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에서 한국 지인을 만나면 두 배로 기쁩니다. 인터뷰를 위해 텐센트 본사를 방문했던 날, 마침 출장 와있던 <펀치몬스터>(넥스트플레이) 개발팀을 만났습니다. 운이 좋았습니다. 덕분에 그 동안 텐센트 임원들에게서만 일방적(?)으로 들었던 협업의 속사정을 모국어로도 들여다 볼 수 있었으니까요.
역시 손바닥도 부딪쳐야 소리가 나는 법이더군요. 이런 사정 탓에, 한국 개발팀의 인터뷰를 해외로부터 전송하는 희한한 경우도 생겼습니다. 중국에 머물고 있던 안유석 부사장이 개발팀을 대표해서 그간의 사연을 전해주었습니다. /디스이즈게임=선전(중국) 임상훈 기자
[특집①] 텐센트가 게임을 보는 눈 - 소싱&투자 [보기]
[특집②] 텐센트가 게임을 다듬는 손 - 운영&마케팅 [보기]
[특집③] 텐센트가 걸어가고 있는 길 - 전망 [보기]
[특집④] 펀치몬스터 중국버전 제작 현장
■ 100 페이지 파워포인트 문서의 ‘충격’
넥스트플레이가 텐센트와 계약한 것은 지난 해 여름. 그 해 11월 알파 테스트 전까지는 중국과 특별히 다른 커뮤니케이션은 없었다. 매주 화상 컨퍼런스콜(전화회의)를 통해 주로 ‘최적화’ 관련된 이야기를 나눴다. UI(유저 인터페이스) 등을 중국 유저들의 취향에 맞게 고치는 수준의 고전적이고, 일상적인 것이었다.
“기존 텐센트가 소싱한 게임들은 이미 한국에서 런칭한 타이틀이었습니다. 그래서 처음엔 <펀치몬스터>도 과거에 했던 방식으로 로컬라이제이션 논의가 진행됐던 것 같아요. 버그 류 보고받고, 해결방식을 논의하는 식으로 말이죠. 하지만, <펀치몬스터>는 국내 런칭 이전 개발단계에 계약한 특별한 케이스잖아요. 11월 중국에서 3,000명 대상 알파테스트를 진행하고 나서, 얼마 후 두툼한 피드백이 왔어요. 중국 시장에 맞게 테스트를 해가며 하나하나 다듬자는.”
100페이지 남짓의 파워포인트 문서. 거기가 시작이었다. 기본(전투와 성장 시스템)부터 다시 챙기자는 중국 측 피드백에 대한 넥스트플레이의 반응은 어땠을까.
“한 마디로 충격이었죠. 한국에서는 이미 지스타를 통해 좋은 반응을 얻었고, 거기에 고무돼 있었는데, ‘중국에선 이렇게는 안 된다.’는 소리를 들은 셈이니까요. 하지만 충격과 별도로, 보고서에는 충분히 공감할 수밖에 없는 내용이 담겨 있었습니다. 속상하기도 했지만, 희한하게 거부감이 들지 않았죠. ‘그렇기는 하네’하고 납득할 만했으니까요. 전 사원에게 텐센트의 피드백을 돌렸습니다. 팀 별로 회의도 하고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였습니다.”
지난 해 지스타에 플레이 버전이 공개돼 각광을 받았던 <펀치몬스터>. 그런데 CBT 이후 소식이 잠잠합니다. 텐센트와 협업을 통해 튜닝을 거치고 있는 까닭이겠죠.
해외사업을 해본 담당자들은 잘 알고 있다. 바다 너머 목소리에 국내 개발팀들이 얼마나 무심한지를. (물론 예외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이긴 하지만.) 텐센트의 피드백은 도대체 어떤 내용을 담고 있었기에 ‘공감’을 이끌어 냈을까.
“100페이 남짓의 파워포인트 각 페이지마다, 하나하나 메시지가 담겨 있었죠. 각 메시지는 근거 있는 데이터가 백업해 주고요. 중국 내 경쟁 횡스크롤 게임 4~5개의 오픈베타 시점과 현재 시점의 데이터를 분석해 <펀치몬스터>와 비교하고, 그로부터 유출되는 유저의 만족도를 숫자로 보여주는데, 납득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몬스터의 수, 퀘스트의 수, 월드의 수, 플레이 타임 등에 대해 그 동안 쌓아온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PT(발표)를 하니, 많은 부분에서 동의할 수 있었습니다.”
■ 한국과 중국, 한 달에 한 번은 뭉친다
이후 어찌 보면 너무 당연한 얘기지만 중국 로컬라이제이션에 관해서는 파트너(텐센트)와 더 많이 논의하는 게 합리적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일정이 다시 잡혔다. 상용화와 OBT, CBT 등의 일정을 역으로 계산해서 로컬라이제이션 계획을 세웠다. 큰 가닥으로 전투 시스템 고치는데 3개월, 성장 시스템 고치는데 3개월 하는 식으로. 그리고 매월 상호 방문해서 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텐센트의 피드백 이후에 회사 내에서 엄청나게 논의를 했습니다. 퍼블리셔의 피드백이 우리 약점을 보여줬으니, 저희는 그것을 보완할 아이디어를 기획하고, 게임에 구현해야 했으니까요. 우선 전투 개선 계획을 짜서 선전으로 갔습니다. 텐센트 담당자와 이에 관해 논의를 하고, 얼마 전 전투의 개선이 담긴 알파 버전이 나왔습니다. 이후에는 텐센트가 다시 한국을 찾아왔죠. 다음 주제에 대해 또 장시간의 PT를 통해 피드백을 줬고요. 그에 대해 개발팀에서 어떻게 개선할 것인가 안을 만들었고, 이번에 가지고 와서 협의를 한 거죠.”
넥스트플레이와 텐센트 멤버들이 선전의 텐센트 건물에서 함께 로컬라이제이션 논의를 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여러 모로 벤처 느낌이 물씬 풍겼습니다.
상호 협의의 열린 마음도 어렵지만, 5시간이 걸리는 비행기 길을 왔다갔다하는 것도 만만치는 않을 것이다. 비용도 많이 들고, 관리도 힘들 테고.
“<크로스파이어>의 텐센트 쪽 PM이 회사에 찾아와서 PT를 한 적이 있습니다. <크로스파이어>도 중국으로 가면서 많이 고쳤다는 내용이었죠. 이야기의 요점은, 중국 CBT 시점부터 개발팀을 선전에 상주시켰던 게 성공의 비결이었다는 거였죠. 올해는 비용이 많이 들겠지만, 더 많이 오가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더 많은 인원을 상주시킬 생각도 하고 있고요. 거리가 멀다는 건 핑계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도 그렇지만, 텐센트도 두 달에 한번씩 한국을 오는 게 만만치 않을 거니까요. 최소한 OBT 시작하기 전까지는 계속 중국에 올 생각입니다.”
매달 진행되는 회의는 원래 비정기적으로 열리다가, 5개월 전부터 정기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논의하는 주제에 따라 참가자들이 바뀌는데, 사업본부장, 개발본부장, 기획자, 통역 등 3~8명이 참여한다. 텐센트에서도 담당 PM과 기획 담당, 통역 등 비슷한 수의 인원이 들어온다. 이런 점은 보통 퍼블리싱 담당자 한두 명이 여러 게임을 맡는 국내 사정과 다르다.
“기본적으로 10여 명이 한 방에서 회의를 하고, 작업도 하고 하죠. 대개 3박 4일 정도 기간이 잡히고, 그 기간 내내 거의 밤 11시~12시까지 피자를 시켜먹으면서 회의를 진행합니다. 저희도 그렇지만 5명 정도 있는 중국 측 프로젝트 전담팀도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역량도 뛰어난 데다 게임 흥행이 향후 경력과 굉장히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개발사와 운명을 같이 한다고 할까요.”
이렇게 고생하며 만들고 있는 게임에 대한 중국 내 반응은 아직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 다만 중국은 역시 사람 수가 많고, 텐센트는 마케팅 파워가 세다는 정도는 벌써 확인했다.
“1차 알파 테스트에도 계정 경쟁이 심했는데, 2차 알파 때는 3,000명을 모집하는데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였습니다. 게임이 제법 알려져 있는 것도 있겠지만, 텐센트의 기존 라인업이 성공했기 때문에 기대도도 높은 것 같아요.”
■ 그릇된 일반화의 틀을 깨기 위해
해외 퍼블리싱 계약과 관련된 기사의 사진을 보면, 악수를 하며 환하게 웃는 장면은 기본이다. 하지만 개발 중 또는 서비스 중 서로 의견이 부딪치면 조금씩 삐걱대고, 때론 으르렁대기도 한다.
“글쎄요. 내일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주도권을 다투는 관계라면 서로의 영역이 충돌하면서 문제가 생길 수 있겠죠. 하지만 우리가 텐센트의 퍼블리셔로서의 열정과 열량을 인정하는 만큼, 우리도 충분한 열정과 역량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MMORPG를 개발해온 한국 개발사의 저력도 있고요. 텐센트도 그 부분을 존중해주고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서로 다른 문화의 두 팀이 만나면 피할 수 없는 애로사항이 있게 마련이다.
“시간이 지체되는 점이죠. 회사 사이의 거리도 있고, 언어적 문제도 있으니까요. 통역이 있더라도, 최소 2배 이상은 커뮤니케이션에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잖아요. 그래서 통역의 역할이 정말 중요한 것 같습니다. 텐센트나 저희 쪽이나 아주 우수한 전담 통역이 있어서, 프로그래머의 전문적인 대화나 기획의 깊이 있는 내용도 잘 통역해 주고 있죠. 그런 공식적인 업무뿐만 아니라, 이메일부터 밥 같이 먹을 때나, 기타 등등까지 통역 분 역할이 정말 중요해요.”
문화적 차이 때문에 에피소드도 발생했다. 중국인들은 잔치나 연회에 가면 음식을 조금씩 남긴다. 주최 측에게 보내는 ‘다 먹지 못할 정도로 푸짐히 준비해주셨군요.’의 메시지. 반면 한국인들은 깨끗이 비워야 한다. ‘음식이 참 맛있습니다.’라는 메시지다. 그게 음식이 아니라 술이면 더 곤란할 터.
“‘한국 개발사들이 술을 좋아한다’는 잘못된 통념이 있어서, 처음 왔을 때 38도짜리 마오타이주를 8잔 이상 같이 원샷했죠. 저쪽은 저쪽대로 대접해야 한다는 생각에, 우리는 우리대로 받아줘야 한다는 생각에서 말이죠. 그리고 다 함께 전사했습니다. 돌이켜보면 즐거운 추억이지만, 그릇된 일반화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깨닫게 된 계기이기도 했죠.”
그릇된 일반화는 술만 무서운 게 아니다. 먼 옛날 해외시장 무주공산의 성공 이후, ‘우리가 제일 잘 알고, 우리 식으로만 만들면 된다’거나 ‘로컬라이제이션은 주기적으로 이벤트 아이템을 잘 넣는 것’ 정도로 여기는 일반화도 무섭다.
그 일반화의 틀에서 <펀치몬스터>를 꺼낸 넥스트플레이와 텐센트는 비슷한 장르로 동시접속자수 200만 명을 훌쩍 넘긴 <던전앤파이터>의 뒤를 노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