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22일 출시된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는 여러모로 논란의 핵이었다. 게임은 과거 iOS로 출시된 유료게임 <스트리트파이터 4 볼트>의 시스템을 기반으로 강화나 등급 등의 캐릭터 성장과 부분유료화 모델을 결합한 작품이다.
서로의 실력을 겨루는 것이 목표인 대전격투 게임과 캐릭터의 강함이 중시되는 RPG의 결합은 유저들 사이에서 많은 논란을 낳았다. 대부분의 유저들은 대전격투 게임에 ‘뽑기’와 ‘강화’라는 시스템이 더해진 것에 부정적인 의견을 남겼다. ☞ 관련기사
이런 비판 속에 한 격투 게이머가 디스이즈게임에게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는 과하게 비판받고 있다”고 반대 의견을 밝혔다. 그는 <스트리트파이터 4> 시리즈의 프로게이머이자 ‘인생은 잠입’ 혹은 ‘INFILTRATION’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한 ‘이선우’ 선수.
과연 대전격투 프로게이머의 눈에는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는 어떤 게임일까? 이선우 선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디스이즈게임 김승현 기자
‘인생은 잠입’ 이선우 선수
대다수 유저들에겐 대전격투 프로게이머라는 존재 자체가 생소하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한다.
이선우 선수: ‘인생은 잠입’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하고 있는 이선우다. <스트리트파이터 4>는 2009년 한글판 출시를 계기로 입문했다. 처음에는 그냥 좋아서 즐기는 정도였지만, 2010년 ‘레프’ 안창완 선수의 권유로 해외대회에 출전하면서 본격적인 프로게이머 생활을 시작했다.
프로게이머 생활만 5년 가까이했으면 대회 경험도 굉장히 많겠다.
이선우 선수: 참가한 대회 수는 너무 많아 잘 모르겠고 (웃음), <스트리트파이터 4> 시리즈와 관련된 대회 우승 경험은 대충 20회 정도 된다. 특히 2012년은 에볼루션 챔피언십(일명 EVO, 세계 최대 규모의 대전격투 게임 대회)과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 25주년 기념 대회에서 우승도 차지할 수 있었다.
<스트리트파이터> 25주년 기념 대회에서 우승한 모습
현재는 <울트라 스트리트파이터 4>가 대회에서 쓰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프로게이머라면 대회에서 다루는 게임 위주로 즐길 텐데, 어떻게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를 시작하게 되었나?
이선우 선수: 2012년 ‘LG컵 스트리트파이터 4 HD 글로벌 챔피언십’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이 대회는 LG 안드로이드 마켓에 출시된 <스트리트파이터 4 HD>를 위한 대회였다. <스트리트파이터 4> 모바일 버전을 접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이후 한동안 잊고 있었는데 지난 6월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라는 게임이 CBT를 시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옛 생각이 나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CBT는 물론 론칭 이후에도 한 달 가까이 정신없이 즐겼던 것 같다. 요즘은 대회 준비하느라 자주 접속하지 못해 아쉽다.
본론으로 넘어가자. 대전격투 프로게이머가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의 시스템을 옹호하리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다른 유저들에겐 프레임 수나 캐릭터 밸런스 등 많은 면에서 비판을 받았는데….
이선우 선수: 프레임은 나도 많이 아쉽다. 콘솔 버전 <스트리트파이터 4> 시리즈는 초당 60 프레임을 사용하는데 모바일 버전은 15 프레임에 불과하니. 하지만 그럼에도 기술 시전 동작 등 중요한 움직임은 다 살아있다. 걱정과 달리 플레이하는데 지장이 없어 다행이다.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가 흥행해 개선 버전이 나왔으면 좋겠다.
지르면 이긴다? “성능보다 ‘실력’이다”
성장 밸런스, 정확히 낮은 등급 캐릭터와 높은 등급 캐릭터 간 전투력 차이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이선우 선수: 솔직히 CBT 버전에서는 실망이 컸다. 그 때는 강화나 등급으로 인한 능력치 차이가 어마어마했다. 과장 조금 보태서 상위 등급 캐릭터를 만났다면 99초 동안 일방적으로 때려도 K.O를 시키지 못할 정도였다.
그런데 막상 정식 버전이 출시되자 이 차이가 상당히 줄었다. 강화나 등급으로 캐릭터 격차가 존재하긴 하지만 한두 등급 차이면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을 정도다. 실제로 나부터가 출시 2주차까지는 A등급 캐릭터만(<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 6개 캐릭터 등급 중 중간 등급) 사용해 ‘그랜드 마스터’(랭크 1위)를 기록했을 정도다.
유저들이 문제시하는 것은 상위 캐릭터의 강함이 압도적이라는 것이 아니라, 대전격투 게임임에도 원하는 캐릭터를 선택할 수 없고 같은 캐릭터라도 성능이 운과 투자에 따라 달라진다는 점이었다.
이선우 선수: 원하는 캐릭터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점에 대해서는 나도 100% 동의한다. 실제로 나도 ‘고우키’를 가장 좋아하는데 막상 플레이한 캐릭터는 뽑기로 나온 ‘사가트’와 ‘바이퍼’였다. 주변에는 아무리 뽑기를 해도 원하는 캐릭터가 나오지 않아 게임을 그만 둔 사례도 있다. 적어도 캐릭터 선택에 대한 비판은 나도 동의한다.
다만 캐릭터 등급 간의 강함에 대해서는 조금 생각이 다르다.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는 1 ~ 2 등급 차이의 캐릭터도 플레이에 따라 얼마든지 극복할 수 있는 게임이다. 유저 순위가 제대로 정립되기 전이었던 초기 시즌에는 이것이 압도적인 컨트롤로 의한 극복인 줄 알았다.
하지만 최근 마스터 리그(= 최상위 리그)를 보면 확실히 캐릭터보다는 실력이라는 것이 느껴지더라. 좋은 캐릭터를 가진 이보다 캐릭터가 조금 뒤떨어지더라도 좋은 실력을 가진 사람들, 이른바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의 ‘네임드 유저’가 더 많다.
실제로 나도 게임을 할 때 나보다 더 좋은 캐릭터를 가진 나와 비슷한 실력을 가진 프로게이머나 네임드 유저를 몇 번이나 만난 적 있다. 그 때도 내 캐릭터는 A등급이었는데 결과는 박빙이었다. 등급이나 강화에 따른 캐릭터의 강함 차이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을 극복할 수 없는 게임은 절대 아니다.
그런 극복 가능성은 이선우 선수같은 최상위 유저들에게만 해당하는 것 아닌가?
이선우 선수: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에 정통할수록 캐릭터 자체의 강함보다 실력이 더 중요한 것은 사실이다. 이는 게임의 특징과도 관련되어 있다. <킹 오브 파이터즈>같은 공격 위주 게임과 달리,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방어자에게 더 많은 기회가 주어지는 작품이다.
콤보로 인한 대미지의 비중이 다른 격투게임보다 낮고 쓰러졌을 때의 선택지도 많다. 때문에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는 다른 격투게임보다 유저의 실력과 심리전의 비중이 큰 편이다. 내가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의 성장 밸런스를 나쁘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게임이 오래 서비스돼 캐릭터들의 평균 전투력(= 등급이나 강화 정도)이 더 오른다면 모를까, 현재로서는 실력자들에게 캐릭터 성능의 차이는 크지 않다. 초보자의 경우는 내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적절한지 모르겠다. 이런 의견도 있다는 정도로 알아달라.
나 같은 경우 게임 내 보상만으로 A등급 캐릭터를 얻어 육성했다. A등급은 게임의 전체 등급 중 중간 수준이지만, 레어 등급인 SR과 AR 확률이 굉장히 낮다는 것을 감안하면 사실상 2~3번째로 좋은 등급이다. 초보자가 실력을 키우려면 결국 많은 게임을 거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이런 등급 캐릭터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은 결제의 비중이 낮다는 것 아닐까? 물론 원하는 캐릭터를 자기 마음대로 고를 수 없다는 것은 아쉽지만.
뽑기 때문에 본의 아니게 이선우 선수의 주력 캐릭터가 되어 버린 ‘바이퍼’
캐릭터 뽑기를 제외한 다른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서는 불만이 없는 것 같다.
이선우 선수: 물론 싼 것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웃음) 하지만 결제 없이 성장할 길이 있고, 캐릭터 성능을 극복할 방법이 있다면 이러한 모델을 무조건 비판해야만 할까? 만약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가 대전격투라는 장르 자체가 성립되지 않을 정도로 밸런스가 무너져 있다면 나는 이를 비판했을 것이다.
하지만 내가 체험한 게임은 그런 작품이 아니다. 그래서 나는 등급이나 강화 정도에 따른 전투력 차이는 결제 하지 않은 이가 안아야 할 리스크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어디까지나 이 격차가 시간이나 컨트롤 등을 통해 극복 가능하기 때문에 하는 말이다.
오히려 마스터 리그로 가면 캐릭터의 강함보다는 실력의 비중이 훨씬 중요하기도 하고. 개인적으로는 대전격투 볼모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 이런 작품이 나와 <스트리트파이터> 유저들을 모아줘서 고맙다.
높아지는 진입장벽? 게임사의 현명한 운영을 기대한다
그런 이야기를 할 정도로 시리즈 골수 유저들이 많이 즐기나? 외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와는 온도차가 크다.
이선우 선수: 다른 유저들도 나와 같은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이와 별개로 마스터 리그 목록을 보면 <스트리트파이터>를 즐긴 사람이라면 알법한 유저들이 많다. 다들 게임성 자체에 불만이 없기 때문에 즐기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네임드 유저가 많이 보이는 것뿐만 아니라, 마스터 리그의 매칭도 10초 밖에 걸리지 않고 다들 실력도 훌륭하다.
비단 마스터 리그뿐만 아니라, 공식 카페 등을 보면 과거 <스트리트파이터> 시리즈에 대한 추억을 이야기하는 30대 이상 게이머, 혹은 <스트리트파이터>라는 이름에 끌린 신규 유저도 많더라. 원작 자체가 탄탄한 덕분이기도 하고, <스트리트파이터>라는 이름값과 모바일이라는 접근성 덕분이기도 하다.
게임의 성장 모델은 결국 골수 유저들의 캐릭터 성능이 좋아질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이러면 점점 라이트 유저들의 진입장벽이 높아지고, 오히려 골수 유저들만의 리그를 만들진 않을까?
이선우 선수: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도 걱정이 많다. 기존 유저들의 캐릭터 성능이 좋아질수록 신규 유저들의 어려움도 커지니까. 다만 한가지 다행인 것은 게임사의 패치방향이다.
최근 경기 중 강제종료에 대한 패널티 강화나, 캐릭터 숙련을 위한 트레이닝 모드 추가 등 유저들이 요구한 내용이 패치에 많이 반영되더라. 얼마 전에는 캐릭터의 등급 상관없이 순수하게 실력을 겨룰 수 있는 모드를 추가한다고 밝히기까지 했다.
어찌 보면 자신들의 비즈니스 모델에 악영향을 줄지도 모르는 시스템을 유저들의 요구로 넣는 셈이다. 이렇게까지 유저들의 의견을 신경 쓴다면 추후 초보자 지원이나 대규모 대회 등의 모객을 위한 운영도 가능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은 예측이라기보다는 희망사항에 가깝다. 사실 이런 예측(?)보다는 당장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에 대한 비판이 과하다고 생각해 나온 것인데. (웃음)
희망사항만 보면 단순히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에 대한 옹호라기보다는, 이를 통해 격투게임이 다시 관심 받기를 바라는 것 같기도 하다.
이선우 선수: 솔직히 그런 마음이 아주 없진 않다. 아마 격투게이머라면, 오락실의 황혼기를 체험했던 사람이라면 누구나 비슷한 바램이 있을 것이다. 특히 나 같은 경우는 실제로 국내 격투게임 대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을 직접 체험해 더더욱 그렇기도 하고.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이 게임을 지금까지 나온 모바일 대전격투 중 가장 재미있게 즐겼고, 이런 내 감상과 다른 분들의 감상의 차이가 커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인생은 잠입’이라는 유저는 이렇게 느꼈고, 이런 의견도 존재한다는 정도로 알아달라.
골수 격투게이머로서, 혹은 <스트리트파이터 4 아레나>의 마스터 리거로서 아쉬운 점은 없는가?
이선우 선수: 캐릭터 뽑기 문제는 앞에서 지겹게 이야기했으니 넘어가고 (웃음), 개인적으로 마스터 리그의 포인트 방식에 아쉬움이 크다. 마스터 리거의 경우 같은 마스터 리거과 싸워 이기는 것 아니면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오히려 하위 리거와 싸워 지기라도 하면 포인트가 대거 깎여 순위에 불이익을 받는다. 이러다 보니 정작 열심히 게임을 하는 리거들보다, 특정 포인트만 달성하고 다른 유저들 포인트가 떨어지길 기다리는 유저들이 유리한 경우가 많다.
이 때문에 마스터 리그의 흐름이 정체될까 염려된다. 연승 보너스 등 열심히 게임을 하는 마스터 리거도 합당한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있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