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게임에는 게임이 요구하는 목표가 있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유저가 투쟁, 생존, 승리, 해결하는 것이 상당히 많은 게임의 구조로 작용해 왔다. 그런데 만약 게임이 강제성 있는 목표를 넣지 않고 대신 고차원적인 의도를 넣어도 플레이할 가치를 가질 수 있을까? 여기 오랜 철학 고전을 바탕으로 색다른 시도를 한 게임이 있다. /디스이즈게임 김규현 기자
당신이 숲속 오두막에 가서 할 일
집 짓기
블루베리 채집하기
콩 심기
낚시하기
편지 읽기 등등
생존에 필요한 음식을 얻고
거주 공간을 만들어야 하는 게임
이런 유저를 노리는 적이나
유저가 완수해야 할 목표
그런 거 없다.
물론 살아남기가 있겠지만, 어디까지나
유저가 ‘생활하다가 만날 수 있는’
상황일 뿐
게임이 이토록 지루한 데는
동명의 원작을 있는 그대로 재현하기 때문이다.
‘월든’
19세기 미국의 대표적인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수필집으로
그가 28살 때, 도끼 한 자루만 들고
월든 호숫가의 숲으로 들어가
2년 2개월 동안 자급자족에 필요한 만큼만 노동하고
이외의 시간에는 사색과 탐구를 하며
인간과 삶에 대한 진중한 고민을 담은 책이다.
<월든>이 주장한
간소한 삶과 자연추구, 물질주의 경계는
수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주었는데,
2017년 7월,
소로의 탄생 200주년을 맞이하여
이 고전은 게임으로 출시된 것이다.
게임화 작업의 총괄을 맡은
트레이시 풀러튼 교수는
어릴 적부터 월든을 읽고 지낸
베테랑 게임 개발자였는데,
그녀의 게임회사가 매출 침체로 문을 닫은
2002년
실제 월든 호수가를 찾은 풀러튼은
삶의 방향을 고민하던 중에
<월든>의 게임화를
떠올렸다고 한다.
‘사람은 죽을 때까지 일하지만
그걸 떨쳐버리고도 균형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많은 사람에게 소로의 경험을 느끼게 할 수 는 없을까?’
(-USAToday에서)
월든을 게임화하려는
풀러튼 교수의 시도는
2012년 국가 지원을 받으면서 탄력을 받았고,
(음향 디자이너는 월든 호숫가에서
죽 머물며 듣는 온갖 자연의 소리를 게임에 담았다고 한다.)
말 그대로 월든 호수와
원작의 내용 그대로 옮기기 위한
노력 끝에 게임을 출시했다.
1845년 7월 4일
미국의 69번째 독립기념일이자,
소로가 독립적인 삶을 위해 호숫가에 오두막을 완성한 날
게임은 시작한다.
유저는 소로가 했던
자연 속의 자급자족하는 삶뿐 아니라
원작의 구절과
월든 호숫가 주변의 거의 모든 사물에 대한
(하물며 낙엽과 돌멩이에도)
주변의 자연을 보고 듣는 것도
여기선 중요한 콘텐츠가 되며,
유저는 월든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원작과 다른 선택을 할 수도 있다.
그렇게 소로의 체험을 유저가 대신할 수 있는 것에
환영하는 사람도 있지만 우려 섞인 시선도 남아 있다.
(현실의 6시간 소요)
앞서 본 게임으로서의
목표가 불분명하다는 점은 물론,
물질주의 기계문명에 회의적인
소로의 사상과는 배치되는 기계(컴퓨터)를 활용해
월든을 이해하려는 점,
더 나아가서 가상 현실의 자연 체험이
과연 월든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개발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가 모두 숲으로 갈 기회가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가상세계의 숲이라면 갈 수 있고,
각자 삶으로 돌아갈 때, 자신만의 삶의 속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겠죠.”
(NYT 인터뷰)
(숲을 걷는 게 게임보다 낫다는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말합니다. 숲으로
가라고요.
게임 내 체험이 원작이나 실제 자연체험을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이 게임의 진정한 목표는 바로
여러분이 진짜 자연을 찾아가게 하는 것입니다.”
(USToday 인터뷰)
게임에 아직 한계가 있는 건 분명하다.
재미를 초월하는 보다 높은 목표를
흥미롭게 표현하는 것과,
경이로운 자연, 유저들에게 영감을 주는 환경을
똑같이 느끼게 하기란 어렵다.
다만 대중이 하기 힘든 삶의 성찰을
게임이 가까이서 돕기 시작할 때,
그리고 그 시도가 인정받을 때
게임과 사상 모두 그 가치가 확대될 것이다.
내가 숲으로 간 이유는 신중하게 살기 위해서,
삶의 본질을 대면하기 위함이다.
삶이 가르치려 했던 것을 배우지 못했는지,
그래서 죽음을 맞이할 때
나 스스로 살았다고 할 수 없는지 알기 위함이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
<월든>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