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송혜원 씨는 어떻게 에픽게임스에 입사할 수 있었을까? 에픽게임스코리아가 주최한 언리얼 엔진 세미나를 맞아 한국에 온 그녀를 만나 이야기를 들어 봤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TIG: 먼저 자기 소개를 부탁한다.
송혜원(오른쪽 사진): 한국 이름으로는 ‘송혜원’이고 미국에서는 ‘리나’라는 이름을 사용한다. 에픽게임스 본사에서 게임 및 엔진 프로그래밍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직함은 수석 프로그래머로, <기어스 오브 워 2>에서는 애니메이션 및 캐릭터와 관련된 프로그래밍을 맡았다.
TIG: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 개발자들은 보통 그래픽관련 아티스트나 디자이너다. 프로그래머는 알려진 경우가 드물다.
저 이대 나온 여자에요~(웃음). 사실 한국에서 이화여자대학교를 졸업했고 전공은 경영학이었다. 문제는 전공이 재미가 없었다는 것. 학교를 졸업한 후 게임 아카데미에서 프로그래밍을 배웠다.
이후 가족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유학을 하게 되었고, 조지아 공대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했다.
TIG: 그럼 실질적으로는 대학 졸업 후 게임 프로그래머로 활동한 것인가?
미국에서 컴퓨터 공학을 전공하면서 3D 그래픽 프로그래밍을 다루었다. 당시 3D 그래픽 프로그램 분야에서 가장 발전이 빠른 곳이 바로 게임업계였다. 자연스럽게 게임 개발로 진로를 바꾸었다.
TIG: 에픽게임스에 입사한 계기가 궁금하다.
처음부터 에픽게임스에 입사하고자 했던 것은 아니었다. 예전에 THQ에 있을 때의 거주지는 뉴욕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남편이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의 회사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받았다.
결국 노스 캐롤라이나로 이주를 결정하고 나서 그 주변 게임 개발사를 찾아보니 에픽게임스가 있더라. 관심 있는 분들은 잘 알겠지만 유명하고 뛰어난 개발사 중 한곳이 아닌가. 이왕이면 에픽게임스에서 일하고 싶었다.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에 위치한 에픽게임스 본사.
TIG: 보통 미국 개발사들은 추천 입사를 한다고 들었는데, 에픽게임스에도 추천을 받아서 들어갔나?
시험을 보고 들어갔다(웃음). 처음 미국 게임업체에 입사할 때도 인턴사원으로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미국은 추천입사를 그다지 선호하지는 않는다. 물론 추천을 받을 수도 있지만 무조건 채용되는 건 아니다. 나름대로 또 다른 테스트를 거친다.
특히 에픽게임스는 인력 채용에 있어서 꼼꼼하게 신경을 쓰는 편이다. 나도 프로그래밍 관련 테스트를 통과한 후에 테크니컬 인터뷰를 거쳤다.
TIG: 테크니컬 인터뷰는 구체적으로 어떤 방식이었나?
기본적으로 프로그래밍 실력을 평가하는 테스트가 1차적으로 진행된다.
그것을 통과하면 테크니컬 인터뷰를 하게 되는데, 에픽게임스 프로그래머들과 질의응답을 주고 받는다. 질문은 보통 지원 분야의 실무와 관련된 내용이다.
예를 들어 어떤 프로그래밍에 대해 질문하면 곧바로 내가 화이트보드에 코딩을 쓰면서 답을 설명하는 식이다. 상당히 까다로운 질문이 오고 간다. 실제로 이 과정에서 당황스러워하는 지원자도 있다.
TIG: 왜 그렇게 까다로운 방법으로 인원을 채용하는지 궁금하다. 검증된 실력이라면 별도의 테스트 없이 채용할 수 있지 않나.
에픽게임스의 방침일 수도 있다. 일단 좋은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은 기본 원칙이다. 한 사람을 채용했을 때 그 사람이 회사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으면 좋은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문제를 일으키면 개인적으로나 회사로나 불행한 일이다.
어떻게 보면 에픽게임스에 채용되었다는 것은 전체 직원들에게 인정을 받았다고 보면 된다. 나도 처음 입사하고 난 뒤 환영 메일을 받았는데, “당신은 에픽게임스의 모두가 인정한 사람”이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 에픽게임스에 들어간 후 달라진 것들
TIG: 언리얼 엔진을 라이선스 받아서 개발하던 입장에서 엔진을 만드는 입장이 되었다.
맞다. 초기에 엔진을 라이선스 받아서 개발할 때는 개발 과정이 상당히 복잡했다. 어떻게 본다면 이미 만들어진 엔진을 사용하다 보니 위에서 내려오는 지침에 따라서 개발할 수밖에 없었고, 필요한 것을 요구하는 수준이었다.
THQ에서 일할 때 <프론트라인>을 프그래밍하고 이를 언리얼 엔진에 적용해 본 적이 있다. 당시에도 언리얼 엔진과 맞추는 데 상당히 고생했다. 언리얼 엔진 자체는 편하지만 게임마다 특성이 다르다. 때문에 이를 일일이 맞추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TIG: 지금은 개발하기에 편한가?
앞에서 말한 경험들이 좋은 약이 되었다. 지금 에픽게임스에서 언리얼 엔진을 개발하면서, 라이선스를 받는 입장에서 생각을 하게 된다. 즉 새로운 기능을 만들 때, 이 기능이 언리얼 엔진으로 게임을 만드는 개발자들에게 어떤 영향을 주게 될 지를 고민한다.
뭔가 기존의 것을 바꾸면 자연스럽게 연쇄적인 반응이 따라온다. 결국 작은 것 하나를 수정한다고 해도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어떻게 보면 생각하는 방향이 달라졌다고 볼 수 있다.
TIG: 한국의 경우 언리얼 엔진을 라이선스 받은 곳의 대다수가 온라인게임을 개발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게임업계에 들어와서 개발한 장르가 MMORPG였다. 게임명을 밝힐 수는 없지만 모노리스 엔진으로 개발 중인 프로젝트로 온라인게임 개발에 대한 어려움은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초창기에 언리얼 엔진을 사용한 온라인게임이 <리니지 2>로 알고 있다. 당시 소식을 듣고 걱정했던 부분이 데이터 스트리밍을 어떻게 해결할까 하는 것이었다. 언리얼 엔진을 이용하면서 <리니지 2> 개발자들이 엄청나게 고생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 언리얼 엔진 4와 모바일 언리얼 엔진
TIG: 현재 에픽게임스는 언리얼 엔진 4를 개발하고 있다. 특히 팀 스위니가 언리얼 엔진 4는 차세대 콘솔 독점이라고 말해 이슈가 되기도 했다.
언리얼 엔진 4를 개발중인 것은 맞다. 이는 다음 세대를 위한 엔진으로 당장 게임 개발에 활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콘솔 독점이라는 표현은 오해가 있다.
지금까지 언리얼 엔진은 범용 플랫폼에 최적화된 엔진으로 개발되어 왔다. 이는 언리얼 엔진 4도 예외가 아니다. 즉 차세대 하드웨어를 위한 엔진이지 특정 플랫폼에 최적화된다는 뜻은 아니다.
TIG: 아이폰용 언리얼 엔진 3도 이슈가 되고 있다. 현재 아이폰용 3D 그래픽은 Unity 3D 엔진의 점유율이 높은데, 이와 비교하면?
아이폰용 언리얼 엔진 3는 아직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아서 잘 모르겠다. 물론 아이폰의 그래픽 성능을 보면 언리얼 엔진에 적합한 하드웨어는 아니다. 어떻게 본다면 아이폰이 많이 보급되었기 때문에 언리얼 엔진을 보급하는 개념이다. 특히 아이폰용 게임이 많이 만들어지다 보니 언리얼 엔진을 지원하면 좋다고 생각했다.
아이폰에서 돌아가는 언리얼 엔진 3 기술데모 화면.
TIG: 아이폰용 게임에 언리얼 엔진 3를 사용하면 어떤 장점이 있다고 생각하나?
아이폰용 게임을 보면 일반적인 게임도 있지만 시리어스 게임이 대부분이다. 지금 이런 시리어스 게임은 2D로 만들어 지고 있는데, 앞으로는 3D로 개발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즉 게임이 재미있어 지고 시각적인 효과를 높일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본다면 시리어스 게임이라는 장르의 효과를 3D 그래픽으로 극대화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 Serious Game: 교육, 정치, 환경, 산업 등의 분야에서 특정한 교육이나 훈련을 목적으로 만들어지는 사실에 기반한 장르의 게임. 기능성 게임으로 분류된다.)
TIG: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자의 지원을 에픽게임스가 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지원이 어떤 과정으로 진행되는지 궁금하다.
일단 언리얼 엔진으로 개발하고 있다가 문제가 발생하면 에픽게임스에 문의를 해온다. 예를 들어 어떤 게임에서 캐릭터 애니메이션을 구현하고 싶은데 잘 안되거나 문제가 발생한다고 가정해 보자. 이런 문제들은 일단 본사의 서포팅 매니저가 접수를 받아서 해당 상항에 맞는 엔지니어에게 연결해 준다.
TIG: 직접 해당 문의사항을 코딩해 주거나 대안을 제시하는 식인가?
우리가 해답지를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언리얼 엔진을 이용해서 얻을 수 있는 최적의 방법을 찾거나 또 다른 방법을 제안을 한다고 보면 된다. 물론 엔진 자체에 버그가 있을 경우 엔진 QA팀에서 면밀하게 검토해서 해결책을 찾기도 한다.
최근의 사례를 보면 언리얼 엔진에서 어떻게 하면 효과적인 메모리 압축 기술을 사용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많은 편이다. 또 애니메이션 구현과 관련한 내용도 많다.
TIG: 아무리 엔진을 개발하고 있어도 다른 게임의 문제를 한번에 파악하고 지원하기란 쉽지 않을 것 같다.
물론이다. 그래서 UDN(Unreal Developer Network)를 활용한다. 실제로 개발자들이 문의사항을 올리는 곳이 UDN이고, 실시간으로 조언해 주거나 의견을 나누는 곳이다. 거의 실시간으로 서포팅이 가능하다.
TIG: 끝으로 에픽게임스 본사 개발자의 눈으로 봤을 때 언리얼 엔진을 이용해 만들어진 외부 게임 중에서 가장 인상에 남는 게 있다면? 또, 본사에서 개발 중인 신작이 있다면 말해줄 수 있는가?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임으로는 누리엔에서 개발한 <엠스타>가 기억에 남는다. 리듬액션 장르이면서 언리얼 엔진의 특성을 십분 활용한 게임으로 기억한다.
콘솔 게임 중에서는 <배트맨: 아캄 어사일럼>과 <바이오쇼크>가 인상적이었다. 두 게임은 모두 언리얼 엔진의 특징을 자연스럽게 게임에 활용했다.
그리고 (당연히 내 입장을 알면서 물어봤겠지만) 우리가 무엇을 개발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기 힘들다(웃음). 팀 스위니는 지금 언리얼 엔진 4에 집중하고 있다는 정도만 밝히겠다.
언리얼 엔진 3로 개발된 누리엔의 <엠스타>. 지금은 서비스가 중단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