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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딴지] PS3에 확 맘상한 개발자들

게임완료 못하면 지원금 회수, 저작권은 100% 소니에

고려무사 2006-02-15 19:33:30

<사진=러프>

 

속된 말로 낚인 기분입니다. 이렇게 불리한 조건으로 지원사업을 한다면 어느 게임회사가 이번 프로젝트에 참여하겠습니까? (개발사 C사 과장)

 

15일 오후에 서울 코엑스 인터컨티넨탈호텔에서는 국내 개발사들이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발표회가 있었습니다.

 

한국소프트웨어진흥원과 소니컴퓨터엔터테인먼트재팬이 국내 게임업체들의 플레이스테이션3(PS3)용 온라인게임 제작지원을 위해 마련한 WA PS3 온라인 사업발표회가 열렸죠.

 

하지만 이게 왠일일까요? 이날 발표회는 국내 게임개발자들을 맘 상하게 만드는 자리로 돌변하고 말았습니다.

 

진흥원과 SCEJ PS3 온라인게임 지원사업이 국내 개발자들이 받아들이기에는 너무나 황당한 내용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무슨 이야기가 나왔길래 그랬을까요? 내용을 대충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 소프트웨어진흥원과 SCEJ는 한국 개발사들의 PS3용 온라인게임 개발을 돕기 위해 자금을 지원한다. 알파버전 단계인 프로토타입을 만들 때까지의 개발비를 진흥원과 SCEJ에서 우선 지급하게 된다. 이때 PS3용 개발툴킷을 무상임대하고 필요하다면 기술이나 컨설팅에 대해서도 지원한다. 이후 게임이 어느 정도 만들어지면 SCEJ와 본계약을 체결하고 퍼스트파티로서 인정받게 된다. 게임이 출시되면 SCE의 이름으로 일본에서 먼저 서비스를 시작하고 이후 전세계에 판매한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 단 프로토타입을 만들었지만 게임완성도나 상품성이 낮으면 본계약을 체결하지 않을 수도 있다. 이때에는 진흥원에서 지원했던 자금을 100% 되돌려줘야 한다.

 

- 프로토타입 당시에 SCE에서도 개발툴킷 등을 지원했기 때문에 정식게임으로 출시되지 않더라도 그 게임에 대한 모든 저작권은 SCE가 갖는다. 물론 게임 소스코드도 SCE의 것이다.

 

- 첫번째 게임이 성공적으로 만들어져 후속작을 만들 경우에도 이후에 만드는 모든 시리즈물의 저작권은 SCE 소유다.

 

- 게임을 상용화하거나 패키지로 판매할 경우 우선적으로 SCEJ에서 투입한 자금을 먼저 회수하고 이후 수익금을 가지고서 개발사와 나눠 가진다. 개발사와 어떤 비율로 나눌지는 말할 수 없다.

 

- PS3에는 네트워크(온라인)에 특화된 기술이 많다. 하지만 아직 공개할 수 없다. 이번 프로젝트에 관심있는 개발사는 PS3는 스팩이 뛰어난 차세대 게임기라는 것만 알고 만들면 된다.

 

등등.

 

 

 

이런 내용들이 발표되자 이날 행사에 참여한 개발자들은 황당하다는 표정이었습니다. 이대로 진행된다면 이번 사업에 지원할 개발사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는 한 개발자의 발언이 터져나오자 박수소리가 나오는 묘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소니가 아무리 훌륭한 회사라고 하더라도 이런 불리한 조건을 내걸었다는 것에 개발자들은 심기가 불편했던 것이죠.

 

한술 더떠 이날 행사장을 찾은 SCEJ 기무라 부사장은 한국이 온라인게임산업에서 한발 앞선 것은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국 개발사에 대한 (기술력에 대한) 의문은 항상 있습니다. 소니는 덥썩 한국 게임개발사를 퍼스트파티로 맞아들이는 계약을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 프로토타입 개발에 필요한 일정 비용을 한국정부(진흥원을 일컫는 말)가 지원하겠다고 해서 이 사업을 시작했습니다고 말하자 몇몇 개발자들이 자리를 박차고 행사장을 나가버렸습니다. (이후 전체 좌석의 4분의 3이 행사가 끝나기도 전에 텅 비고 말았습니다.)

 

 

개발자들의 불만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진흥원의 개발비 회수가 너무 매정하다는 것입니다. 알파버전까지 만들어 놓은 상태에서 게임이 별로라고 해서 바로 지원금을 회수한다는 게 말이 되냐는 것이죠.

 

일반적으로 온라인게임 산업은 리스크가 큰 사업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얼마 전 모 증권사 보고서에서도 온라인게임 투자를 하이 리스크 종목으로 분류했답니다.

 

국내 퍼블리셔 같은 경우 게임을 하나 잡으면 올인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같이 죽고 같이 사는 형태죠. 퍼블리셔가 개발사에게 당신 게임이 성공하지 못하면 계약금 모두 돌려주셔야 합니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오늘 발표한 PS3 온라인게임 지원내용은 위와 같은 환경에 익숙한 개발자들에게 납득하기 어려운 내용이었습니다. 진흥원과 SCEJ가 리스크를 전혀 떠안지 않는 것처럼 비쳐졌기 때문이죠.

 

개발자들의 또 다른 불만은 저작권과 관련된 부분입니다.

 

게임개발이 중간에 멈추면 지원금은 지원금대로 회수해가고 저작권까지 가져가겠다는 지원정책을 개발자들은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해당 프로젝트의 저작권을 SCEJ가 가져가면서 개발사는 더 이상 해당 게임을 만들 권한이 없어지기 때문이죠.

 

이날 행사장을 찾은 모 개발사 팀장도 SCEJ가 너무 기존의 관행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온라인게임 사업은 투자개념이 강한데 소니는 기존의 비디오게임 관행만을 내세우고 있는 것 같아요. 진흥원 역시 리스크를 떠안지 않는 방향으로 사업을 구상했기 때문에 개발사들에게는 매력적인 요소가 없는 상황입니다. SCEJ와 진흥원이 국내 온라인게임 개발환경을 간과한 것 같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이날 행사장에서 느낀 것은 진흥원과 SCEJ가 의욕적으로 지원사업을 발표했지만 국내 시장에 대한 특수성을 충분히 파악하지 못하고 너무 성급하게 추진한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이번 PS3 온라인 지원사업은 국내 게임업체들에게도 좋은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진흥원과 SCEJ에서 좀더 고민이 필요한 부분인 것 같습니다.

 

 

 

다음은 진흥원과 SCEJ, 행사장을 찾은 개발자들 사이의 일문일답.

 

 

개발사: 알파버전으로 프로토타입을 통과했는데도 본심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어떻게 되나?

 

진흥원: 개발이 완료되지 않으면 진흥원에서는 무조건 지원금을 회수하게 된다. 보증보험증권 형식으로 회수할 것이다. 진흥원의 목적이 훌륭한 게임을 완성시켜 시장에 내놓는 것이기 때문이다.

 

SCEJ: 프로토타입을 통과하고 본심사에서 탈락하더라도 저작권은 소니에 귀속된다. 지원금을 받는 순간부터 저작권은 모두 소니의 것이다. 물론 지원한 금액도 모두 환수된다.

 

 

 

개발사: 알파버전까지 만들어놓은 상태에서 프로젝트가 드롭되면(중지되면) 개발사 입장에서는 너무 타격이 크다.

 

진흥원: 완성된 게임을 목표로 하고 진행하는 프로젝트다. 성과가 안 나오면 어쩔 수 없다. 물론 투자가 진행된 상태에서 게임개발이 중단되는 것을 최대한 막도록 하겠다.

 

 

 

개발사: 심사에 탈락한 이후 계속 해당게임을 개발하고 싶어도 저작권이 소니에 있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개발사에게는 치명적일 수도 있다고 본다.

 

SCEJ: 우리 입장에서도 위험부담이 있는 프로젝트다. 우리의 퍼스트파티 조건이 그렇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으면서 이번 프로젝트를 진행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사: 시리즈물을 만들 경우 후속작의 저작권은 개발사가 가져야 된다고 본다.

 

SCEJ: 기본적으로 모든 게임의 저작권은 SCEJ가 갖는다. 물론 사안에 따라서는 협의가 가능하기도 하다.

 

 

 

개발사: PS3가 온라인에 특화된 기술을 가지고 있나? 공개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지원서를 만드나?

 

SCEJ: 공식적으로 네트워크 기능에 대해 발표하지 못하는 점 유감스럽다. 조만간 발표할 것이다. 하지만 PS3가 온라인기능을 중요시하고 있다는 것만 알아달라.

 

 

 

개발사: 건물 임대료까지 포함한 전체 개발비를 지원하는 것인가? 일정부분만 지원하면서 저작권을 가져간다면 형평성에 안맞다. BEP(손익분기점) 이후 수익쉐어는 어떻게 되나.

 

SCEJ: 물론 모든 게임개발 비용을 지원한다. 수익쉐어는 사안에 따라 다르다. 양사가 계약을 하기 전에 충분한 토의를 거쳐서 할 것이다.

 

 

 

개발사: 사업지원 내용이 개발사에게 굉장히 불리하다. 이런 식이라면 은행에서 대출받아서 만드는 것과 똑같지 않나?

 

진흥원: 우리는 수익기관이 아니라 정부기관이다. 물론 이번 프로젝트가 지원사업이기 때문에 원래 취지를 어긋나게 하지는 않을 것이다. 개발사를 돕기 위해 2년 동안 고민한 사업이라는 것만 알아달라.

 

 

 

개발사: 게임 저작권은 가져간다고 해도 설마 소스코드까지 가져가나?

 

SCEJ: 소스코드의 경우 소니가 100% 가져갈 권리가 있다고 본다. 하지만 개발사와의 협의를 통해서 좋은 방향으로 풀어갈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