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만사’는?] 한국 제 2의 도시이자, 올해로 국내 최대 규모의 게임쇼 지스타를 5회째 유치한 부산. 부산은 게임산업에 있어서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지역이지만, 서울과 멀리 떨어진 지리적인 위치로 인해 자주 취재할 수 없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디스이즈게임은 지스타 2013을 기점으로 부산에 있는 여러 게임계 인사들을 만나보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이름하여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 줄여서 부만사’입니다. 이번 인터뷰의 주인공은 부산에서만 게임 개발을 해 온 아이플레이의 박정원 대표입니다. 게임을 영화 이상의 문화 콘텐츠로 끌어 올리겠다는 그의 이야기를 들어 보시죠.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아이플레이 박정원 대표
부산에서의 게임 개발? 시 차원의 맞춤형 정책이 매력
부산 남구에 위치한 아이플레이의 박정원 대표는 부산 토박이입니다. 그가 게임 개발에 뛰어든 것은 2004년. 업계에 입문한 2004년부터 10년 가까이 부산에서 게임을 개발해 왔습니다. 주로 서울 개발자만 아는 ‘서울 촌놈’(저)은 반사적으로 질문 하나를 던졌습니다. ‘부산에서 게임을 개발한다는 것은 어떤 건가요?’
“이런 질문이 나온다는 것부터가 이미 부산이 게임 개발에 쾌적한 곳은 아니라는 뜻이겠죠?(웃음) 솔직히 서울과 비교해 뒤떨어지는 점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죠. 부산에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은 모두 정말 게임을 좋아하는 사람들일 거예요.”
서울에 비하면 부족한 인력, 그리고 부족한 인프라. 아무리 부산이 한국 제 2의 도시라고는 하지만, 모든 것이 서울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국내의 상황을 고려하면 부족한 점이 적지 않습니다. 일례로 부산에는 게임 관련 교육기관이 3개나 있지만, 이 곳에서 배운 학생 중 부산에 어떤 게임 개발사가 있는지 제대로 아는 이는 찾기 힘들죠. 이런 환경 덕분에(?) 부산 개발자들은 서울 개발자들보다 더 똘똘 뭉치고 서로의 성공을 더더욱 빌어준다는 것이 박 대표의 설명입니다.
“편한 환경이 아닌 만큼 더 서로 교류하고 도와주는 것 같아요. 다들 잘돼서 부산이 영화의 도시, 문화의 도시라는 명칭 말고도 ‘게임의 도시’라는 인식이 생겼으면 좋겠어요. 그런 의미에서 최근 트리노드가 개발한 <포코팡 for Kakao>의 흥행은 동종 업계 종사자로서 매우 기쁜 소식입니다.”
서울보다 개발사들이 더 끈끈하게 연결된 것이 부산 게임계의 특징. 이미지는 부산 지역 게임사들의 모임 중 하나인 ‘부산게임협회’ 로고.
물론 힘든 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몇 년 전부터 계속되어온 부산광역시 차원에서의 지원 정책은 부산 개발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되고 있죠. 개발사가 많지 않아 각 업체의 수준에 맞는 다양한 맞춤형 정책도 매력적입니다. 소소한 행정적 편의는 물론이고, 중앙 행정부에서 주도하는 게임 진흥 정책이나 국가 주도 프로젝트도 부산에 유치해 개발사들의 사업도 챙겨주죠.
또한 2009년부터 부산에서 열리고 있는 ‘지스타’는 그 존재만으로도 부산 지역 개발사들에게 많은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부산 개발자들에게 지스타는 천국이죠.(웃음) 게임도 마음껏 알릴 수 있고, 평소 만나기 힘든 서울 지역 개임사나 투자자도 만날 수 있으니까요. 특히 뒷부분이 커요. 평소에는 서울 지역 게임사와 만나려면 KTX 타고 올라가도 하루에 두세 곳이 한계였는데, 지스타에서는 관계자들과 느긋하게 바다구경을 해도 대여섯 곳 미팅은 거뜬하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지스타는 게이머뿐만 아니라, 개발자들에게도 축제와 다름 없죠.”
지난 14일부터 17일까지 부산 벡스코에서 열린 지스타 2013 현장 모습.
놀면 나쁘다? 게임은 영화 이상의 ‘문화 콘텐츠’
게임 개발자로서 그가 생각하는 ‘게임’이란 무엇일까요? 박 대표가 현재 꿈꾸고 있는 게임은 유저가 상호작용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단순히 개발자가 일방적으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아니라, 게임이라는 틀을 이용해 유저가 이야기를 고민하고 선택해 그 과정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게임을 꿈꾸고 있죠.
“개발팀 모두가 영화광이에요. 어느 날 영화의 끝은 어딜까 얘기하는데 자연스레 게임으로 의견이 모아졌어요. 3D든 4D든 결국 관객에게 생생한 체험을 안겨주기 위한 것이잖아요. 그렇다면 쌍방향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을 수 있는 게임이야 말로 이야기 콘텐츠의 끝이 아닐까 하고요. 실제로 게임은 ‘체험’이라는 면에서도 책이나 다른 영상물보다 더 깊은 감동과 영향을 줄 수 있잖아요.(웃음)”
아이플레이가 현재 개발 중인 신작도 이야기의 쌍방향성에 초점을 맞춘 어드벤처 게임이다.
게임을 영화 이상의 문화 콘텐츠로 생각하는 만큼, 박 대표는 최근 화제가 되고 있는 중독법 관련 논란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습니다. 게임은 중독물질이 아니라는 자명한 사실이 엉뚱한 법 때문에 논란이 되고 있기 때문이죠.
“게임을 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중독법의 어떤 점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 있을 걸요? 애초에 ‘중독’이라는 개념 자체도 다르잖아요. 발의한 측에서 내놓는 중독은 물질적, 약리적 개념인데 게임은 여기에 포함되지 않죠. 그런데도 마치 마약과 같은 취급이라니... 개발하는 입장에서는 정말 화나고 기운도 빠지죠.”
그가 가장 답답한 것은 이러한 이야기를 게임을 즐기지 않는 다른 이들에게 쉽사리 꺼낼 수 없는 것입니다. 사회 기저에 깔린 게임에 대한 선입견도 그렇지만, 그 자신부터 게임업계 종사자이니만큼 어떻게 말해도 다른 이들에겐 ‘밥그릇 싸움’으로 비쳐지기 때문입니다.
“‘너는 게임 만들고 있으니 그렇게 이야기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가장 가슴 아프죠. 물론 이해는 가요. 우리나라는 옛날부터 일이나 공부에 관련된 것이 아니면 전부 나쁘게만 보아 왔으니까요. 게임 같이 역사도 짧은 놀이문화에 공감해 줄 사람은 많지 않겠죠. 하지만 그래도 게임은 나라에서 직접(문화체육관광부) 관리하는 문화 콘텐츠잖아요? 문화 콘텐츠면 문화 콘텐츠답게 대접해줬으면 좋겠어요.”
<인간의 숲> 작가와 만드는 정통 어드벤처
박 대표와 아이플레이가 최근 몰두하고 있는 것은 모바일 정통 어드벤처입니다. 프로젝트 <넥스트 시네마>(가칭)는 게임이 영화와 같은, 아니 영화 이상의 문화 콘텐츠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어 아이플레이 개발진이 의기 투합해 개발 중인 신작입니다. 프로젝트 이름부터가 영화 뒤에 올 문화 콘텐츠를 추구한다는 의미죠.
“게임도 깊이가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어요. 단순히 이야기만 전달하면 영화나 책 등 다른 콘텐츠와 다른 것이 무엇일까요? 생각하고 고민하고, 또 유저의 이런 노력들이 이야기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임을 만들고 싶었어요. 게임을 즐기며 유저들이 한 순간만이라도 고민을 할 수 있다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프로젝트 <넥스트 시네마>의 초기 설정 자료.
네이버 웹툰 <악연>과 <인간의 숲>으로 이름을 알린 ‘황준호’ 작가가 참여한 이 프로젝트는 생존물 콘셉트의 어드벤처 게임입니다. 기본적인 플롯은 폐쇄된 공간에서의 생존기. 이는 외부와 통행이 차단된 무인도일수도 있고, 갑자기 건물이 붕괴된 쇼핑몰일 수도 있죠. 극한 환경에서 맞닥뜨리는 다양한 상황 속에서 유저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게임의 핵심 콘텐츠입니다.
유저가 이야기에 개입해 흐름을 이끌어 나가는 것을 중시하는 만큼, 게임에서는 ‘진엔딩’ 같은 개념은 없습니다. 똑같이 <프린세스메이커> 시리즈를 즐기더라도 어떤 사람은 여왕 엔딩을 봐도 만족하지 못하고, 어떤 이는 미장이 엔딩에도 만족하는 것처럼 유저 스스로 각 엔딩에 의미를 부여하게끔 하는 것이 목표죠.
네이버 웹툰 <악연>과 <인간의 숲>을 그린 ‘황준호’ 작가가 <넥스트 시네마>에 참여하고 있다.
“폐기된 시나리오 중에 이런 것이 있어요. 학교폭력에 시달리던 학생이 무너진 쇼핑몰에서 자신을 괴롭히던 친구가 자재에 깔린 모습을 봐요. 그는 여기서 어떤 행동을 할까요? 폐허 속에서 살아나가려면 누군가의 도움은 필요한데, 그를 도와주면 다시 괴롭힘을 당할지도 몰라요. 어쩌면 복수하고 싶은 생각이 들지도 모르죠. 이런 상황 속에서 유저가 의미를 찾고 선택해주길 바라고 있어요. 그래서 게임에서는 따로 정해 놓은 해피엔딩도 없어요. 자신만의 소신을 따르다가 죽는 결말도 사람에 따라선 해피엔딩이 될 수 있으니까요.”
모든 시나리오에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은 엔딩의 수에 따라 같은 무게감의 시나리오와 게임 기획을 제공해야 한다는 것과 같습니다. 때문에 아이플레이 개발진과 황준호 작가가 가장 골머리를 앓고 있는 것은 이야기와 게임 디자인 그 자체입니다. 9개월 동안 갈아엎은 시나리오와 기획서만 벌써 7개. 이러한 고민은 현재 진행형으로 이어지고 있죠.
“처음엔 개발팀도, 황준호 작가도 모두 시나리오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라 쉽게 생각했어요. 그런데 모든 선택이 각각의 의미를 가지도록 기획과 시나리오를 짠다는 것이 쉽지 않더라고요. 또 단순히 선택지만 중시했다가는 게임이 비주얼 노벨이 되어 버리니 탐문이나 대화, 지목 같은 시스템도 생각해야 하죠. 그렇게 갈아엎은 기획서만으로도 게임 하나는 나올 걸요?(웃음) 덕분에 황준호 작가나 저나 주기적으로 며칠씩 서울과 부산을 오가고 있어요. 이럴 땐 정말 KTX가 고맙더군요.”
아이플레이와 황준호 작가가 개발 중인 프로젝트 <넥스트 시네마>는 2014년 여름, 웹툰과 동시 출시를 목표로 제작 중입니다. 그들의 작품이 프로젝트 이름처럼 영화 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을까요? 내년 여름을 기다려 보죠.
프로젝트 <넥스트 시네마>의 프로토타입 이미지(향후 바뀔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