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ne more step, you’re Immortal now.
이번 월즈의 주제곡인 ‘GODS’의 한 소절이다. 이제 한 발짝만 더 디디면 누구든 전설의 이름에 자신의 이름을 새길 수 있게 된다. T1이 13년의 역사 속 자신의 네 번째 이름을 새길 것인가? 아니면, WBG가 작년 DRX의 우승처럼 언더독의 이름을 다시 한 번 새길 것인가?
누구든 전설로 남을 밤의 주인공이 될 일요일, 닷새를 앞둔 지금 그들의 노력과 영광의 길을 돌아보며, 전설로 향하는 길을 조명한다. /장태영(Beliar) 필자, 편집= 디스이즈게임 김승주 기자
※ 본 리뷰는 외부 기고로, 본지의 편집 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T1 - “골든 로드, 우리가 막았습니다, 그리고…”
‘페이커’ 이상혁의 노력과 영광의 순간. 그리고 좌절의 고뇌가 교차하며 의자에 앉은 그가 던지는 한 마디 “골든 로드, 저희가 막겠습니다”가 결국 현실로 이루어졌다. 4강에서 징동 게이밍을 꺾으며 징동 게이밍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막아낸 T1은 이제 더 큰 꿈을 향해 진일보를 준비하고 있다.
T1의 분위기는 한 마디로 ‘자신만만’. 어떤 상대가 와도, 어떤 상황이 닥쳐도 대처가 가능하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인게임에서 이러한 분위기를 가장 쉽게 관측할 수 있는 부분은 단연 밴픽이다. 이번 월즈 기간동안 T1은 국내에서 소위 ‘서커스단’으로 불리며 기상천외한 바텀조합을 구사함과 더불어 최소한의 비틀기로 최대한의 대응을 펼치는 최적화 전략으로 밴픽에 임했다.
특히, 오리아나와 아지르의 양분 구도 속에서 절대적 열세를 안고 있는 아지르로 유일하게 3승을 거둔 ‘페이커’ 이상혁의 소위 아지르 운전 실력은 T1의 밴픽에서 적어도 ‘자신이 유발할 수 있는 악영향적 변수’를 없애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룰러’ 박재혁의 바루스를 환상적인 운전으로 토스하는 ‘페이커’ 이상혁의 아지르 (출처: LCK)
‘구마유시’ 이민형은 월즈 기간 뿐만 아니라, 시즌 내내 카이사를 활용하지 못하는 원거리 딜러라는 비판에 휩싸인 바 있다. 하지만 월즈 기간을 통해 ‘카이사도 수많은 도구 중 하나’임을 몸소 증명했다. ‘구마유시’가 대회 내내 픽한 챔피언의 수만 무려 10개로, 8강부터 선택한 여러 픽들은 오히려 토너먼트에 임하는 각 리그의 원거리 딜러에게 또 다른 영감으로 작용해 소위 ‘메타 리더’로서의 역할을 충분히 수행했다.
이채로운 부분은 ‘케리아’ 류민석의 챔프폭이다. 메타 챔피언으로 불리는 라칸과 레나타 글라스크 중, 라칸을 활용하지 않고도, 10승 2패의 성적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역할과 성적 역시 발군의 모습을 보이고 있다.
T1 입장에서는 라칸이라는 카드를 밴카드로 소모함에 따라 다른 팀이 밴픽 상의 난색을 표하는 것과 달리, 오히려 라칸 없이도 게임을 풀어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함과 동시에, 적극적인 시야 장악이 가능한 챔피언의 활용을 통한 속전속결의 게임 전개를 보여주며 상대팀에게 위협요소로 자리하고 있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이 모든 선수들의 역량을 하나로 이끌어낸 ‘톰’ 임재현 감독대행의 지도력도 빼놓지 않고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다. 특히 임재현 감독대행의 밴픽 전략은 기존 T1이 유지하던 변수 창출 요소와 유기적 대응이라는 투트랙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메타에 의존하는 픽보다 메타를 주도하는 특색있는 밴픽으로 상대방의 전략을 휴짓조각으로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매번 감독이 교체될 때마다 밴픽 개선이 일시적인 해소에 그쳤던 T1은 고질적인 문제를 벗어나 보다 유연한 밴픽 전략을 보였다. 이를 통해 서머시즌 협곡 너머에 위치할 뻔했던 본인의 위치를 되찾고야 말았다. 돌고 돌아 협곡을 주도하는 패자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WBG - 작두 탄 ‘대니’, 폭넓은 챔프폭과 전략으로 전설에 도전하다
‘대니’ 양대인 감독은 이번 월즈에서 자신의 지도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선수당 평균 6.8개의 챔프폭을 보여줄 만큼 소화력이 높은 선수들의 역량을 앞세워 메타를 빠르게 해석해내는 데에 성공했다.
먼저 밴카드의 측면에서 바라보면, 기습 이니시와 돌진의 선봉에 서는 데 부담이 없는 니코, 와드 없이도 인접 공간에 대한 시야 장악력이 좋은 오리아나 등 AP 미드 챔피언을 레드 진영에서 높은 빈도로 밴하며 돌진과 받아치기라는 양극단의 성향 챔피언을 적절히 견제해냈다.
픽카드 차원에서는 선수들의 챔피언 소화 폭이 여느 LPL 팀들보다 넓다는 점을 십분 활용하고 있다. 서포터 ‘크리스피’ 류칭쑹의 챔프폭도 ‘케리아’ 류민석 못지 않게 넓은 데 특히 애쉬나 하이머딩거, 럭스와 같은 사거리가 긴 딜링형 서포터들을 잘 다루어 팀의 메타 편승에 큰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는 점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더구나 라칸과 같은 챔피언이 필밴 카드로 사실상 논외가 된 상황에서, 라칸을 한 차례도 픽하지 않고 팀을 결승까지 이끈 그의 역량은 분명 위협적인 요소라 할 것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니코가 양 팀의 밴픽 과정에서 반드시 밴될 가능성이 높은 지금, ‘샤오후’ 리위안하오의 제 몫은 어쩌면 웨이보에게는 상수와 같은 안정감을 제공할 것이다. 특히 T1이 오리아나를 풀고도 카운터파트로 아지르를 채택하며 재미를 보았던 구도가 오히려 아지르를 WBG가 먼저 챙겨갈 경우에 대한 수싸움도 고려하게 만들 가능성이 높다.
‘페이커’ 이상혁이 넓은 챔프폭에도 그다지 많은 챔피언을 기용하지 않으면서 수를 최대한 감추었다면 오히려 WBG는 호기롭게 자신의 패를 모두 드러내며 유연성을 뽐냈다. 바텀 주도권 중심으로 굴러가는 현 메타에서 주도권의 티핑 포인트 기점 역할을 할 미드 라이너의 밴픽 구도는 이번 월즈의 어떤 경기보다도 흥미롭게 관전해야 할 지점일 것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더불어 WBG가 여느 LPL 팀과 다른 이유는 바로 탑 라이너 ‘더샤이’ 강승록의 존재감 때문일 것이다. 실제로 T1이 꺾고 올라온 팀 몇몇은 탑 라이너 또는 미드 라이너가 챔프폭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도 했다. 밴픽 단계에서부터 강제성을 띤 챔피언이나 소화력이 크게 떨어지는 챔피언을 메타라는 이유로 억지로 채택해 초반 단계에서부터 게임 자체가 넘어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미 ‘더샤이’ 강승록은 아트록스는 물론 럼블까지 능수능란하게 활용하는 모습을 보였고, 탑 그레이브즈라는 카드를 꺼내들어 ‘빈' 천쩌빈을 크게 압도해버린 전력도 있다. 스스로 답을 찾는다는 것은 곧 능력이요, 영광을 이끄는 지름길이 될 가능성이 높기에 경기를 뒤흔들 수 있는 한 방은 주도권이 팽팽하게 줄다리기를 벌이는 바텀 라인이 아닌 탑 라인에서 발생할 가능성도 결코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 누가 주인공이 돼도 이상하지 않은 가을동화의 끝, 운이 아닌 실력을 줍는 팀은?
미국 메이저리그 베이스볼 ‘LA 에인절스’ 소속 투수 겸 타자 '오타니 쇼헤이'는 평소 그라운드에 쓰레기가 보이면 되돌아와 줍거나, 부러진 배트도 먼저 주워 건네는 등의 플로깅 전도사를 자처하고 있다. 그는 이렇게 쓰레기를 줍는 이유로 “다른 사람이 무심코 버린 운을 줍는 것이다”라며 겸손하게 자평하기도 했다.
국내 팬들은 마치 오타니의 습관을 따라하듯 각자의 팀을 응원하며 소위 선행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 오타니가 쓰레기를 주워 운을 소망하듯, 자신도 선행을 하다보면 팀의 염원하는 우승 역시 주울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 때문이다.
하지만, 소환사의 컵은 지난 12년 간 단 한 차례도 운에 의해 갈린 적이 없었다. 늘 팬들의 기대치를 충족하는 멋진 경기로 보답했고, 경기의 매 순간 순간에는 팽팽한 긴장감과 실력이 빛을 발했다. 그야말로 사투의 현장 속에 소환사의 컵의 주인이 가려지는 셈이다.
어쩌면 팬들의 꾸준한 선행이 빚어낸 화려한 대진이 바로 T1과 WBG의 결승전 무대이지 않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과연 팬들의 소망이 모여 만든 대진, 실력의 증명을 주워갈 팀은 누가 될 것인가? 일요일 밤, 그 주인공이 정해진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