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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기획] 다락방부터 '폴아웃: 뉴 베가스'까지... 옵시디언의 21년

24년 '어바우드'로 도약할 수 있을까?

에 유통된 기사입니다.
김승주(사랑해요4) 2024-01-30 11:41:26

RPG 팬들에게는 애증의 개발사.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올해로 21주년을 맞은 RPG 전문 개발사다. 깊은 스토리와 다양한 상호작용을 가진 서양식 RPG를 개발해 온 것으로 유명하며, 국내 게이머에게는 대표작 <폴아웃: 뉴 베가스>의 개발사로 잘 알려져 있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는 RPG를 좋아하는 게이머에게 '애증의 대상'이기도 하다. 옵시디언 특유의 깊은 스토리와 다양한 선택지를 호평하는 사람이 있지만, 수많은 버그와 짧은 개발 기간으로 인한 부족한 완성도를 늘상 보여 와 '버그시디언'이라며 비판하는 사람도 있다. RPG 장르를 선호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특유의 스토리 서술 방식이 "길고 지루하다"는 이야기를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옵시디언의 신작 RPG가 공개될 때마다 게이머의 관심은 적지 않다. 옵시디언의 게임이 보여 주는 특유의 텍스트와 스토리텔링은 다른 게임에서 느끼기 어렵기 때문이다. 옵시디언의 대표작 <폴아웃: 뉴 베가스>가 워낙 잘 나왔던 덕택에 이러한 모습을 다시 한번 더 보여줬으면 하는 바램을 가진 사람도 많다.

옵시디언은 2024년 출시될 차기작 <어바우드>를 통해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어바우드>는 옵시디언이 MS에 인수된 이후 제대로 칼을 갈아 선보이는 신작 RPG다. 이에 <어바우드> 출시 전, 옵시디언이 지금까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려 한다.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 개발자를 다락방에서 일 시킨 사연


옵시디언의 전신은 <발더스 게이트>와 <폴아웃> 시리즈로 유명한 블랙 아일 스튜디오다.


잘나가던 시절과 다르게 2003년경의 블랙 아일 스튜디오는 모기업 '인터플레이'의 재정난으로 신음하고 있었다. 회사는 천천히 침몰하고 있었고, <던전 앤 드래곤> IP에 대한 게임 개발 권리까지 잃었다.


블랙 아일에서 활동하던 다섯 명의 베테랑 개발자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던전 앤 드래곤>의 게임 제작 판권을 잃었다는 것은 더 이상 만들고 싶은 게임을 만들 수 없다는 의미기도 했다. 이에 '퍼거스 어거허트'를 필두로 한 다섯 명의 개발자는 회사를 나와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를 설립했다. 여기에는 유명 스토리 작가 '크리스 아벨론'(2015년 옵시디언을 퇴사)도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체계조차 없는 작은 개발사가 맡은 프로젝트 없이 사무실을 운영한다는 것은 금전적으로 부담되는 일이었다. 다섯 명의 개발자는 돈을 아끼기 위해 퍼거스의 집 다락방에 모여 개발 환경을 꾸리고, 다양한 회사에 방문해 게임 개발을 제안하는 '영업'을 하기 시작했다.

설립 당시의 옵시디언 (출처: 옵시디언 엔터테인먼트)

기회는 빠르게 찾아왔다. 당시 루카스 아트의 대표 '사이먼 제프리'가 <스타 워즈: 구 공화국의 기사단 2>(이하 구 공화국의 기사단 2) 개발을 제안한 것. 전편을 개발한 '바이오웨어'가 후속작 개발에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개발이 결정되자 바이오웨어는 두 명의 기술자를 잠시 동안의 인수인계를 위해 파견했는데, 옵시디언이 다락방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고 말하자 "상당히 당황했다"고 전해진다.

이후 인력을 충원하고 제대로 된 사무실로 이전해 <구 공화국의 기사단 2>가 본격적으로 개발됐다. 그러나 문제가 하나 있었다. 개발을 위해 주어진 기간은 겨우 15개월이었다. 옵시디언은 15개월이라도 보장된다면 차라리 다행이라 여겼지만, 이마저도 보장되지 않았다. 

루카스아츠는 크리스마스 기간에 게임을 팔아야 한다며 개발 기간을 12개월 정도로 축소한 2004년 12월에 <구 공화국의 기사단 2>를 출시하라고 통보했다. 명백한 ‘을’이었던 옵시디언은 이런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다. 사전에 2005년으로 출시를 연장하기로 합의한 상태였지만, ‘구두 계약’이었기에 효력이 없었다고 전해진다.

<구 공화국의 기사단 2>

그렇게 <구 공화국의 기사단 2>는 미완성에 가까운 상태에서 출시됐다. 행성 하나 분량의 수많은 콘텐츠가 잘려 나갔다. 짧은 개발 기간에도 만들어 낸 훌륭한 스토리와 깊이 있는 서사는 호평받았지만, 후반부 완성도는 부족했고 버그는 많았다. 어떻게 보면 옵시디언의 대중적인 이미지를 각인시킨 게임이기도 했다. 롤플레잉과 서사라는 면에서는 상당히 훌륭하지만, 게임의 완성도는 늘 아쉽다는 이미지다.

옵시디언으로썬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고 볼 수도 있다. 당시에는 지금보다 더 작은 개발사였고, 퍼블리셔는 옵시디언을 저예산으로 RPG의 후속작을 빠르게 만들고 싶을 때 적합한 개발사로 여겼다는 이야기가 있다. 옵시디언 역시 ‘회사의 생존’을 위해 계속해서 게임 개발 계약을 따내야 했기에 넉넉한 개발 기간과 충분한 인력은 꿈만 같은 이야기였다.

그럼에도 옵시디언은 첫 게임부터 자신들의 잠재력을 잘 보여 줬다. <구 공화국의 기사단 2>는 지금도 <스타 워즈> 팬들에게 최고의 IP 게임 중 하나로 손꼽히고 있다. 퍼거스 어커하트 CEO는 코타쿠와의 인터뷰에서 “게임을 세 번이나 했는데 엔딩이 정말 화가 난다”라는 메일을 받은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언급했다. 퍼거스 CEO는 “세 번이나 끝까지 했다는 것은... 게임이 그렇게 나쁘단 건 아니잖아요?”라며 웃었다.


<구 공화국의 기사단 2>는 지금도 명작으로 평가받고 있다. (출처: 스팀)


# 소규모 게임 개발사의 비애

<구 공화국의 기사단 2>의 성공은 옵시디언이 좋은 기회를 받을 수 있도록 했다. 당시 <던전 앤 드래곤> 게임 판권을 가지고 있던 아타리가 <네버윈터 나이츠>의 후속작을 의뢰한 것. 다시금 <던전 앤 드래곤> IP를 기반으로 게임을 만들게 된 개발진은 의욕적으로 임했고, 2006년 출시된 <네버윈터 나이츠 2>는 100만 장 이상 판매되며 호평받았다.


성공을 타고 옵시디언은 게임 프로젝트를 다방면으로 늘려나갔다. 세가는 오리지널 IP로 게임을 만들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자체적인 IP를 만들 수 있다는 것에 흥분한 옵시디언은 첩보를 테마로 2010년 <알파 프로토콜>을 출시했다.


문제는, 첫 도전이었던 만큼 <알파 프토토콜>은 여러모로 ‘옵시디언’스러운 게임이었다. 슈팅에 대한 노하우가 없었던 탓인지 액션 시스템 부분은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첩보 액션 게임으로써의 완성도는 애매하다고 평가받았다. 그럼에도 옵시디언 특유의 대사와 스토리텔링, 다양한 분기는 호평받았다. 


퍼거스 CEO는 리뷰 사이트에서 혹평을 받다가도, 어느 순간에는 ‘저평가받은 게임’ 리스트에 <알파 프로토콜>이 올라가곤 했다는 것이 흥미로웠다며 당시를 회고했다.


<알파 프로토콜>


맡은 프로젝트가 항상 출시로 이어진 것은 아니었다. 2006년 경에는 디즈니에서 ‘백설공주’ 스핀오프 게임을 만들자는 제안을 받고 개발에 착수했지만, 디즈니의 사업 전략이 바뀌며 취소됐다. 세가와 <에일리언> 게임을 만들기로 협의하고 약 2년 반이라는 기간 동안 게임을 만들었지만, 개발이 지지부진해지자 인내심이 바닥난 세가는 2009년 개발 취소를 통보했다.


코타쿠와의 인터뷰에 따르면 옵시디언은 취소 전 세가에 게임의 프로토타입을 보냈지만, 관계자들은 받은 프로토타입을 보지도 않았다고 전해진다. 후에 세가의 한 관계자는 프로토타입을 보고 “정말 열심히 만들었었군요!”라는 메세지를 보냈다고 한다. 옵시디언이 할 수 있는 대답은 하나밖에 없었다. 


“네, 열심히 했었죠.”


작은 게임 개발사에게는 익숙해져야 하는 일이었다. 게임과 장르의 유행은 날마다 바뀌고, 개발에 돈을 대는 퍼블리셔의 마음도 이에 따라 바뀐다. 프로젝트의 취소는 곧 정리해고로 의미하지만, 작은 개발사로써는 계속해서 여러 프로젝트를 전개하며 하나는 성공하길 바라는 수밖에 없었다. 


개발이 취소된 <에일리언: 크루시블>. 애니메이션 등의 문제로 개발이 지연되다, 결국 취소됐다.
지금은 유출된 플레이 동영상만 남아 있다.



# 옵시디언을 모르던 사람도 알게 한 <폴아웃: 뉴 베가스>


2009년 경 옵시디언에 좋은 제안이 하나 찾아왔다. 베데스다에서 <폴아웃>으로 개발하면 어떻겠냐는 제안을 한 것. 당시 베데스다는 <폴아웃 3>를 출시하고 막 <스카이림>의 개발에 착수하던 참이었다.


블랙 아일에서 나온 이후 <폴아웃> 시리즈와 관련한 일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옵시디언에게는 너무나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옵시디언의 핵심 개발진은 회의실에 모였고, 아이디어는 빠르게 나왔다. 그 자리에서 라스베가스라는 배경과 그 유명한 도입부가 정해졌다. 도입부에 대한 아이디어는 크리스 아벨론이 냈다고 전해진다.


“머리에 총을 맞고 사막에 묻힌 채로 게임을 시작하면 어떨까?”


<폴아웃: 뉴 베가스>의 인트로
주인공이 머리에 총을 맞고 생매장까지 당한 뒤 게임이 시작된다.


그렇게 단 세 장 분량의 기획서가 보내졌지만, 옵시디언의 기획을 베데스다가 마음에 들어하면서 <폴아웃: 뉴 베가스>의 개발이 시작됐다. 하지만, 이번에도 주어진 개발은 1년 반 정도밖에 없었다. 서로가 합의한 개발 기간이었지만 결코 길다고는 말할 수 없었다.


2010년 10월 출시된 <폴아웃: 뉴 베가스>는 <구 공화국의 기사단 2>를 보는 듯했다. <폴아웃 3>과 차별화되는 게임의 분위기, 넓은 맵과 흥미로운 사이드 퀘스트는 상당히 호평받았다. 지금도 이용자 모드가 계속해서 만들어지며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정도며, 국내에서는 이 게임 덕분에 옵시디언을 처음 알게 된 게이머가 많다. 팬들의 지지가 워낙 큰 덕분에 <폴아웃: 뉴 베가스 2>에 대한 루머는 잊을 만 하면 등장하기도 한다. 옵시디언 역시 인터뷰에서 후속작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를 늘 내비치고 있다.


그러나 <폴아웃: 뉴 베가스>는 출시 초기 게임을 제대로 플레이하기 어려울 만큼 버그가 많았다. 덕분에 메타크리틱 점수가 낮아 베데스다에서 ‘보너스’로 제시했던 보상금까지 받지 못했을 정도였다. 추후 공개된 공식 다큐멘터리에서 옵시디언은 게임의 QA에 대해 별로 신경쓰지 않았다는 점을 인정하며, 이후 출시된 <던전 시즈 3>부터는 버그를 줄이기 위해 체계를 구축하는 등 상당한 노력을 기울였다고 전했다.


<폴아웃: 뉴 베가스>
옵시디언은 여러 인터뷰에서 베데스다 자체 엔진의 편의성 덕분에 게임을 빠르게 개발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 찾아온 새로운 위기, 그리고 킥스타터

<폴아웃: 뉴 베가스>로 성공한 옵시디언은 다시금 자신들만의 IP를 꿈꿨다. 이런 기조 속에서 개발된 게임이 <스톰랜드>다. 포스트 아포칼립스 풍으로 개발된 이 게임은 MS와의 협력을 통해 엑스박스 원의 출시 타이틀이 될 예정이었다. 잘만 풀린다면 옵시디언을 AAA급 게임 개발사로 올려줄 만한 대형 프로젝트였다.


그러나 문제가 속출했다. 옵시디언은 유로게이머와의 인터뷰에서 MS의 수많은 제안이 덧붙여지고, 기술력의 한계에 부딪히며 개발이 지지부진해졌다고 언급했다. MS가 내놓은 해법은 더 많은 자원의 투입이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스톰렌즈>는 엑스박스 원의 출시 타이틀이 되지 못할 것이 자명해졌다. 결국 <스톰랜드>는 취소됐고 옵시디언은 대대적인 정리 해고에 들어가야 했다.


<스톰랜드>의 개발 중 사진
유로게이머의 보도로 어느 정도 내막이 알려졌다 (출처: 유로게이머)


위기에 처한 옵시디언의 시선은 당시 유행하던 킥스타터로 향했다. 핵심 개발자 중 한 명인 ‘조쉬 소여’가 강력하게 주장하던 해결책이었다. 그렇게 옵시디언을 위기에서 구할 프로젝트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가 탄생했다. 새로운 자체 세계관을 기반으로 옵시디언이 1990년대 주로 만들던 탑 뷰 형식의 RPG를 만든다는 프로젝트였다.


누가 유행이 지난 클래식 RPG에 돈을 쓰겠냐는 의문이 있었지만, 킥스타터는 대성공했다. 펀딩을 시작하자마자 RPG 팬들은 너도나도 돈을 들고 몰려들었다. 첫 목표였던 110만 달러(14억 원)를 아득히 초과한 400만 달러(53억 원) 이상의 개발비가 모였다. 2015년 출시된 게임 역시 90만 장 이상을 판매하며 성공했다. 옵시디언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를 통해 위기를 벗어났다. 


옵시디언의 오리지널 IP로 흥행에 성공했다는 점이 특히나 고무적이었다. 옵시디언의 개발자는 다큐멘터리에서 "우리의 게임처럼 여겨졌기 때문에 다른 어떤 게임보다 더 많은 것을 쏟아부은 것 같았다"라며 "우리만의 무언가가 있다고 느낀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라고 평가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출시 1년 전 나온 <사우스 파크: 진리의 막대> 이야기를 빼 놓기도 아쉽다. 본래 THQ가 유통을 맡기로 했지만, 도산하면서 유비소프트가 유통을 맡은 게임이다. 원작자의 철저한 감수를 받아 만들어진 <사우스 파크: 진리의 막대>는 원작 <사우스 파크>의 개그 센스를 그대로 옮겨 왔다는 평가를 받으며 흥행했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원작 팬들에게 호평받은 <사우스 파크: 진리의 막대> 또한 옵시디언의 작품이다.
아쉽게도 후속작 <프랙처드 벗 홀>부터는 유비소프트가 개발과 유통을 모두 담당하게 됐다.


# MS의 인수 그리고 야심작 <어바우드>

옵시디언은 2018년 MS에 인수되며 안정적인 개발 환경을 갖추게 됐다.


현재 옵시디언이 개발하고 있는 핵심 게임은 두 가지다. 출시일 미정의 <아우터 월드 2>와 2024년 출시 예정인 <어바우드>다. 여기서 <어바우드>는 MS의 옵시디언 인수와 함께 2018년부터 시작된 프로젝트다.


안정적인 개발 환경이 갖춰지긴 했지만, <어바우드>는 옵시디언에게 있어 많은 의미를 가진 프로젝트다. 오픈 월드 게임으로 개발되는 만큼, 적잖은 인력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져 있기도 하다. 개발 기간 역시 6년 정도로 짧지 않다.


<어바우드>


<어바우드>가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의 세계관을 배경으로 함에도 전작과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는 점도 눈여겨 볼 만한 포인트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 시리즈는 탑 뷰 형식으로 클래식 RPG 장르였지만, <어바우드>는 1인칭 액션 RPG다. 


<필라스 오브 이터니티>가 클래식 RPG를 잘 살려내 흥행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과감한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전작인 <필라스 오브 이너티니 2>의 상업적 성과가 아쉬웠기에 IP의 명맥을 잇기 위해서는 <어바우드>의 흥행이 중요한 상태기도 하다.


지금까지 옵시디언의 역사를 살피면 자체적인 IP에 대한 열망이 강함을 엿볼 수 있다. 과연 옵시디언의 야심작 <어바우드>가 <필라스 오브 이터너티>라는 IP의 명맥을 이어갈 수 있을까? <어바우드>는 2024년 가을 출시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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