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리얼 0승 5패, 0%.
2023 롤드컵 8강 첫 대진, 웨이보 게이밍과 NRG의 경기는 싱거운 3:0 승리로 끝났다. '압도'에 가까웠다고 표현해도 괜찮을 것이다. 유일하게 남은 서구권 팀으로 G2 e스포츠에게 신승을 거둔 NRG는 "북미, 올해는 다르나?"라는 이야기를 나오게 했지만 혹시나는 역시나였다. "졌지만 잘 싸웠다"라고 하기에도 어려울 정도로 가슴 아팠던 8강 첫 경기였다.
NRG의 탈락을 마지막으로 2023 롤드컵에서 서구권(LCS, LEC) 팀은 모두 종적을 감췄다. 이번 서구권 팀의 부진을 대표하는 챔피언은 이즈리얼일 것이다. 오로지 서구권 리그 팀만 기용했으며, 별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모두 패배했다. 마지막 서구권 팀인 NRG의 마지막 경기에서 등장해 끝내 패배했으니 더욱 절절하다. 이야기의 형식을 빌려 8강 첫 경기를 돌아본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비슷하면서도 달랐던 '언더독' NRG와 웨이보 게이밍
히스토리 없는 팀이 어디 있겠냐만은, 이번 롤드컵 진출 전까지 두 팀은 우여곡절을 겪었던 팀이었다.
웨이보 게이밍은 스프링 시즌까지 상황이 나빴던 팀이었다. 코치였던 이지훈을 감독으로 승격시키고 '더샤이' 강승록이나 '카샤 훙하오솬, '샤호우' 리위안하오등 이름값 있는 선수로 로스터를 꾸렸다. 우승도 생각해 볼 만하고, 적어도 상위권을 달성하기에 부족해 보이지 않아 보였다. 정규 리그 역시 중간까지는 성적이 나쁘지 않았다.
그러나 후반부부터 삐걱거리기 시작했다. 정규 시즌은 4위로 마무리했지만 밴픽 문제가 끝없이 대두됐다. 플레이오프에서는 BLG에 3:0으로 깔끔하고 허무하게 패배했다. 상위권 성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이름값에 비해 부족했고, 스크림 성적마저 최악이라는 소문이 퍼지며 당시 웨이보 게이밍의 팬심은 들끓고 있었다.
프런트는 이지훈 감독을 경질하고 한국에서 양대인 감독을 영입했다. 운영 면에서 나아졌다는 평가도 있었지만 서머 정규 시즌은 하락한 6위, 플레이오프는 5위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선발전에 도전할 수 있는 끝자락인 챔피언십 포인트 5위로 TES와 EDG를 연이어 격파하며 마지막 차를 타고 롤드컵에 진출했다.
양대인 감독을 영입해 가까스로 롤드컵에 진출한 웨이보 게이밍 (출처: 라이엇 게임즈)
CLG의 시드권 판매를 통해 서머 시즌 이름을 바꾸고 새로 태어난 NRG 역시 정규 시즌 성적은 그다지 좋지 못했다. 1주 차는 팀 리퀴드와 TSM에게 연이어 패배하며 시작했고, 이후에도 기복 있는 경기력을 보이며 9승 9패, 정규 시즌을 5위로 마감했다.
플레이오프에서는 TL과 골든 가디언즈를 연이어 격파하고 C9에게 0:3으로 패배했다. 그러나 패자조에서 풀 세트 접전 끝에 부활한 NRG는 결승전에서 다시 만난 C9에게 3:1로 승리하며 역대급 미라클 런을 달성했다. 올 프로조차 들지 못했던 선수들이 플레이오프 끝자락부터 결승전까지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출처: 리퀴피디아)
8강 경기 전 NRG에게 "이외로 할 만 하다"는 기대감이 쏠린 이유는 이와 같을 것이다. NRG는 웨이보 게이밍과의 스위스 스테이지 경기에서 처참하게 패배했지만, LEC의 1시드이자 다크호스인 G2를 2:0으로 꺾어버리며 이번 롤드컵에서도 다시 한 번 이변을 일으키는 데 성공한 것. "혹시?"라는 기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 희망, 거두어가도록 하지
또 다른 미라클 런을 꿈꿨던 NRG의 경기는 밴픽부터 꼬였다. 렐을 픽한 웨이보 게이밍을 보고 세나-탐켄치의 강력한 봇 듀오를 가져와 스노우볼링 조합을 시도했지만, 마지막 픽에서 웨이보 게이밍이 밀리오를 꺼내 들며 렐을 정글로 돌려버린 것.
바이가 밴을 당해 등장하지 못한 상황에서 웨이보 게이밍은 자연스레 아펠리오스 캐리 조합을, 그리고 NRG는 부족한 돌파력으로 어떻게든 아펠리오스를 끊어내야 하는 모양새가 됐다.
첫 경기는 원사이드하지는 않았다. NRG는 게임 중반부 집중력을 통해 바론 사냥을 하던 웨이보 게이밍을 역으로 쫓아내 자신들이 바론을 획득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러나 웨이보의 핵심인 아펠리오스를 잡아낼 힘이 부족했다. 될 것 같은데 절대로 되지 않는 한 끗 차이 속에서 NRG는 무너졌다.
이어진 2세트에서는 바이와 오리아나를 위시한 돌진 조합을 뽑았지만, 동선을 읽은 '지에지에' 자오리제의 렐에게 바이가 카운터 정글링을 당하면서 대차게 망해버렸고, 이렇다 할 반격 없이 원사이드하게 패배했다.
부족한 조합으로 어떻게든 아펠리오스를 잡아야 했던 NRG (출처: LCK)
이 계속된 한 끗 차가 지금까지 미라클 런을 써내려오던 NRG의 멘탈을 제대로 건드려 버린 것일까? NRG는 3세트에서 케이틀린을 선택해 "바텀 라인전 어떻게 할 건데?"라고 묻는 웨이보 게이밍에게 최후의 저항으로 이즈리얼-카르마라는 카드를 꺼내들었다.
지금까지 이즈리얼을 기용해 오던 서구권 팀과는 다른 기조의 이즈리얼 픽이었다. 기존 4번은 자야를 카운터치기 위해(모두 실패했지만) 이즈리얼이 기용됐다면, 어떻게든 라인전에서 케이틀린에게 밀리지 않고 굴려 보고자 카르마까지 합치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
CS를 리드하던 첫 3분까지는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다. 하지만, 정확히 3분에서 사고가 터졌다. 급한 마음이었을까? 카운터 정글링을 시도한 세주아니를 돕고자 깊숙히 상대 정글로 들어가던 카르마가 허무하게 사망한 것. 카르마의 사망을 기점으로 NRG는 조급해하다 의아한 죽음만을 반복하며 멘탈이 무너진 모습을 보였다. 이어진 세주아니의 의아한 죽음부터는 사실상 결과가 결정지어진 것과 다름없었다.
절대로 나오면 안 됐던 모습 (출처: LCK)
이렇게 미라클 런을 이어가길 꿈꾼 두 팀의 경기는 다소 허망하게 마무리됐다. 행운은 준비된 사람에게 찾아온다는 말이 있다. 조급했던 NRG와 조금 더 인내할 줄 알았던 웨이보 게이밍과의 경기는 후자의 승리로 끝났다.
하필 마지막 경기의 픽이 이즈리얼이라는 점도 다소 아쉽게 됐다. 서구권 팀만 유일하게 기용하며, 이들의 독창적인 스타일과 메타 해석을 상징한다고도 볼 수 있었던 이즈리얼은 본선에서 0승 5패를 기록했다. 그래도 플레이-인에서는 1승을 기록했다는 점이 위안거리일지도 모르겠다.
이즈리얼은... 서비스 종료다 (출처: 오피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