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게임학회가 게임과 관련된 법과 정책, 문화까지 연구 주제의 영역을 확장한다. 이재홍 학회장은 지난달 24일 열린 제 7대 한국게임학회 출범식에서 “게임의 순기능을 정부와 대중에 알려, 더 나은 게임 환경을 만들겠다”고 말한 바 있다.
제 7대 한국게임학회가 가야 할 길은 만만치 않다. 그동안 한국게임학회가 주력한 분야는 기획이나 프로그래밍, 그래픽과 같은 개발 관련 연구였다. 게임 관련 정책이나 게임의 순기능과 같은 연구는 사실상 바닥부터 쌓아 올려야 하는 실정이다. 대중에게 게임의 순기능을 알려주기엔 학회의 인지도가 높은 편도 아니다. 한국게임학회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이재홍 학회장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한국게임학회 이재홍 학회장
“중독법 사태를 보고 분야 확장을 결심했다”
올해로 설립 12주년을 맞이하는 ‘한국게임학회’지만, 게이머들에게 이 여섯 글자는 아직도 생소하다. 학회라는 왠지 무거워 보이는 단체의 성격 때문일까? 아니면 그동안 프로그래밍이나 그래픽과 같은 개발 관련 연구만 해왔기 때문일까? 이재홍 학회장은 어떤 것도 이유로 들지 않았다. 대신 그는 그동안 소홀해왔던 소통을 아쉬움으로 꼽았다.
“원래 교수들이 융통성이 부족한 경향이 있잖아요. 다들 전문가다 보니 자존심은 강하고, 또 연구만 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 스킬이 좋은 편도 아니고….(웃음) 구성원 대부분이 이러니 대외적인 활동이 거의 없었죠.”
한국게임학회는 기획이나 프로그래밍, 그래픽 등 게임 개발에 대한 학문적 연구를 위해 모인 단체다. 개발에 관련된 연구만 하다 보니 일반인들에게 알려질 기회가 적었고, 구성원 대부분이 일선 대학에서 활동하다 보니 산업계와도 학회 차원의 협업보다는 구성원(대학) 차원의 협업이 더 많았다. 학회에서 이러한 현상에 대해 별반 아쉬움도 느끼지 않았다. 그 결과가 지금 한국게임학회의 인지도로 이어졌다.
그런데 2013년, 상황이 달라졌다. 발단은 2013년 들어 부쩍 늘어난 규제 법안이었다. 학회 자체가 더 좋은 게임 개발을 목적으로 했던 만큼, 손인춘 의원의 매출 1% 징수법이나 신의진 의원의 중독법은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법이었다. 게임산업이 살아야만 학회도 존속할 수 있다는 현실적인 고민도 있었다.
문제는 어떻게 대응하느냐였다. 막상 각종 규제 법안에 대응하려 해도 그동안 함께한 단체가 없다 보니 힘을 쓰지 못했다. 명색이 ‘학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으면서, 납득할 수 없는 규제 법안의 논리에 대응할 만한 연구 결과가 없다는 사실도 한국게임학회를 좌절시켰다.
지난해 11월 지스타 2013 현장에서 중독법 반대 성명을 발표한 한국게임학회.
“국가는 규제 정책 난발하고 국회에서는 중독법까지 나왔는데, 학회는 학회대로 업계는 업계대로 따로 놀며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잖아요. 그동안 너무 따로 움직여왔던 게 새삼 떠오르더라고요. 더군다나 학회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은 학회라는 이름 하나만 보고 반대 논리를 기대하더군요. 그런데 정작 학회는 그동안 개발 관련 연구만 해왔으니…. 우리가 연구해왔던 게 후회되진 않지만, 그럼에도 이런 이슈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수 없었던 것이 계속 아쉬웠어요.”
그래서 이재홍 학회장은 7대 학회가 시작하는 2014년을 기점으로 기조를 바꾸기로 마음먹었다. 7대 학회의 슬로건은 ‘소통’. 그동안의 폐쇄성에서 벗어나, 2014년부터는 업계는 물론 정부, 국민과 소통하며 게임에 대한 순기능을 알리는 것이 목표다. 이를 위해 연구 분야도 개발 중심에서 벗어나, 업계와 게이머가 원하는 게임 관련 정책이나 문화, 심리, 과몰입 등으로 확장할 계획이다.
“사실 이런 움직임도 많이 늦었죠. 하지만 그래도 게임학회라는 이름을 달았으면 게임을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도 그동안 혼자 조용히 있었으니, 중립적인 입장에서 업계와 정부 사이를 조율할 수 있을 겁니다.(웃음)”
“게임을 주제로 한 달에 한 번 정부와 만나겠다”
7대 한국게임학회가 올해 가장 중점을 두고 있는 활동은 학회와 업계, 정부가 함께하는 집단토의다. 행사의 이름은 ‘대한민국게임포럼’(가칭). 이르면 올해 6월 첫 행사를 시작해, 한 달에 한 번 각계각층의 사람들과 만나 게임에 대한 현안을 토론하는 것이 목표다.
“그동안 학회를 보면서 가장 많이 아쉬웠던 것이 소통이었어요. 특히나 지난해 중독법 논란 때는 더욱 그랬죠. 그래서 올해부터는 여러 단체와 교류하며 게임에 대한 논의를 해보려고 해요. 중독법 이슈가 부각되면 중독이 맞는지 틀린지 규명하고, 만약 게임이 가지는 문제가 있다면 같이 고민하는 것이 목표입니다.”
한국게임학회가 꿈꾸는 대한민국게임포럼의 모습은 전문가와 이해관계자, 게이머는 물론 게임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진 이들까지 함께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이다. 물론 아직 한국게임학회의 인지도가 부족한 만큼, 포럼을 통해 대중적인 반향을 일으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때문에 6월에 시작될 첫 행사에서는 정부와 업계, 법조계를 중심으로 현재 이슈가 되고 있는 각종 규제 정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더 나은 대안을 제안할 계획이다. 급한 불을 끈 뒤에는 학부모 단체나 종교 단체 등 게임에 대해 부정적 인식을 가진 이들까지 초대해 허심탄회한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다.
“솔직히 게임이 완전무결한 콘텐츠라고 할 수는 없죠. 사람이 만든 것이니만큼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콘텐츠입니다. 그래서 포럼을 통해 서로가 가진 생각을 터놓고 나누고 싶어요. 당장은 게임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압도적이니 정부와 업체를 중심으로 현안에 대해 논하겠지만, 포럼이 안정되면 게임을 좋게 보지 않는 이들의 우려도 들으며 더 나은 게임을 만들어 가야겠죠.”
지난 1월 24일 있었던 7대 한국게임학회 출범식.
대한민국게임포럼 외에도 학회가 앞으로 준비 중인 프로그램은 다양하다. 기능성게임 관련 국제 컨퍼런스도 준비 중이고, 학부모나 대중을 대상으로 게임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바로잡는 강연도 계획 중이다. 먼 미래의 일이 되겠지만, 학회 자체적으로 좋은 게임을 선정해 대중에게 알리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
“물론 이 모든 프로그램이 성공하길 기대하는 것은 욕심이죠. 그동안 학회에서 다루지 않았던 성격의 프로그램인 만큼, 당분간은 포럼 하나에만 집중하며 차근차근 범위를 늘려갈 계획입니다. 7대 학회와 제게 주어진 시간은 2년. 1년 정도 꾸준히 쌓아가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결론이 나지 않을까요? 성공적이면 다음 학회까지 이어갈 기반이 되는 것이고, 만약 실망스러운 결과가 나오더라도 다음 학회와 학회장을 위해 뒷정리를 할 시간은 남아 있겠죠.(웃음)”
과연 7대 한국게임학회와 이재홍 학회장의 목표는 이뤄질 수 있을까? 그 첫 결과물은 올해 6월을 목표로 준비한다는 대한민국게임포럼에서 확인할 수 있을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