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다 보면 어떤 결정으로 인해 예상치 못한 이득을 볼 때가 있다. 꼬이고 꼬이던 일이 예상 외의 방향으로 흐를 때도 있고, 단순히 보람을 위해 시작했던 일이 예상 외의 이득을 거둘 때도 있다. 지금 올엠의 상황이 딱 그렇다.
<루니아Z>의 서비스 종료에 아쉬움을 느끼고 글로벌 프리서버를 운영하겠다고 발표했던 올엠이 예상외의 호재를 만났다. 온라인게임으로는 드물게 클라우드 서버 방식을 실험할 기회를 얻었고, 클라우드 서버를 지원하는 아마존에서 적극적인 지원도 받고 있다.
각국에서 <루니아Z>를 자신들의 언어로 번역해 주겠다는 사람을 만나 프로젝트를 시작했고, 끝까지 고객을 위한다는 명성도 얻었다. 글로벌 서비스 경험과 구글 애드를 통한 광고, 자체 번역 프로그램 등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생겼다.
“우리 게임이 없어지는 게 아쉬워서 시작했던 일이 이렇게 커질 줄은 몰랐어요.” 월 2만 달러의 유지비가 드는 결정을 내렸지만 올엠 이종명 대표의 얼굴은 마냥 밝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사람을 택한 게 이 정도의 즐거움을 줄 줄은 몰랐다는 이 대표를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올엠 이종명 대표이사.
올엠은 지난 9월 <루니아Z>의 서비스를 종료한다고 발표했다. 넥슨과의 퍼블리싱 계약이 해지되면서 내린 결정이었다. 새로운 퍼블리셔를 찾기에는 시간이 부족했고 차기작 <크리티카>에 이미 많은 인력과 자금을 투자한 상황에서 경험도 부족한 자체 서비스를 시작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아쉬웠다. <루니아Z>는 올엠의 첫 타이틀이다. 2004년 개발을 시작한 이후 8년의 시간을 함께했고 지금의 올엠을 키워준 일등공신이다. 당장 개발자들부터 ‘멘붕’ 상태에 빠졌다. 이 대표도 마찬가지였다. “직원한테 ‘우리 게임 없어지는 거에요?’하는 소리를 들었는데 먹먹하더라고요.”
더 안타까운 건 서비스 종료의 이유였다. 즐겁자고 시작한 일이고 모두 재미있자고 하는 게임인데 다른 것도 아니고 돈이 안 돼서 접어야 한다는 사실이 너무 안타깝고 아쉬웠다. 여전히 전 세계에서 5만 명 이상의 유저가 접속 중인 게임을 확 관둔다는 점도 마음에 걸렸다.
많은 논의가 오갔고 게임을 남기기 위해 다양한 수단들을 검토했다. 문제는 돈. 그 때 아마존 클라우드 서버를 발견했다. 온라인게임보다는 웹게임이나 웹페이지 등에서 주로 쓰이는 서버지만 이를 이용하면 유지비를 1/4 수준으로 줄일 수 있다는 계산이 나왔다. 시험 삼아 진행 중인 미국 서비스도 성공적이었다.
예상비용은 월 2만 달러. <크리티카>가 잘되고 나면 생각하자는 이야기도 나왔지만 그 때는 이미 늦을 것 같았다.
“모 가수는 얼굴도 모르는 서울 시민들을 위해 감사공연을 하는 판에 우리는 더 고마운 고객들인데 이 정도도 못해주겠냐고 생각했죠.” 이 대표는 오기가 생겼다. 결국 서비스 종료에 맞춰 글로벌 프리서버를 열겠다고 발표했다.
■ 쏟아지는 도움의 손길, 가능성을 보다
글로벌 프리서버 발표 후 상황은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서비스를 종료하는데도 불구하고 욕 대신 개념 개발사라는 소리를 들었고, 자신의 캐릭터가 초기화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응원해주는 유저도 생겼다.
해외 유저들의 반응도 거셌다. 일부 유저는 글로벌 프리서버 이야기를 듣고 스스로 서버를 운영하겠다고 나섰으며 클라이언트의 번역을 맡겠다는 자원자도 생겼다. 클라우드 서버를 위한 전 세계 핑 테스트를 돕는 유저들도 있었고, 메일 등을 통해 도와줄 일이 없느냐고 먼저 묻는 유저도 있었다.
덕분에 올엠은 <루니아Z> 서비스 당시에도 못했던 독일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필리핀 전통언어, 아랍어 등의 클라이언트 개발에도 착수할 수 있었다. “돈을 떠나서 보람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정말 이런 결정을 내리길 잘했다는 생각도 들고요.”
유저들의 도움이 감동과 힘을 줬다면 아마존과의 협력은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줬다. 올엠이 글로벌 프리서버를 위해 선택한 아마존 클라우드 서버는 지금까지 (지연속도에 민감한) 온라인게임에서 이용한 적이 거의 없었다. 가격은 싸지만 지연속도나 안정성 등에서 해결할 일이 많기 때문이다. 그래서 <루니아Z>의 글로벌 프리서버 운영은 아마존에서도 큰 관심사다.
“아마존 테크니컬 팀에서 부쩍 많은 관심을 보이더니 어느 날은 아예 한국어로 답변을 보내주더라고요. 한국인 담당자가 생겼다고 하더군요.” 이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여기에 루니아닷컴 사이트에서 구글 애드를 통해 배너광고 수익을 얻거나 자사게임의 글로벌 광고수단으로 활용하고, 원하는 유저들의 기부를 통해 게임을 운영하는 등 다양한 사업적 아이디어가 쏟아지고 있다. 국가 간 자동 언어번역 기능을 만들거나 소스코드 공개를 통한 유저 콘텐츠 제작을 해보자는 이야기도 나왔다.
이쯤 되면 글로벌 프리서버보다는 거대한 기술실험장에 가깝다. 재미난 점은 대부분의 의견을 유저들이 제시했다는 사실이다. 돈이 걸리지 않은 게임인 만큼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데 부담도 적다. 그래서 올엠에서는 <루니아Z>의 프리서버를 통해 할 수 있는 건 모두 경험해 볼 생각이다.
“몇 년 정도 지나면 <루니아Z>의 프리서버 결정이 올엠에 있어서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이 모든 것들이 글로벌 프리서버 발표 후 두 달 사이에 벌어진 일이다.
■ 계산기를 내려 놓으니 즐거움이 보이더라
이 대표는 전형적인 경영자다, 경영학과를 나왔고 회사에서 그의 역할도 게임 개발보다는 사업을 하는 것이다. 그런 그에게 <루니아Z>의 프리서버 결정은 계산기를 두드려 봤을 때 ‘미친 짓’이었다.
유일한 매출원인 <루니아Z>를 포기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았고, 올엠 입장에서 월 2만 달러의 프리서버 유지비용이 적은 돈도 아니다. 지역마다 3대씩 총 50대의 서버를 사용하는 만큼 관리인원과 부수적인 비용도 생길 수밖에 없다. 우습지만 글로벌 프리서버가 너무 잘돼도 걱정이다. 그만큼 많은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사실 다들 걱정해요. 한두 푼도 아닌데 이러다가 또 제대로 구현도 못하고 접는 거 아니냐는 말도 나오고. 그런데 이상하게 걱정은 안 되더라고요. 그냥 어떻게든 되겠다는 생각만 들어요.”
이 대표의 밑도 끝도 없는 자신감의 출처는 즐거움이다. 즐거움을 주는 곳에는 사람이 모이고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무언가 방법이 생긴다. <루니아Z>만 해도 발벗고 나서서 도와주겠다는 유저부터 기부를 하겠다는 유저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그에게 남은 고민은 유저들의 정보 이전이다. 글로벌 프리서버다 보니 국가마다 버전이 달라서 정보를 합치기가 어렵고, 각 퍼블리셔에게 개인정보를 넘겨받는 일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최소한 친구 리스트만이라도 유지해주고 싶은데 마땅한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우리게임을 남겼는데 유저들은 자기 정보를 못 남기잖아요. 그게 제일 아쉽고 미안하죠.”
<루니아Z>의 글로벌 프리서버는 한국시간으로 10월 26일 서비스를 시작한다. 플레이를 돕기 위해 매달 두 번씩 일정량의 캐시도 지원된다.
올엠에서는 최후의 한 명이 남을 때까지 계속 서버를 열 예정이다. 만약 정 유지가 어렵다면 서버와 클라이언트를 유저들에게 전달해서 사설 프리서버로라도 남을 수 있도록 할 생각이다. 게임을 즐기기 위해 ‘불법’ 딱지가 붙거나 개발사의 사정으로 유저들이 원하는 걸 주지 못하는 상황은 너무 안타깝기 때문이다.
“사업을 10년 넘게 했는데 무엇을 하든 남는 건 사람과 즐거움이더라고요. 게임 비즈니스는 정말 즐거워야 하는구나 깨닫고 있어요.” 게임 개발 10년, 즐거움을 위해 잠시 계산기를 내려놓은 이 대표의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