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이 끝났다. 다음 달이면 유럽 축구 리그가 문을 연다. 축구 게이머들에게 이것은 <피파>, <위닝일레븐>(PES), <풋볼매니저>(FM) 새 시리즈의 출시가 임박했다는 것을 뜻한다. 벌써 트레일러, 보도자료 등을 통해 신작 소식이 들려오고 있다. 8월 30일에는 <위닝일레븐 2019>가, 9월 28일에는 <피파 19>가 출시 예정이다. <FM 2019>는 역시 아직도 베일에 싸여 있다.
새 시리즈를 기다리고 있을 축구 게이머들을 위해 조금 특별한 기획을 준비했다. 쉽게 접할 수 있는 <피파>, <위닝>, <FM> 말고 추억 한 편에 자리 잡은 축구 게임을 소환하는 것. 대부분 서비스를 종료했거나 CD가 없어 지금은 플레이하기 힘들더라도 이름만 들으면 게임 속 그라운드와 배경음이 떠오르는 그 게임들 말이다.
예전에 재밌게 했던 축구 게임을 못 해 본다고 좌절할 것 없다. 지금 와서 예전 게임을 했다가 조악한 그래픽과 게임성에 실망할지도 모른다. '추억은 추억으로 존재할 때 아름다운 법'이라고들 말하지 않나. '싱가'의 추억부터 방귀 뀌는 '엽기축구'까지, 추억의 축구 게임 4개를 소개한다.
# '싱가! 싱가!' 불꽃이 난무했던 ‘테크모
월드컵 98’
어렸을 적 동네 오락실에서는 나이 어린 사람이 연장자와 <테크모 월드컵 98>을 할 때 ‘싱가’를 쓰면 혼났다. 브라질을 고르는 것도 실례였다. 브라질은 사기 스킬 ‘싱가’와 ‘바나나킥’을 동시에 쓸 수 있는 '사기팀'이었기 때문. 언젠가 동네 형과 <테크모 월드컵 98>을 할 때 콜롬비아를 고른 적 있다. 콜롬비아에도 ‘싱가’가 있는 줄 알았다면 그 날 형한테 뒤통수를 얻어맞지 않았을 텐데.
싱가(시가): '시저스'(Scissors). 공을 소유하고 있는 상태로 시져스를 사용하면 플레이어 사이로 불꽃이 일며 수비수들을 밀어낸다. 선수가 해당 스킬을 시전할 때 외치는 기술명이 "싱가" 혹은 "시가"라고 들렸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이 기술의 이름을 싱가(시가)로 기억하고 있다. 시저스만 적재적소에 쓰면 편하게 상대 골문 앞까지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수많은 오락실에서 시저스를 꼼수 취급했다.
<테크모 월드컵 98>은 하나의 국가를 선택해 월드컵을 치르는 오락실 게임이다. 경기는 총 8경기. 7번째 상대를 이기면 최종 보스로 강력한 올스타팀이 나타난다. 올스타팀이 강력한 이유는 게임에 등장하는 모든 스킬을 쓸 수 있기 때문. 이 게임의 특징은 국가마다 다른 초현실적 특수 스킬이다. 3번째, 6번째 경기에서 승리하면 이긴 국가의 기술을 습득한다.
'싱가' 뿐만 아니라 <테크모 월드컵 98>엔 빠른 속도로 날아가 공을 잡은 골키퍼까지 골문 안으로 집어넣는 ‘파워 슛’, 에펠탑과 함께 하늘로 솟구쳐 수비수를 제치는 ‘힐 리프트’, 최전방 공격수에게 곧바로 공을 주는 ‘슈퍼 쓰루 패스’ 등 다양한 스킬이 있었다. 한국의 고유 스킬은 멀리서 날아와 공을 뺏는 ‘슈퍼 슬라이딩’ 태클. 이제는 지도에서 사라진 유고슬라비아의 고유 스킬은 '드라이브 슛'이었다.
# '피파'와 '위닝' 사이 '액추어 사커'
때는 바야흐로 2000년, 집에 컴퓨터가 들어왔다. 당시 컴퓨터를 사면 설치기사가 몇 가지 게임을 설치해주곤 했다. <액추어 사커 3>도 그렇게 만났다. <피파>나 <위닝일레븐>보다 먼저 한 게임이 <액추어 사커 3>였다. <피파 01>을 구매하기 전까지 이 게임을 질리도록 했다.
<액추어 사커>는 투박한 동네 축구를 닮았다. 당시 <피파>에 개인기로 상대를 제치는 재미가 있었다면 <액추어 사커>에는 달려가서 상대 공을 뺏는 재미가 있었다. <액추어 사커>에는 개인기 자체가 없었고 패스 플레이와 수비가 중요했다. 당시 '센터링'으로 불렀던 단조로운 크로스는 있었지만 다른 공간 패스 개념은 없었다.
<액추어 사커>는 경기장에 눈이 내리도록 설정할 수 있었다. <액추어 사커>를 해본 많은 이들이 눈 쌓인 경기장에 선수들 발자국이 남는 모습을 기억한다. 한편, 분명 플레이어의 코너킥인데 골킥이 선언되는 경우가 자주 일어났다. 골을 넣은 뒤 가장 기뻐해야 할 득점 선수가 골을 넣은 자리에 가만히 서있는 버그도 있었다.
<액추어 사커>의 제작사 ‘그램린 인터랙티브’가 1999년 아타리 계열로 넘어가면서 <액추어 사커>의 네 번째 버전은 볼 수 없게 됐다. PC에서 <위닝일레븐> 시리즈를 할 수 있었던 것은 <위닝일레븐 7>(PES 3)가 나온 2003년. 2001년부터 2003년까지 PC 축구 게임은 사실상 <피파>가 독점했다고 볼 수 있다.
# "아 님 발리슛 좀 그만 쏘라고요" ‘프리스타일 풋볼’
<프리스타일 풋볼>은 농구 게임 <프리스타일>을 만든 JC엔터테인먼트(현 조이시티)가 출시한 축구 게임이다. <프리스타일 풋볼>은 <프리스타일>처럼 선수 한 명만 플레이할 수 있다. 플레이어는 공격수, 미드필더, 수비수 셋 중 한 가지 역할을 골라 다른 유저들과 팀을 이룬다. 반칙과 경고, 퇴장은 없지만, 스로인과 코너킥은 있다. 경기는 전, 후반 3분씩 6분. 시간 내 골을 더 많이 넣는 팀이 승리한다.
경기 중간에 나가면 선수 육성에 쓸 포인트를 얻을 수 없기 때문에 일단 경기가 시작되면 중간에 나가지 않고 끝까지 임해야 했다. 여러 명이 팀을 이뤄 경기를 진행하기 때문에 서로 공을 주고받는 팀플레이가 중요했다. 팀플레이 기반에서 발리슛, 오버헤드킥, 헛다리 짚기 등 다양한 액션을 뽐내며 경기를 승리로 이끄는
것이 게임의 재미. 하지만 멋있는 액션을 자꾸 남발하다가 골을 놓치면 욕을 먹기에 십상이었다.
친구들끼리 <프리스타일 풋볼>을 하러 피씨방에 가면 모두가 골을 넣거나 아니면 적어도 킬패스를 하고 싶어 했다. 친구들은 언제나 내게 수비수를 맡겼다. 수비수는 뒤에서 알짱대다가 상대의 공이 오면 어떻게든 막으면 그만이었다. 가끔 멋있어 보이려고 앞에 나가면 친구들은 내게 들어가라고 화냈다.
그렇게 수비수만 했기 때문에 <프리스타일 풋볼>에 대한 인상적인 기억이 별로 없다. 2010년 서비스를 시작한 <프리스타일 풋볼>은 2014년 서비스를 종료했다. 이어서 후속작 <프리스타일 풋볼 Z>가 출시됐고 지금도 네이버 게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프리스타일 풋볼> 시리즈는 현재도 서비스 중이기 때문에 '추억'이라고 말하기엔 이르지만 많은 이들이 잊은 듯하여 소개한다.
# 희미한 방귀의 그림자 '강진축구'
2002년 2월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당시 <강진축구>의 동시 접속자 수는 5,000명에 이르렀지만, 세월이 흐르며 유저는 줄어갔다. 대신 다른 축구 게임이 자리잡았다. 바로 <피파>와 <위닝>. <강진축구>가 캐시 아이템과 엽기 스킬을 추가할 때 <피파>와 <위닝>은 매년 신작을 통해 체계적이고 사실적인 축구의 모습을 선보였다.
2006년에는 <피파 06>의 물리엔진을 가져온 <피파온라인>이 등장했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인터넷에서 다른 사람과 현실적인 축구를 즐길 수 있었다. 당시 독일 월드컵이 열리며 게임은 더욱 인기를 끌었다. 유저들은 방귀 뀌는 최배달보다 맨유의 박지성으로 축구를 즐기길 원했다. 결국 <강진축구>는 2007년 4월 문을 닫았다.
그럼에도 끝까지 <강진축구>를 지킨 팬들이 있었다. <강진축구> 팬들은 중국 아이게임*으로 넘어가 2008년 5월 중국 서비스 종료 때까지 <강진축구>를 플레이했다. 팬들의 성원을 잊지 않았던 <강진축구> 제작진은 2014년 2월 '강진축구 2' <미니일레븐>을 발표했다. 하지만 <미니일레븐>도 흥행 부진으로 운영에 어려움을 겪다 오픈 3년 차던 작년 4월 30일 서비스를 종료했다.
*아이게임: 넷마블이 자사 게임을 중국에 서비스하기 위해 개설한 게임 포털
이제 <강진축구> 타입의 게임은 어느 곳에서도 할 수 없다. 하지만 <강진축구>는 아직도 많은 축구 게임 팬들에게 깊은 추억으로 남아있다. 인터넷에서는 <강진축구>의 '엽기축구'를 기억하는 이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이 글을 여기까지 읽은 여러분도 그렇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