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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게임의 역사는 ’제대로’ 보존되어야 한다

이정엽 2016-01-12 15:27:20

올해는 비디오게임(이하 게임)이 생긴 지 얼마일까?

 

윌리엄 히긴보덤(William Higginbotham)의 <테니스 포 투>(Tennis for Two, 1958)를 출발 지점으로 삼는다면 게임의 역사는 58년째가 됐다. 게임 산업의 실질적인 출발 시점을 놀란 부시넬(Nolan Bushnell)이 아타리에서 개발한 <퐁>(Pong, 1972)으로 간주한다고 해도, 이 산업의 역사는 최소 40년 이상이다. 

 

게임 산업의 성장과 함께 게임에 관한 연구와 학문도 발달했다. '게임학'(Ludology)이 국내에 소개된 지도 벌써 10년 이상 지났다.

 

하지만, 게임 연구에 관한 가장 기본 자료인 미디어 자체로서의 게임에 대한 역사적 접근과 아카이빙(archiving, 체계적인 보관)에 대한 국내의 시도는 아직 초보적인 수준에 머물러 있다. 

 

 

현재 한국에는 국내 최초의 상용게임이라고 할 수 있는 남인환의 <신검의 전설>(아프로만, 1987)의 원본이나 최초의 TV용 콘솔 마그나복스 오딧세이를 복제한 한국 최초의 게임 콘솔 ‘오트론’, 또는 MMORPG <리니지>의 최초 버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박물관이나 도서관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행히도 최근 들어 넥슨 컴퓨터 박물관이나 콘텐츠진흥원 도서관 등이 게임 아카이빙의 자료 구축을 위한 시도를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기관 혹은 도서관은 게임을 엄밀한 의미로서의 학술 자료로 취급하지 않고 있어 게임을 학술적으로 연구하려는 시도는 좌절되게 마련이다.

 

국제게임개발자협회(IGDA)에서는 2015년 4월 19일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한 바 있다.

 

“게임은 창조적인 예술 형식이며 보존할 가치가 있는 문화적 산물이다. 국제게임개발자협회는 만장일치로 이러한 창조적인 작품을 연구, 수집하고 미래 세대를 위해 이를 보존하고자 하는 연구자들과 활동가들의 노력을 지지한다.”

 

이러한 선언에 발맞추어 미국, 일본, 독일, 호주 등 선진국에서는 일찍부터 게임이 가진 미디어로서의 역사적인 가치를 인정하고,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을 통해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공공적인 전시를 여는 일을 진행해왔다.

 

현재 공식적으로 게임을 전면적인 보존, 연구의 대상으로 수집하고 있는 주요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은 아래 기관 등 10여 곳이 존재한다.

 

 독일 베를린의 컴퓨터 게임 박물관 (독일어 Spiel은 영어 Game을 의미한다.)

 

▲ 미국 워싱턴 D.C.의 '의회도서관'(Library of Congress)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박물관'(Smithsonian Museum)

 미국 뉴욕주 로체스터의 ‘더 스트롱: 국립놀이박물관'(The Strong: National Museum of Play)

 미국 캘리포니아주 마운틴 뷰의 ‘컴퓨터 역사 박물관'(Computer History Museum)

​ 독일 베를린의 ‘컴퓨터 게임 박물관'(Computerspiele Museum)

 호주 멜버른의 ‘ACMI'(Australian Center for the Moving Image)

 일본 나가사키 현 사세보의 테마파크 하우스텐보스 내 ‘게임 박물관'(ゲームミュージアム)

 한국 제주시의 ‘넥슨 컴퓨터 박물관’ 

 한국 전라남도 나주시의 ‘콘텐츠진흥원 콘텐츠도서관’ 

 

이 기관들은 각각 박물관, 미술관, 도서관 등으로 정체성에 따라 게임을 수집, 분류, 전시, 활용하는 방법이 다르다. 이중에서 박물관과 미술관을 통한 게임 전시는 대체로 게임을 비롯한 미디어를 일종의 전시물로 간주하고 이를 공공적으로 전시한다.

 

그러나 사용자가 직접 플레이해야만 그 가치가 완성되는 게임의 본질을 눈으로만 보는 전시를 통해서는 정확하게 전달하지 못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실례로 넥슨 컴퓨터 박물관의 경우 현 세대를 제외한 1세대부터 7세대에 이르는 가정용 게임 콘솔과 게임을 수집하고 이를 전시하고 있지만, 관람객이 직접 게임을 플레이해볼 수 있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많이 보급되어 시장에서 구하기 어렵지 않은 몇몇 콘솔과 게임에 한정된다.

 

이럴 경우 게임은 플레이해야만 하는 그 본질으로부터 벗어나 외피의 시각적 정보만 전해주는 역사적 유물에 불과하게 된다. 디지털 미디어학자인 노아 워드립 프루인이 지적한 바와 같이 디지털 미디어는 단순한 재현(representations)이 아니라 ‘재현을 생산하는 기계'(machines for generating representations)여야 그 존재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게임의 역사를 수집, 보존하는 것은 1차적으로는 게임학 연구를 위한 기초자료를 구축하고자 위함이지만, 이러한 운동이 꼭 연구만을 위한 목적으로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고전 게임은 당대의 게임 디자이너들이 참고할 수 있는 게임의 역사와 관습, 그리고 메카닉스의 참고자료 역할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만들어진 게임의 메카닉스들이 모두 독창적인 것은 아닌 것처럼, 실제로 상당수의 게임들은 과거 게임에서 활용되었던 메카닉스를 참고하여 이를 자신의 게임에 알맞게 적용시키기도 한다.

 

 <프로거>(1981)

 

 <길건너 친구들>(2014)

 

고전 아케이드 게임 <프로거>(Frogger, 1981)를 모바일 게임에 맞게 변형시킨 <길건너 친구들>(Crossy Road, 2014)이 사용자의 호응을 얻는 경우를 그 예시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게임의 역사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행위는 당대의 게임 디자인의 발전에도 큰 영향을 끼칠 수 있다. 더불어 고전 게임은 시대, 미학, 향수(nostalgia) 등과 같은 다양한 요소에 의해 정의되어 현재 개발되고 있는 게임에 대한 거울 역할을 할 수 있다. 또한 게임학 연구가 보편적인 학문으로 인정받기 위해서도 자료의 서지 사항과 아카이빙은 필수적인 기초 과정이라 볼 수 있다. 

 

다음 꼭지에서는 이러한 게임의 역사를 보존·연구하기 위한 아카이브들의 국내 사례와 해외 사례를 비교 조사하고, 이를 통해 게임 역사박물관 구축을 위한 기초적인 자료 분류와 구축 방식을 제안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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