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오후 발표된 게임빌의 컴투스 인수. 충격이었습니다. 양쪽 대표는 평소와 달리 다 연락이 안 닿습니다. 여기저기서 전화가 많이 쏟아지겠죠. 깜짝 놀랄 소식에 편집국 기자들도 관련된 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잠깐 옛 기억들이 스쳐지나갔습니다. /시몬
2000년 테헤란로 서쪽 10km에는
지하철 2호선 서울대입구 역과 사당 역.
10여 년 전, 똘똘한 모바일게임회사를 찾아가려면 이 두 역에서 내려야 했습니다.
서울대 벤처동아리로 시작한 게임빌은 2000년 서울대입구 역에 사무실을 냈습니다. 모바일게임을 먼저 만들었던 컴투스는 1998년 사당동에 회사를 차렸죠.
당시 막 붐을 일으키던 온라인게임 회사들은 대부분 강남역부터 삼성역 사이 테헤란로에 있었습니다. 넥슨, 엔씨, CCR, 넷마블…. 게임 회사뿐만 아니라 당대의 잘나갔던 벤처들이 둥지를 틀었던 곳이죠. 반면, 게임빌과 컴투스는 10km 정도 서쪽, 지하철로는 20분 정도 거리에 약간 빗겨나 있었습니다.
안국 역(3호선)에서 지하철을 탔던 저는, 대개 교대역에서 강남역(2호선) 방향으로 환승했습니다. 규모가 있는 주요 출입처가 그 쪽에 있었으니까요.
가끔 서울대입구 쪽 회사에 들르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회사에서 자취방으로 가는 버스 노선에 게임빌이 걸쳐 있었기 때문이었죠. 사당동은 드문드문 가곤 했습니다. 두 곳 빼고 그 주변에 게임회사가 드물었습니다. 게임빌과 컴투스는 테헤란로 서편의 듀오였죠. 둘 모두 대학생 같은 사장들이 있던.
취재/출입라는 측면에서 보면, 두 회사는 온라인게임 업체에 비해 소외됐습니다. 지하철 정거장 예닐곱 개의 거리는 꽤 컸었죠.
산전수전을 함께 겪은 동지들
게임빌, 컴투스뿐 아니라, 당시 모바일게임 업체들은 비슷한 처지였습니다.
그래서 그들끼리 잘 뭉쳤습니다. 2001년 한국모바일게임협회도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고요. 게임빌 송병준 대표가 1기 회장을 했고, 컴투스 박지영 대표가 5기 회장을 했죠.
한 달에 한 번씩 모여, 모바일게임 업계의 발전방향이나 이동통신사에 대한 대응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소모임도 활발해, 실제로는 생맥주 한 잔 하며 훨씬 자주 만났습니다. 두 번 정도 초청돼 송병준 대표, 박지영 대표와 맥주 잔을 부딪쳤던 기억이 납니다.
당시 모바일게임 회사들 참 고생이 많았습니다. 대박을 터뜨리던 온라인게임 업체와 달리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이 약한 것도 그랬지만, 절대 갑이었던 이동통신사와의 관계는 꽤 골치 아픈 문제였죠.
여기저기서 나오는 휴대폰도 골치였습니다. 각종 휴대폰에 맞춰서 게임을 만들어야 했으니까요.
해외 시장을 나가면, 이 문제는 다시 부딪칩니다. 나라마다 이동통신사와 계약을 맺고, 친해져야 했죠. 나라마다 휴대폰에 맞춰 게임을 만들어야 했고요.
이런 산전수전을 다 겪은 뒤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모바일회사는 컴투스와 게임빌이었습니다. 주식상장(IPO)이 성공의 잣대는 아니겠지만, 두 업체는 IPO를 한 유이한 모바일 게임회사니까요.
2006년 국내 한 신문에서 맞수 CEO로 소개됐던 두 사람.
샌프란시스코에서의 기대
마지막으로 송병준 대표와 박지영 대표를 함께 만났던 때는 2009년 3월이었습니다. GDC가 열렸던 샌프란시스코 모스코니 센터 근처였죠.
아직 국내에는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해외 시장에서 인기를 얻고 있던 아이폰과 앱스토어의 기회에 대해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샌프란시스코의 봄 날씨는 제법 쌀쌀했지만, 두 사람 모두 약간 들떠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럴 만도 했죠. 이동통신사 플랫폼에 의존했던 기존의 모바일게임 문법이 깨져나가던 상황이었으니까요. 앱스토어 마켓을 통해 전 세계로 꿈을 펼쳐 나갈 수 있는 기회. 일찍부터 해외 시장을 개척했던 게임빌과 컴투스는 이미 그 흐름을 감지하고 있었습니다.
국내에서도 2009년 11월 아이폰이 처음 출시됐고, 2011년 1월 누적 판매량 200만 대를 넘었습니다. 안드로이드 운영체제를 탑재한 스마트폰도 늘어났죠.
게임빌과 컴투스처럼 모바일게임을 오래 만들어왔고, 해외 시장의 경험이 풍부하며, 아이폰에 먼저 대비해왔던 게임회사들이 부각되기 시작했죠.
카카오의 등장, 선점자의 지위 상실
이 기회를 맞아 두 회사는 모두 모바일게임 퍼블리셔를 지향했습니다. 여기저기서 관심이 쏟아졌습니다. 작은 개발사들이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그 기간은 기대보다 무척 짧았습니다.
게임빌은 2012년 중반, 그 해 국내외에 46종의 게임을 출시한다고 발표했습니다. 그 몇 달 뒤 카카오톡을 탄 <애니팡>이 하루 매출 14억 원을 기록했습니다. 카카오 버프를 받은 선데이토즈, 넥스트플로어, 파티게임즈 같은 개발사들이 재빠르게 앞서 나갔습니다. CJ E&M과 위메이드 같은 온라인게임 퍼블리셔도 거세게 밀고 들어왔습니다.
올해 1분기 모바일게임 매출은 넷마블 499억, 위메이드 366억, 컴투스 249억, 게임빌 173억 원 순이었습니다. 컴투스와 게임빌은 거의 2배 가까이 모바일게임 시장에 새로 진입한 기존 온라인게임 퍼블리셔에 뒤처졌습니다.
앱스토어와 스마트폰의 보급이 오히려 게임빌과 컴투스에게 위기를 안겨준 셈입니다. 초기 카카오톡을 활용하지 못했고, 이후 바뀐 모바일 환경에서 선점자의 지위를 잃고 말았으니까요.
아마도 “1년에 46종의 타이틀을 출시하겠다”던 발표에서 엿보였던 피처폰 시절의 박리다매식 전략과 몸에 익은 밀어내기식 습성이 스마트폰 시장에서는 맞지 않았던 모양입니다.
임원진의 인식 변화는 먼저 왔겠지만, 개발진의 습성 변화는 조금 더뎠을 겁니다. 그 사이 모바일게임의 후발주자들은 성큼성큼 앞서 나갔겠죠.
10년 넘은 외로운 동업자에게 회사를 넘기다
강산도 바뀐다는 10년도 훨씬 넘게 그들은 어찌보면, 외로운 동업자였습니다. 20대 초반 사업을 시작해, 함께 생맥주를 마시며 고민을 나눴으며, 함께 세계 시장을 뚫었고, 비슷하게 주식상장에도 성공했습니다. 같은 시기를 겪은 후, 모바일 회사는 몇 안 남았습니다.
고난과 환희와 기대의 시기를 보낸 뒤, 두 회사는 동병상련을 겪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동병상련의 결과는 정말 예상 밖이었습니다.
특수관계인을 포함한 대주주 지분과 경영권을 게임빌에 넘기기로 했으니, 박지영 대표와 이영일 부사장은 컴투스를 떠날 것이 확실해 보입니다.
옥탑방에서 캠퍼스 커플로 시작해, 온갖 난관을 뚫으며 번듯한 회사를 만들었던 박지영 대표와 이영일 부사장이 컴투스를 떠나더라도, 모바일게임계에 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합니다.
두 회사가 앞으로 어떤 협력 관계를 가져갈지, 그에 따른 시너지 효과나 후폭풍이 어떻게 발생할지, 국내외 모바일게임 업계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지, 아직은 미지수입니다.
박지영 대표와 이영일 부사장이 겪었을 개인적인 망설임, 결심, 그리고 상대가 게임빌이 된 구체적인 사연들은 모두 물음표의 영역에 있습니다.
아마도, 지분과 경영권 매각에는 박지영 대표가 가졌던 엄마의 역할에 대한 고민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 추정됩니다. 10년 넘게 외로운 동업자로 함께 지내왔기에 그런 고민을 송 대표에게 털어놓을 수 있었을 거고요. 지난 여름 있었던 게임빌의 유상증자는 이런 딜이 오갈 수 있는 물질적 기반이 됐을 듯합니다.
어찌 됐든, 오랜 시간을 함께한 동업자의 인연은 놀라운 마침표를 찍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