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빌리언>을 선택한 이유요? 간단해요. 도전할 가치가 있으니까요”
김형태, 정준호 등과 더불어 국내 최고의 게임 일러스트레이터 중 하나로 손꼽히는 임학수(맥스소울)가 <그라나도 에스파다> 이후 오랜만에 수면 위로 모습을 드러냈다. 그런데 타이틀이 재미있다. 이미 2년 이상을 개발했고, 1차 CBT에서는 유사성 논란에도 휩싸였던 <데빌리언>이다.
심지어 그가 맡은 역할은 회사 외부에서 아트 팀과 협력하고 게임의 디자인을 컨설팅하는 일종의 프리랜서 파트너. 자연히 궁금증이 생긴다. 부르는 곳도 많고, 실력도 충분한 그가 숱한 게임 중 굳이 OBT를 앞둔 <데빌리언>에, 그것도 외부 조력자라는 애매한 포지션으로 합류한 이유가 뭘까?
대(大)모바일게임 시대, 온라인게임 시장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길을 찾기 위해 ‘새로운 도전’에 나선 임학수를 디스이즈게임에서 만났다. /디스이즈게임 송예원 기자.
임학수 (maxxsoul)
2011 <블레이드&소울> 캐릭터 콘셉트 아트 / NC소프트
2009 <전우치> 캐릭터 콘셉트 아트 / ZIP 시네마
2004 <그라나도 에스파다> 아트디렉터 / IMC소프트
2003 <메틴 2> 콘셉아트, 일러스트레이션 / 이미르 엔터테인먼트
2001 <포가튼 사가 2> 일러스트레이션 / 손노리&위자드 소프트
2000 <악튜러스> 일러스트레이션 / 손노리&그라비티
2000년 <악튜러스>의 일러스트를 맡으며 게임업계에 입문한 임학수는 손노리를 거쳐 IMC게임즈, 웹젠, 엔트리브 그리고 엔씨소프트까지 다양한 개발사에서 핵심 멤버로 활약해왔다.
특히 그가 아트디렉터로 참여했던 <그라나도 에스파다>는 독특하고 화려한 일러스트로 일반 유저들 뿐만 아니라 많은 아티스트에게 영향을 미쳤다. 국내에서는 김형태, 정준호 등과 더불어 게임업계 실력파 일러스트레이터 중 한 명으로 손꼽힌다.
하지만 아트 디렉터로 참가했던 <그라나도 에스파다> 이후에는 게임기획과 일러스트 작업을 병행하며 자신이 전면에 노출되는 일을 최대한 줄여왔다. <데빌리언>은 그에게 약 10여 년 만에 자신의 이름을 건 도전인 셈이다.
“온라인게임을 벗어나기에는 남은 욕심이 많더라”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함께 본격적인 모바일게임 시대가 도래한 후 국내 게임시장은 하루가 다르게 변해왔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가까이 한 게임에만 매달려야 하는 개발자들에게 단기간 내에 자신의 게임을 출시할 수 있다는 점은 큰 매력이었고, 많은 개발자가 모바일게임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특히 카드 기반의 게임들이 늘어나면서 일러스트레이터들의 수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0년 넘게 온라인게임 시장에 몸담아온 임학수 역시 급격한 변화 속에서 거취에 대한 고민이 끊이지 않았다. 인간이 되기 위해 쑥과 마늘을 먹는 곰의 심정으로 언제 나올지 모르는 게임을 기다려야만 하는 온라인게임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다른 일러스트레이터처럼 모바일시장에 뛰어들 것인가?
“분명 지난해 불어온 모바일 카드게임 열풍은 2D 일러스트레이터에게는 좋은 기회였어요. 저 역시 전향도 고려해봤죠. 하지만 단순히 무엇을 할까 보다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내가 가진 역량을 어떻게 활용해야 하나에 초점을 맞췄어요. 전 단순히 아티스트 뿐만 아니라, 게임 기획도 해왔으니까요.”
<그라나도 에스파다> 이후 게임 기획에 관여해온 임학수는 게임을 통해 단순히 ‘좋은 그림’을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니었다. 게임으로 하여금 유저에게 깊은 경험과 감동을 제공할 수 있기를 바랐고, 아트 이외에도 기획까지 자신의 영역을 넓혔다. 그 욕심은 결국 미련으로 남았다.
“학교에선 배울 수 없는 사회성, 사회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승리의 쾌감. 그동안 온라인게임을 만들면서 유저들에게 이런 감정을 느끼게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그런데 아직 제대로 이뤄낸 것 같지 않아요. 욕심을 버릴 수 없더라고요.”
그렇게 임학수는 또 다시 온라인게임을 택했다.
하지만 이전처럼 단순히 한 회사에 묶여 아트나 일러스트에 얽매이는 일은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보다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 판단했다. 그 과정에서 나온 결과물이 프리랜서 파트너라는 독특한 조합이다.
일반적으로 게임 개발에서는 일러스트, 캐릭터 디자인, 배경 등 게임의 모든 그래픽을 총괄하는 아트디렉터가 있다. 물론 <데빌리언>에도 이미 아트디렉터가 있다. 임학수는 이 아트디렉터와 함께 <데빌리언>의 그래픽 이곳 저곳에 관여하게 된다.
직접적으로는 홍보용 일러스트를 만들거나 향후 업데이트될 신규 클래스 작업에 손을 보태고, 간접적으로는 게임의 청사진을 그려나간다. 외주 그래픽 작업과 컨설팅을 함께하는 일종의 용병인 셈이다. 단순한 일러스트레이터보다는 게임의 성공을 돕는 조력자가 되고 싶다는 그의 꿈을 반영한 역할이기도 하다.
“게임 업계에는 아트 직군으로 발을 들였지만, 기획 등 게임 개발에 관여하다 보니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어요. 보다 더 큰 청사진을 그릴 수 있으니까요. 기획 파트와 아트 파트를 이어 줄 수 있는 중간자 역할로서 시너지를 내고 싶어요.” 임학수의 첫 번째 도전이다.
“<데빌리언>에 차별화된 경쟁력을 넣을 자신있다”
왜 하필 <데빌리언>일까? 지금은 수차례 수정을 거치며 많이 사라졌지만, 공개 당시 <데빌리언>은 <디아블로>와의 유사성으로 많은 논란이 됐던 게임이다. 여전히 많은 선택지가 있는 그가 온라인게임에서 <데빌리언>을 택한 이유는 쉽게 상상이 되지 않는다.
임학수의 대답은 과감했다. “이슈가 있었던 건 당연히 알아요. <데빌리언>을 택한 이유도 거기에 있고요.” 그의 두 번째 도전이다.
임학수가 생각하는 자신의 장점은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게 아니다. 그래픽이나 일러스트를 기반으로 해당 게임의 세계관이나 이미지를 확고히 하고 게임에 경쟁력을 심어주는 것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악마를 소재로 한 <데빌리언>이라면 충분히 그의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고, 유저들의 부정적인 시선이나 논란을 뛰어넘을 수 있는 완성도와 경쟁력을 가질 수도 있을 거라 내다봤다.
그래서 그가 택한 작업은 직업별 일러스트를 통해 캐릭터의 개성을 보다 확고히 하고, 차기 직업을 통해 아케이드적인 게임의 성격을 더 선명하게 드러내는 것이다. 다만 쿼터뷰라는 시점과 애당초 <디아블로>에서 파생된 핵앤슬래시 액션의 특성상 극복할 수 없는 부분도 많은 만큼 소모적인 요소에 매달리기보다는 다른 부분을 강조하는데 더 많은 초점을 맞출 생각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게임에 대한 첫인상이 비판적이면 계속 그렇게 되는 것 같아요. 더구나 그림이라는 건 관점에 따라 평가가 확연히 달라질 수 있죠. 예를 들어 ‘모나리자’도 눈썹이 없어서 불만인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소모적인 부분에 무게를 두지 않으려고요. 이미 ‘HP=빨간색, MP=파란색’과 같은 암묵적 공식이 있는데, 색깔만 바꾼다고 본질이 달라지는 건 아닐 테니 말이죠”
“아티스트로서 고집은 틀에 갇히는 것.”
일반적으로 아티스트들은 자신만의 ‘화풍’이 뚜렷하다. 게임 분야만 돌아봐도 김형태나 정준호의 작품은 작가명을 공개하지 않아도 구별이 된다. 임학수의 경우 <그라나도 에스파다>와 같이 로맨틱한 느낌을 떠오르기 마련이지만, 초창기 작품이나 최근 <블레이드 & 소울>을 돌이켜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실제로 함께 작업한 김형태는 임학수의 작품에 대해 “선이 굵고 남성적이다”고 평가하기도 했다.
‘임학수 표 화풍’은 과연 무엇일까? 이에 대해 묻자 그는 “그런 건 없다”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티스트로서의 ‘고집’보다는 게임에 맞는 그림을 그리기 위해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동안 게임마다 다른 느낌을 작품을 선보이는 이유다.
“<그라나도 에스파다>때는 경쟁작이 <리니지2>였어요. 정공법으로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래서 타깃을 여성으로 두고 로맨틱하고 아름다운 아트를 강조했어요. 반면 <블레이드 & 소울>에서는 여성을 잘 그리는 분도 이미 계셨고, 몬스터를 작업하다 보니 자연스레 남성적이고 유저를 압도할 수 있는 느낌을 강조하게 됐죠. 그게 저의 역할이었으니까요.”
이런 생각은 새로 합류한 <데빌리언>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식 프로모션으로 제작된 포스터 4장은 모두 그의 작품. 하지만 한 사람이 그렸다고 생각하기 어려울 만큼 각기 다른 느낌을 자랑한다. 각 클래스에 맞는 키워드를 두고, 그에 따라 작업했기 때문이다. 해당 클래스를 선택할 유저들의 취향을 고려하는 것도 작품을 완성시키는 중요한 포인트다.
“아티스트로서 작품에 대한 집착과 에고(Ego)는 중요해요. 하지만 특정 작가에 대해 어떤 상징성이 생긴다는 건 양날의 검이죠. 부정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틀에 갇히게 되니까요. 스스로에 대한 성장의 욕심이 있기 때문에 틀을 갖추고 싶지 않아요.”
이름을 알린 아티스트로서 자신만의 색을 감추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임학수는 작품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름을 알리는 것에 대한 미련도 버렸다고 했다. 또한, 수익에 대한 집착도 버렸다.
10년 이상 게임 업계에 머물렀던 그의 주변에도 어느새 ‘사장님’들이 많아졌다. 아티스트로 활동하던 김형태 역시 ‘시프트업’이라는 모바일 개발사의 대표를 맡고 있다. 이들은 단순히 명예만 쌓은 게 아니다. 여느 사업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모바일게임 하나만으로 샐러리맨 이상의 부를 축적할 수 있다.
임학수 역시 이런 부분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다. 대형 개발사에서 비교적 안정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고, 별도의 회사를 꾸리는 것도 맨땅에 헤딩하는 누군가 보다 유리하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에게 가치를 제공하는 일을 더 하고 싶다고 이야기했다.
“뭔가 예술적인 그림을 그리거나, 기능성 게임을 만들고 싶다는 게 아니에요. 제 작품을 통해 ‘새로운 경험’을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거죠. 부와 명예를 비롯한 개인적인 커리어 보다 사람들에게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그런 일을 하고 싶어요.” 그의 마지막 도전이다.
임학수, <데빌리언>을 만나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보다 못한 법. <데빌리언>의 캐릭터에 개성을 불어넣겠다는 임학수의 일러스트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디스이즈게임에서 임학수 아티스트가 그린 <데빌리언>의 캐릭터별 일러스트를 공개한다. 캐릭터 일러스트에는 임학수 아티스트의 코멘트도 첨가했다. 그가 꿈꾸는 <데빌리언>의 모습이 어떤 것인지 직접 확인해보자.
임학수: 지노게임즈의 컨셉아트 팀에서 제작한 각 클래스의 대표적인 의상들을 상급 버전으로 재해석한 일러스트들로서, 게임과 일러스트레이션과의 연관성을 높이고, 실제 게임 내에서도 경험해 볼 수 있는 여지를 고려한 작업이었습니다.
각각의 클래스마다 선호하는 유저들의 니즈에 직접적으로 다가가기 위해 클래스 일러스트 마다 아이덴티티를 극대화하는 배경과 효과들로 차별화하였습니다. 또한, 데빌의 힘을 사용하기도 하고 데빌로 변신하는 게임의 특징을 일러스트에서도 느껴질 수 있도록 넘치는 마력들을 클래스마다 적합한 방식으로 표현하였습니다.
[듀얼리스트] 키워드: 불타는 돌산
터프하고 육중한 모습의 듀얼리스트. 저돌적인 넘치는 힘을 좋아하는 유저들에게 적합한 클래스로 폭발하는 화산을 모티브로 표현하였습니다.
[엘리멘탈리스트] 키워드: 성지에 핀 꽃
우아하고 아름다운 모습의 신비한 마법을 사용하는 캐릭터를 선호하는 유저들을 위한 엘리멘탈리스트. 성스러운 호수에 피어난 신비한 꽃을 컨셉으로 표현하였습니다.
[쉐도우헌터] 키워드: 어둠을 가르는 번개
신비롭고 고독한 모습의 남성 헌터. 어둠의 사냥꾼의 컨셉에 충실하기 위해 무채색의 톤에 날카롭게 날이 서 있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에 중점를 둔 이미지입니다.
[캐논슈터] 키워드: 폭발하는 유희
귀엽고 명랑한 캐릭터로 표현한 캐논 슈터. 로리형 캐릭터에 어울리는 경쾌한 폭발과 그것을 즐기는 명랑한 표정으로 위험한 상황을 돌파해나가는 클래스로 표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