리도 급락했다. 유통된 주식을 싸그리 모아 주가를 올리는 전략이 지속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개인 투자자들은 수 차례 반격에 나섰으나 강한 매도세에 모두 좌절됐다. 이 날 주식은 193달러에 마감됐다.
로빈후드에서 거래가 중단된 모습 (출처: 레딧 theloneoboeist)
# 다른 곳으로 퍼지는 불길
갑작스런 결정에 개미들이 분노했다. 레딧에서는 '로빈후드 집단소송' 게시판이 생성돼 현재 약 4만명이 가입했다. 이들은 이런 결정이 주가조작이나 다름없다 주장하고 있다. 몇몇은 집단 소송을 제기하며 실제 행동으로 나섰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로빈후드 이용자 브렌든 넬슨은 뉴욕 맨해튼 남부연방지방법원에 소장을 제출했다.
반발을 무릅쓰고 무료증권 앱이 이런 행동에 나선 이유는 수익 구조 때문이다. 로빈후드를 비롯한 무료증권 앱은 수수료가 아닌, 투자기관에 제공하는 개인투자자 정보로 수익을 창출한다. 그렇기에 개인투자자의 이득보다 투자기관과 관계가 회사 경영에 중요한 셈이다. 만기일이 다가오기 전에 투자기관의 손실을 최소화하려는 조치로 파악된다.
강경 보수파로 잘 알려진 테드 크루즈 공화당 텍사스 상원의원
정치권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로빈후드 비판에 나선 사람은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스 민주당 뉴욕 하원의원, 테드 크루즈 공화당 텍사스 상원의원 등 여야를 가리지 않는다. 최근 여러 문제를 겪은 미국 정치계가 로빈후드로 하나가 됐다는 농담마저 나왔다.
논란이 거세지자 로빈후드는 거래제한을 일부 완화하기로 발표했다. 거래 제한 조치로부터 반나절이 채 걸리지 않았다. 거래 완화로 게임스탑 장외 거래가는 34% 상승했다. 다만 매입은 제한적으로만 가능하며, 소송에 대해서 아직 특별한 입장은 표하지 않고 있다.
게임스탑의 공매도 만기일인 1월 30일이 다가왔다. ‘트롤링’으로 시작된 게임스탑 주식은 어느새 월스트리트뱃츠 게시판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그들이 그동안 믿어온 믿음이 결실을 보는 날인 셈이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긴 이르다. 하루에도 수백% 요동치는 게임스탑의 주가는 그 결실의 맛이 달콤한지 썩었는지 알기 어렵게 하고 있다.
이제 게임스탑과는 관계없는 게임스탑의 주가, 그 끝은 어떻게 될까? 몇 년 뒤 할리우드에서 개인 투자자의 성공을 다룬 통쾌한 주식 드라마가 제작될지, 다큐멘터리에서 개인 투자자들의 하소연이 다뤄질지는 아직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