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핵이 이렇게 판치는데, 왜 안 잡는 거야!'
예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것은 '핵과의 전쟁'일 것이다. 게임에서 이용자들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해 타인과의 경쟁에서 부당 이득을 취하는 것은 종종 있는 일이지만, FPS 장르의 경우에는 특히나 심각하다. 국내에서는 글로벌 히트한 <배틀그라운드>가 특히 그랬고, 최근에는 넥슨 산하 '엠바크 스튜디오'에서 개발된 <더 파이널스>가 핵 논란으로 신음하고 있다.
# 왜 FPS에서 유독 심각하게 여겨질까?
불법 프로그램 검거율을 높이고 선량한 이용자에 대한 '오제재'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명확한 근거가 있어야 한다. 명확한 근거를 위해서는 각종 데이터를 서버에 '로그'로 남길 필요가 있다. 그러나 실시간으로 수많은 데이터를 서버에 저장하는 것은 쉽지 않다. 물리적인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화면 전환이 빠르고, 실시간으로 다양한 상황이 발생하는 FPS의 경우에는 특히나 그렇다.
그럼에도 FPS는 이용자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경우 영향이 가장 큰 장르다. 가령 대부분의 FPS는 '헤드샷' 시스템을 사용하고 있다. 모델의 머리에 적중하면 한 방에 사망하는 시스템을 가진 게임도 많고, 한 방에 죽지 않더라도 대미지는 크게 받는 게임이 대다수다.
MOBA와 같은 게임이라면 상대가 100%에 가깝게 스킬을 맞추는 게임이라도 운영이나 팀 합으로 뒤집을 여지가 있지만, FPS는 쉽지 않다. 허무하게 총알 한 방에 사망할 수도 있기에 한 번 불법 프로그램 이용자를 만났을 때 다가오는 불쾌감도 타 장르에 비해 크다. FPS에서 불법 프로그램 문제가 유독 심각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난 상대를 구경조차 못 했는데, 어디선가 날라온 총알 한 방에 픽 하고 사망하면 그만큼 기분나쁜 것이 없다. (출처: 스팀)
게임이 현실적인 시스템을 가지고 있을 수록 더욱 그렇기도 하다. 가령 최근 유행하는 '익스트랙션 장르'의 대표적인 게임인 <타르코프>가 그렇다. 만약 지나가다 갑작스레 날라온 총알 한 방에 죽는다면, 플레이어를 멀리서 관찰하고 결정적인 한 방을 노린 사격에 죽은 것인지, 우연히 날라온 총알이 운이 좋아 자신의 머리에 적중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 것인지 알기 어렵다.
불법 프로그램이 회사의 대응 정책에 따라 나날히 발전한다는 점도 적발을 힘들게 한다. 불법 프로그램 제작자들은 회사가 새로운 솔루션을 도입하면 이를 분석한 후,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에 후속 대응 위주로 풀어나갈 수밖에 없는 게임사들은 완전한 근절이 어렵다.
단순한 분석으로는 분간이 어려울 정도로 불법 프로그램이 발전해 왔다는 점도 어려운 점이다. 가령 <오버워치>에서 한 때 큰 논란이 된 '테두리 핵'이 하나의 예시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값싼 불법 프로그램처럼 상대방을 정확히 따라가는 것이 아닌, 상대방의 몸 정도만 따라가는 '에임 어시스트'의 기능을 하기에 플레이 동영상을 모두 녹화하는 것이 아니라면 적발하기 쉽지 않다.
한 때 <오버워치>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궜던 '테두리 핵' (출처: 유튜브)
'오제재'의 가능성 때문에 게임사 입장에서는 신중해야 한다는 점도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 근절을 어렵게 한다. 이용자는 정당한 댓가를 지불하고 게임을 플레이할 권리 혹은 라이센스를 구매한 것이기에, 만약 명확한 근거가 없이 제재를 했다면 소송이 진행됐을 때 법적으로 불리해질 가능성이 있다.
더불어 앞서 언급했듯이 명확한 근거를 통한 제재를 위해서는 위해서는 심증 데이터가 아닌 확실한 로그를 통해 이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하는데, FPS는 이를 명확하게 보여주기 어렵기도 하다.
# 계속되는 창과 방패의 싸움
물론, 게임사가 손을 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불법 프로그램은 게임 수명에 있어 상당히 치명적이다.
'안티 치트 시스템'과 같은 일반적인 해결책 외에도 지금까지 불법 프로그램을 근절하기 위해 많은 노력이 시도되어 왔다. 대표적인 경우는 '하드웨어 밴 시스템'이다. 단순히 불법 프로그램이 적발된 이용자의 계정을 정지하면 이들은 다른 계정을 사용해 다시 같은 행위를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그렇기에 이용자의 메인보드와 같은 정보를 기록해 해당 컴퓨터에서는 게임 접속을 할 수 없도록 확실하게 근절하는 것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그러나, 하드웨어 밴에도 일부 한계가 존재한다. 가령 불법 프로그램에 적극적인 대처를 진행하고 있는 <서든어택>의 경우, 최근 김태현 디렉터가 방송을 통해 하드웨어 밴이 완전한 해결책은 아니라는 점을 시사한 바 있다. 김태현 디렉터는 "(지속적으로 제보받은 이용자에 대해) 하드웨어 밴을 했더니, PC방을 돌아다니면서 게임을 하더라"라고 언급했다.
<배틀그라운드> 또한 최근 진행한 방송에서 "자체적인 하드웨어 밴 시스템 도입 이후 (의심 이용자) 지표가 줄어들었지만, 우회할 방법이 생겨나면서 지표가 소폭 상승하기도 했다"고 언급했다. 크래프톤이 새로운 방지책을 도입한 이후 지표는 다시 줄어들었다.
그래프를 살피면 자체적인 하드웨어 밴을 도입한 이후 지표가 줄어들었으나, 우회법이 발견되며 다시 수치가 올랐다.
크래프톤이 새로운(출처: 크래프톤)
이런 상황과 합쳐져 계정을 대여하거나, 타인의 명의로 계정을 만들거나, 아예 타인의 계정을 해킹해 이용하는 사례도 있다. 스팀에서 서비스되는 <배틀그라운드>가 대표적이다.
스팀은 '스팀가드'라는 보안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고 최근에는 대부분의 이용자가 사용하는 모양새지만, <배틀그라운드>가 유행하면서 스팀 플랫폼에 익숙하지 않아 보안이 약한 계정을 노려 타국에서 계정을 해킹해 정지를 당할 때까지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하는 해외 이용자도 많은 실정이다.
스팀 이용자라면 갑자기 타국에서 계정에 대한 로그인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는 메일이 오더니,
어느 새 <배틀그라운드>와 같은 게임에서 정지를 당하는 일을 겪기도 했을 것이다.
게임에 설치된 기본적인 부정행위 방지 시스템을 처음부터 강력하게 만드는 사례도 있다. 발로란트의 '뱅가드'가 대표적이다. 공개 초기부터 '틱레이트'와 관련한 문제 등 FPS의 대표적인 불편 사항들을 해소할 것이라고 공언한 <발로란트>는, 안티 치트 분야에서는 기존보다 강력한 방지 시스템을 통해 불법 프로그램을 막으려 했다.
그러나 '뱅가드'가 너무나 많은 권한을 사용하고, 타 프로그램까지 영향을 끼친다는 불편이 이어지면서 오히려 <발로란트>의 초기 이미지를 나쁘게 하는 부작용이 발생하기도 했다. 현재는 이런 불편 사항이 상당히 완화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강력한 안티 치트 프로그램이 반드시 만능인 것도 아니다. 라이엇 게임즈는 부정 행위자 제재 비율은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지만, 뱅가드를 우회하려는 정교한 시도가 늘어나고 있다고 최근 글을 통해 밝혔다. 라이엇 게임즈가 적발한 가장 진보한 방법 중 하나는 '직접 메모리 액세스'(Direct Memory Access, DMA)를 활용한 것이다. 하드웨어 기기를 사용해 뱅가드를 바깥에서 핵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이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라이엇 게임즈는 뱅가드에 새로운 보안 체계가 도입할 것이라고 밝혔다.
직접 메모리 액세스 체계 (출처: 라이엇 게임즈)
이런 우회 수단을 막기 위해 새로운 보안 체계가 도입될 예정이다. (출처: 라이엇 게임즈)
그렇기에 게임 시스템적으로 프로그램 사용을 통한 우위를 점하지 못하게 하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기도 하다. 가령 ESP(상대방의 위치를 알 수 있는 핵)가 가장 치명적인 <배틀그라운드>는 '전장의 안개' 시스템을 통해 이를 근절하고자 했다.
맵에 있는 건물과 지형을 분석하고 계산해, 이용자에게 보여야 하지 않는 데이터는 전송을 시키지 않는 시스템이다. 크래프톤은 이를 통해 "치터가 (대미지를 주는 평균 거리가) 약 70% 감소했다. 앞으로도 이 시스템을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용자 다수가 신고된 플레이어에 대한 기록을 분석하고, 의심받는 유저를 처벌하는 시스템을 사용하는 게임도 있다. 일종의 배심원단을 운영하는 것이다. <카운터 스트라이크> 시리즈의 '오버워치'나 <서든어택>의 '길로틴 시스템'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제보를 통해 인플루언서가 불법 프로그램 사용자를 적발하거나 분석하는 콘텐츠를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전장의 안개 시스템을 통해 ESP를 사용하더라도 타인의 위치를 볼 수 없도록 했다. (출처: 크래프톤)
(출처: 크래프톤)
# 파는 사람은 처벌 안 하나요?
그렇다면 실제적인 처벌은 없을까?
게임사들도 불법 프로그램을 유포하는 업자에 대한 처벌에 나선 지 오래다. 가령 넥슨은 2018년 경 수사기관 및 사법기관과의 협조를 통해 11개 프로그램을 판매, 제작한 17명을 검거했다. 이들이 그동안 편취한 부당 이득의 규모는 총 7억 3천만 원 가량으로 발표됐다. 이용자에 대한 수사도 진행됐는데, 당시 그 결과로 기소유예 처분이 결정됐다. 불법 프로그램 이용자에 대한 기소유예 처분은 당시가 처음으로 알려졌다.
소송을 통해 판매를 중단시키고 배상급 지급 명령을 받은 사례도 존재한다. <데스티니 가디언즈>의 개발사 '번지'는 약 2021년 경부터 공정한 게임 환경을 강조하며 자사 게임의 핵을 유포하는 업체에 대한 고소/고발을 진행하며 일부 승소하기도 했다. 그 외에도 액티비전, 번지, PUBG 스튜디오 등이 해외에서 불법 프로그램 판매 사이트와 소송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가 가장 심각한 중국에서도 텐센트의 주도 하에 핵 판매 일당을 검거하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 가장 최근인 2023년 9월에는 중국 위장성 지역에서 텐센트 보안팀과 현지 경찰이 협력해 10명의 일당을 검거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기도 했다. 보도에 따르면 현장에서는 불법 프로그램에 대한 '소스 코드'외에도 '하드웨어 기기'가 발견됐는데, 위에서 라이엇 게임즈가 언급한 사례와 일부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출처: 중국 위장성 경찰)
#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깨진 유리창 이론'을 막는 것
이처럼 핵과의 전쟁은 FPS에 있어 영원한 숙제로 남을 것으로 보인다. 게임사가 핵을 방지하기 위한 솔루션을 도입하면 늘 이를 비웃듯이 불법 프로그램 판매자들은 이를 분석해 우회하는 프로그램을 새로이 선보인다. 디스코드 등의 커뮤니티에서 비밀리에 소규모로 핵을 판매하는 업자들도 많기에 각종 게임사와 경찰의 노력에도 완전한 적발이 쉽지 않기도 하다.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수요가 완전히 사라져' 위험을 감수하고 불법 프로그램을 판매하는 업자까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결국 게임사에서 계속해서 적극적이고 단호한 조치를 보이고, 선량한 게이머들이 부정 행위자를 만나는 빈도를 최소한도로 줄여 나가는 것이 뻔하지만, 가장 좋은 답이 아닌가 싶다. 처벌 근거를 강화해 불법 프로그램을 사용한다는 것에 대한 경각심이 더욱 퍼져나가 사용을 자제하게 만드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라 할 수 있다.
'깨진 유리창 이론'이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깨진 유리창 하나를 방치하면 그 지점을 중심으로 점차 범죄가 확산되어 갈 수 있다는 이론이다. 만약 게임사가 조금이라도 핵을 방지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이를 틈타 불법 프로그램 개발자 및 판매자들은 활개를 칠 것이고, 늘어난 불법 프로그램 속에서 선량한 게이머들은 게임을 떠날 것이다.
(출처: 넥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