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가 다니던 초등학교에는 같은 반 친구들을 상대로 게임을 서비스하는 친구가 있었습니다. 자세하게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공책에서 게임을 그려서 캐릭터를 창조하고, 간단한 미션을 주어 그 캐릭터를 성장시키는 그런 RPG였습니다. 지금은 얼굴도 가물가물한 친구랑 한 학기 내내 그 짓을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만약 그 친구가 지금껏 공책 게임에 매진했다면, 기자가 만난 '레메' 김성근처럼 되었을 것입니다. 경주에서 나고 자란 레메도 창조의 재미에 매료되어 공책에서 자신의 게임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의 공책 게임은 학교에서 블로그로, 블로그에서 다시 구글플레이로 확장됐습니다.
Q. 디스이즈게임: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A. 레메: 인디게임 개발자 레메 김성근이라고 한다. 레메라는 닉네임을 쓰고 있다. 임의로 지은 닉네임으로 별 뜻은 없다.
Q. 원래는 게임 관련 블로그를 오래도록 운영했다고?
A. 친구들과 즐기는 용도로 2007년부터 보드게임과 설명 등을 만들어서 올리는 블로그를 운영했다. 졸라맨을 그려서 무슨 기술을 쓰고, 마법을 사용하는 컨셉트 아트를 엄청 그렸다.
Q. 초등학생 때 공책에 게임을 만들던 친구가 있곤 했는데, 그런 느낌인 건가?
Q. <매직서바이벌>은 어떤 게임인가?
A. 캐주얼한 핵앤슬래시풍 게임을 지향하고 있다. 엄청나게 많은 적들을 피하고 물리치면서 경험치를 습득하고, 마법을 얻어가면서 버티는 게임이다. 조작 방식이나 적의 패턴이나 난이도가 낮다 보니 캐주얼한 측면을 강조하고 싶었다.
Q. '캐주얼'과 '핵앤슬래시'는 일정 부분 대치되는 개념 아닌가?
A. 개인적으로는 게임이 <디아블로 2>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말하고 싶다. 사실 물약 단축키를 빼면 <디아블로 2>도 우클릭, 좌클릭만 있다. 그런 간편하고 단순하지만 스릴 있는 느낌을 스마트폰에서도 느끼게 하고 싶었다. 화면이 작다 보니 양손으로 플레이하면 조작에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아서 조작은 간편하되, 유저들이 몬스터를 학살하는 데 집중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Q. 게임 나온 지 1년 반이 지났다. 이런 반응을 예상했나?
A. 전혀 예상 못 했다. 10,000명만 내 게임을 해봐도 좋은 시작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은 국내외 통산 250만 명 정도가 내 게임을 플레이했다.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에서 내 게임이 알려져서 유입이 많이 됐다. 하루에만 DAU(Daily Active User)가 10,000명씩 잡히고 그랬다.
게임이 처음 나올 때부터 이런 장르를 좋아하시는 분들로부터 반응이 좋았는데, 커뮤니티 사이트에 직접 홍보하고, 리뷰가 쌓이고, 또 유튜버분들이 해주면서 반응을 얻은 것 같다.
Q. 네이버 공식 카페에서 혼자 유저들과 소통하고 있던데. 1인 개발자로 혼자서 여러 명을 상대하기가 쉽지 않았을 듯하다.
A. 많이 힘들다. (웃음) 메일이나 구글 댓글로 "소통의 창구가 필요하다"는 연락을 많이 주셨다. 그래서 공식 카페를 만들고 지금까지 혼자 운영 중이다. 소통이 편해지지 않을까 해서 만들어본 거였다.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가입해서 피드백을 남겨주고 계시다. 일일이 체크하고 있는데, 업데이트 방향을 잡기도 쉬워졌다. 힘들지만 유익한 일이다.
혼자서 운영 중인 <매직서바이벌> 공식 카페. 17,000명이 가입했다.
Q. 직원을 뽑거나 협업자를 찾고 싶다는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
A. 내가 주관이 강한 편이다. 그래서 남들 간섭받는 걸 싫어한다. 그래서 1인 개발을 선택했고, 지금도 혼자 움직이고 있다. 필요하다면 그림 그리는 사람 정도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있다. 지금은 협업을 해도 외주 비중을 늘이는 쪽으로 갈 것 같다. 내 식견이 좁으면 그만큼 다른 사람 의견을 듣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게임의 영어 버전 번역은 친누나가 직접 도와줬다.
Q. 수고비는?
A. 게임이 성공하고 선물을 많이 줬다. (웃음) 게임 용어에 어긋나는 번역은 유저 피드백을 받아서 고쳤다. 친누나 덕에 게임을 영어로 낼 수 있어서 항상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Q. 공시생 신분으로 <매직서바이벌>을 개발했다고 들었다. 뭔가 기구한 사연이 있었을 것 같은데.
A. 어렸을 때부터 취미로 게임 만드는 것을 좋아했다. 대학교 4학년 들어갈 무렵부터 동기들이 하나둘 취업을 하더라. 조바심이 났다. 1인 개발로 먹고살 수 있을까? 안전한 삶을 위해서 무작정 공시 공부를 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계속 미련이 쌓이더라. 나는 하고 싶은 게 분명히 있는데 이걸 제대로 해보지도 않고 공무원 되겠다고 준비하는 게 맞는 일인가 싶었다. 지금 게임 개발을 하지 않으면 평생 후회하겠단 생각이 들 때부터 부모님 몰래 게임을 만들었다. 공시 공부만 2년 했는데, 딱 그만큼만 게임 만들어보기로 다짐했다. 안 되면 취직을 하든, 다시 공시를 하든... 마음속에서 배수의 진을 쳐놓고 게임을 만들었다.
Q. 마음속 배수진 말고 구체적으로 어떤 어려움이 있었나?
A. 말한대로 부모님 몰래 게임을 만들었기 때문에, 집 밖을 전전하며 게임을 만들어야 했다. 도서관에서 공책에 기획서를 적고, 그걸 들고 피씨방이나 카페에 가서 코딩을 했다. 컴퓨터 좌석이 있는 도서관에 가서 그림을 그리기도 하고. <매직서바이벌>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나온 게임이다. 막상 개발은 3개월 안에 끝이 났다. 엔진은 유니티를 썼다.
레메의 개발 환경. 이제는 집에서 떳떳하게 개발할 수 있다고.
Q. 그렇게 게임을 냈고, 성공에 가까운 성적을 거두었다. 부모님께 진실을 말한 순간을 기억하고 있나?
A.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 출전한 게 계기가 됐다. 아무래도 인지도가 높은 행사라고 생각했다. 우리 부모님도 구글이라고 하면 뭔가 다 알고 계시고. (웃음) 수익도 계속 잡히고 있길래 '지금쯤 말해도 되겠다' 싶었다. 페스티벌 탑 10에 선정됐을 때 말씀드렸고, 탑 3에 최종적으로 올라갔을 땐, 함께 기뻐해 주셨다.
Q. 맞지는 않았는지...
A. 물론 처음에는 엄청 당황하셨다. 공부하라고 응원해줬더니 이렇게 속이냐며. 그때 구글 에드센스 화면을 보내드렸다. 인디게임 페스티벌이 유명한 행사라고 설명하고, 여기 탑10에 드는 게 무지 힘든 일이라고 어필했다. 그러면서 부모님께 천만 원 씩, 이천만 원을 용돈으로 드렸다.
Q. 그 정도면 용돈 아닌 것 같은데!
A. 거의 분 단위로 반응이 바뀌시더라. (웃음)
도서관에서 몰래 기록한 개발노트
Q. 어떻게 구글 인디게임 페스티벌에 참가를 결심한 건가?
A. 게임 개발자 커뮤니티에 많이 이야기가 나오더라. 고민할 것도 없었다. 바로 참여하게 됐다.
Q. 심사를 위해서 프레젠테이션을 잘해야 할 텐데, 비결이 있었나?
A. 그런 것보다는 솔직하게 발표했던 것 같다. 공시생이라는 이야기도 숨김없이 넣었다. 부모님 몰래 만든 게임이라는 말도 하고, 기획 노트도 프레젠테이션에 첨부했다. 솔직하게 내 이야기를 하면서, 내 게임의 모습을 설명했던 게 잘 먹혔던 것 같다. 그러면서 어떤 고충이 있었고, 그걸 어떻게 극복했는지도 이야기했다.
내가 일러스트나 그림 실력이 뛰어나지 않다 보니, 어떤 부분을 극단적으로 확대하기로 기획했다고 말했다. 몬스터들이 작은 스마트폰 화면에 우글거리면 인상 깊지 않겠나? 이런 말들을 했다.
Q. 탑3에 오르고 구글플레이로부터 어떤 지원을 받았나?
A. 행사가 끝나고 BM 설계나 광고 집행에 대한 전문가를 연결해줬다. 모델분이랑 유튜브도 찍었다. 그 영상이 올라가니까 게임에 사람이 엄청 늘더라.
Q. 많은 인디 개발자들이 홍보에 애를 먹는데, 그 부분이 해결됐다?
A. 서포트를 많이 받았다. 또 구글플레이에서 내 게임에 대한 유저 리뷰를 pdf 형식으로 정리해줬다. 2페이지, 3페이지 넘는 장문도 읽을 수 있었고... 그런 이야기를 읽으면서 정말 감사를 많이 느꼈다.
Q. <매직서바이벌>의 비즈니스 모델(BM)은 무엇인가?
A. 광고 시청, 광고 제거 옵션, 포인트 판매, 포인트 획득량 2배 증가 총 4개가 있다. 광고 시청 말고 나머지 옵션도 생각보다 성과가 나더라. 그러니 여기서 뭔가를 크게 추가할 생각은 없다.
Q. 이번에 구글이 수수료를 15%로 낮추었고, 그 대상자가 됐다. 소감이 어떤지?
게임에 대한 사항이 빽빽하게 적혀있는 개발 노트
"이 정도는 해야 '탑3' 하는 겁니다"
라고 말하는 듯한 개발노트
Q. 공시는 완전히 그만둔 건가?
A. 아마 죽을 때까지 게임을 만들 거 같다. 게임 개발이 이렇게 재밌다는 것을 맛을 봐서 그런지 다른 일을 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 거창한 생각을 해본 적은 없고, 그저 어릴 때부터 내가 상상한 것들을 표현하고 싶은 욕구가 클 뿐이다. 그 이상으로 크게 된다거나 그런 것도 좋지만, 당장은 실현하기에 먼 산 같이 느껴진다.
Q. 본인이 설계한 <매직서바이벌> 세계에 아쉬운 점이 있다면?
A. 코로나19 시국인데 마침 게임의 테마가 바이러스 질병과 그것에 대한 연구, 실험이다. 유저들이 받아들이기 힘들지 않을까 걱정했다. 이 시국이 되기 전에 개발이 완료된 게임이다. 게임에 대한 결말까지 전부 구상이 완료됐고, 차차 업데이트를 통해 뒷 이야기와 스테이지를 추가할 계획이다.
Q. <매직서바이벌>은 아직 iOS에 출시되지 않았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A. 미국에 무슨 서류를 내야 하더라. 그 서류가 나오고, 이번 업데이트가 끝나면 아이폰 출시에 착수할 생각이다.
Q. 앞으로의 계획을 말해달라.
A. 일단 여러 게임을 만들어보고 싶다. 색다르고 내 개성을 드러내는 여러 게임을 내고 싶다. 아직 개발을 시작한 지 2년도 안 되는 초보 중의 초보다. 배워야 할 게 많다. 한동안은 <매직서바이벌>의 라이브 서비스에 집중하고 싶다. 내가 <매직서바이벌>에서 표현할 게 없어지면, 그때 신작을 만들 것 같다.
카드게임도 만들고 싶고, 나만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클리커 게임도 구상해본 적 있다. 내가 구상한 것을 전부 하려면 혼자서는 버거울 것 같다. 그때쯤 되면 다른 사람들과도 협력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Q. 다른 인디 개발자와는 교류하는지?
A. 집이 경주다 보니 실제 교류는 없고, 온라인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돌아다니고 있다. 기회가 된다면 서울이나 판교로 옮겨보고 싶다.
Q. 게임 개발이 왜 매력 있는 것 같나?
A. 내가 그린 그림에 의미가 부여되는 게 좋다. 아이템을 그리다 보면 그냥 그림이 아니라 능력치가 합쳐지지 않나? 내가 만든 세계 안에서 어떤 기능을 발휘하는 게 매력적이다. 눈에 직접 결과를 보고, 플레이할 수 있으니까 상상력을 조금 더 구체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데 매료되었다.
Q. <매직서바이벌> 플레이어를 비롯해서 고마운 사람에게 한 마디씩 남겨주시라.
A. 처음 출시한 게임인데도 많은 분들의 관심을 받았다. 초보 개발자로서는 엄청난 호사를 누리고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즐기는 분들, 앞으로 즐길 분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도록 계속 업데이트하고 노력하겠다.
부모님한테는 이제 혼자서 나 자신을 책임질 수 있으니, 돈이 어떻든 전망이 어떻든 후회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게임 개발에 도전하고 싶은 분에게, 정말 진심이라면 도전하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을 만큼 게임 개발을 좋아하신다면, 한 번 '몰빵' 해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