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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특집

'바나나'가 게임이 아니라는 해석은 누군가에겐 호재다

게임산업법 적용 대상 아니다? 쏟아질 유사 '바나나'는 어떡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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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준(음주도치) 2024-07-01 11:00:53

<바나나>는 생태계 교란종일까, 아니면 잠시 왔다가는 철새일까?


지금 스팀 시장을 흔들고 있는 '소프트웨어'는 다름 아닌 <바나나>다. <바나나>가 처음 주목받았을 때부터 계속 주시했던 본지는, 지난 주 스팀에서 약 92만 명의 동시 접속 기록을 찍은 사실을 보도했다. 지금은 잠시 주춤하고 있다곤 하지만, <바나나>의 일일 최고 동접자 수는 여전히 약 58만 '명'이다. 물론 봇을 빼면 진짜로 몇 명이 이 프로그램을 실행 중인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아무튼 <바나나>는 <발더스 게이트 3>의 최고 기록을 꺾고 역대 스팀 동접 순위 8위를 기록했다. 


<바나나>는 외견상 클리커 게임을 표방하고 있다. 하지만 클리커와 게임 두 단어는 연결되지 않는다. 클릭 행위 자체가 <바나나> 게임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않기 대문이다. 클릭을 통해서 인터페이스상의 숫자가 올라가기는 하지만, 핵심은 3시간, 18시간마다 접속하면 자동으로 지급되는 '바나나' 아이템 수집이다. 유저가 '바나나'를 스팀 장터에 팔 수 있기 때문에 인기를 얻은 것이다. <바나나> 열풍을 다룬 포브스의 시니어 기고자 폴 타시는 '머니 프린터'라는 단어까지 사용했다.


다만, 스팀 월렛에 충전된 일종의 '사이버 머니'는 직접 환금이 어렵기 때문에, <바나나>의 환금성, 사행성 여부를 놓고 국내외에서 많은 말이 나왔다. 현재 밸브는 스팀 안에 <바나나>를 통해 번 돈을 USD나 KRW로 뺄 수 있는 기능을 제공하지 않는다. 모은 돈으로 게임코드를 구매해 그것을 거래해서 차익을 남기는 방식으로 돈을 벌 수는 있겠지만 그것은 밸브와 <바나나> 개발자들 소관 바깥의 일이다. 


디스이즈게임은 한국 게임물관리위원회에 <바나나>가 유가증권에 해당하는 게임인지, 환금성이 있는 게임인지 견해를 물었다. 게임위는 관련 부서에서 <바나나>에 대한 모니터링을 마친 후, "환금성 판단 여부 이전에 <바나나>를 게임물로 보기 어렵다"는 의외의 답변을 줬다. 별일 아니라 넘어갈 수 있는 '<바나나>가 게임이냐 아니냐'는 논의는 생각보다 중요한 사안이다.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이하 게임산업법) 적용 여부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게임에서 유가증권을 지급한다면 법적으로 국내 유통이 허용되지 않지만, 기타 앱에서 유가증권을 지급하는 건 현행법상 유통 불가까진 아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스팀에 ​<바나나>와 유사한 사례가 우후죽순 등장해도 게임산업법으로 막을 수 없다는 이야기가 된다.


다소 줄어든 편이지만 6월 28일 기준 일일 최대 동접은 여전히 58만에 가깝다. 
참고로 스팀에서 '바나나' 아이템이 거래되면 개발사는 수수료 이윤을 얻는데 
'바나나' 시세가 낮아도 동접자와 거래량이 많아 수수료가 적지 않다.

# 게임이 아니라면 접속 리워드 앱인가?

최근 유니티의 위닝 투게더에서 만난 사례 중 하나를 소개한다.


<비트버니>는 가상자산을 보상으로 지급하는 리워드 앱이다. <캐시슬라이드> 등의 리워드 앱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비트버니>에서는 퀴즈, 출석체크, 미션으로 얻는 포인트를 기프티콘 등의 보상으로 받을 수 있는데, 그 보상 중에 크립토 자산이 있는 게 이 앱의 차별점이다. 


이 사례로 알 수 있듯, 국내에서 크립토 리워드 앱은 규제 범위 내에서 유통 가능하다. 가상자산 이용자보호법도 7월 19일 시행 예정이다. (다만, 크립토 앱은 유튜브(구글), 페이스북 등의 광고 게재에는 플랫폼 단위에서의 제약이 있다.)


한편, <바나나>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스팀 장터에서 거래 가능한 '바나나' 아이템은 NFT와 개념적으로만 유사할 뿐, 블록체인 기술이 적용되지 않았고, 가상화폐와 연결되지 않았기에, 법적으로 '가상자산'이라 해석하기에 모호한 측면이 있다. 만약, <바나나>가 게임이 아닌 3시간, 18시간의 주기적 접속 보상으로 NFT에 가까운 '바나나' 아이템을 지급하는 리워드 앱이라고 해석하면, <바나나> 유통은 게임산업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결국 게임위의 "<바나나>는 게임이 아니다"라는 해석은, <바나나> 개발사에겐 호재다. 유사 <바나나>를 만들 개발사들에게도 마찬가지다. <액시 인피니티>가 인기를 끌었을 때 <무돌 삼국지>를 비롯한 NFT게임이 여럿 출시됐던 일을 기억하는가? <바나나>가 게임법 밖에 있으면 제2, 제3의 <바나나>가 나오지 못할 이유가 없다.


인앱 재화인 코인을 모아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의 크립토로 교환할 수 있는 리워드 앱 <비트버니>

# '바나나라이크'의 시대가 온다면?

국내 게임 개발사들에게도 자문을 구해봤다. <바나나>와 같은 사례가 국내 게임산업법에 저촉되지 않는다면, 그리고 스팀 장터 내 '바나나' 아이템 거래로 개발사가 얻는 수수료가 남는 장사라고 판단된다면, "이와 비슷한 콘텐츠를 안 만들 이유가 없다"는 답변을 받았다. <바나나>를 게임으로 보고, 게임산업법에 의거한 법적 제재 대상으로 봐야 유사 사례가 쏟아지지 않으리라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한편, 리워드 앱 시장에서는 게임계의 P2E(플레이 투 언)가 아닌 X2E(썸씽 투 언)이 대세가 된지 오래다. 광고 시청으로 수익을 내는 <캐시슬라이드>도 있었지만, M2E(무브 투 언)을 내세운 만보기 리워드 <캐시워크>도 있었다. 이는 점차 확장되어 수면 데이터를 제공하거나 음식 사진을 찍어 올리면 보상을 지급하는 앱도 나왔고, 심지어 명상 리워드 앱도 있다. 온라인 서비스의 후발 주자들은 조금이라도 더 많은 유저 데이터를 얻기 위해 리워드를 주고 있다.


게임산업법 때문에 블록체인 게임, 웹3 게임을 국내 유통할 수 없었던 업체들은, 게임위가 인증마크까지 붙여준 상황 속에서 '바나나라이크'처럼 게임 같지 않은 게임을 만들고 리워드 앱이라 주장할 수 있지 않을까? 방치형게임이 뜨니 너도 나도 방치형게임에 뛰어드는 시장 상황을 보라. <바나나>가 한국에서도  일정한 반향을 일으킨다면, 국내 개발사들도 생각해 볼만한 옵션이 될 것이다. 유저 계정 지갑은 KRW로 인출할 수 없지만, 개발자 계정의 지갑에는 환전 과정이 있다.


NFT를 보상으로 지급하는 명상 리워드 앱 <프루프 오브 메디테이션>


# '바나나라이크'는 커뮤니티 만들기 싸움이 될 것


게임은 이제 틱톡, 쇼츠, 그리고 릴스와 대결해야 한다. 그러니 게임시장의 경쟁이 심화되면서 '바나나라이크'를 만드는 것도 해볼 만한 투자가 되어가는 듯하다. 모바일 캐주얼게임의 광고수익은 처참한 지경이 되었고, 스팀에서 자체 게임을 기획해 승부를 보기는 더더욱 쉽지 않다. 여러 사례에서 그러했듯이 이 업계에서는 선발주자를 따라하고도 서비스가 유지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사실 <바나나> 이전에도 클리커 게임은 많이 있지 않았나?


물론 간과해서는 안 될 지점이 있으니, 이런 부류의 서비스 운영은 대단히 까다로운 커뮤니티의 조직 업무를 수반한다는 것이다. '바나나라이크'가 널리 유행한다면, 그 성패는 커뮤니티 운영에 달릴 것이다. NFT게임 열풍 때에도 그랬지만, 판에 동참하 사람들이 '힙하고 안전한 놀이터'에 동참하고 있다는 감각을 부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 이러한 서비스가 이어갈 수 있는 원동력이다. 한국의 BAYC를 꿈꾸었던 메타콩즈가 괜히 한강변에서 파티를 연 게 아니다.


<바나나> 현상은 2020년대 초를 강타한 NFT게임 열풍과 게임스탑과 도지코인에서 볼 수 있었던 '밈 투자'에 대한 니힐리즘적 반응이라는 해석도 있다. <바나나>를 따라해 돈벌이를 하려는 개발사가 있다면, 적어도 외견상 풍자적 스탠스를 유지해야 할 것이다. <바나나> 개발에 참여했던 개발자가 과거 스팀에서 사기성 아이템을 판매했다거나, 유저와 달리 밸브와 서비스를 개발자들은 계속 돈을 벌고 있다는 점은 상기시키지 않으면서 서비스를 운영해야 할 것이다.


스팀 장터에 판매할 수 있는 <바나나>의 아이템 중 하나인 '게이머나나'

# 스팀에 올라가 있으면 게임 아니야?

스팀에 올라오는 대부분의 콘텐츠는 게임이지만, 게임이 아닌 '유틸리티' 등의 소프트웨어도 등록 유통되고 있다. 스팀에서는 <월페이퍼 엔진>이 서비스 중이지만, 이것은 당연히 게임이 아니다. 참고로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바나나>를 게임으로 보기 어렵다"는 의견을 줬지만, 스팀은 자체적으로 <바나나>를 '게임'으로 분류하고 있다. <바나나>를 무엇으로 봐야 할지 (국내) 당국과 국제적 플랫폼 사이의 괴리가 있는 것이다.


다른 플랫폼에서도 게임과 그렇지 않은 프로그램의 분류는 제공되는 중이다. 구글플레이 스토어, 애플 앱스토어도 앱 분류 카테고리에서부터 게임과 일반 앱으로 나눠두고 있다. 그런데 이쯤 되면 게임과 논게임을 누가,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선을 그어야 할지 모호하다는 생각이 든다. 플랫폼의 분류를 따라야 할까? 법리적 해석에선 게임물관리위원회 같은 기관의 판단이 우선할까?


게임위는 기존 대법원 판례(2017다212095 판결)에 의거해 "<바나나>는 특정 시나리오, 규칙 등에 따른 이용자 조작이 없고, 진행 내용상 달라지는 사항이 없다. 시간에 따른 획득과 단순 콜렉팅 기능은 이용자가 오락이라 느낄 수 있을 만한 요소가 없기 때문에, 오락을 주목적으로 하는 게임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상호작용이 유의미해야 한다는 전제가 먼저일까? 아니면 게임산업법의 테두리 안에서라도 유사 <바나나> 출몰 현상을 막는 게 먼저일까? 시대에 따라 게임의 형태가 변하고 있고, 그 경계를 딱 잘라 정의하고 규정할 수 없기 때문에 꼭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다. /디스이즈게임 김승준 기자, 김재석 기자


6월 28일 기준, 스팀 최다 플레이 '게임' 순위에는 <카운터 스트라이크 2> 바로 아래에 <바나나>가 위치해 있다. 
스팀은 <바나나>를 게임이라 보고 있고, 대한민국 게임물관리위원회는 <바나나>가 게임이 아니라 판단했다.
그렇다면 <바나나>는 게임산업법 저촉 대상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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