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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루아이소프트의 조재준 대표이사(오른쪽 사진)가 “동물을 의인화한 캐릭터로 횡스크롤 MMORPG를 만들자”는 의견을 꺼냈을 때, 사원들의 반응은 싸늘했다. 지금 시대에 그런 게 통할 것 같냐는 구박과 회의적인 반응이 나왔다.
그래도 대표이사라는 권한을 앞세워 꿋꿋이 캐릭터 디자인을 진행했는데, 하필이면 가장 안 귀여운 ‘뿔 족’의 캐릭터 이미지가 먼저 완성됐다. 2등신 주제에 귀엽기는커녕 거친 콧김을 연신 뿜어대는 터프한 소인간을 본 사원들은 분노가 폭발, 조재준 대표를 회의실에 가두고 ‘처형식(?)’을 진행했다.
조 대표의 이야기를 빌리자면 ‘회의실에서 사원들에게 빙~ 둘러싸여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굴욕적인 자아비판의 시간’이었단다.
그런데 1차 클로즈 베타테스트(이하 CBT)의 반응이 좋게 나오자 상황이 달라졌다. 조재준 대표가 내세운 동물 캐릭터와 반강제적인 콘텐츠 주입이 의외로 인기를 끈 것이다. 이제 입장이 바뀌었다. 조 대표는 기세를 몰아 마음껏 사원들을 구박하는 중이다. ‘억울하면 너희들도 성공한 아이디어를 내놓으라’는 앙심이 담긴 구박이다.
물론 사원들은 조 대표의 구박을 견뎌 내며 ‘반격의 기회’만 엿보고 있다. 새로운 아이디어로 역전을 꿈꾸는 사원이 있는가 하면, 대표의 콧대를 꺾어 주기 위해 내심 2차 CBT가 적당히(?) 실패하기를 바라는 사원도 있을 정도란다. 이쯤 되면 회사생활 자체가 ‘게임’이다.
지금은 홍 코너에 조재준 대표가, 청 코너에 나머지 사원들이 올라가 있지만, 언제 입장이 바뀔 지 모른다. 재미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은 재미있는 사람들, 블루아이소프트의 조재준 대표와 사원대표(?) 이승국 개발팀장을 만나 봤다.
여담이지만 인터뷰 도중 조재준 대표(왼쪽)는 이승국 개발팀장(오른쪽)의 연봉삭감을 4차례 ‘제안’했다. 사진 속의 표정은 그 결과물이다.
■ “유저가 지루해 할 틈을 주지 않겠다.”
조재준 대표가 말하는 <애니멀 워리어즈>는 ‘코스요리 같은 게임’이다. 조 대표는 기존의 온라인 게임 콘텐츠를 뷔페에 비교했다. 레벨을 오를수록 요리(콘텐츠)가 추가되고, 유저는 그중에서 입맛에 맞는 것만 골라서 즐기면 된다.
뷔페식 콘텐츠는 선택의 폭이 넓어 다양한 유저들의 욕구를 골고루 채워 줄 수 있다. 유저의 입장에서도 원하는 콘텐츠만 즐기면 되고, 개발사에서도 일단 가능한 ‘많이’ 만들어 두면 누군가는 재미있게 즐기는 만큼 부담도 적다. 전쟁을 싫어하는 유저에게 굳이 PvE를 강요하거나 던전 및 파티플레이를 억지로 시키지도 않는다.
하지만 뷔페식 콘텐츠는 ‘편식’을 조장하기 쉽다. 유저들은 자신에게 가장 잘 맞는 콘텐츠를 찾아 낸 후 이를 반복할 뿐이다. 많은 온라인 게임에서 ‘즐기는 사람만 즐기는’ 격투장이나 전쟁 등이 대표적인 예다. 유저들은 다양한 콘텐츠를 앞에 두고도 반복적인 사냥이나 아이템 생산에 지루함을 느낀다. 수많은 콘텐츠가 무색해지는 순간이다.
장인 따로, 전쟁유저 따로, 사냥유저 따로. 이게 일반적인 온라인 게임의 모습이다.
그래서 <애니멀 워리어즈>는 ‘코스요리 방식’을 선택했다. 전쟁과 던전, 이벤트 전투 등 각종 콘텐츠 속으로 유저를 계속해서 밀어 넣는 방식이다.
일상적으로 몬스터를 사냥하다 보면 전쟁이 시작됐다는 메시지가 나온다. 유저는 바로 전쟁 맵으로 이동해 다른 유저들과 전투를 벌이게 된다. 전쟁을 마치고 다시 사냥하다 보면 이번에는 유저를 던전으로 소환한다.
일반 맵에서도 긴장의 끈을 놓을 수는 없다. <애니멀 워리어즈>의 모든 맵에서는 15분 단위로 랜덤한 이벤트가 벌어진다. 보스 몬스터가 나올 수도 있고, 보물상자가 쏟아지거나, 대규모 몬스터의 침공이 시작되는 일도 있다.
이처럼 <애니멀 워리어즈>는 각종 콘텐츠를 코스요리처럼 끊이지 않고 유저 앞에 대령한다. 콘텐츠마다 보상도 확실하고 버튼 하나면 어디에서든 접근할 수 있다. 그것도 반강제다. 유저가 다양한 콘텐츠를 ‘즐길 수밖에’ 없도록 만드는 것이다. 유저가 지루하다고 생각할 틈을 주지 않겠다는 것이 개발진의 목표다.
모든 콘텐츠는 ‘가만히 있어도’ 참가하게 된다. 물론 직접 찾아서 즐기는 것도 가능하다.
■ “핵심은 콘텐츠의 속도조절과 유저 의견 반영”
초기에 <애니멀 워리어즈>를 개발할 당시에는 내부 반발도 심했다. 유저의 의사와 상관없이 ‘강제적으로 콘텐츠를 주입하는 일’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재준 대표는 자신의 생각을 고집했다. 맵의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고 같은 몬스터만 종일 잡는 것은 게임의 즐거움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저처럼 온라인 게임에서 다른 유저와 대화하지 않는 유저들은 파티를 맺는 게 귀찮아서 던전조차 잘 안 가잖아요? 그런 유저들이 자연스럽게 ‘같이 놀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조 대표가 <애니멀 워리어즈>에서 콘텐츠를 강제로 주입하게 된 원인이다.
다행히 1차 CBT에서는 유저들의 대부분이 콘텐츠 주입 시스템을 좋게 평가했다. 특히 자신이 평소에는 즐기지 않던 콘텐츠를 해 봤더니 의외로 재미있었다는 반응이 많았다.
그래서 2차 CBT부터는 콘텐츠가 나가는 타이밍이나 보상 등을 좀 더 연구할 생각이란다. 손님의 식사속도에 따라 다음 메뉴가 나오는 속도를 조절하는 고급 레스토랑처럼 말이다.
콘텐츠의 속도조절이 핵심이다.
다양한 콘텐츠를 ‘무조건’ 보여 주다 보니 부담도 크다. 하나, 하나의 콘텐츠가 모두 유저의 마음에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유저들이 특정 콘텐츠를 ‘싫어하는 일’이 생기면 곤란하다.
그래서 <애니멀 워리어즈>는 콘텐츠를 업데이트하기 전에 두 가지 목소리를 듣는다. 첫 번째는 개발진 모두의 거침없는 이야기다. 앞에서 소개한 블루아이소프트 특유의 ‘비판적인 분위기’도 직급을 가리지 않는 자유로운 회의와 토론 덕분에 가능한 일이다.
두 번째는 유저의 의견이다. <애니멀 워리어즈>는 테스트를 통해 특정 콘텐츠를 ‘맛만’ 보여준 다음, 유저들의 반응을 보고 이를 업데이트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우선 2차 CBT에서는 <애니멀 워리어즈>의 메인 콘텐츠인 기지전을 강화한다. 1차 CBT에서 유저들은 자동으로 적진을 향해 달려가는 유닛들 속에서 기지전을 벌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생산한 유닛에게 돌진과 후퇴 등의 간단한 명령을 실시간으로 내릴 수 있다. 조 대표는 반응이 좋을 경우 기지전을 간단한 전략 시뮬레이션 수준까지 강화할 생각이다.
그리고 동물 캐릭터가 본성을 드러내는 ‘궁극체 변신’과 ‘종족 간의 전쟁’을 새롭게 선보인다. 물론 두 콘텐츠도 테스트 후의 유저 반응에 따라 업데이트 방향이 조금씩 달라진다. 조 대표는 유저들의 의견을 통합하기 위한 개발노트도 운영할 예정이다.
최대한 자유로운 개발을 위해 다른 게임을 즐기는 일도 최대한 자제하고 있다는 조 대표는 “<애니멀 워리어즈>를 자신의 색을 내는 게임으로 만들고 싶다”며 인터뷰를 마쳤다.
<애니멀 워리어즈>(//aw.mgame.com)는 현재 2차 CBT가 진행 중이며, 올해 3분기(7월~9월) 중 오픈 베타테스트를 진행할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