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에 흔쾌히 응한 류호정 양.
게임은 남성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여성도 게임을 좋아하고 즐기고 있는 세상이다. 최근 다수의 여성들이 대회에 출전하며 이를 증명하고 있다. 온게임넷의 한 PD는 리그 예선전에서 “이런 반응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여성이기 때문에 신청의 벽을 낮췄지만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사실 여성들이 게임을 즐기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오래전부터 소수의 여성들이 게임을 즐겨 왔으나 전체적으로 보면 얼마 되지 않은 비율이었다. 다수의 여성들은 게임 보다는 드라마 시청이나 예능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등 게임과는 먼 여가생활을 해왔다.
게임과는 멀게만 느껴졌던 여자 대학에도 게임을 즐기는 동아리가 있다. 이화여자대학교에서 게임을 즐기는 학생들이 모인 ‘클라스’(Klass)라는 모임이다. 단순히 게임을 플레이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대회 출전 등 다양한 활동을 준비 중인 ‘클라스’는 사회의 불편한 시선을 바꾸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디스이즈게임 오경택 기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류호정: 안녕하세요, 저는 이화여대 e스포츠 동아리 ‘클라스 이화(Klass Ewha)’ 부회장인 사회학과 11학번 3학년 류호정입니다. 전국 e스포츠 대학 연합회 에카(ECCA) 총무도 함께 맡고 있습니다. 클라스는 독일어로 ‘멋진’, ‘훌륭한’이라는 뜻입니다.
현재 클라스 동아리의 현황을 알려주시겠어요?
현재 클라스는 약 30명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박희재 회장과 부회장인 저, 그리고 회원들로 구성돼 있고요. 특이점이 있다면 비상연락망을 작성할 때 이름과 학번, <리그 오브 레전드>(이하 LoL) 소환사명까지 같이 기재합니다.(웃음) 또 다른 특이점으로는 4학년이 없습니다. 만들어진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현재 2, 3학년이 중심입니다.
여대의 게임 동아리, 만들게 된 계기가 있을 것 같은데요?
혼자서 <LoL>을 하니까 외로웠어요. 게임을 즐기는 여성들이 소수이다 보니 주변에 게임을 하는 여성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그래서 학교 커뮤니티에 <LoL>을 하는 사람들이 있는지 묻는 글을 올렸더니 저 혼자만 있던 게 아니더라고요. 특히 <LoL>을 한다는 사람이 학교 동문이어서 더 반가웠고 쉽게 친하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너무 반가워서 게임을 함께 하다 보니 동아리가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게임을 함께 하는 소규모 모임이 동아리가 됐죠.(웃음)
동아리원들과 주로 어떻게 활동을 하시나요?
일반 동아리와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주로 공강 시간에 동아리방에 모여 게임을 합니다. 날을 정해서 식사도 같이 하거나 PC방에 가서 게임을 하기도 하고요. 예전에는 <LoL> 챔피언스에 단체로 관람을 가기도 했습니다. 또 동아리원들과 함께 내전도 합니다. 시간표가 달라서 10명이 모이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이럴 때는 동아리 원이 아닌 외부에서 지인(남성)을 영입을 해 게임을 즐기기도 합니다.
클라스에서 특별한 활동을 한 것이 있나요?
<LoL>을 기반으로 작성된 논문.
박희재 클라스 회장의 논문 일부 내용 발췌.
특별하다고 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클라스 회장이 <LoL>로 논문을 작성하고 롤챔스 통계를 산출한 적이 있습니다. 회장이 통계학과거든요.(웃음) 회장이 롤챔스 통계를 내보겠다면서 경기를 직접 분석했죠. 수식을 만들어 지난 서머 시즌을 기반으로 통계를 냈어요. 정글의 성향 분석을 비롯해, 정글러의 초식과 육식 판별, 라이너들의 cs 수 등 많은 통계가 동아리 카페에 있습니다.
KT롤스터 불리츠 정글러 '카카오' 이병권을 분석한 표, 그는 육식형이었다.
대화 주제를 잠시 돌려, 에카(ecca)를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실 것 같은데 설명좀 부탁드려요.
에카는 카이스트에 다니고 있는 윤덕진 회장을 필두로, 한국 이스포츠 동아리연합회(eSports Collegiate Club Association)입니다. 지난해 11월에 용산 e스포츠 스타디움에서 e스포츠에 관심 있는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갖기도 했습니다.
이화여자 대학교는 에카에 소속된 대학이기 때문에 가입을 결정하게 됐어요. 에카가 결성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류한 대학이 많이 없는 상황입니다. 교류할 대학들을 찾기 위해 홍보를 해서 알리고자 이번 레이디스 리그에 참여하기도 했고 이번 인터뷰에도 응했습니다.(웃음) 현재 에카에는 4개 대학이 가입했으며 더욱 많은 대학을 섭외하고 싶습니다.
여대생이 게임을 하는 것에 대해서 학우들이나 학교 측에서는 어떻게 생각하나요?
주변 시선이 좋지 않은 것은 사실입니다. 학교 측에서도 지원을 잘 안 해주려고 하죠. 우리 학교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이화여대는 중앙 동아리만 지원을 해줍니다. 그래서 우리가 중앙 동아리가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중앙 동아리가 되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에요. 중앙 동아리가 되기 위해서는 학교에 기여를 해야 합니다. 이름을 알린다거나 입상하거나 하는 것들 말이죠. 스포츠 관련 동아리들, 예를 들어 검도나 태권도 동아리들은 입상할 수 있어서 가능하지만 볼링과 포켓볼 등 어른들 눈에 좋게 보이지 않는 종목들은 지원을 받기 힘든 상황이에요.
특히 학교 내에서 남자가 많은 곳에서 게임을 한다는 반응과 우리학교에서 게임을 한다고 했을 때 우리학교에서 반응이 더 좋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일반 여성들이 좋아하는 드라마 시청을 즐기지 않아요. 다수의 여성들은 여가생활을 드라마를 보면서 지내는 것을 저는 게임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똑같은 여가 시간을 갖는데 왜 좋지 않은 시선을 받아야 하는지 잘 모르겠어요.
그러면 학우들은 클라스 동아리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요?
처음에는 단순한 게임 동아리라고 여긴 것 같아요. 하지만 최근 e스포츠 동아리로 인정을 받고 있는 분위기인 것 같습니다. <LoL> 레이디스 대회까지 출전하니 우리 동아리가 마냥 게임만 하는 것이 아니라 게임을 주제로 활동을 한다고 생각하고 인식이 바뀌기 시작한 것 같아요.
이제 14학번 새내기들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다가오네요. 어떻게 신입생을 받을 계획인가요?
3월이 되면 포스트를 만들어 신입생을 받을 계획이에요. 현재 <LoL>을 주로 하는 학우들만 모였지만 <하스스톤>과 같이 가벼운 게임을 즐기거나 게임을 좋아하지 않는 학생이라도 모집할 계획이에요. 개강과 동시에 홍보를 해야 상황인데 우린 우리대로 활동한 경력을 쌓아두고 가입 권유를 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부모님은 현재 게임을 좋아하시는 것을 알고 계시나요?
네 알고 있어요. 그래서 부모님도 걱정이 많으시죠. 저희 부모님은 예전부터 이화여대를 다닌 뒤 공무원이 되길 바라셨는데 저는 싫었어요. 제 성격이 워낙 자유분방해서 싫었죠. e스포츠분야에서 활동도 하고 싶고 게임 관련 분야에서도 일하고 싶습니다.
게임을 싫어하는 부모님이 대회까지 출전한 것을 알고 계시나요?
네 알고 계세요. 부모님들은 제가 게임하는 것을 싫어하시지만 막상 대회에 나갔다고 하니 방송이 언제인지 물어보셨어요.(웃음)
핫식스 아마추어 챌린지 레이디스 예선이 끝난 뒤 '클템'과 기념 촬영을 한 클라스.
온게임넷과 아프리카 레이디스 리그에도 출전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네. 온게임넷에서 8강 진출에 성공했는데요, 이어서 진행된 아프리카 리그에서 16강에 진출하지 못하면 ‘대리’ 소리를 듣게 될 것 같아 많은 부담이 컸습니다.
최근 많은 여성들이 방송 무대에 오르면서 대리 의혹이 많았습니다.
사회적 편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남학생들은 여학생들이 게임을 못한다는 편견이 있는 것 같아요. 여성이 조금만 못하더라도 대리나 버스를 탔다고 너무 쉽게 단정 짓는 것 같아요. 대회에 출전하기 위해서 각 포지션을 구하는 일이 쉽지 않은 일입니다. 대부분의 여성들은 서포터를 플레이하기 때문이죠. 주 포지션은 서포터지만 대회 출전을 위해 다른 라인에 서야 하다 보니 티어 실력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팬 분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시고 티어에 비해 실력이 낮아 비난을 하시고 대리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아서 마음이 아픕니다.
화제를 돌려 게임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는데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보시나요?
현재 20대의 자녀를 두신 부모님들은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으신 세대예요. 이제 갓 부모님이 되기 시작한 분들은 e스포츠를 경험하면서 성장하셨죠. 이분들의 아이들이 커서 PC방에 간다고 했을 때 우리 부모님 세대보다는 긍정적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