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사람은 예전에도 캐리라고 불렸다. <스타크래프트: 브루드워>의 프로토스 종족을 너무 사랑하는 이 사람은 프로토스와 테란의 경기를 중계할 때마다 “캐리어 가야죠. 캐리어 가야합니다”라고 외쳤다. 아비터의 등장으로 인해 캐리어 전략이 자주 등장하지 않았을 때에도 “그래도 결국 프로토스는 캐리어를 가야한다”고 외쳤다.
이 사람은 지금도 캐리라고 불린다. <리그오브레전드>에서는 한 사람이 팀의 승리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면 그 사람을보고 “캐리했다”고 말한다. 캐리어를 사랑해 캐리라고 불리던 이 사람은 최근 <리그오브레전드>를 사랑해 캐리라고 불리고 있다. 이 사람은 스타에서도 캐리, LOL에서도 캐리로 통하는 온게임넷의 김태형 해설위원이다.
스타리그가 한 동안 열리지 않았고 새롭게 개막한 프로리그에 과거 MBC게임에서 활동하던 간판급 해설위원들이 자리를 잡으며 김태형 해설위원의 모습은 한 동안 보이지 않았다. 그랬던 김태형 해설위원은 차기 e스포츠의 주력 종목이 될 것으로 기대되는 <리그오브레전드>와 함께 돌아왔다.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에 ‘나는캐리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리그오브레전드>를 알리고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
디스이즈게임은 지난 2월 28일 김태형 해설위원을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와 나는캐리다부터 한 동안 마이크를 잡지 못하고 있는 <스타크래프트>까지. 가벼워보이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김태형 해설위원과의 뜻깊은 인터뷰를 지금 공개한다. / 정리, 사진=디스이즈게임 김경현 기자, 진행=디스이즈게임 심현 기자
◈ <리그오브레전드>로 돌아온 김캐리.
한 동안 모습이 보이지 않던 김태형 해설위원이 <리그오브레전드>로 돌아왔다는 소식은 참으로 반가웠다. 10년 동안 e스포츠를 대표하는 해설위원 중 한 명인 그가 <스타크래프트>의 침체를 통해 설 자리를 잃은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리그오브레전드>의 첫 대회였던 인비테이셔널에는 전용준 캐스터, 엄재경, 김동준 해설위원이 마이크를 잡았다. 하지만 결국 김캐리는 돌아왔다. ‘나는캐리다’와 <리그오브레전드>와 함께 말이다. 그리고 그는 지금 10년 e스포츠 인생 중 최고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위기가 지나면 기회가 온다는 옛 말이 정말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최근 근황이 궁금합니다. 바쁘실 것 같기는 한데 어떻게 지내고 계시는지 자세하게 이야기를 좀 해주세요.
심해에 빠져 허덕이고 있지요(웃음). 심해의 끝은 어디인가. 그 깊이를 파악하려고 내려가는 중인데 그 깊이를 알 수가 없습니다. 이게 끝인가 싶으면 더 깊은 곳이 있더라고요. 우주의 크기를 알 수 없듯이 심해의 깊이는 측정을 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리그오브레전드> 정말 많이 하실 것 같습니다. 하루에 얼마나 하고 계십니까?
먹고, 자는 것 빼고는 계속 하고 있습니다. 아, 일하는 것도 빼야겠죠. 정말 많이 합니다. 목숨 걸고 하고 있죠.
LOL에 입문을 하게 된 계기가 궁금한데요.
해외에서 잘 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하게 됐어요. 그래도 직업이 게임 해설위원인데 최대한 많은 게임을 해봐야 한다고 생각했고, 처음에는 그런 측면에서 접하기 시작했죠. 작년 여름? 북미 오픈 베타 테스트 기간 동안에 시작을 했고 한국에서도 가능성이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처음에 했을 때 느낌이 어떠셨어요?
아, 이거구나 싶더라고요. 한국에서 무조건 된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그런 촉이 좋아요(웃음). RTS의 명맥이 끊어지고 MMORPG가 대세인 시기에도 게임을 해보고 잘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면, 그 게임들은 다 떴어요. 제가 재미 없다고 말하면 다 망하더라고요.
LOL에 끌리는 이유가 뭘까요?
재미있어요. 다른 이유가 필요합니까? <스타크래프트>를 처음 할 때의 느낌이에요. 사실 저에게는 익숙한 장르가 아니었는데 그래서 더 재미있었던 것 같아요. 신선했습니다. 그런데 또 신기한 것은 같은 장르의 다른 게임은 한 두 번 하고 안 했어요. 스타1 유즈맵이나 워3 카오스를 접하면서 ‘왜 이런 장르의 단독 게임이 안 나오나’ 싶었는데 LOL이 나온 겁니다.
아무래도 해설위원이시고 오랫동안 e스포츠에 몸을 담고 계시잖아요. e스포츠 가능성도 많이 고민하실 것 같습니다.
게임에 익숙해지고 나니까 가능성이 보이더라고요. 랭크 게임을 뛰고 깊이 빠져 들수록 확신이 들었어요. 일단 대중들에게 인기를 끌려면 쉽고 재미있어야 하는데 LOL은 쉽고 재미가 있어요. 그런데 또 빠져들어서 연구를 하다 보면 오묘한 것들이 있어요. 정말 단순한 게임 시스템이지만 그 단순함 속에 오묘함이 있다는 말이죠. 그래서 참 재미있어요. 챔피언도 정말 다양하고요. 챔피언들의 스킨 시스템들도 정말 기가 막히죠. 스킨의 매력도 상당하다고 봅니다.
흥미를 느끼기 전까지 함께 한 사람이 있습니까?
혼자 했어요. 힘들었어요. 다 영어였고요(웃음). 디스이즈게임을 많이 봤죠. 요즘은 다른 곳 보고요(웃음).
디스이즈게임의 리그디스가 많은 도움이 됐나요? 정말입니까? 립서비스 아니에요?
그럼요. 정말 많이 도움이 됐죠. 당시에는 유일하게 정보를 구할 수 있는 사이트였죠. 아, 그리고 저는 전 챔피언들의 스킨들을 다 샀을 정도로 열성적이었습니다. 그런데 라이엇에서 최근에 방송에서 쓰라고 계정을 하나 주더라고요. 전 챔피언, 전 스킨이 열려 있더라고요. 땅을 치고 후회를 했죠(웃음).
공교롭게 ‘캐리’가 여러 가지 의미로 쓰이고 있습니다. 뿌듯하실 듯 합니다.
별명 정말 잘 지어주신 것 같아요. 누가 지은 지도 모르겠어요. 스갤인가? 누가 붙여준 것인지 정말 감사합니다. 밥이라도 한 번 사고 싶은데요. 밥 한 번으로 안 될 것 같아요. 스카너나 알리스타 스킨을 선물해줘야 하나(웃음).
◈ 폭발적 인기의 ‘나는캐리다’, 비하인드 스토리.
<리그오브레전드>와 함께 돌아온 김태형 해설위원. 그의 진가가 발휘되기 시작한 곳은 중계석이 아니었다. 예능 및 정보 프로그램 나는캐리다가 복귀 무대였다. 사실 김태형 해설위원은 이 프로그램에서 그 동안 갈고 닦은 LOL 실력을 마음껏 뽐내고 싶었다고 한다. “내가 해설위원이지만 LOL 실력이 엄청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하지만 뚜껑을 열어보니 첫회부터 ‘멘붕(멘탈 붕괴의 준말로 게임이 잘 풀리지 않아 정신력이 무너지는 것)’ 현상을 겪고 말았다. “아, 이게 아닌데” 싶었지만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지금 ‘나는캐리다’는 우리나라 최고의 LOL 예능 정보 프로그램으로 손꼽히고 있다.
나는캐리다가 만들어지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개인적으로 작년이 참 힘들었거든요. 스타리그도 안 열렸고 프로리그도 못하고 말이죠. 휴식기를 꽤 오래 가지게 됐어요. 어깨를 다치면서 수술도 받았어요. 그런 와중에 온게임넷 제작팀을 만나서 이야기를 했죠. 제가 먼저 이렇게 물어봤어요. “나 그만둘까?”라고요. 그런 분위기에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LOL 이야기를 하게 됐죠. 제가 먼저 리그는 그렇다 치고 그 전에 뭔가 만들어보자고 제안을 했죠. 기존에 방송에서 보여준 틀을 깨보자면서 계속 생각했던 포맷에 대해 설명했죠. 시대가 시대인 만큼 개인방송의 느낌을 최대한 많이 주고 싶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사실 언뜻 보면 정말 싸죠. 싼 맛의 방송? 그렇지만 방송의 틀을 깨면서 유저들의 공감대를 이끌면 된다고 생각했어요. 그게 적중한 것 같습니다. 발생하는 상황에 대해서 같이 느끼고 공감할 수 있게, 그렇지 않은 사람은 ‘왜 저렇게 멘탈이 붕괴되나?’라는 궁금증을 갖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본인의 생존 의지와 LOL에 대한 가능성이 만들어낸 작품이 나는캐리다군요.
LOL에 승부수를 던진 거죠. 지금까지 없던 것들을 해보자. 그런 겁니다. 제작진도 좋아했어요. 왜냐면 제작진도 LOL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뭔가 공감을 한 거에요. 만약 제작팀 PD가 LOL을 하지 않았다면 방송을 못 만들었겠죠. 실제로 온게임넷 내부에서는 반대의 목소리도 있었습니다. 기존 중계에서 보여지는 저의 색깔이 ‘나는캐리다’ 포맷과 맞지 않다며 의문을 품었던 분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행했죠.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반응도 좋았고 다행입니다.
성공요인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가장 중요한 성공요인을 하나만 꼽자면?
공감대죠. 정말 초고수가 나와서 정보 전달을 진지한 분위기 속에서 했다면 어느 정도는 먹혔겠죠. 처음이니까. 하지만 그런 포맷은 실질적으로 LOL을 깊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 마니아들에게는 효과가 별로였을 겁니다. 게임 소개, 정보 전달류 프로그램은 수명이 짧죠. 저희는 게임을 열심히 하고 있는 사람들과 공감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면서 신규 유저들도 궁금증을 갖게 만들게 하고 싶었고요.
초반에는 방송 포맷이나 분위기를 지금보다 무겁게 가져가려고 했었다고 들었습니다.
그 당시 제가 북미에서 랭크 1600점 정도였어요. 나름대로 자부심이 있었죠(웃음). 스타1의 경우에는 선수와 해설위원의 격차가 너무 커진 듯한 느낌이 있어요. 해설위원이라면 게임에 대한 이해도가 남달라야 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그것이 어느 순간 한계가 느껴지더라고요. 선수들의 실력이 워낙 대단하니까.
그런데 LOL은 생각보다 괜찮더라고요. 스타1 만큼의 진입장벽이 있는 것도 아니고, 랭크 게임도 계속 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있었죠. 그래서 욕심이 생겼습니다. “내가 이 정도 실력이다. 자신이 있다. 유저들에게 스타1과 다르게 LOL은 실제로도 정말 잘하는구나”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다소 진지했어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으려고 했죠. 재미와 정보 전달을 해드리려고 했어요.
그런데 첫 방송 때 ‘쌌잖아요’. 바로 심해로 갔죠. 아, 안되더라고요. 집에서 하는 것처럼 게임이 안 되더라고요. 막타도 못 먹겠더라고요. 그래서 첫 방송 끝나고 곧바로 비상 회의를 했어요.
그런데 반응이 좋았단 말입니다. 팬들의 호응이 대단했습니다.
사실 걱정을 많이 했어요. 정말 욕 많이 먹을 줄 알았는데 오히려 반응이 좋았어요. 신선하다는 반응? 시청자들도 아마 그랬을거에요. 저의 실력에 대해서 기대를 했겠죠. 그런데 막상 보니 똥을 싸고, 멘탈 붕괴를 하니까 ‘공감대’를 느낀 거죠.
첫 방송에 대한 반응을 보고 기분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어리둥절하기도 했을 것 같은데요.
저는 1회 촬영을 하면서 자제력을 잃었습니다. 난 분명히 스스로 가 잘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게임이 망하는거에요. 그래서 자제력을 잃고 망가지고 무너졌죠. 오만가지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게 얼굴에 드러났고 시청자들도 보신 겁니다. 사실 정말 걱정 많이 했습니다. 하지만 팬들의 반응이 생각보다 좋아서 안도했어요.
2회 때는 어떤 마음가짐이셨나요? 1회 때 멘탈 붕괴에 대한 반응이 좋았다고 해도 더 잘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은 여전했을텐데요.
“그래도 내가 조금 하는데”라는 생각을 계속 했죠. 2회 때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1회는 방송 긴장 때문이라고 위안을 했고요. 그런데 2회 때 또 싼 거에요(웃음). 그래서 마음을 비웠습니다. 아, 그냥 이렇게 계속 가자. 예능으로 가자는 마음을 먹었죠. 그렇게 되니까 정말 편해졌어요.
리얼 버라이어티 트렌드를 따라간거네요. 생생하게!
꾸미지 말자는 것이 최고의 가치에요. 변하지 않을 겁니다. 방송이라는 것이 정형화되어 있고 가식적이기도 한데 그것을 탈피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제작진에게 주문을 했어요. “방송인들에게는 어려운 일일 수도 있지만 방송이 아니라고 생각을 하면서 방송을 하자”고 말을 했죠. 물론 말도 안 되는 이야기죠. 저도 어려웠고요(웃음).
선수도 함께 멘붕하는 현상이 발생한 것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제작진과 우리가 고민했던 것이 있죠. 너무 예능으로만 가면 금세 식상해질 수도 있지 않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일종의 강의도 하고, 정보 전달도 하고, 눈이 정화되는 플레이도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선수들을 부른 겁니다. (웃음)그런데 선수도 싸요. 대박이었죠. 팬들의 반응이 “저기만 가면 선수도 무너진다”며 좋아하시더라고요. 물론 모두 무너진 것은 아니었습니다(웃음).
나는캐리다에 대한 애정이 대단한 것 같습니다. 이 프로그램을 더 많이 발전시키고 싶으실 것 같은데요.
키우고 싶은 마음이 절실하죠. 신규 유저들을 유입시키고 싶고요. 나만의 사명이죠. LOL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선수들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주고 싶었어요. 일종의 마케팅 툴로 말입니다. 이 프로그램은 선수 하나하나의 색깔을 보여주기에 최고의 포맷이라고 생각을 하거든요. 실제로 그렇잖아요. 정말 몰랐던 선수인데 나는캐리다에 나와서 알려진 선수들이 많잖아요. 그런 측면에서 기쁩니다. 로코도코나 클라우트템플러 같은 선수 솔직히 나는캐리다 안 나왔으면 누가 알았겠어요. 그런 성격들인지(웃음).
해설위원 출신이다 보니 정보 전달력, 분석력에 대한 욕구도 있을지 모릅니다. 상당수 시청자들은 김캐리가 중계 마이크를 잡는 모습을 보고 싶어할 것 같은데요.
개인적인 바람으로는 리그 해설위원을 하고 싶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리그오브레전드 더 챔피언스 스프링 2012 예선전에서도 해설을 했던 것이 좋았어요. 나는캐리다와 달리 리그에서는 진지한 모습을 보여드렸다고 보거든요. 그런 욕심이 있어요. 이제 온게임넷이 결정을 할 부분이죠(웃음).
어찌됐든 나는캐리다를 하면서 시청자들은 항상 무거운 것만을 원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처음에 아프리카에서 개인방송으로 연습을 할 때도 느꼈어요. 직접적으로 팬들의 반응을 보니까 그 가까움을 굉장히 좋아하시더라고요. 물론 주변에서는 ‘김태형이 왜 그런 곳까지 나가냐’는 반응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무엇보다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았고, 팬들이 저를 더 친숙하게 느끼기 시작했으니까요. 실제로 요즘은 안티가 없어요(웃음). 처음입니다. 이런 적은. 욕하는 사람보다 공감을 해주는 사람이 많으니까 확신을 한 거죠. 리그 중계를 하게 되면 나는캐리다를 통해 느꼈던 것들을 어느 정도 접목시키고 싶어요. 그렇게 되면 정말 좋겠죠. 그렇게 되길 바라고요.
나는캐리다를 하면서 해설위원으로의 스킬이 하나 더 생겼다고 볼 수도 있겠네요.
그렇죠. 그걸 이번 예선에서 한 번 써먹었죠. 직접 랭크 게임을 하니까 픽밴 장면에서 ‘카운터픽’을 이야기했고 실제로 맞았죠. 게임을 하면서는 유저들의 마음을 대변해주고요. 게임을 안 하면 모르죠. 안 하면 정말 모르는 것들을 알게 된 겁니다.
◈ 나는 <스타크래프트>의 김캐리다.
<리그오브레전드>로 이야기를 시작했지만 <스타크래프트>에 대한 이야기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의 김캐리를 있게한 게임이자 10년 가까이 스타리그의 간판 해설위원으로 활약할 수 있게 해준 게임이다. 그런데 최근 김태형 해설위원은 <스타크래프트> 리그 중계 마이크를 잡지 못하고 있다. 팬들도 아쉽고, 본인도 아쉬운 일이다. 이에 대한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들어보자.
10년 동안 한 스타크래프트 중계를 갑자기 못하게 됐죠. 어떤 느낌이었습니까?
허전했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리그를 못하게 되니까. 기본적으로 먹고 사는 일이 급해졌고요. LOL을 하면서도 팬들이 항상 ‘스타리그 언제 하냐’고 물어오기도 했죠. 답답했죠.
프로리그는 유지가 되었기 때문에 프로리그 중계를 할 것으로 기대하는 사람들도 많았습니다.
제가 부족했던거죠. 원망하진 않아요. 그런데 사실 밀려난 느낌 때문에 굉장히 속상하기는 했습니다. 10년 넘게 해왔는데 그런 느낌을 받으니까 불안하고 막막하기도 했어요. 몸과 마음이 모두 힘든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점점 더 LOL에 빠져들게 된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젊은 해설위원들과의 경쟁에서 밀렸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어떤 점이 부족했던 것 같으십니까?
감각이죠. 그것은 제가 인정합니다. 부인할 수가 없어요. 고민을 했던 부분이기도 하고요. 서운하고 속상해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요.
스타1 초창기, 전성기 때는 정말 열심히 하시지 않았습니까? 10년이라는 세월이 감각을 무뎌지게 만든 걸까요?
스타1 초창기 때는 지금 LOL에 대한 느낌과 똑같았죠. 해설위원마다 특성이 다 다르기는 하지만 저는 해설위원이라면 게임을 잘 알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원래 저는 직접 게임을 하고 선수처럼 느끼고 이해를 하는 스타일이거든요. 저는 제가 플레이를 하지 않으면 해설을 하지 못합니다. 그런데 솔직히 스타1은 그 벽에 부딪힌거에요. 스타1은 언제부터인가 더 이상 선수처럼 플레이를 할 수가 없었거든요. 저는 플레이를 하는 선수가 느끼는 감정, 마음을 전달을 해주고 싶었어요. 그래서 캐리어라는 유닛을 울부짖었고 프로토스들의 어려움을 대변하게 된 겁니다. 하지만 더 이상 선수들의 입장을 이해할 수 없는 순간이 찾아오니까 내 해설이 재미가 없어졌죠.
스타리그가 재개 된다고 해도 스타리그 해설을 안 하게 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은 잘 모르겠어요. 현실적인 부분도 있지만 스타리그는 나를 대표해주는 그런 곳이고 브랜드거든요. 지금의 김캐리를 있게 하고 e스포츠를 시작하게 했던 스타리그를 포기하는 것은 정말 아깝죠. 나 대신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해설을 한다는 것을 보기가 힘들죠. 이율배반적인 생각입니다.
스타2가 출시됐을 때 많이 기대하시고 준비도 많이 하셨던 것으로 압니다.
솔직히 이 이야기를 하면 화가 많이 나요. 왜 일을 이 지경으로 만들었을까. 전반적인 상황이 화가 났어요. 스타2 처음에 나왔을 때 정말 열심히 했죠. 배틀리포트를 만들러 전용준 캐스터와 함께 미국에도 갔죠. e스포츠 팬의 한 사람으로 스타1을 계속 하고 스타2도 함께 하면서 자연스럽게 흘러갈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상황이 정말 웃기게 됐잖아요. 거기서 화가 났습니다. 왜 이 지경이 되었을까 하는 분노가 개인적으로 있었죠. 실제로 준비도 정말 많이 했고요. 지금 스타2는 약간 침체된 것 같아요. PC방에 가도 스타2를 하는 사람이 별로 없어요. 안타까워요. 자연스럽게 모두 함께 할 수 있는 상황이 될 수 있었는데 전혀 그렇지 않았잖아요. 그런 상황이 너무 오래됐어요.
스타2에 대한 기대감은 버린 것인가요?
솔직히 앞이 안 보여요. 공식적으로 스타2를 모두 함께 해봅시다라는 상황도 아니고요. 그런 상황이 되면 생각이 달라지겠죠. 그런데 지금은 아니잖아요. 상식적으로 팬, 유저들이 바라봤을 때 e스포츠 주체들이 화합된 모습으로 게임 하나를 e스포츠로 육성하려고 노력하면 좋아해줄 수 밖에 없어요. 하지만 아니잖아요. 팬들도 다 아는데. 그런 상황 때문에 실망한 팬들이 정말 많을 거에요.
초창기 스타리그 준비할 때와 지금 LOL 리그를 준비할 때를 많이 비교합니다.
맞아요. 비슷한 점들이 있는 것 같아요. 몇 개의 문제점이 보이기는 하지만 비슷한 분위기에요. e스포츠로 성공을 하기 위한 전제조건은 ‘게임이 재미있어야 한다’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쉽게 할 수 있고, 보는 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죠 스타1은 그것을 충족시킨 게임이고요. LOL도 그런 부분을 어느 정도 충족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걱정스러운 부분도 있어요. 스타1은 초창기 때 PC방 열풍이 불고 대회가 열리면서 저변이 넓어졌죠. 반면 LOL은 그게 잘 안 될 거에요. 스타는 나 혼자만 잘하면 짱을 먹을 수 있어요. 하지만 LOL은 나와 비슷한 사람 네 명을 더 찾아야 합니다. 그게 한계에요. 대회 저변 확대에 조금 더 어려운 면이 있을 겁니다. 옛날처럼 중소 대회, 아마추어 대회도 별로 없을 거고요.
5:5 시스템, 방송을 보여주는 측면에서도 스타1과 다른 점이 많은데요. 경기 시간도 길고. 그런 부분이 e스포츠에 얼마나 적합한가도 고민을 해야하지 않을까요?
보는 재미는 괜찮은 것 같아요. 같은 5:5 방식인 FPS와 비교했을 때 괜찮죠. 개인적으로는 LOL이 너무 5:5에만 집중이 되어 있는 것 같아서 아쉽기도 합니다. 모든 챔피언들이 나와서 철권이나 던전앤파이터, 와우 투기장처럼 싸우는 모드도 있으면 어떨까 싶기도 해요. 상상을 하는 거죠. 5:5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그런 것들이 나올 수 있다고 보거든요. 라이엇게임즈도 계속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오랫동안 보는 재미를 다양하게 주기 위한 방법을요. 2:2, 3:3 같은 모드가 5:5 만큼의 재미를 줄 수 있다면 더 나아질 텐데 말이죠.
◈ 뜨겁게 몰아치고 있는 LOL 열풍, 김캐리가 분석한다.
그 누구보다 많은 게임을 하고 있는 <리그오브레전드> 전문가 김태형 해설위원. 그는 최근 e스포츠 업계에 불고 있는 LOL 열풍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까? 수많은 게임을 하고 있고 나는캐리다를 통해 프로게이머들과도 직접 호흡을 맞추고 있는 김캐리의 생각이 궁금했다.
LOL 열풍이 불었습니다. 그리고 같은 장르의 게임이 봇물 터지고 있습니다. 이 현상은 어떻게 보는지 궁금합니다.
사실 다 기대가 됩니다. 도타2나 블리자드 도타는 특히 기대가 됩니다. 블리자드 도타는 심상치가 않죠. LOL이라는 선두주자가 있는 상황에서 블리자드가 내놓는 게임이 아마 만만치 않을 거라고 봅니다. 그리고 사실 스타2에서 약간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고 싶은 마음도 있을 거고요. 분명히 자극이 됐을 거에요. LOL이 블리자드 도타에 자극을 줬을 거란 말이죠.
비슷한 게임이 많이 나오면 리그 흥행에 부정적이지 않을까요.
제가 보기엔 더 긍정적이에요. 생각해보시면 애초에 e스포츠 시작과 더불어 히트를 쳤던 것은 RTS에요. 그런데 지금은 RTS가 없어요. 그게 무슨 말일까요? 스타1은 그 뒤를 따라줄 장르가 없었죠. 초창기에는 아트록스, 임진록, 쥬라기원시전, 킹덤언더파이어까지 RTS가 얼마나 많았습니까. 지속적으로 게임이 나오고 다양하게 나온다는 것은 유저들에게 좋은 거에요. 종목의 다변화를 위해서도 경쟁력이 있는 게임들이 계속 나와줘야해요. 그런 경쟁을 통해서 살아 남는 것이 좋죠. 오히려 안 나오는 것이 더 큰 문제죠. 뭐, 솔직히 팬들은 지금 신났죠(웃음). 이것저것 게임 많이 나오니까 말이죠.
캐리의 저주! 정규시즌이 곧 개막합니다. 특히 주목하는 팀은?
누구나 다 생각하는 것처럼 MiG와 나진이죠. 그리고 또 주목해야 할 팀은 스타테일 정도? LOL은 결국 5:5 팀워크가 중요한데 그것을 극대화시킬 수 있는 것은 ‘합숙 훈련’입니다. 그래서 그걸 하고 있는 팀들은 주목을 할 수 밖에 없어요. 스타테일은 시스템을 가진 팀이에요. 주목을 할 수 밖에 없죠. 원종욱 감독이 갖고 있는 팀 시스템의 노하우를 무시할 수 없죠. TeamOP는 그런 면에서 점수가 깎였습니다. 물론 다섯 명이 모두 라일락이면 말은 다르죠(웃음). 제닉스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김캐리가 감독이라고 가정을 하고요. 팀의 라인업을 추린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는 서포터 MiG 매드라이프죠. 미드에 나진의 훈. 정글러는 고민이 되네요. 클라우드템플러냐 모쿠나쟈. (고민하다가)나진 모쿠자. 탑은 나진 막눈. 원딜은 MiG 로코도코. 로코도코는 매라와 함께라면 최고죠. TeamOP 라일락은 코치, 플레잉코치로 하면 좋겠어요(웃음).
이 선수들이 어떤 챔피언을 주력을 하면 좋을까요.
미드 훈이는 라이즈, 탑 막눈은 이렐리아, 정글러 모쿠자는 아무무, 원딜 로코도코는 트리스타나, 서포터 매드라이프는 알리스타. 완전 탱키한 조합이네요. 여기에 라일락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니까 플레잉코치. 언제든지 부족한 자리에 들어가서 완벽한 조커 역할을 할 수 있을 겁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LOL 팀입니다. 김캐리의 팀이죠. 모쿠자가 게임이 잘 안 풀린다 하면 상대 팀에 현실 갱킹 하면 돼요(웃음). 그리고 로코도코의 마이크를 켜서 상대 팀에게 멘트를 들려줘야해요. 필히 상대 팀을 멘붕시킬 수 있을 겁니다.
LOL은 챔피언들이 굉장히 많죠. 리그가 되면 쓰는 챔피언들만 쓰일거다라는 우려가 있습니다. 어떻게 보시나요?
지금은 고인이 된 챔피언도 있고, 잘 안 쓰이는 챔피언도 있고, OP가 된 챔피언도 있죠. 하지만 재미있는 것은 ‘카운터’의 개념이 있다는 겁니다. 아무리 강해도 그것을 저격할 수 있는 챔피언들이 있거든요. 분명히 변화무쌍한 조합들이 나올 것으로 믿습니다. 요즘에야 주챔프를 쓰거나 밴하는 시스템인데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변화가 올 것 같아요.
기존의 프로게이머 중 LOL의 세계로 넘어오라고 유혹하고 싶은 선수가 있나요?
김캐리의 팀 구성 중에 정말 진지하게 서지수 선수를 넣고 싶어요. 진지합니다. 진입장벽은 스타만큼 높지 않아요. 지수는 스타1에서 최강이고요. 스타2를 시작해도 여성 중에 최강이 될 것 같아요. 하지만 개인전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난 지수가 왜 저기 있는지 모르겠어요. 지금 LOL을 하면 완전 대박이에요. 이미 스타지만 더 스타가 될거에요. 분명히 대박 날 겁니다. 실력도 좋을 거고요. 세계적인 스타가 될 수 있어요.
제가 만약 감독이 된다면 분명히 영입할 겁니다. 무조건 영입 시도할거에요. 보통 여성 게이머들을 데려온다면 힐러 계열, 서포터 계열을 생각하지만 서지수 선수는 달라요. 캐리할 수 있는 선수에요. 미드가 잘 어울릴 겁니다. 미드 챔피언의 역할은 라인 유지의 역할도 있지만 탑과 바텀의 갱킹을 잘해야 하거든요. 그러기 위해서는 미니맵을 잘 봐야 합니다. 그런 면에서 스타 선수들이 강점이 있어요.
만약에 스타1 게임단들이 LOL로 전환한다면, 경쟁력이 있다고 보시나요?
충분하죠. 정말 충분하죠. 스타1을 완벽하게 소화하는 피지컬이면 못하는 게임이 없어요. 스타1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게임이에요. 가장 쉽게 진입했지만 최고 레벨이 되려면 가장 어려운 게임이에요. 하지만 빨리 와야 해요. 늦으면 안 됩니다(웃음). 3개월 정도만 팀 짜서 연습하면 여기 최고 레벨 팀들과 경쟁이 가능할겁니다. 아직 전향 선수가 없거든요. 그것이 조금 아쉬워요. 아마 스타2도 있고 팀 소속이기도 하고 그래서 그럴 겁니다. 느려요. 반응이 느려.
소환사 협곡에 빠져서 심해를 탈출하지 못하는 공방 양민들에게 조언을 해준다면.
심해는 처음에 빠지면 멘붕 유발은 기본이고, 화가 납니다. 팀원들을 탓하게 되며 입도 거칠어지죠. 간혹 호흡 곤란이 오며 몸이 무거워지기도 하죠. 일종의 잠수병이죠. 하지만 더 깊은 심해에 빠지면 빠질수록 면역력이 생깁니다. 그냥 즐기세요. 심해의 끝은 어디인가. 그 깊이를 탐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겁니다. 그냥 즐기세요. 심해를 굳이 탈출하려고 용쓰지 마세요. 어차피 빠져 나오기 힘들거든요(웃음). 천상계를 맛보고 싶으면 그냥 대회 중계를 보세요.
e스포츠 주류 장르가 RTS에서 MOBA로 넘어갔다고 보시는지.
주류라고 하기에는 그렇고요. 유행이라고 봐야겠죠. 유행 장르? 그런 측면에서 지금은 RTS보다 MOBA 쪽이 더 유행을 타고 있다고 봅니다. 앞으로 스타1 같은 게임이 나오면 또 모르겠지만 말이죠. 물론 변수는 스타2의 확장팩인 군단의 심장이고요.
이제 나이가 마흔살이십니다. 게임만 하기에는 더 생각해야 할 미래가 있는데요. 앞으로의 꿈이 궁금합니다.
그냥 지금처럼 해설하고 싶고, 방송하고 싶어요. 그러면 좋을 것 같아요. LOL은 롱런할 수 있다고 봅니다. 지금 느낌으로는 그래요. e스포츠가 약간 침체기였는데 그 분위기를 캐리해 줄 것 같아요. LOL이 잘되면 다른 게임들도 자극을 더 받겠죠. 새로운 동력이라고 봅니다.
뜻깊은 인터뷰였습니다(웃음). 나는 캐리다는 계속 멘붕하실 건가요?
제가 멘붕하고 싶어서 하는 게 아니에요. 멘붕이라는게 원래 자연스럽게 되는 거 아닙니까(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