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인데 게임 이야기나 하고 있어도 되는 건가?
요즘처럼 긴장이 커질 때마다 기자는 초라함을 느끼곤 한다. 바로 지금, 이스라엘과 하마스는 전쟁 중이다. 10월 7일 시작된 이 전쟁에서는 벌써 수천 명 넘는 사상자와 전쟁 포로가 나오고 있다. 절망적인 전황을 지켜보는 전문가들은 이번 전쟁을 1973년 4차 중동전쟁 이후 50년 만의 최고 수준의 충돌이라고 분석했다.
밀리터리 FPS들은 중동 지역의 전쟁을 부단히 '고증'해 왔다. 이러한 게임에서 플레이어는 특수부대의 요원이 되어 테러리스트를 제압하는 미션을 수행하곤 한다. 이 분야의 선두에는 단연 <포켓몬스터> 다음으로 많이 팔렸다는 <콜 오브 듀티>가 있다. 이 프랜차이즈에는 중동 대항군으로 가공의 단체 '알 카탈라'가 등장한다. 이슬람 근본주의 테러단체로 알 카에다와 ISIS 등 여러 무장 그룹을 오마주한 것으로 알려졌다.
<모던 워페어>의 캠페인에서 플레이어의 임무는 테러를 예정한 반군들을 제압해야 한다. 알 카탈라의 '도살자'가 미국 대사관을 포위한 '대사관' 미션은 2012년 주 리비아 미국 대사관 습격사건을, 반군 지도자를 잡기 위해 민가를 수색하는 '대청소' 미션은 미군이 빈 라덴을 잡기 위해 수행한 '넵튠 스피어'를 모티프로 했다.
일련의 미션에서는 명확히 구분된 블루 팀과 레드 팀이 제시되고, 플레이어에게는 피아를 구분해 처단할 권능이 주어진다. '협공' 미션에서는 가상의 국가인 우르지크스탄의 지하 땅굴로 잠입해 민간인으로 분장해 협력관계의 NPC로부터 도움을 얻는다. 야간 잠입 미션 '대청소'에서는 시작에 앞서 민간인 피해를 주의하라고 언급되지만, 사실 건물 안에서는 아이를 제외한 누구를 죽여도 진행된다. 플레이어는 <모던 워페어 2>의 '노 러시안'에서 권능의 극한을 체험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처한 현실은 레드 팀 vs 블루 팀 시뮬레이션이 아니다.
<반란 주식회사>는 <전염병 주식회사>로도 유명한 엔데믹 크리에이션이 2018년 출시한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영토 내 반군을 제압하는 지도자가 되어 안정화 작전을 수행한다. 내전이 끝난 국가에 파견되어 인프라를 복구하고, 주민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한편, 암약하는 반군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내야 한다. 이 게임은 반군을 100% 진압되지 않는다는 메시지를 주고 있다.
이 게임을 처음 접하는 플레이어는 흔히 반군을 영토에서 쫓아내는 것을 목표로 삼고, 다국적군과 정규군을 조합한 유닛들로 군사적 우위를 점하려고 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으로는 게임을 깰 수 없다. <반란 주식회사>에서 플레이어가 아무리 군사적 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평화협정 없이 반군을 제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반군은 약한 고리를 찾아서 계속 스폰되기 때문이다.
평화협정을 마치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대의를 주장하며 플레이어의 영토에 훼방을 놓는다. 게임의 지상과제는 반군의 소탕이 아니다. 거느린 지역의 안정도를 100%로 만드는 것이다. 평화협정의 판을 깨고 상대를 더 압박할수록, 제3국이 반군을 돕는 수위도 올라가고, 안정도는 하락세로 치닫는다. 플레이어가 군사적 제스쳐를 더 강하게 취할수록 상대편은 먹고살 게 없어진다. 그러므로 자연스레 민간인의 반군 합류도 늘어난다.
세계에서 가장 큰 '감옥'으로 비유되는 가자지구의 상황은 그 어떤 게임으로도 해설하기 어렵다.
굳이 <반란 주식회사>로 비유하자면, 이스라엘은 해안의 두 블록 정도 되는 도심 지역을 꽉 막아 놓고 반군들이 나오지 못하게 폭격을 포함한 군사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땅굴로 군사적 대응을 해왔지만, 결국 지리적으로 외통수에 놓인 하마스는 이 상황을 뒤집기 위해 극단적인 전략을 선택했다. 대규모 '탈옥'을 감행, 자신들의 존재감을 무도한 방식으로 알리는 것이다.
그리고 이 막장에서는 게임에서조차 금지되는 아동의 인명피해까지 보고되고 있다. 아동 인권 NGO 세이브더칠드런은 이번 전쟁으로 가자지구의 아동 78명이 사망했으며 향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겪는 아동이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라며 휴전을 촉구했다. 앞서 설명한 <모던 워페어>의 '대청소' 미션에도 플레이어가 아이를 계속 사격하면, 미션이 종료되고 메인 화면으로 돌아가는 이스터에그가 들어있다.
현실은 게임보다 어렵다. 앞서 언급한 게임에서 상대편을 테이블에 앉힌 플레이어가 지지율이 떨어져 실각하는 경우는 있어도, 암살을 당하는 경우는 없다.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는 오슬로에서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기로 합의했지만, 두 나라의 극단주의자들은 극렬히 반대했다. 합의를 이끈 이스라엘의 라빈 총리는 암살당했고, 하마스는 협정에 반대하며 PLO와 본격적으로 다른 노선을 걷게 됐다.
현실은 게임보다 어렵다. <반란 주식회사>에서는 비용을 지불해 난민을 수용하는 이벤트가 높은 확률로 발생한다. 마이너스를 피하지 않기 위해서는, 제한적으로라도 난민을 받아야 한다. 현실의 지도자들도 난민을 받고 싶을까? 그렇지 않은 쪽에 가깝다. 가자지구에는 230만 명이 살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상군을 투입한다고 해도, 이들을 다스릴 수는 없다는 것이 지배적인 전망. 그러나 가자지구 시민이 난민이 되는 것은 유럽은 물론이고, 아랍 세계 또한 바라지 않고 있다.
다시, 현실은 게임보다 어렵다. 앞서 짧게 살펴본 '노 러시안' 미션의 모티프 또한 현실에서 찾을 수 있다. 그것도 이스라엘에서 말이다. 1972년, 이스라엘 로드 공항에 테러리스트들이 침입, 총기를 난사해 26명이 사망하고 79명이 부상을 입었다. 이 로드 공항 테러 사건은 비무장 민간인을 학살한 역사상 최악의 공항 범죄로 기록됐다. 이 사건의 배후에 팔레스타인 무장단체가 있다고 짐작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런데 이 사건을 범죄를 저지른 주범은 팔레스타인인이 아니라 일본인이었다. 일본의 적군파들이 팔레스타인 해방인민전선의 사주를 받고 공항을 찾은 여행객을 상대로 범행을 저질렀던 것. 이 사건으로 (안 그래도 일본을 나치와 같은 추축국으로 보았던) 이스라엘의 일본에 대한 시선은 더욱 악화되었고, 양국은 지금껏 외교적으로 모호한 긴장 관계에 있다. 그렇게 이스라엘은 독도를 독도라고 불러주는 유일한 외국이 되었다.
플레이어의 유희를 위해 창조된 게임은 빠른 몰입과 이해를 위해 전선을 간소화하는 경향이 있지만, 국제관계의 셈법은 훨씬 치열하고 복잡하다.
<콜 오브 듀티>의 천문학적인 판매량이 입증하듯, 세계적으로 총을 쏘는 게임이 총을 맞는 입장이 되는 게임보다 인기가 많다. 총구를 피해서 삶을 살아가는 게임은 없을까?
폴란드의 11비트 스튜디오가 만든 <디스 워 오브 마인>(2014)은 내전으로 고립된 도시의 민간인으로 쓰레기통과 사체를 뒤지며 생존해야 하는 게임이다. 플레이어는 언제 올지 모를 종전 라디오를 기다리면서 횡스크롤 공간을 설계하고, 여러 이벤트에 대응해야 한다. 먹을 것이 있어야 하고, 약이 있어야 하고, 물이 있어야 한다. 이 게임에 RPG식 성장은 없다. 오직 생존을 위한 필수 게이지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전쟁은 생존을 위한 인간의 기본 조건을 앗아간다.
<라일라 & 전쟁의 그림자>(2016)는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배경으로 한 게임이다. 2014년 전쟁에서 살아남은 가족의 피난을 그리고 있다. 횡스크롤 플랫폼 게임으로, 플레이어는 라일라의 아버지가 되어 드론과 미사일을 피해 점프하고 오브젝트와 상호작용한다. 중간중간 몇 가지 선택 분기를 거쳐 엔딩까지 가게 되는데, 해피엔딩이 없다. 고난 끝에 딸을 구급차에 안전하게 태워 보내면, 이내 포탄이 날아와 구급차를 폭파하며 게임이 끝난다.
이 게임은 가자지구 출신의 프로그래머 라쉬드 아부에이데(Rasheed Abueideh)가 만들었다. 그의 게임은 2016년 세계 모바일 게임 어워드(IMGA)에서 스토리텔링 부문 우수상을 받았다. 그는 IMGA 인터뷰에서 "전 세계 언론이 항상 무시하는 우리 상황이 얼마나 나쁜지 공유하고 싶었다"라며 "전쟁이 민간인에게 미치는 영향에 대한 인식을 높이고 싶었다"고 이야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