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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딴지] 온라인 축구게임, 이대로 괜찮을까?

태무 2006-05-03 17:30:57

‘2006년의 온라인게임계는 축구가 점령했다’

 

지금까지 각종 온라인 축구게임들에 대한 기사를 작성하면서, 제가 수없이 우려먹은 표현입니다(^^). 말 그대로입니다. <그라나도에스파다> <제라> <썬> 등 BIG 3에 대한 관심은 싸늘하게 식은지 오래고 새롭게 기대를 걸만한 대작 출시는 아직 멀기만 합니다. 그렇게 생긴 공백기간 동안 게임계의 눈은 온통 축구에 몰려 있습니다. 사실 4년 만에 한번씩 찾아오는 월드컵이 이제 겨우 40여일 앞으로 다가온데다 <프리스타일> <팡야>의 대성공으로 스포츠 게임에 대한 업계의 시각도 많이 바뀌었죠(그 이전에는 스포츠 온라인게임은 절대 성공할 수 없다는 공식 아닌 공식이 있었거든요). 다시 말해서 축구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사람에게는 올해가 절호의 기회인 셈입니다.

 

스포츠게임 마니아인 저에게도 이는 호재입니다. 안 그래도 <위닝 일레븐>에 슬슬 질려가는 참인데, 할 게임이 마구마구 쏟아져 나오니 기쁠 수밖에요. 하지만 막상 축구게임들이 스크린샷을 공개하고, 베타테스트를 시작하면서 그 기쁨이 차츰 사라져가기 시작했습니다. 전에 어떤 회원분이 제 기사에 댓글로 ‘맘 상했다’라는 표현을 쓰셨는데, 그 이상 정확한 표현이 없네요. 말 그대로 맘 상했습니다. 기대했던 것과는 상황이 많이 달랐거든요.

 

그래서 오늘은 그런 아쉬움도 토로할 겸, 마음 먹고 딴지 한번 걸어보겠습니다. 물론 온라인 축구게임들은 아직 오픈베타테스트에 들어간 게임이 하나도 없는, 말 그대로 개발중인 게임들입니다. 또 저도 게임은 매우 좋아하지만, 개발에 대해서는 아는 게 별로 없지요. 하지만 그렇기에 오히려 지금 딴지를 걸어야겠습니다. 지금 얘기해야만 저쪽에서 들어줄 것 같거든요. (^^) /디스이즈게임


 

딴지 하나. 이제 그만 좀 나오지?

 

현재 공개된 온라인 축구게임은 <레드카드> <피파온라인> <익스트림 사커> <풀타임> 등 12개입니다. 여기에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은 게임들(개발은 확정됐지만 아직 발표되지 않은 게임들)을 합치면 20개 가량 됩니다. 제가 파악하지 못한 게임들도 있고, 아직 확인되지 않은 게임들도 많지만 어림잡아 20개 정도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올해는 월드컵이라는 특수한 마케팅 환경이 있습니다. 사실 예전부터 축구게임을 만들고 싶었던 개발사도 있었겠지만, 월드컵이라는 마케팅 환경을 노린 개발사도 많을걸요? 어쨌든 중요한 것은 월드컵 시기에 맞춰 이 게임들의 50% 이상이 시장에 쏟아져 나온다는 겁니다. 더 정확하게 얘기하면 5월말 ~ 6월말까지의 기간 동안 8~10개의 축구게임이 베타테스트를 가진다는 거죠.  아, 물론 클로즈베타테스트와 오픈베타테스트, 상용화 같은 시기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을 모두 고려해도 올 연말까지 최소 10~12개의 게임이 공개됩니다. 이렇게 되면 이건 더 이상 기뻐할 상황이 아닙니다.

 

▲ 만약 BIG 3가 아니고 BIG 10이었다면 어땠을까요?

 

아무리 <프리스타일>이나 <팡야>가 선전하고 있다지만, 아직 스포츠게임은 MMORPG보다 시장이 작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그 작은 파이를, 그것도 짧은 시간 동안 10개나 되는 게임들이 나눠먹어야 하는 상황이에요. 예를 들어볼까요? 올해 초 게임업계의 가장 큰 화두는 BIG 3였죠. <제라> <그라나도 에스파다> <썬>이 비슷한 공개시기와 대작 MMORPG라는 공통점으로 BIG 3라는 좋은 화제거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만약 BIG 3가 아니고 BIG 10이었으면 어땠을까요? 3개가 아니라 10개였다면, 그래도 그처럼 주목을 받았을까요?

 

이건 전세계 게임시장에서도 유래 없는 일입니다. 똑 같은 장르의 게임이 이렇게까지 쏟아져 나오다니…. 주목 받기는커녕 서로 제 살만 깎아먹다가 공멸해버릴 거라는 생각은 제 괜한 걱정인가요? 아무리 낙관적으로 생각해봐도 상위 2~3개를 제외하고는 시장에서 성공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딴지 둘. 퍼블리셔가 모자란다?

 

앞에서 현재 약 20개의 축구게임이 개발되고 있다고 말씀 드렸지요. 그런데 이 게임을 만들고 있는 개발사들은 몇몇 특별한 경우를 빼면 대부분 중소개발사입니다. 자금과 인력이 부족하다는 고민을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지요. 다시 말해서 게임을 자체적으로 운영해나갈 능력이 없거나, 있다고 해도 큰 모험을 해야 하는 회사들이 많습니다.

 

당연히 이 상황에서 가장 좋은 해결책은 퍼블리싱 계약을 하는 것. 즉 퍼블리셔를 잡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생깁니다. 국내에 퍼블리셔가 몇이나 될까요? 아니, 자회사의 게임이나 소규모 게임들을 모아놓고 있는 회사들은 가능성이 적으니까 빼죠.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축구게임들에게 여태까지의 개발비를 메워줄 수 있고, 앞으로의 운영비와 마케팅비를 충당해주고, 외부 게임들을 적극적으로 퍼블리싱해온 경험이 있는 전문 퍼블리셔가 몇이나 되냐는 말입니다. 한번 세어볼까요? 엔씨소프트, 네오위즈, NHN, 넥슨, CJ인터넷…. 아이고! 아무리 세어봐도 10여개 밖에 안 떠오르네요.

 

▲ 네오위즈, NHN처럼 대형 포털을 가지고 있는 전문 퍼블리셔들은 이미 축구게임을 가지고 있습니다(사진은 피파 온라인)

 

여기에서 또 네오위즈-<피파온라인>, 엔씨소프트-<샤커퓨리>, NHN-<아트사커>처럼 이미 축구게임을 가지고 있거나 자체적으로 개발한 퍼블리셔를 빼면 숫자가 1/3로 줄어듭니다. 또 축구게임에 관심 없다는 퍼블리셔, 자체게임만으로도 버거운 퍼블리셔들을 빼면….

 

제가 얘기하고 싶은 건 축구게임을 퍼블리싱하고 싶어하는 회사보다, 축구게임을 만들고 있는 회사가 더 많아지고 있다는 겁니다. 또 숫자놀음이냐고 하시겠지만 이건 생각보다 큰 문제가 될 수도 있습니다. 경쟁은커녕 시장에 내놓을 창구 자체가 좁아지고 있거든요.

 

 

딴지 셋. 그 나물에 그 밥

 

지금 개발되고 있는 축구게임은 대략 3가지 종류로 나눠볼 수 있습니다. <피파 온라인> <리얼 사커>처럼 사실적인 그래픽과 게임성을 앞세운 리얼계, <익스트림 사커> <레드 카드>처럼 풋살을 주제로 한 풋살계(^^), <풀타임> <플레이메이커>처럼 귀여운 그래픽과 아케이드성을 강조한 캐주얼계. 제 멋대로 나눠본 거지만 대충 공통점들은 보이죠?

 

그래도 리얼계는 상황이 가장 좋습니다. 너무 어려워서 적응하기 힘들다는 단점만 빼면 게임성도 빠질 게 없고, 경쟁도 별로 치열하지 않습니다. 캐주얼계도 그럭저럭 괜찮아요. 예전 <강진축구>가 큰 인기를 몰았던 것처럼, 이 게임들은 틈새시장에서 특화된 게임성으로 살아날 가능성이 있거든요. 누구나 적응하기 쉽고, 가볍게 즐길 수 있다는 점에서 오히려 이쪽이 가장 성공할 지도 모르죠.

 

가장 암울할 건 풋살게임들입니다. 숫자도 제일 많고, 가장 주목도 많이 받았던 풋살게임들인데 왜 암울하냐고요? 그 나물에 그 밥, 다들 비슷비슷하기 때문이지요. 물론 저마다 특색은 있습니다. 액션성을 강조한 게임, 스킬을 강조한 게임, 시원시원한 모션을 강조한 게임. 그런데 이게 게이머들의 눈에 얼마나 보일까요? 아래 스크린샷을 한번 보시죠.

 

 

풋살 방식으로 개발되고 있는 네 가지 게임의 스크린샷입니다. 자, 이 그림만 보고도 어떤 스크린샷이 어떤 게임의 것인지 맞출 수 있습니까? 다행히 축구게임 관련 기사들을 만들어온 저는 구분이 되는군요. 축구게임에 관심이 많은 유저분들도 아마 맞출 수 있을 겁니다. 하지만 기존에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 눈에 이 차이가 얼마나 보일까요?

 

그래픽뿐만이 아닙니다. 게임에서 번 돈(혹은 경험치)로 기술을 구입해 장착하고, 옷이나 모자 같은 아이템을 사고, 레벨이 올라가면 스탯을 올릴 수 있고….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약간씩의 특색은 있지만, 큰 줄기는 똑같습니다. <프리스타일>이죠. 5:5의 농구가 3:3의 힙훕으로, 11:11의 축구를 4:4의 풋살로… 소재만 달라졌을 뿐 시스템적으로는 매우 비슷합니다. 가장 성공한 스포츠 게임이니 참고했을 수도 있겠죠. 아니, 표절이니 따라 했다느니 그런 얘기를 하려는 게 아닙니다. 아무리 성공했다지만 너무 <프리스타일>을 신경쓰다 보니 그래픽이던, 시스템이던 너무 닮아 보이는 게 문제에요. 게다가 축구게임의 특징을 살리지 못하고 농구게임을 참고했다는 것 자체도 이해가 가지 않습니다. 가뜩이나 경쟁작도 많은데, 이건 좀 심하지 않나요?

 

 

딴지 넷. 월드컵 특수, 얼마나 탈까?

 

저 역시 월드컵 특수라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만, 이 특수가 실현되려면 하나의 조건이 붙습니다. ‘한국 대표팀의 선전’이 그것이죠. 2002년 월드컵으로 엄청난 특수가 생겨났다지만, 그건 한국에서 개최된 데다가 한국 대표팀이 4강이라는 엄청난 선전을 해줬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죠. 19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한국시장에 특수란게 생겼었나요? 1994년 미국 월드컵에서 생겼었나요? 저도 당연히 한국 대표팀을 열렬히 응원하지만, 만의 하나라도 우리 팀이 부진하다면 월드컵 열기는 생각보다 빨리 식을 겁니다. 한국 대표팀이 부진한 월드컵은, 해외축구 마니아들에게만 즐거운 잔치 아닌가요?

 

게임성도 문제입니다. 자, 만약 월드컵 특수라는 게 생겼다고 칩시다. 이때 매우 중요해지는 요소가 라이센스와 로스터입니다. 저 자랑스러운 한국 국가대표팀을, 혹은 저렇게 멋진 플레이를 펼치는 앙리나 베컴을 직접 내 손으로 조작해보고 싶다는 거죠. 그런데 지금 공개된 온라인 축구게임들 중에서 이게 가능한 게임은 딱 하나밖에 없습니다. 나머지는 호나우도가 월드컵에서 득점 신기록을 세우든, 박지성이 영 플레이어상을 수상하든 별 영향을 못 받습니다. 심지어 한국 국가대표팀이 등장하는 축구게임도 제가 알기론 하나밖에 없습니다(본의 아니게 무슨 광고처럼 되어서 죄송합니다).

 

▲ 후원사나 공식 파트너사가 아니면 월드컵이란 이름을 사용하지도 못합니다

 

더 기막힌 것은 국제축구연맹(FIFA)의 라이센스 정책이 하도 까다로워서, 월드컵이 아무리 특수를 일으킨다 하더라도 게임내에서 그와 관련된 이벤트조차 진행하기 어렵다는 거죠. 오직 월드컵 후원사만 월드컵에 관련된 이벤트를 할 수 있다는 거에요. 몇 일 전 만난 업체 담당자의 얘기로는, 이벤트명에 ‘월드~ 뭐시기’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난리가 난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도대체 월드컵 특수와 온라인 축구게임들간에 무슨 상관이 있나요? 물론 월드컵으로 축구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한국 대표팀이 선전하면 더욱 더), 그로 인해서 축구게임들도 관심을 받을 수 있겠죠. 신규가입 회원도 좀 늘어날 테고요. 하지만 얼마나? 얼마나 늘어날까요? 앞에서 얘기한 것처럼 라이센스와 로스터가 없어서 감정이입도 안되고, 심지어 룰조차 전혀 다른 게임들…. 과연 얼마나 월드컵의 도움을 받을까요?

 

 

그저 기우이기를

 

사실 여기 써놓은 문제점들은 대부분 ‘가정’입니다. 앞으로의 일이 어떻게 될지야 아무도 모르는 거죠. 또 저는 마케팅 전문가도 개발자도 아닙니다. 때문에 20개의 축구게임이 자금을 모아서 모두 자체 퍼블리싱에 성공하고, 그 과정에서 각각의 특색이 뚜렷하게 드러나고, 이게 또 월드컵 특수 덕을 톡톡히 봐서 엄청나게 성공한다면 제가 여태껏 늘어놓은 문제점들은 그저 무식한 기우일 뿐이겠죠. 아니 제발 그렇기를 바랍니다. 제 생각이 틀리고, 제 걱정이 괜한 것이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20여개의 게임들 모두 개발자분들이 피땀흘려 만든 소중한 작품들이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저로서는, 제가 건 딴지들의 해답이 무엇인지 도저히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