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HN엔터테인먼트에서 새로운 온라인게임의 서비스를 시작한다. 오픈베타(OBT)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문제가 터지고 이런 댓글이 달린다. ‘명불허전 한게임.’
언젠가부터 NHN엔터테인먼트를 통해, 그러니까 한게임에서 서비스하는 온라인게임이 심심치 않게 겪는 일이다. 11일 OBT를 시작한 <에오스>도 그랬다. 서비스 시작 2시간 만에 PC방 업주들에게 과도한 게임머니를 지급한 사실이 밝혀졌고, 유저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2시간 만에 망한 온라인게임’, ‘End Of Service’(영문 게임명이 EOS), ‘PC방 사장님을 위한 온라인게임’, ‘천골 온라인’(PC방 업주에게 지급한 게임머니가 1,000골드). OBT 시작 하루 만에 <에오스>에 달린 꼬리표들이다.
<에오스> OBT 첫날 이후 붙은 별명들.
■ 연이은 실패와 실수. 악화된 한게임의 이미지
근본을 찾아 올라가자면 꽤 지난 이야기다. 과감한 광고로 유명했던 <아크로드>가 롱런에 실패한 후 한게임은 <몬스터 헌터 프론티어 온라인> <워해머 온라인> <반지의 제왕 온라인>을 야심 차게 들여왔지만 원하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이후에도 <C9> <테라> <Z9별> 등 다양한 RPG를 서비스했지만 확실하게 재미를 보진 못했다.(물론 <테라>는 한차례 폭풍을 겪고 부분유료로 바뀐 후 이제는 일정 궤도에 올라 있다) 한게임은 초반에 유저 몰이에 성공하는 경우는 많았지만, 기세를 유지해 나가는 데는 번번이 실패했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큰 법. 자신이 몇 년을 기다린 게임이 운영 실수나 기획적인 미스로 무너지는 것을 본 유저들은 불만을 토로할 곳이 필요했고, 그 불만은 퍼블리셔인 한게임으로 돌아갔다.
한게임 입장에서는 억울할 수도 있다. 개발사가 실수한 경우도 있었고, 과거에 저 게임들을 담당했던 책임자들이 많이 남아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어쩔 수 없다. 유저들의 시선이 그러니까. 그리고 그러한 선입견이 형성되도록 계기를 제공한 쪽은 한게임 자신이다.
<테라>에서는 복사 버그로 곤욕을 치렀고, <던전스트라이커>에서는 아바타 할인율 표기 실수(실수라고 믿는다. 상술이라고 하기엔 너무 뻔히 보였으니까)로 논란을 일으켰다. 이번 <에오스>에서는 PC방 쿠폰으로 물의를 빚었다.
OBT 직후 복사 버그로 몸살을 앓았던 <테라>의 경매장(왼쪽)과 할인율을 잘못 적어서 논란을 빚었던 <던전스트라이커>의 집사 패키지(오른쪽).
■ <에오스> 사태에서 드러난 유저와 한게임의 온도차
다시 <에오스> 쿠폰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사실 PC방 업주에게 게임 아이템(주로 게임머니)이 들어 있는 쿠폰을 제공한 게임은 <에오스>가 처음이 아니다.
개발사에게 PC방 업주란 유저들의 생각보다 중요한 존재다. PC방에 게임이 얼마나 많이 보급(설치)됐는가에 따라 흥행성적이 달라지기도 하고, PC방 업주를 비롯한 단골들이 얼마나 많이 그 게임을 즐기는가에 따라 ‘대세’를 만들 수도 있다. PC방에서 다들 하는 게임에 관심을 갖고 시작해 보는 유저도 여전히 많다.
다만 이것이 2013년에 론칭한 신작에서, 그것도 NHN엔터테인먼트라는 대형 게임사에서 PC방 업주에게 엄청난 양의 게임머니가 든 쿠폰을 나눠줄 명분을 주진 못한다.
NHN엔터테인먼트에서는 모두 해결된 일이라고 밝혔다. 모든 PC방을 확인하진 못했지만 실제로 골드를 회수당한 PC방 업주도 있다. 생각이 있다면 이번 쿠폰 논란은 깔끔하게 마무리할 것이다.
당연한 말이지만 <에오스>의 경매장 시세는 정상이다. PC방 쿠폰으로 지급됐던 골드가 회수됐고, 게임 내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치지는 못했다는 이야기다.
그렇지만 해명조차 탐탁치 못하다. NHN엔터테인먼트와 엔비어스는 이번 쿠폰 사태에 대해 “순수한 의도에서 기획된 일이고, 의도치 않게 사용되는 현상이 발생했다”는 입장을 밝혔다.
유저의 시각이라면 나오기 어려운 변명이다. 유저는 쿠폰이 어떻게 쓰였는지 궁금하거나 쿠폰을 한게임의 의도와 상관없이 현금거래 사이트에 올린 PC방 업주에게 화를 내는 게 아니다. 홍보와 흥행을 위해 그나마 공평해야 할 게임 속 세상에 무리하게 개입한 것에 대해 화난 것이다.
사태를 너무 작게 보는 건 아닐까 하는 우려도 남는다. 한두 푼도 아니고 당장 1골드도 만져 보기 어려운 초반에 쏟아진 1,000골드다. 온라인게임, 특히 MMORPG 유저들이 인플레이션을 얼마나 경계하고 우려하는지 안다면 결코 쉽게 지나치기 어렵다. (쿠폰이 가장 많이 사용됐을 거라고 예상되는) <에오스>의 프리그 서버에서는 이미 경제가 무너졌다고 판단해 버린 유저도 적지 않다.
개발사가 일부 유저에게 막대한 게임머니를 준 것을 순수한 의도라고 하는 것부터 한게임과 유저의 온도 차이를 느낄 수 있다.
■ 업계 전반을 불신에 빠트린 뼈아픈 실수
솔직히 두렵다. 국내 PC온라인게임 시장은 가뜩이나 유저들에게 뿌리 깊은 불신을 받고 있다. 여기에 철 지난 ‘도시전설’인 줄만 알았던 ‘일부 유저에 대한 개발사의 혜택’까지 (이번 일 덕분에)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분간의 어떤 온라인게임도 의심의 시선을 벗어나긴 어려울 것이다. 서비스 초반부터 골드가 지나치게 많은 유저가 보인다면? 자신이 생각하기에 레벨이 과도하게 높은 유저가 생긴다면? 개발사나 퍼블리셔와의 유착부터 생각하기 십상이다.
‘한게임도 그랬는데’ 그보다 더 작은 개발사가 자신의 이득을 위해 일부 유저에게 막대한 혜택을 주지 말라는 법은 없으니까. ‘명불허전 한게임’이 ‘명불허전 한국 온라인게임’으로 바뀌는 건 순식간이다. 그만큼 한게임의 이번 실수는 뼈아프다.
그런데 정작 NHN엔터테인먼트와 엔비어스는 쿠폰을 제공하려 했던 점보다는 쿠폰의 활용이 잘못됐음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래서야 유저가 ‘쿠폰이 바르게만 쓰인다면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PC방 업주에게 막대한 게임머니를 나눠주겠다’는 뜻으로 다르게 해석해도 할 말이 없다.
이미 10월 10일 업데이트까지 준비된 <에오스>. 어디까지 믿고 플레이할 수 있을까? 또 다른 게임들은 얼마나 믿을 수 있을까?
■ 새로운 시작에 필요한 건 이름이 아니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최근 사업실의 명칭을 ‘캠프’로 바꿨다. 가장 큰 이유는 모바일게임 시대에 맞춰 유저에게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각 실무자의 권한을 높이고, 대부분의 결정을 캠프장에게 위임했다. 마치 군대의 전진캠프처럼. 이러한 새 뜻을 담아 ‘토스트’라는 새로운 브랜드도 론칭할 예정이다.
뜻은 좋다. 과감한 결정도 좋다. 하지만 단순한 말보다는 행동으로 보여줄 때다. 이번 <에오스> 쿠폰 사태와 관련된 ‘캠프’의 대응은 기존의 ‘사업실 단위로 움직이던 한게임’과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에오스>의 성공을 빈다. 3년 넘게 이 게임을 취재해 오면서 그들의 땀과 열정을 봤다. 엔비어스와 NHN엔터테인먼트의 담당자들이 얼마나 많이 고민했는지, 얼마나 많이 노력했는지 옆에서 지켜봤다. 그 모든 것들이, 그 모든 시간이 허무할 정도로 어처구니없는 실수 하나에 사라지지 않기를 바란다. 이건 기자 이전에 게임업계 관계자로서의 마음이다.
하지만 그것과 반성은 별개다. NHN엔터테인먼트는 유저들과 자신들 사이에 벌어져 있는 시각의, 생각의 차이를 줄이기 위해 더 고민하고 더 아파할 필요가 있다. 개발사를 컨트롤하고 사전에 잘못된 부분을 확인하는 것 역시 퍼블리셔의 역할이다.
유저의 입장에서 고민하고, 더 꼼꼼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한다면 ‘명불허전 한게임’에서 ‘명불허전 토스트’가 될 뿐이다.
모바일게임 전성시대에 NHN엔터테인먼트는 PC용 MMORPG 라인업에도 신경 쓰고 있다. 앞으로 나올 신작만 5개가 넘는다. 투자해줄 곳을 찾지 못해서, 퍼블리싱해줄 곳을 찾지 못해서 선뜻 온라인게임을 만들지 못하는 요즘에 보기 드문 ‘MMORPG에 대한 열정’이다.
NHN엔터테인먼트가 그 열정만큼의 소통과 결과를 보여줄 수 있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