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집게손 논란'이 세밑을 강타하고 있다.
넥슨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PV(프로모셔널 비디오)에서 시작된 이번 문제는 <던전앤파이터>, <에픽세븐>, <브라운더스트>, <아우터플레인>, <이터널리턴> 등의 게임으로 퍼져나갔다. 이들 게임을 운영하는 게임사들은 PV를 내리고 "문제 소지"가 있는 이미지에 대해 검수에 들어갔다. 지난 일요일(3일) 새벽 판교에 몰려든 택시 행렬은 화제가 되었으며, 몇몇 회사는 법적 대응을 검토하고 있다.
이미지나 영상에 들어간 집게손을 문제시하는 이들의 입장은 이러하다. ― 과거 온라인 커뮤니티 메갈리아는 자신들의 상징을 집게손으로 삼았다. 이 집게손은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것을 조롱하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으므로 '일베 손가락'과 유사한 혐오 표현에 해당한다. 집게손은 오늘날까지 한국 남성을 혐오하는 상징으로 남아 있으며, 콘텐츠에서 남성 혐오를 유도하는 집게손의 사용은 근절되어야 한다.
논란이 발생한 이래, 본지는 그림 그리는 일을 업으로 삼은 사람들은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지 집중 취재했다. 본지는 지난 2020년까지 게임미술관이라는 기획을 통해서 수십 명 이상의 아티스트를 취재한 바 있다. 게임미술관 기획에 참여했던 작가들을 포함해 여러 관계자들의 이야기를 들었다.
스튜디오 뿌리가 작업하고 넥슨이 검수한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PV. 이 손가락을 두고 이른바 '메갈 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그 뒤, 인터넷에서는 집게손 이미지에 대한 광범위한 색출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현업자들은 대체로 이 사안에 대해 자기 의견을 내려 하지 않았다. "털릴까 봐"라는 대답에서는 '신상털이'가 일종의 놀이가 된 현실에 대한 업계인의 공포가 전해졌다. 실제로 누군가 스튜디오 뿌리에서 일하는 애니메이터의 신상을 인터넷에 유포한 일이 있었다. 본지가 취재한 이들도 같은 일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듯했다.
"넥슨이랑 언제 일할지 모르는데"라는 답변도 나왔다. 한국 애니메이션은 하도급으로 성장했으며, 아직도 해당 업계에는 강력한 원·하청 질서가 남아있다. 이 질서에서 넥슨은 갑(甲)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에 관해 구체적인 언급을 피하려 했던 것이다. 또, 이직이 잦은 특성상 본인이 언젠가 넥슨 소속이 되어 그림을 그릴 지 몰라 처신에 유의하려는 모습도 감지됐다. 이에 따라 공통된 요청에 의해 익명으로 의견을 종합했다.
이번 문제는 게임업계를 넘어 사회 일반으로 확대되고 있다. 단적으로 식품업체 빙그레는 '빙그레우스' 애니메이션에 집게손이 등장한다는 비판에 PV를 비공개 처리했다. 여야 정치인도 "하청업체의 직원이 원청업체의 의지에 반하여 원청업체에게 피해가 갈 만한 행동을 독단적으로 했다"(이상헌), "일을 하러 왔으면 일을 해야지, 왜 업장에서 사회 운동을 하는가"(허은아), "다 같이 만드는 창작물 안에 그렇게 조롱의 의미가 달린 그림을 넣으면 안 된다"(류호정)고 비판했다.
집게손을 통해서 혐오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움직임은 정말 존재했던 걸까? 하청은 원청 모르게 작업할 수 있을까?
11월 28일, 판교 넥슨 본사 앞에서는 시민단체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서 참가자들은 집게손 문제를 '억지논란'으로 짚었다. 문제의 집게손을 '메갈리아 손가락'으로 본 이들은 즉각 반박했다.
현직 애니메이터 A는 "감독(또는 총감독)이 있는 경우에는 한해서는 감독이 체크할 수 있는 타이밍은 몇 번이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에 논란이 된 애니메이션 분야의 경우, 프레임 단위의 공동 작업이 이루어진다. 기본적으로 서로는 서로의 작업물을 계속 확인하게 되어있고, 감독은 이 과정을 총괄한다. "티가 나는 액션"이 있으면 하청 스튜디오에서 내부적으로 조치가 이루어졌을 것이라고 한다. 원청의 검수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상영될 수 없는 것이 애니메이션 공정의 기본이다.
감독이 눈에 띄는 문제를 발견하고 고치지 못한다면, 그것은 "기본적인 역량의 문제"가 된다. 감독뿐 아니라 애니메이션에 대한 이해가 특별히 없는 사람이 봤을 때도 작화에 문제가 있는 경우로 인식된다. A는 "작업에 따라서 원청이 모든 것을 확인할 수는 없다"면서도 하청 애니메이션 스튜디오에서 한 구성원이 특정한 이스터에그를 아무도 모르게 삽입할 가능성에 대해서 대단히 낮게 보았다.
원화가 B는 "집게손을 넣으려고 마음먹으면 넣을 수 있기는 할 것"이라고 추측했다. 그러나 그 일에는 "모두를 속이는" 대단한 수고가 들어갔을 것이 B의 생각. 그는 "대부분 마감 일정에 시달리고 있을 텐데, 보통은 이럴 시간이 없다"고 답변했다.
B는 "스튜디오마다 분위기가 다를 수는 있다"고 단서를 달면서도, 일반적으로 원·하청 관계에서는 강력한 QC(품질관리)가 작동하고 있다고 해설했다. 하청 작업자가 원청의 주문과 다른 결과물을 내놓을 수는 있지만, 원청 측에서 승인하지 않으면 그 어떠한 요소도 최종 결과물에는 반영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메갈리아의 로고. 몇몇 커뮤니티는 엄지와 검지를 편 해당 포즈가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은 것을 조롱하기 위한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림에서 집게손은 '메갈리안 손가락'과 같은 이스터에그로 기능할 수 있을까? 일부 주장대로 프레임 단에서 자신이 바라는 메시지를 몰래 숨길 수도 있지 않을까?
거의 대부분의 답변자들은 집게손은 대단히 흔히 쓰이는 포즈이기 때문에 이 자세를 이스터에그로 볼 수 없다고 이야기했다. 아울러 한국 남성을 혐오하기 위해서 이미지에 집게손을 넣었는지 판단하는 것 또한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쪽에 무게를 실었다. 현재 온라인에 색출된 모든 이미지를 소위 '메갈리아 손동작'으로 보기는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만화가 C는 "손의 구조로 봤을 때 일베 손 자세는 억지로 힘을 주고 연습이 필요한 자세지만, 집게 자세는 너무 자연스러운 자세라서 우연히 나올 가능성이 커 보인다"며 "꼭 그림을 그리지 않더라도 상식적으로 알 수 있는 내용"이라고 꼬집었다. 거의 모든 작가들이 무언가를 쥐거나 잡는 행동, 또는 기본 포즈를 익히기 위해 집게손을 학습했다.
일반적으로 집게손 없이 생활하는 것이 어렵듯, 애니메이션에서 집게손을 근절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목표이다. 그렇다면 '의도된 집게손'은 어떻게 근절할 수 있을까?
최근 인터넷상에는 '누가 봐도 메갈 손'으로 지목되는 이미지들이 제시되고 있다. 창작자가 남성 혐오의 의도가 있었음을 밝히지 않은 이상, 이러한 이미지는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사안이 무거웠던 만큼, 절대 다수의 업계인들은 이미 문제의 이미지와 움짤(.gif)에 대해서 검토를 마친 상황이었다.
원화가 D는 "원화와 애니메이션은 분명 다른 영역이지만"이라고 선을 그으면서도 "움직임 속에서 집게손은 거의 무조건 나올 수밖에 없기 때문에 프레임 단위로 자르면 집게손이 나타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원화가 B는 "다음 움직임을 준비하는 자세로 충분히 집게손을 쓸 수 있고, 그렇게 따지면 내 작업물에서도 집게손이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논란은 <메이플스토리> 엔젤릭버스터 리마스터 PV에서 비롯됐다. 익히 알려진 것과 같이 <메이플스토리>는 게임과 원화에서 치비(ちび, 귀여운 모습을 강조하기 위해 머리를 키우고 손과 발, 몸통을 축소한 디자인. Super Defromed[SD]라고도 표현)를 채택했다. 일반적인 인체 비율에 비해서 손가락이 크게 줄어들고 손목은 거의 생략된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연출하기 위해 엄지와 검지를 주로 쓸 수밖에 없다는 것.
한 애니메이터는 "나는 남성이고, 페미니즘도 잘 모르지만, 그저 집게손을 쓰면 나쁜 사람으로 몰릴까 봐 고민이다"라고 토로했다. 수용자는 '의도하지 않은 집게손'에 대해서는 어떻게 확인하고 검증할 수 있을까? 이 애니메이터는 컷에 따라서 손을 펴거나 접을 때 중지를 딱 붙여서 동시에 움직이거나, 검지만 펴는 쪽으로 작업하는 방법을 검토 중이다.
게임 원화가가 한 행사에 참석해 무대 위에서 <던전앤파이터>의 고블린을 보여주고 있다.
참고용 사진으로 본문 내용과는 무관함.
이번 논란에 대한 일각의 비판은 사그라들지 않고 있다. 집게손이 일반적인 포즈이지만, 성별을 막론한 페미니스트들이 자신의 그림 속에 계속해서 '한국 남성의 성기가 작다'는 내용의 포즈를 삽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넥슨을 비롯한 주요 게임사들은 게임마다 십만 장이 넘는 이미지의 의도를 조사하고 있다.
이재민 웹툰인사이트 에디터는 "애니메이션의 어원은 애니마티오(animatio)라는 라틴어로 '생명을 부여한다'는 뜻이다. 지금은 '움직이는 그림으로 표현되는 예술분야'를 일컫게 됐는데 '순간'이 아니라 '움직임'에 의미가 있는 것이다. 동작이 변화하는 순간을 캡처해서 앞과 뒤의 맥락, 그 동작이 완성되었을 때의 의미를 모두 제거한 채 '애니메이션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비판했다.
조경숙 만화평론가는 "콘텐츠 업계에서 일러레(일러스트레이터)에 대한 사이버불링과 스토킹하는 사례가 있다"며 "작업물에 대한 비판을 넘어 개인을 공격하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어 "(스튜디오 뿌리 측이) 해명을 했는데도 이렇게 끊임없이 추궁한다면 어떤 방식으로 토론하고 해결할 것인지 궁금하다"고 말했다.
<던전앤파이터>의 마계 회합 PV 시네마틱 영상. 전문가는 "동작이 변화하는 순간을 캡처해서 앞과 뒤의 맥락, 그 동작이 완성되었을 때의 의미를 모두 제거한 채 '애니메이션이 문제'라고 말하는 것은 이상하다"고 이야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