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우리는 어디쯤 와있을까? 그리고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
지금 게임업계의 화두는 '생존'과 '길'입니다. 온라인게임 시장은 급성장한 모바일게임 시장에 밀려 생존을 고민하고 있고, 전래 없는 성장을 거듭한 모바일게임 시장에서는 많은 개발사가 길을 잃고 헤매고 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의 11주년 기획은 '물음'입니다. 디스이즈게임에서 11주년을 맞아 각각의 상황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과 길을 찾는 사람들에게 물음을 던졌습니다. 온라인게임과 모바일게임, 인디게임, VR, 보너스로는 저희 자신에게도요.
당장 이 몇 명의 인터뷰가 업계의 모든 시선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 최소한의 방향을 제시하거나 시선을 넓혀주는 계기가 될 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11주년까지 곁에 계셔주셔서 고맙습니다.
차세대 디바이스로 각광받으면서 많은 업계 종사자들에게 주목 받는 ‘가상현실(VR)’. 2012년경 오큘러스를 통해 널리 퍼진 가상현실은 매년 디바이스와 관련 기술들이 눈에 띄게 발전하고 있다. 올해는 다수의 기기들이 상용화에 접어드는 만큼 산업 종사자만의 관심사가 아닌 소비자들에까지 퍼지는 기회의 한 해가 될 전망이다.
다만, 이러한 기회를 잡기 위해 국내 시장은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시장을 선도하는 업체들의 적극적인 대응과 고민, 그리고 소비자 접점을 찾기 위함, 콘텐츠 R&D 등이 동반되어야 한다. 비록 해외와 기술 격차는 있지만 전혀 넘볼 수 없는 영역은 아니다.
볼레 크리에이티브의 서동일 대표는 지금 시도들이 절대 늦은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마치 세가와 닌텐도가 양분하던 시장에서 소니가 모두가 반신반의했던 ‘플레이스테이션’으로 정상을 탈환한 것처럼, 전략적으로 시장 접근을 잘 한다면 우리나라도 가상현실 시장에서 플랫폼 오너십을 가져갈 수 있다고 가능성을 밝혔다.
2012년 오큘러스를 통해 우리나라에 가상현실을 널리 알렸던 서 대표는 현재 볼레 크리에이티브라는 가상현실 콘텐츠 개발사를 차렸다.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하는 커뮤니케이션 게임 '프로젝트 볼레'를 개발 중이다. 디스이즈게임은 서 대표를 만나 국내 가상현실의 현재와 미래를 진단해봤다. /디스이즈게임 정혁진 기자
■ 국내 가상현실 시장, 격세지감을 느낀다
TIG> 2015년 한국의 가상현실 산업은 어땠는지 돌이켜 본다면?
서동일 대표: 2015년 국내 가상현실 시장을 돌이켜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2012년 당시 오토데스크를 떠나 오큘러스에서 가상현실을 처음 선보였을 때는 단순히 '신기하다' 정도에서 머물렀는데 한 해를 거듭할 수록 가상현실에 대한 기대감과 전망은 점점 커지고 이제는 먹거리로 활용할 고민을 하는 단계에 놓였다.
2014년은 페이스북이 오큘러스를 인수한다는 소식이 가상현실이 본격적으로 업계에서 화두가 되는 계기가 됐다. 연말에는 삼성과 오큘러스가 기어 VR을 발표하며 구글 카드보드보다 완성된 형태를 보여주면서 대중적으로 가는 기회도 마련했다.
지난해는 상반기부터 GDC, CES 등 여러 해외 쇼에서는 가상현실에 대한 발표가 이전보다 유독 많았다. 구글은 iO 컨퍼런스에서 카드보드 2.0도 발표했다. 1.0이 오큘러스에게 가벼운 놀라움을 주는 느낌이었다면 2.0은 전략적으로 고민을 한 흔적이 보였다. 구글과 고프로가 합작해 360도 영상기기를 만들었다. 구글은 앞으로 VR 기기 제작에 적극 뛰어들겠다고 밝혔다. 중국은 빠른 발전속도를 기반으로 폭풍마경을 비롯해 다양한 HMD(헤드 마운트 디스플레이)도 선보였다.
삼성에서 갤럭시 S6 통해 나온 기어 VR도 있다. 당시 하위 호환에 대한 컴플레인이 있었지만, 이번에 나올 후속 기종은 그 점을 해결했다. 또한 하드웨어적인 면에서 여러 곳에서 의지를 밝힌 한해이기도 했다. 소니의 PS VR은 일반 유저들에게 가상현실을 확실하게 각인시켰다.
미래부, 문체부도 가상현실을 한국의 차세대 먹거리 지정. 지원정책을 모색하기도 했다. 2014년에 비해 생각보다 늘어난 건 아니지만 많이 보인다. 업체들이 많이 부각 받고 투자까지 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다. 산업에 대한 관심도 미약하지만 조금은 늘어난 것으로 보인다..
■ 모바일에서도 뺏긴 플랫폼 오너십, 가상현실에서는 반복되지 말아야
TIG> 산업을 긍정적으로 보는 건 좋은 일이다. 하지만 그에 따른 고민도 있겠다.
서동일 대표: 물론이다. 오큘러스 코리아를 창업한 것은 가상현실이 될 것이라는 확신이 섰기 때문이었고 예측이 맞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현재 국내는 예상외로 빠르게 성장하지 않고 있으며 주도권은 해외가 쥐고 있다. 전략적으로 충분히 고민하지 않고 있지는 않나 하는 우려가 있다. 애플 앱스토어나 구글 플레이도 수 많은 국내 게임이 출시되고 높은 매출을 기록할 수록 많은 수수료를 받는다. 플랫폼 오너십에서 주도권을 빼앗긴 결과다.
일부 기업들이 아직 시기상조라며 판이 마련되고 나서 접근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는데, 이는 결국 주도권과 수익에서 더 많은 부분을 차지하기 어렵게 된다.
현재 가상현실 시장의 판은 오큘러스, 스팀, 소니 등이 키우려고 노력하고 있는데 국내에서 그에 대한 오너십을 빼앗긴다면 콘텐츠를 만들어도 수익성이 낮아지는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현재 스마트폰 시장에서 애플, 구글에게 플랫폼 주도권을 빼앗긴 경험이 또 반복되는 것이 아닐지 걱정된다.
소니, 오큘러스 등의 가상현실 시장은 대만 HTC가 등장하면서 3파전 구도로 형성됐다. 국내에서는 삼성이 기어 VR을 내놓은 바 있지만 지난 1년 동안 삼성은 존재감이 매우 약했다. 콘텐츠 전략도 부족해 플랫폼 시장을 오큘러스에 내준 모양새다. HTC는 지금 소싱을 위해 분주히 뛰어다니고 있다. 많은 이들은 삼성이 HTC의 자리에 있었을 수도 있다며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TIG> 그렇다면 우려한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서동일 대표: 의지, 그리고 콘텐츠다.
1990년도 초반 소니의 ‘플레이스테이션(PS)’은 세가와 닌텐도 양분체제에서 고전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해 전용 타이틀을 확보했다. 이러한 결과, 당시 <파이널판타지>도 닌텐도 플랫폼에서 PS로 옮겼다. <투신전> 등 타이틀에 공격적으로 투자하면서 팬들을 모았으며 타 회사보다 개발사에게 우호적 정책을 펴 개발, 서비스에도 우호적 정책을 폈다. PS는 결국 90년대를 주름잡는 플랫폼으로 거듭났다.
지금 시장의 리더십을 빼았겼다고 해서 이것이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니다. 언제든지 주도권을 가져올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오큘러스가 1차 출시국에서 한국을 제외한 것이 삼성에게는 기회가 될 수도 있겠다. 국내에는 게임 개발자가 많아서 가상현실 쪽으로 유입될 수 있도록 물고만 잘 터주면 여러 가지 콘텐츠들이 수급될 수 있다. 삼성은 MWC 2016에서 가상현실에 집중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에 출시한 갤럭시 S7은 벌칸 CPU를 탑재해 가상현실을 위한 높은 퍼포먼스를 지원한다.
국내 기업들도 콘텐츠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다. 소규모 개발사들은 이미 시장에 뜻을 가지고 뛰어들 준비를 하고 있지만 엔씨소프트, 넥슨, 넷마블게임즈 등 대기업의 움직임도 중요하다. 당장 수익을 거둘 수는 없지만 R&D 등을 통해 역량 있는 게임을 만든다면 삼성과 협력할 수도 있고 수 많은 해외 회사들에게 러브콜을 받을 수도 있다. 온라인에서 모바일을 타진했듯 가상현실 분야에서도 적극 나서면 좋겠다.
추가로, 콘텐츠는 확산을 위해 두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하나는 콘텐츠 디자인이고 다른 하나는 사용자 접점 환경이다. 콘텐츠 디자인은, 게임사가 초반에 스마트폰 게임을 개발할 때 피쳐폰의 조작이나 그래픽을 그대로 옮겼다가 스마트폰의 터치 인터페이스와 조작방식, 그래픽 등 여러 가지를 다루고 고민하면서 현재 게임으로 바뀌었듯 가상현실도 UI, 조작, 그리고 시야 전환에 따른 어지럼증 등 많은 숙제를 풀어야 한다.
소비자 접점은 가상현실을 신기하고 재미있는 요소부터 폭넓은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가능성을 심게 하는 것이 좋다. 어디서 어떤 것을 어떻게 체험 시키느냐에 따라 가상현실의 인상이 달라질 수 있다.
■ 한국 VR산업협회, 발빠른 정보 전달과 정보 공유의 장 만들어 주기를
TIG> 작년 한국 VR 산업협회가 설립됐다. 협회가 올바른 길로 가기 위해서, 업계에 도움이 되는 곳이 되기 위해 어떤 것이 필요할까?
서동일 대표: 6개월 남짓 설립된 시점에서 무언가를 평가하기에는 어려운 단계지만, 업계 필요한 것은 크게 ‘정보’와 ‘컨퍼런스’가 있다. 당연하겠지만 가상현실 관련 정보는 해외 뉴스가 더 많다. 방대한 소식들을 접하고 싶지만 언어의 장벽 탓에 콘텐츠를 리뷰하거나 활용하기도 어렵다. 찾기도 쉽지 않다.
협회는 먼저 해외에서 발생하는 뉴스를 빠르게 수집해 전파할 수 있는 역할을 해주면 좋겠다. 과거 게임산업진흥원에서 ‘GITTIS’라는 서비스를 통해 국내, 외 주요 뉴스를 스크랩해 회원사에 단체 발송한 적이 있는데, 가상현실 관련 뉴스도 위 서비스와 유사하게 진행하면 개발자 입장에서 업계의 변화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거시적 안목이 생길 것이다.
컨퍼런스는 규모를 막론하고 자주 열리기를 바란다. 이런 자리가 열리면 누가 가상현실 게임을 개발하고 어떤 고민을 하는지 서로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 자신이 가진 문제를 해결할 수도 있다. 협회 차원에서는 컨퍼런스 개최와 더불어 개발자간 서로 도울 수 있는 장치들도 함께 마련해주면 좋을 듯 하다.
TIG> 실감형혼합현실포럼 의장을 맡고 있다. 협회와 어떻게 구분되며 어떤 업무를 맡나?
서동일 대표: 가상현실의 표준화 마련을 위해서다. 협회에 어떤 것이 되고 되지 않는 것임을 알려주거나 가상현실을 위한 올바른 콘텐츠 디자인 안내, 하드웨어는 이런 것을 고민해야 한다는 규격 등 여러 가지다.
그밖에 협회로부터 지원 받아 기술 포럼 등을 열 예정이다. 다음 달 정도부터 활동할 것 같다. 해외에서도 홍보하고 있다. 대만에서 투자자들에게 한국의 가상현실 사업에 대해 설명도 하고 업체도 소개해줄 것이다.
TIG> 알파고와 이세돌 선수의 대전이 연일 화제다. 바둑계에서도 예상을 넘는 플레이라고 평가 받고 있다. 인공지능에 대한 생각, 그리고 개발 중인 인공지능 게임에 대해서 알려달라.
서동일 대표: 가상현실에 뛰어들 때 모두가 비관적이었지만, 팔머 럭키의 아이디어로 회사가 설립되고 투자를 받고 여건이 마련됐다. 피부로 와 닿은 것은 불과 2~3년 전이다. 알파고를 보면서 언젠가는 인공지능도 개발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진다. 가상현실과 마찬가지로 사업을 할 만한 가치까지 왔다. 넘어야 할 허들, 발전해야 할 기술도 많지만 도전할 만하다고 본다.
사람 간 대화가 제일 좋지만 소통할 숫자가 제한되어 있다는 단점이 있다. 학교, 직장 통해 얘기를 해도 말수가 줄어들고 결국 SNS를 통해 소통을 선택하게 된다. 볼레 크리에이티브는 이를 활용해 ‘인간이 느끼는 외로움을 조금 더 최소화시켜보자’는 것으로 시작했다. ‘언제 어디서나 소통한다면 외로움을 달랠 수 있다’는 것이 기본 콘셉트다.
우리는 보통 상대방과 수 많은 대화를 통해 관심사를 공유하고 그 사람이 좋아하는 것을 알아낸다. 물론 서로가 친하다는 전제 하에서. ‘프로젝트 볼레’는 그 대화를 남, 녀 커플이 연인관계라는 설정을 정했다 활발하게 서로의 정보를 얻기 위해 노력하는 사이이기 때문이다. 인공지능은 날씨부터 취미, 현재 상태, 좋아하는 음식 등 사용자에 대한 다양한 것을 여러 가지 질문을 통해 수집하며 이를 기반으로 사용자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하거나 좋아하는 것을 제안해주기도 한다. 빅데이터를 통해서다.
(아래는 볼레 크리에이티브가 개발 중인 '프로젝트 볼레' 시연 영상이다. 첫 번째는 쇼룸에서 AI 캐릭터의 옷을 골라주는 이벤트, 두 번째는 AI 캐릭터와 카페에서 대화를 나누는 이벤트다)
■ 해외와 국내 기술력 차이는 약 2년... 좁히기 위해서는 기업-정부 노력 중요
TIG> 해외와 국내의 가상현실 시장 차이는 어느 정도라고 체감되나?
서동일 대표: 오큘러스가 2013년에 제품이 나왔으나 격차는 약 2년 정도 차이가 나지 않나 한다. 하지만 위에서 말했듯이 정보수집량의 차이 등이 있으므로 대처하지 않는다면 격차는 점점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물론 간극을 좁히기는 힘들다. 하지만 이를 위해서는 위에서 말했던 것과 같이 기업의 전략이나 정부 통한 빠른 정보 전달, 컨퍼런스 개최 등이 필요하다. 산업 발전을 위한 토양 조성에 있어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TIG> 일부 타 플랫폼에서 가상현실 접목을 시도 중이다. 소수이긴 하지만 조금씩 시장을 점쳐보는 단계다.
서동일 대표: 가상현실에 맞는 올바른 게임을 위한 콘텐츠 디자인 노하우는 계속 연구가 필요하다. <스트리트파이터>를 제대로 하려면 스틱이, <앵그리버드>와 <프루트 닌자>는 터치 인터페이스, <월드오브워크래프트>는 키보드와 마우스가 제격이듯이. 인풋 디바이스, 플랫폼은 게임의 재미를 좌우하는데 큰 역할을 한다, 가상현실 HMD로 줄 수 있는 재미가 무엇이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존 카멕은 <둠3>가 가상현실 게임으로 적합하지 않다고 했다. 밸브도 <팀 포트리스>를 가상현실 게임으로 만드는데 꽤 힘들었다고 털어놨다. VR에 맞는 최적화된 재미가 있다. 많은 시행착오가 필요하며 그에 따른 노하우를 누가 많이, 그리고 먼저 습득하느냐가 중요하다. 수익이 되지 않는 시장이라고 뛰어들지 않으면 제 2의 로비오는 나올 수 없다.
■ 2016년은 대중화로 가기 위한 발판이자 소비자 접점 찾기 위한 시간
TIG> 올해 국내 가상현실 시장은 어떻게 전망하나?
서동일 대표: 소비자 제품이 나오는 시점이라 대중화를 가기 위한 초석이 마련되겠으나 소비자 접점을 찾는 노력도 활발히 이루어지지 않을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가치를 증명하기가 어렵고 빠른 성장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저커버그가 가상현실 대중화에 최소 10년을 봤다. 초기에는 가파르게 성장하기 어렵지만 이는 장점이 부각되면서 가파른 곡선을 그릴 것이다.
어떤 기술이 나와서 확산하는데 필요한 것은 '고효율 저비용'과 '다양한 케이스'다. 가상현실도 더 나아지겠지만 주도권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콘텐츠 회사이기 때문에 올해, 내년까지 기술을 축척하는 시간이 되지 않을까 한다. 개발사도 능력을 키우고 소비자도 어떤 것일지 학습하는 시기라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