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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태 “성공한 방식은 일종의 함정”

엔씨소프트 김형태 아트 디렉터 ICON 2008 인터뷰

공명 2008-09-09 14:24:29

한국의 대표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하면 떠오르는 사람 중에 한 명이 바로 엔씨소프트의 김형태 아트 디렉터입니다. 많은 이들이 그를 탁월한 일러스트레이터로 인정하는 이유 중 하나는, 그의 그림을 보면 김형태 자신만의 스타일이 뚜렷하게 살아있기 때문이겠죠. 얼마 전 엔씨소프트에서 공개한 <블레이드앤소울> 역시 김형태스러운캐릭터들이 잘 표현되어 많은 유저들의 호평을 받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국제콘텐츠개발자컨퍼런스(ICON 2008)에 참석한 김형태 씨와 인터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그림을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게임 디자인에 대한 철학까지, 많은 이들이 궁금해할 만한 것 들을 물어보았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엔씨소프트 블러드러스트 팀에서 <블레이드앤소울>의 아트디렉터를 맡고 있는 김형태 씨.


 

TIG> 만나서 반갑다. 먼저 좋아하는 영화와 만화는?

 

김형태: 이런 말하기 그렇지만, 무협영화보다 총으로 싸우는 영화를 좋아한다. 최근에는 <다크나이트><월-E>를 재미있게 본 것 같다. 만화는 음식 장르를 좋아한다. 먹는 것을 좋아하다 보니 만화 취향도 그쪽으로 연결되는 것 같다. 옛날에는 뭔가 작품성 있는걸 좋아했던 것 같은데…(웃음).

 

 

TIG> 그림은 언제부터 시작했나. 처음부터 게임 디자이너가 꿈이었나?

 

그림은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그리기 시작했고, 처음에는 만화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러다가 CG 일러스트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좋아하던 게임 일러스트레이션 분야로 점차 옮기게 되었다.

 

당시 내 그림을 가장 영향을 준 것은 역시 같이 그림을 그리던 정준호 , 이슬기 , 이경진 씨 등의 친구들이다. 그리고 일본의 작가들인 무라타렌지씨나 테라다카츠야, 시로마사무네를 존경했고 일본 아마추어 작가들이 CG를 사용해 채색하는 부분에서도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다.

 

 

TIG> 게임과 만화·영상 디자인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생각하나?

 

게임은 만화나 영상에 비교해서 스타일의 한계가 없는 것 같다. , 고정된 틀이 없다는 말이다. 만화는 활자와 지면, 그리고 그 구조를 이루는 프레임 등 전달되는 방식에서, 영상은 투사되는 이미지와 연출법이라는 지금까지 쌓아온 고유의 표현방식이 있다. 그러나 게임은 그러한 고정된 틀이 없이 스스로 쌓아 나갈 수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ICON 2008 행사에서 공개된 김형태 씨의 작품들. 

 

TIG> 그림을 그릴 때 자신만의 철학이 있다면?

 

그림과 더불어 게임 개발에서 기존에 잘 알려진 방식은 피하자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런 성공화된 방식은 일종의 함정이다. 기존의 성공한 게임을 따라 한 작품들은 대부분 실패했다. 이는 개발과 비주얼 모두에 해당하는 부분이다. 특히 MMORPG의 역사는 성공 공식을 통계화시키기엔 너무 짧다. 그리고 비주얼에 대한 욕구는 다양하며 매번 바뀐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답습하는 것은 성공 공식을 따르는 게 아니라 게으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TIG> 게임 개발에 있어 성공 포인트는 무엇이라 생각하나?

 

사실 가장 중요한 것은 어느 파트나 특정 분야가 아니라 균형조화. 혹자들은 그래픽은 2시간만 하면 안 보이니 별로 중요하지 않다. 기획만 잘 되어있으면 된다”, “MMORPG는 거기서 거기라서 그래픽만 좋으면 된다”, “게임이 그저 그래도 운영과 서비스가 좋으면 게임은 언젠가 성공한다같은 말들을 한다.

 

일견 맞는 말들 같지만, 이러한 생각들은 아마추어적인 마인드라고 생각한다. 게임은 조화가 가장 중요하다. 어느 한 분야라도 미숙하면 균형이 깨지고 게임은 실패한다. 어느 한 부분만 특별하다고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TIG> 콘솔 게임과 온라인 게임 양쪽에서 다 작업을 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일단 콘솔은 끝이 있다. 힘들어도 꾹 참고 철저한 자기희생으로 달리다 보면 일단 완성까지 이룰 수 있다. 그러나 MMORPG는 호흡이 길기 때문에, 개인의 역량이나 노력 이상으로 제작 프로세스나 개발 파이프라인이 중요하다.

 

사실 지금까지 일하며 2년 이상 프로젝트를 진행한 것은 <블레이드앤소울>이 처음이고, 그러한 부분들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지만, 앞으로 더 배워야 할 부분이 많은 것 같다. <리니지1, 2> 등 매머드급 프로젝트에 경험이 많은 배재현 전무로부터 많은 것을 배우고 있다.

 

 

TIG> 배재현 전무와 함께 일해보니 어떤가. 주로 어느 부분을 신경 쓰는지?

 

배재현 전무는 개발자들이 빠지기 쉬운 함정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서로의 전문분야가 겹치지 않아 부족한 부분을 서로 잘 채워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둘 다 재미없고 뻔한 것들을 싫어하고, 새로운 시도를 좋아하기 때문에 싸우거나 의견 충돌이 일어나는 경우는 거의 없다.

 

 

TIG> 엔씨소프트에서 일해본 소감은?

 

사장님이 개발자 출신이어서 그런지 개발자들이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어 있다. 그러나 개발 프로세스에서의 품질관리에는 굉장히 엄격하다. 사실 회사 내부의 사람들을 설득하지 못하는 결과물이 유저들에게 인정 받을 수 있을 리 없기 때문에, 내부 허들이 굉장히 높고 사장님도 엄격하다. 하지만 누구보다 배재현 전무가 회사에서 가장 엄격한 것 같다(웃음).

 

<블레이드앤소울>의 개발을 총괄하는 배재현 전무(우)와 김형태 아트디렉터. 

 

TIG> <블레이드앤소울>에 영향을 준 작품이 있다면?

 

굉장히 다양해서 딱히 무엇이라고 말하기는 힘들다. 특정 작품보다는 중국영화에서 무협을 다루는 스타일과 시각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 사실 우리나라에서는 무협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들이 정형화 되어 있어 그것을 벗어나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 분위기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중국 무협 영화들을 보면 소설을 보면서 우리가 상상하는 그것과는 다르게 굉장히 자유롭고 적극적이다. 예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동방불패>부터 <촉산전> <영웅> <칠검> 등을 보더라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무협과는 다르지 않은가. 그런 영화들의 접근법을 보면서 <블레이드앤소울>의 방향성에 대한 해답을 많이 얻는 편이다.

 

 

TIG> 팀원은 몇 명이나 되는가. 그리고 관리는 어떻게 이루어지나?

 

<블레이드앤소울>의 그래픽 팀원은 40명이 안된다. 사실 높은 코스트의 차세대 MMORPG 개발 프로세스임에도 팀원이 이 정도라는 부분에 대해 조금은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실제로 <리니지2> 개발인력과 비슷한 수준이기 때문이다.

 

이 정도의 인원으로도 운영이 되는 가장 큰 이유는 기존의 제작방식을 벗어나, 새로운 파이프라인을 구축했기 때문이다. 기존의 게임 제작방식을 그대로 적용한다면 지금보다 2배 이상의 인원이 필요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해외 개발자들의 GDC강연이나 각종 인터뷰, 관련서적들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거대 프로젝트를 적은 인원으로 효율적으로 개발할 것인가에 대해 끊임없는 고민을 했다.

 

그 결과 아직 완벽하진 않지만 소수의 인원으로도 효과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게 되었다. 사실 이런 개발 파이프라인 연구를 하지 않는다면 인력이 늘어남에 따라 퀄리티 관리와 인력 관리에 대한 코스트가 부정적인 효과를 발생시켜 자멸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그렇기에 끊임없이 연구하고 개선해 나가야 할 것이다.

 

 

TIG> 자신이 생각한 캐릭터가 제대로 구현되기 위해 어떠한 노력을 하는가?

 

초반에 3D 스타일링을 할 때 모두 함께 많은 연구를 하고, 그 내용을 문서로 만들어서 스타일가이드를 확실히 구축했다. 사실 그 이후로는 최소한의 마지노선은 존재하지만, 꼭 이래야 한다고 정형화된 것은 없다.

 

필요한 것들을 팀원들에게 최대한 설명해주고, 구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한다. 예전 같으면 내가 직접 하겠다고 발 벗고 나섰겠지만, 이제는 팀원들이 스스로 납득할 수 있는 결과물을 낼 수 있도록 함께 노력 하고 있다. 무엇보다 팀원들의 실력이 요즘은 매우 훌륭해서 신경 쓰지 않아도 될 정도이다.

 

이번 ICON 2008 강연에도 얘기했지만, 현재 가장 노력하고 있는 것은 모델링 자체보다는 그들을 돋보이게 하는 환경, 즉 라이팅 알고리즘과 쉐이더를 이용한 포스트 프로세스 등에 더욱 신경을 쓰고 있다.

 

 

 

TIG> 게임을 개발하는 도중, 파트끼리 의견조율은 어떻게 하나?

 

사실 기획, 프로그램과 끊임없는 논의나 논쟁을 한다. 그러나 나는 이러한 논쟁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라 생각한다. 만약 팀원 사이에 아무런 대화도 없이 계속 프로젝트를 진행해나간다면 나중에 더 큰 생각의 간극이 벌어져 프로젝트는 실패하게 될 것이다.

 

비록 상대방이 아무리 마음이 맞지 않고 얘기를 하기 싫더라도, 싸울지언정 자주 만나서 얘기하고 의견 조율을 해야 한다. 싸움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것들에 대한 철학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에 좋은 게임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TIG> 혹시 기획파트에 관여해보고 싶은 마음은 없나?

 

몇몇 사람들은 기획이 쉽다고 생각하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혹자들은 기획자와 싸우다가 차라리 내가 기획하는 것이 낫겠다라고 하는데 가장 바보스런 말이 아닐 수가 없다. 기획은 그림처럼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지, 정말 어렵고 쉽게 접근할 수 없는 분야이다. 반대로, 기획자가 에이, 차라리 내가 그리고말지라고 한다면 얼마나 웃기겠는가.

 

기획을 직접 하는 것보다는 앞으로 내가 가진 비전을 좋은 기획자들과 함께 공유하고 만드는 것이 나의 바람이다.

 

 

TIG> 현재 시스템적으로 변화를 주고 싶은 부분이 있나?

 

주로 하는 일이 팀장의 업무다 보니 아무래도 관리에 좀더 신경 쓰게 되는 것 같다. 그림을 많이 그리고 싶은데 그러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해외에 보면 10년 이상을 현직 아티스트로서 일하면서 성공한 작가들을 많이 볼 수 있다. 이처럼 후배들 본인이 선택함에 따라, 매니지먼트, 아티스트의 포지션을 유지하면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보고 싶다.

 

 

TIG> 사람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은가?

 

지금은 게임 개발을 위해 잘 보이지는 않는 부분에서 이것저것을 하고 있지만, 그것을 모든 분들이 다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그냥 그림 그리는 사람으로 기억을 해줬으면 좋겠다. 그림은 내가 평생 해야 할 일이고, 나의 인생이기 때문이다. 일단 지금은 <블레이드앤소울>의 성공을 위해 게임개발자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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