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한 수란?] 디스이즈게임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파일럿 코너입니다. 게임을 개발하고 출시하는 과정에는 많은 ‘선택’이 있습니다. 신의 한 수에서는 그 중 게임의 흥행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되는 ‘단 하나의 선택’을 꼽아 집중적으로 이야기를 들어보려 합니다.소위 말하는 대박이 아니더라도 기대 이상의 성적을 거뒀거나 최악의 상황을 막은 판단처럼 ‘소소하게 지나치게 쉬운 선택’들도 골고루 다뤄볼 예정입니다. 성공담을 기반으로 하는 이야기인 만큼 다른 기사와는 달리 조금은 ‘가볍고 간지러운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만 칭찬도 지적도 확실히 하고 싶은 TIG의 의지로 여겨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
오늘 소개할 ‘신의 한 수’는 다음게임의 <플래닛사이드2>입니다. 관계자부터 기자, 많은 유저들까지 한결같이 입을 모아 ‘게임은 좋지만 국내에서는 참패할 것이다’라고 예상했던 <플래닛사이드2>. 하지만 성공까지는 아니더라도 시장안착에는 충분한 결과를 거뒀죠. 어떻게 이 정도 자리매김을 할 수 있었을까요? 지금부터 이야기를 들어보시죠. /디스이즈게임 안정빈 기자
다음게임의 이정순 PM(왼쪽)과 김현호 마케터(오른쪽)
현지화는 현지에 맞게 게임의 다양한 시스템이나 콘텐츠를 바꾸는 과정을 뜻합니다. 간단하게는 언어를 바꾸는 현지화부터 크게는 해당 국가에 맞춘 별도의 콘텐츠를 넣을 때도 있습니다. <라그나로크>처럼 서비스되는 국가에 맞춘 던전과 지역 등을 추가하거나 게임방식과 요금제 등의 기본적인 부분까지 건드리는 ‘적극적인 현지화’도 있죠.
언제부턴가 온라인게임은 가능한 해당 국가에 맞춰 게임을 최대한 많이 바꾸는 ‘적극적인 현지화’가 주를 이루기 시작했습니다. 가능한 친숙한 용어들을 사용하고 출시에 맞춰 유저들이 좋아할 전용 아이템, 캐릭터, 탈것 등을 추가해 해당 국가 유저들이 게임을 보다 친숙하게 여길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입니다.
하지만 <플래닛사이드2>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미 완성된 게임을 억지로 건드려봐야 좋을 게 없다’는 판단 아래 한글화 이외의 어떤 현지화도 하지 않았죠. 그리고 아이러니하게도 이것이 <플래닛사이드2>가 국내 시장에 안착할 수 있었던 ‘신의 한 수’가 됐습니다.
모두가 부정했던 플래닛사이드2의 흥행
“왜 가져왔느냐? 성공은 무리일 거다. 서비스하는데 의의를 가지자. 악평이 쏟아졌죠. 아마 이 게임이 성공할 거라는 생각을 가진 건 (다음 안에서도) 우리 팀밖에 없었을 거에요” <플래닛사이드2>의 마케팅을 담당하는 김현호 마케터가 말하는 출시 전 <플래닛사이드2>의 분위기입니다.
다음에게 <플래닛사이드2>는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타이틀입니다. 대형 온라인게임 위주의 퍼블리싱을 선언한 다음의 첫 게임이고, 8월 1일 분사하는 다음게임의 첫 타이틀이자, <검은사막>과 <위닝펏> 등 향후 온라인게임을 얼마나 안정적으로 선보일 수 있느냐를 시험하는 무대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플래닛사이드2>는 국내에서는 성공하면 ‘기적’이라는 SF 세계관으로 모자라 경험치(서트)를 이용한 인증 시스템, 플래툰 기반의 집단전투와 얼럿(일종의 국가단위 퀘스트), 각종 탈것과 스킬 등 생소한 시스템만 모아놓은 게임입니다. 일반적인 사업팀에서 생각하는 국내 FPS게임 흥행공식과는 가장 먼 게임이기도 하죠.
그만큼 <플래닛사이드2>에 대한 현지화 요청은 강했습니다. ‘게임을 고치자. <서든어택>이나 <스페셜포스>처럼 최대한 쉽고 간단하게 바꾸고 국내 FPS게임 유저들의 감성에도 맞춰보자’는 의견이 줄을 이었습니다. 현지화팀의 고민도 여기서 시작됐죠.
게임을 접하지 않은 유저로서는 보기만 해도 막막해지는 화면
수 개월의 고민. 결국 믿은 건 자신의 고집
결국 수개월의 회의가 이어졌습니다. 바꿀까? 바꾼다면 어디를 바꿀까? 바꾸면 더 좋을까? 숱한 고민이 시작됐고 개발사인 SOE(소니온라인엔터테인먼트)와 이야기는 나누는 주기도 짧아졌습니다. 그리고 수개월에 걸친 고민 끝에 내놓은 결론은 ‘아예 현지화를 하지 말자’ 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 게임을 아무리 바꾼다고 <서든어택>이나 <스페셜포스>가 될 리가 없잖아요. 어차피 그 게임들이 될 수 없다면 차라리 특징이라도 최대한 놔둬야죠”
자연히 내부 반발이 이어졌습니다. 실패할 거다라는 악담부터 무책임하다는 비판, 최소한 아웃핏이나 플래툰, 스쿼드 같은 명사만이라도 익숙한 클랜, 연대, 소대 등으로 바꾸자는 간곡한 부탁까지 이어졌습니다.
“사실 명사 정도라면 바꿀 방법은 많았어요. 더 익숙하기도 하고 바꾸는 것도 정말 쉽고요. 근데 그럼 이게 <플래닛사이드2>라는 느낌이 들까요?”
이왕 부리는 고집, 더 부리기로 결정했습니다. 용어를 포함해 그 어떤 것에서도 현지화는 없다고 못을 박았습니다. 개발을 맡은 SOE에서는 당연히 쌍수를 들고 환영했습니다. 현지화 콘텐츠를 개발하지 않아도 된다는 얕은 생각도 있었겠지만 자신들의 게임을 인정해줬다는 기쁨이 컸죠. 모두의 걱정을 뒤로 한 채, 이야기는 술술 풀렸습니다.
문제가 되는 용어들. 바꾸는 건 어렵지 않았지만 어설프게 바꾸면 게임의 분위기와 세계관만 파괴할 거라 생각했다.
튜토리얼? 그냥 INSERT 키를 누르게 만들자
‘현지화를 하지 않겠다’
말만 들으면 굉장히 속 편하고 무책임한 발언 같지만, 내부에서 느끼는 무게는 많이 다릅니다. 인력과 자본이 없는 상황이라면 모를까, 이 모든 여력을 가진 상황에서는 자칫 현지화를 제대로 하지 않아서 게임을 망쳤다는 책임을 질 수도 있는 노릇이니까요.
특히 심하게 불안을 느낀 부분은 튜토리얼입니다. 최소한 이건 필요하지 않을까라는 의견도 내부에서 많았는데요. 이번에는 유저들이 튜토리얼을 얼마나 읽고 즐길까가 문제가 됐습니다. 결론은 이 역시 과감히 패스. 할 사람은 찾아서 하면 되는 북미 버전의 불친절한 튜토리얼을 그대로 가져갔습니다.
대신 유저들에게는 INSERT키를 두 번 누르라는 ‘초간단한 설명’에 집중했습니다. 참고로 INSERT키는 한 번 누르면 스쿼드(분대) 자동가입, 두 번을 누르면 스쿼드장의 위치로 자동이동을 시켜주는 버튼입니다. 전장을 하염없이 헤맬 확률을 낮춰주죠.
버튼을 누르면 일단 혼자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죠. 게임에서 가장 자주 나오는 도움말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남은 여력은 게임의 다른 점 알리기에 집중했습니다. 다른 국산 FPS게임과 비슷해 보이는 이미지는 최대한 지우고 홍보에서는 딱 하나 ‘대규모 전쟁’에만 집중했죠. 이는 출시 이후의 마케팅에서도 드러납니다. <플래닛사이드2>의 인터뷰든, 광고든, 홈페이지든 모든 홍보는 대규모 전쟁으로만 도배가 돼 있죠.
나머지는? FPS게임에 충분히 익숙한 유저들을 믿었습니다. FPS게임 한 번 안 해본 사람이 드문 국내 환경에서라면 총이 있고, 아군이 있고, 적이 있으면 충분히 적응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이었죠. 여기에 스쿼드를 이끌 조교인력을 다수 배치해서 게임 내에서 일일이 유저들을 커버했습니다. 김현호 마케터의 말을 빌리면 ‘가장 무식하지만 가장 정공을 택한 셈’입니다.
17일까지 운영되는 조교. 신규 유저 정착에는 큰 도움을 줬다는 판단입니다.
성공...까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시장에는 안착
업계에 알려진 <플래닛사이드2>의 출시 이후 성적은 1만 명에 조금 못 미치는 동시접속자와 PC방 순위 30위. 성공을 자신한 서비스팀의 목표에는 한참 못 미쳤지만, 최소한 ‘국내에서 <플래닛사이드2> 같은 게임이 성공할 리가 없다’는 말이 더 이상 나오지 않을 성적은 달성했습니다. 특히 PC방은 아무런 이벤트나 혜택이 없는 걸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성적입니다.
다음의 의도를 이해해준 북미서버의 한국유저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준 것도 큰 도움이 됐습니다. 국내에서 서비스하는 해외게임의 경우 북미서버에서 사전에 플레이하던 기존유저들과 신규유저 사이의 간극은 큰 골칫덩이가 되기 십상입니다.
반면 <플래닛사이드2>에서는 기존 유저들이 신규유저들을 스쿼드로 유도하고 이끄는 등 긍정적인 효과를 냈죠. 콘텐츠 하나라도 더 넣으려는 시기에 게임성만 믿고 지른 <플래닛사이드2>의 과감한(?) 현지화 정책은 충분히 성공적이었습니다.
만약 국내 FPS게임 시장에 맞춰서 게임을 확 뜯어고쳤다면 어땠을까요? ‘솔직히 죽도 밥도 되지 않았을 것 같다’는 게 <플래닛사이드2> 현지화팀의 솔직한 심정입니다.
국내 FPS와는 다르다. 이 사실을 강조하기 위해서는 작은 부분이라도 국내 FPS게임처럼 바꾸지 않을 필요가 있었습니다.
[에필로그] 뼈아픈 상용화. 그리고 남은 과제
남은 과제는 여전히 산더미입니다. 첫 상용화에서는 충분한 소통이 부족한 탓에 유저들로부터 뼈아픈 지적을 들었고, 여전히 ‘큰 성공을 거뒀다’고는 말하기 민망한 성적입니다.
점검마다 부스터가 사라지는 탓에 점검마다 부스터를 추가로 지급하고, 당분간 부분유료화 모델에서도 빼버린 해프닝도 있습니다. 북미 서비스에서 문제가 됐던 클라이언트 설치문제도 여전하죠.
개발을 SOE에서 담당하는 만큼 믿고 기다릴 수밖에 없지만 온라인게임이 발달한 국내에서는 특히나 부끄러운 일이라는 게 이정순 PM의 설명입니다. 부실한 이벤트, 업데이트의 차이, PC방 혜택처럼 다음에서 직접 해결해야 하는 과제도 많죠. 그 과정에서 필요한 소통도 많이 남아있습니다.
논란 속의 상용화. 지금은 분위기(?)가 안정된 편입니다. 16일 2차 업데이트(및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죠.
다만 <플래닛사이드2>가 워낙 독특한 게임성을 내세우는 만큼 다음에서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게임을 바라보는 중입니다. 참고로 <플래닛사이드2>는 북미에서 시즌제를 통해 목적성을 해결했고, (국내에 비해서는) 안정적인 서비스 상황도 만들었습니다. 결국 이를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느냐가 주어진 과제인 셈입니다.
“다행히 국내 FPS게임에 질린 유저들이 많이 찾아오고 있고, 일단 맛(?)을 보고 나면 다시 원래의 FPS게임으로 떠나는 유저는 적은 편이에요. 그 사이에 최대한 많은 노력을 해야죠. 계속 정면돌파만 했잖아요. 업데이트나 운영에서도 그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오는 여름방학, 확실한 도약을 노리는 이정순 PM의 다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