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의 항복 선언일까?
MS가 소니에 제안했던 <콜 오브 듀티> 시리즈 공급 계약을 소니가 결국 수락했다. 비록 MS가 소니 측에 게임을 공급하는 내용의 계약이지만, 이는 소니에 반갑지만은 않은 거래다. 소니는 그간 MS의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를 적극 반대하며 그 일환으로 해당 계약 역시 거절해 왔기 때문이다.
7월 16일 필 스펜서 MS 게임사업 총괄 부사장은 최근 공식 SNS 계정을 통해 소식을 알렸다. 스펜서 부사장은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이후 <콜 오브 듀티>를 PS에 공급하는 내용의 구속력 있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전했다.
2022년 1월 MS가 액티비전 블리자드 인수 절차를 시작한 이래, 영국 경쟁시장청(CMA), 미국 연방거래위원회(FTC),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 등 주요 지역의 독점 감시 당국들은 인수의 독점성 문제를 검토해 왔다. 주요 시장인 미국, 영국, 유럽에서 인수 계약이 불허될 경우 MS가 결국 계약을 포기할 가능성이 높아 그간 귀추가 주목되어 왔다.
그리고 이들이 승인 여부 판단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한 대상이 <콜 오브 듀티> 시리즈다. 이는 소니가 이들 기관에 전달한 의견을 대폭 반영한 것이다. 소니는 액티비전의 <콜 오브 듀티>가 PS 플랫폼의 이용자 수에 큰 영향을 미치며, 따라서 MS가 액티비전을 인수해 <콜 오브 듀티>를 독점하면 소니는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MS는 <콜 오브 듀티> 시리즈를 소니 및 다른 경쟁사들에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 독점 우려를 불식하겠다고 제안했다. 이에 실제로 닌텐도, 엔비디아는 해당 계약에 응했다. PC 플랫폼 일인자 밸브는 계약을 맺지 않았으나, ‘계약 없이도 게임을 공급할 것을 믿는다’는 입장을 대외적으로 밝혔다.
당연하게도 MS는 소니에도 동일한 제안을 건넸지만, 소니는 그간 받아들이지 않아 왔다. <콜 오브 듀티>의 독점을 우려하면서도 공급 계약은 거절하는 모순적 태도의 원인에 대한 추측이 난무하는 가운데, 액티비전 블리자드의 CCO(선임 창작 책임자) 룰루 쳉 메저비는 짐 라이언 소니 CEO가 사석에서 밝힌 계약 거절의 ‘속내’를 폭로한 바 있다.
메저비는 라이언 CEO가 “나는 새로운 <콜 오브 듀티> 계약은 필요 없다. 나는 그냥 당신들의 인수를 막고 싶을 뿐이다”고 말했다고 폭로했다.
한편, MS 역시 처음부터 10년의 넉넉한 계약을 제안하지는 않았던 것으로 뒤늦게 밝혀졌다. 이는 지난달 FTC 공판에서 증거로 제시된 필 스펜서와 짐 라이언의 이메일 대화를 통해 밝혀진 내용이다. 해당 이메일에서 스펜서가 제시한 공급계약 기간은 2027년 12월 31일까지로 알려졌다.
소니가 결국 계약에 응한 것은 최근 MS의 액티비전 인수가 최종 승인되는 방향으로 급물살을 타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원래 인수전의 향방은 오리무중이었다. 인수 검토 중인 세 기관 중 EU는 인수를 승인했지만 CMA는 불허 결정을 내려 MS가 항소를 준비하던 상황이다. 더 나아가 FTC가 지난해 12월 미국 연방 법원에 MS를 경정 저해 혐의로 고소하고, 이어 6월에는 인수 임시 금지 가처분신청에도 나서면서, 인수 가능성에 먹구름이 끼고 있었다.
FTC는 임시 금지 가처분신청을 통해 양사의 계약 완료 기한인 7월 18일까지 거래가 성사되지 못하도록 절차를 지연시키는 전략을 폈던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분위기는 최근 연방 법원이 FTC의 가처분신청을 기각하면서 반전됐다.
가처분신청이 기각되자 FTC는 이번엔 캘리포니아 제9순회 항소법원에 항고 의사를 밝히고, 항소법원에 다시 한번 계약 금지명령(injunctive relief)을 요청했다. 그러나 제9순회 항소법원마저 이를 기각하면서 FTC가 미국 내에서 7월 18일 이전 양사의 계약 체결을 막을 수 있는 수단은 없어졌다.
제9순회 항소법원이 항고 자체를 기각한 것은 아니지만, 현지에서 인수는 사실상 성사된 것으로 여겨지는 분위기다. 일례로 외신 ‘더 버지’의 톰 워런에 따르면 나스닥은 액티비전 블리자드(ATVI)를 나스닥 100 종목에서 제외했다. 자체 정책에 따르면 이는 ‘해당 기업이 인수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경우’ 취하는 선행 조치다.
더 나아가 MS는 CMA와도 계약 수정을 통해 합의에 나선 상황이다. 연방법원의 가처분신청 기각 후 브래드 스미스 MS 사장은 “이제 영국으로 초점을 옮겼다”며 “MS·액티비전은 항소심 연기가 영국 시민의 공공이익에 부합한다는 점에서 CMA와 합의에 도달했으며, 함께 경쟁심판소(CAT·CMA 항소심 담당 기관)에 재판 연기를 신청한 상태”라고 밝혔다.
CMA 역시 원래 7월 18일(현지 시각)로 정해져 있던 최종 선고일을 8월 29일(현지 시각)로 연기하겠다고 밝혔다. CMA는 “MS의 진술을 모두 적절히, 완전하게 검토하기에는 기간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고 발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