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체험기로 계획했던 기사였지만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많아서 ‘사설’이라는 이름으로 바꿔봤습니다. 체험기에서는 게임의 모습을 전달해야 하는데, 게임을 하면서 들었던 생각을 전달하고 싶었거든요. 주변에서 “<NBA 스트리트 온라인> 잘 될 것 같나요?”라는 질문이 부지기수로 나왔던 것도 이런 결정에 한몫 했습니다.
저는 ‘스포츠 게임 마니아’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스포츠 게임을 많이 즐겨왔고, 학생 때는 여가시간의 대부분을 농구로 보냈고, 관심이 많다보니 기자를 하기 전에 NBA 관련 잡지에서 필자를 하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만큼 <NBA 스트리트 온라인>에 관심이 많습니다. 이번 테스트에 직접 참여해 보고 여러 날 거듭한 생각을 정리해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김재권 기자
■ 성공한 패키지 스포츠 게임
먼저 지금까지 흥행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은 스포츠 게임을 살펴보죠. 야구로는 <하이히트 베이스볼>과 <MVP 베이스볼> <실황 파워풀 프로야구>, 축구로는 <피파 사커>와 <위닝 일레븐> <풋볼 매니저>, 농구 게임으로는 <NBA 라이브>와 최근 인기를 얻고 있는 <NBA 2K> 시리즈 등이 있습니다. 해외시장으로 눈을 돌리면 <매든 NFL>이나 <NHL>도 빼놓을 수 없겠죠.
위에 나열한 게임들의 공통점은 무엇일까요?
모두 실제 스포츠의 매력을 최대한 옮겨놓은 ‘사실적인 스포츠게임’입니다. 우선 라이선스를 통해 인기 선수들을 게임 속에 그대로 옮겨놨습니다. 선수들의 동작(모션)도 최대한 실제 스포츠와 비슷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하고 있고, 규칙 또한 현실과 동일하게 적용합니다. 물론 게임에 따라 ‘액션’의 비중을 높인 것도 있지만, 어쨌든 위의 게임들이 지향하는 바는 ‘사실성’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른바 ‘정통 스포츠 게임’이죠.
반대로 ‘사실성’보다는 ‘액션’에 초점을 맞춘 게임들도 있습니다. EA의 <NBA 스트리트> <피파 스트리트> <퓨마 사커> 등 이른바 ‘익스트림 스포츠 게임’도 상당수 개발됐습니다. 그러나 이런 익스트림 스포츠 게임은 흥행측면에서 정통 스포츠 게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낮았고, 인지도 역시 상대적으로 떨어집니다.
온라인게임으로 넘어가 볼까요? 스포츠 장르의 흥행작으로는 <프리스타일>과 <팡야> <마구마구> <피파 온라인> 정도를 꼽을 수 있겠네요. 위 게임들의 공통점은 뭘까요? 똑같습니다. 사실성입니다. 저 게임들이 뭐가 사실적이냐고요?
■ 성공한 온라인 스포츠 게임
<프리스타일>은 길거리 농구를 소재로 삼고 있습니다. 5:5의 농구가 3:3으로 변했고, 세부적인 규칙이나 표현도 약간씩 다릅니다. 사실적인 농구게임이라고 하기는 어렵죠. 하지만 <프리스타일>은 '농구'가 아니라 ‘길거리 농구’를 굉장히 사실적으로 그려내고 있습니다.
실제로 길거리 농구의 각종 동작들이 그대로 게임 속에서 재현되고 있고, 그 표현력은 길거리 농구를 한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모두 고개를 끄덕일 정도로 훌륭합니다. 인기와 인지도 측면에서 실제 농구에 별로 떨어지지 않는 ‘길거리 농구만의 매력’을 잘 살려낸 것이죠.
골프를 소재로 삼은 <팡야>는 ‘캐주얼 게임’을 지향한 만큼 판타지스러운 요소가 많습니다. 클럽을 강화하고, 다양한 특성의 공이 등장하며, 커맨드 입력으로 특수 스킬 샷도 발동되죠.
그러나 게임의 기본적인 방향은 어디까지나 ‘사실적’입니다. 거리와 방향을 계산하고, 그에 따라서 골프채를 고르고, 정확하게 타이밍을 맞춰 공을 날려보냅니다. 아주 사실적인 골프 게임인 <타이거우즈>나 <PGA 투어>와 비교해도 별반 다르지 않은 게임진행입니다. 겉모습은 귀엽고 캐주얼하지만, 속내용은 ‘정통’에 가깝죠.
<마구마구>는 사실적인 ‘선수 표현’에 집중했습니다. KBO, MLB와 라이센스 계약을 체결하고 실제 프로야구 선수들의 데이터를 받아 이를 게임 속에 적극 활용하고 있죠. 선수에 따른 능력치를 차별화해 표현하고, 실제 선수의 활약에 따른 데이터를 빠르게 게임에 적용해나갑니다. 게임의 기본적인 재미 자체가 ‘프로야구 선수를 모으는 것’에 맞춰져 있죠.
온라인게임에서도 실제 스포츠를 사실적으로 구현한 게임들이 인기를 얻고 있습니다. 반대로 ‘액션’을 추구했던 온라인게임들은 큰 인기를 얻지 못했고요.
2006년부터 무수히 등장했던 온라인 ‘풋살’ 게임들이 좋은 예라고 할 수 있겠네요. <피파 온라인>은 월 15억 원 수준으로 성장했고, 풋살 게임들은 대부분 정식서비스까지 가지도 못한 채 표류하고 있습니다. 극단적인 사례지만 분명한 현실입니다.
■ 왜 사실적인 스포츠 게임이 흥행할까?
축구 게임을 즐기는 사람은 실제 축구에 매력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박지성,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프리미어 리그, FC서울, KBL, 한국 국가대표팀, 또는 조기 축구나 학교 운동장에서 실제로 볼을 차기 좋아하는 사람도 있겠죠. 연결고리가 어떤 것인지는 상관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축구를 즐기는 사람과 축구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에는 연결고리가 있다는 것이죠.
스포츠 게임 커뮤니티에 가보면 쉽게 알 수 있죠. 어젯밤 롯데가 분패한 것에 대해 안타까워하거나, 출전기회가 적어진 이영표를 걱정하거나, 라보나 킥을 제대로 차려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등의 얘기들이 나옵니다. 다른 장르의 커뮤니티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죠. 실제 스포츠와 깊이 교류하고 있습니다.
만약 <반지의 제왕 온라인>에서 간달프가 빨간옷을 입고 '정열의 간달프'로 소개된다면 어떨까요? 혹은 프로도가 6척 장신의 폴리모프한 투명드래곤으로 그려진다면? 원작의 팬들로서는 그런 왜곡을 도저히 참을 수 없을 겁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박지성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위닝 일레븐>에서도 박지성을 영입 1순위로 놓겠죠. 실제 축구를 좀 해본 사람이라면 게임속에서 실제 축구와 다르게 적용된 룰을 발견하곤 금방 실망을 느끼겠죠. 유저들이 '액션'보다 '사실성'이 높은 스포츠게임을 찾는 이유입니다.
결론적으로 스포츠 게임을 찾는 유저들은 게임속에서도 실제 해당 스포츠의 재미와 매력을 느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런 경향을 '사실성'이라는 단어로 압축한 것이고요.
그런데 여기에는 한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겉모습이 어떤지는 관계 없다는 거죠. <마구마구> <팡야>처럼 귀여운 겉모습으로 포장되어 있더라도, 실제 게임플레이에서 해당 스포츠를 사실적으로 그리고 있다면, 그 게임은 사실적인 스포츠게임입니다.
반대로 <NBA 스트리트 온라인>처럼 NBA 스타들의 겉모습이 그대로 나오더라도 실제 게임 플레이가 현실과 다르다면 흥미를 느끼지 못한다는 것이죠. 이에 대해서는 이제부터 설명해보겠습니다.
■ NBA 스트리트 온라인은?
결과적으로 말해서, <NBA 스트리트 온라인>은 위에서 언급한 ‘사실적인 스포츠 게임’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프리스타일>이 ‘길거리 농구’로 한번 꼬아서 냈다면, <NBA 스트리트 온라인>은 길거리 농구에서도 한번 더 꼬아서 표현한 게임이기 때문이죠. 우선 규칙이 다릅니다. 푸싱, 트래블링, 공격자 시간제한, 골텐딩, 아웃 오브 바운드 등 실제 농구의 룰이 게임속에서는 전혀 적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선수에 대한 표현이 다릅니다. <NBA 라이브>나 <NBA 2K> 시리즈는 보통 30~40개의 기본 스탯(능력치)과 10여개의 추가 스탯, 또 10여개의 숨겨진 스탯으로 한 선수를 표현합니다. <NBA 스트리트 온라인>의 스탯은 9개입니다.
선수의 강함과 쓸모있음 구별해주는 기준을 될 수 있지만, 실제 선수의 개성을 표시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죠. 물론 실제 NBA 선수들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그들의 외모를 즐길 수 있을 뿐, 그들의 농구를 재현할 수는 없습니다.
선수의 동작(모션)이 다릅니다. 과장되고 희화된 동작들은 실제 농구를 기초로 했지만, 실제 선수들은 절대 해낼 수 없는 동작들을 보여줍니다. 골대보다 높이 뛰어올라 덩크를 내리찍고, 1초에 10번은 바운드할만한 속도로 드리블하거나, 공을 발로 퍽퍽 차내기도 합니다. <프리스타일>보다도 훨씬 과장된 동작들이죠.
전체적인 게임의 진행이 다릅니다. 특히 골텐딩(주1) 부분이 제일 심합니다. 실제 농구에서는 주변에 수비수가 없을 때 슛을 던지지만, <NBA 스트리트 온라인>에서는 골대 주변에 상대방 선수가 없을 때 슛을 해야 합니다. 실제 농구에서는 상대 선수가 슛을 던지려 하면 재빨리 쫓아가서 막아야 하지만, <NBA 스트리트 온라인>은 재빨리 골대 밑으로 가서 기다렸다가 볼이 다가오면 쳐내야 합니다. 모두 골텐딩 룰이 없기 때문이죠.
골텐딩 때문에 생겨나는 차이점이 너무나 많습니다. 이질감이 느껴질 정도에요.
물론 사실적이지 않다고 해서 나쁘다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추구하는 방향 자체가 다른 것이니까요. <NBA 스트리트 온라인>은 스포츠 게임이 아니라 액션 게임을 추구하는 게임이고, 게임 속에서 그 방향을 확실히 표현했습니다. 김희재 개발팀장도 인터뷰에서 "농구게임이라고 하기 보다는, 농구의 형식을 갖춘 스타일리시 액션 게임이라고 보는 쪽이 맞다"며 명확히 개발 철학을 소개하기도 했고요.
※ 주1: 골텐딩이란 슈팅의 하향궤적에서 공을 건드렸을 때 반칙으로 규정하는 규칙입니다. 리바운드 시에는 림 위에 가상의 원통을 세우고 그 안에 공이 있을 때 건드리면 반칙이죠. 모든 스포츠가 다 그렇지만, 농구의 룰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점차 만들어지고 추가된 것입니다. 골텐딩은 1945년 NCAA에서 조지 마이칸(왼쪽 사진)이라는 선수를 견제하기 위해 처음 도입되었습니다. 208cm의 조지 마이칸(당시로서는 엄청난 신장이었죠)은 골대 밑에서 버티고 있다가 상대 선수의 슛이 림에 닿을 때쯤 점프해 쳐내곤 했거든요. 경기가 정말 재미없어졌습니다. 상대팀 슈터는 자신의 마크맨이 어디 있느냐보다는 마이칸이 골밑에 있나 없나를 신경쓰기 바빴고, 코치들은 마이칸이 벤치에서 쉴 때를 노려 주력 공격수들을 코트에 내보내곤 했습니다. 이에 NCAA측은 좀더 흥미로운 경기진행과 팀간의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마이칸-룰, 즉 골텐딩이라는 새 규칙을 만들어내기에 이릅니다. 오펜시브 골텐딩은 윌트 체임벌린이라는 선수 때문에 처음 생겨났습니다. NBA에서 한 경기 최다 득점기록(100점)을 세운 윌트 체임벌린은 동료가 슛할 때 골대 밑에서 기다렸다가, 공이 림에 닿는 순간을 노려 점프해서 덩크슛으로 연결시키는 플레이를 즐겼습니다. 그가 골대 밑에 있을 때면 팀의 슈팅 성공률은 100%가 됐죠. 당연히 경기가 재미 없어졌습니다. 100% 성공하는 슈팅은 던질 필요도 없다는 마이클 조던의 말처럼, 공격기회만 오면 무조건 성공하니 긴장감이 없어진 거죠. 이에 NBA 사무국은 오펜시브 골텐딩이라는 규정을 신설해 윌트 체임벌린을 견제한 것입니다. 그래서 골텐딩 룰이 생겨난 이후에는 일부러 림에서 벗어나도록 공을 패스해 덩크슛으로 연결하는 앨리-훕 플레이가 생겨나기도 했죠.
■ 과연 기존의 흥행 경향을 깰까요?
이런 의미에서 <NBA 스트리트 온라인>은 상당히 흥미로운 게임입니다. 여태까지 스포츠게임의 흥행공식을 깰 수 있는 최초의 게임이 될 수도 있거든요.
특히 8일 발표된 <프리스타일 2ND Street>도 <NBA 스트리트 온라인>과 상당히 유사한 게임방식을 채택한 것으로 알려져 더욱 흥미를 모읍니다. 과연 스포츠게임이 정통 장르를 넘어서 ‘익스트림’으로 확대 될 수 있을까요?
제 견해는 여전히 부정적입니다. 무엇보다도 정통 장르에서 벗어난 익스트림 스포츠 게임에 대해 더 이상 기대를 걸지 못하겠습니다. 이런 입장에는 <NBA 스트리트 온라인>의 베타테스트에서 발생한 여러가지 문제점(서버 안정성, 3:3 기피 현상, 각종 꼼수들)도 영향을 미친 부분이 있습니다. 안정성이나 완성도 문제는 개발팀에서 헤쳐나가야 할 문제점이겠죠.
또 한편으로는 상당히 기대도 됩니다. 스포츠 게임의 흥행 경향에서는 벗어날지 몰라도, 전체 게임으로 놓고 보면 기존의 공식을 뒤엎고 크게 흥행한 사례가 얼마든지 있거든요. 멀리 가지 않아도 Wii와 NDS라는 훌륭한 예가 있지요. <NBA 스트리트 온라인>이 여태까지의 사례를 깨고 꽝~! 하고 흥행에 성공한다면 정말 기쁜 일입니다. 시장이 넓어지는 거니까요.
어떤 결과가 나올까요? 그리고 네오위즈게임즈와 EA의 개발진은 베타테스트에서 어떤 문제점을 찾아내고 수정할까요? 그 결과를 볼 수 있는 2차 베타테스트와 이어서 진행될 오픈 베타가 얼마 남지 않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