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라인게임 개발이 활발한 한국은 어느새 ‘게임 엔진’ 핵심 시장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자연스레 엔진 제작사들의 한국 진출로 이어지고 있는데요, 이미 크라이텍과 에픽게임스가 한국에 법인을 세웠고, 다른 엔진 업체들도 한국 시장을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비전(Vision) 엔진’을 만드는 독일의 트리니지(Trinigy)도 한국 진출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무실을 알아보는 중이고, 법인 설립에 대한 의지도 강합니다. 차근차근 접근하겠다는 신중함도 엿보입니다. 그들의 생각과 전략은 무엇일까요. 최근 한국을 찾은 트리니지의 세일즈 디렉터 리처드 래드매셔를 만나 봤습니다. /디스이즈게임 정우철 기자 ※ 비전 엔진과 트리니지는? 2003년 설립된 독일의 트리니지는 3D 게임 엔진인 ‘비전 엔진’을 개발하고 지원하는 엔진 전문 회사입니다. 지금까지 트리니지는 유비소프트, 테이크2, 네오위즈게임즈, 드림캐처, 스펠바운드 등의 게임사들과 라이선스 계약을 맺었고, 그들의 비전 엔진은 125개 이상의 상업용 게임에 사용됐습니다. 지난 2월 23일 발표된 비전 엔진 8은 확장된 하복 물리엔진과 다이렉트X 11을 지원하고, 멀티스레드(다중 코어 CPU) 지원이 강화됐습니다. 특히 제작한 게임을 간편하게 웹게임으로 바꿔 주는 웹비전(WebVision) 기능이 추가된 것이 특징입니다.
비전 엔진의 철학은 ‘자유’
TIG: 트리니지라는 회사명이 한국에는 생소하다. 간략한 소개를 부탁한다.
리처드 래드매셔: 트리니지는 2003년 초에 4명의 미들웨어 전문가인 파비안 뢰켄(Fabian Roeken), 다그 프롬홀드(Dag Frommhold), 플로리언 본(Florian Born), 다니 콘라디(Danie Conradie)에 의해 설립됐다. 이어서 은행가이자 비즈니스 디벨롭먼트 전문가인 펠릭스 뢰켄(Felix Roeken)이 합류했다.
트리니지는 2008년 북미 시장의 요구에 대응하기 위해서 텍사스 오스틴에 지분 100%을 소유하고 있는 지사를 설립했고, 현재 미국 개발사들에게 현지 지원을 제공하고 있다. 우리는 직접 게임을 개발하기보다 엔진을 개발하고 이를 지원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
TIG: 비전 엔진의 대표적인 특징도 궁금하다.
비전 엔진은 게임 개발자들에게 보다 창조적이고 기술적인 자유를 제공하기 위해 설계됐다. 일단 PC(DX9, DX10, DX11)를 포함해 PS3, Wii, Xbox360 등 모든 메이저 플랫폼의 성능에 최적화 되어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전 세계의 스튜디오들은 캐주얼 게임부터 하드코어 게임, MMOG(다중 접속 온라인 게임)은 물론이고 RTS, FPS, RPG, 스포츠 등 모든 장르의 게임 개발에 비전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지금까지 120개 이상의 타이틀이 비전 엔진을 기반으로 개발됐다.
TIG: 얼마 전 에픽게임스의 팀 스위니를 만나서 이야기를 나눠 보니 게임엔진을 개발하는 데 각자의 철학이 있었다. 비전 엔진에는 어떤 철학이 담겨 있나?
일단 단일화가 아닌 모듈화에 집중해 개발자들에게 자유를 준다는 것이다. 비전엔진은 모듈화에 따라서 기능을 추가하거나 향상된 옵션을 언제나 적용할 수 있다. 또 엔진을 이해할 수 있도록 프리미엄 서포트도 제공하고 있다.
TIG: 엔진 기능의 추가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기술적인 이야기인데, 일단 우리는 비전 엔진을 디자인할 때 코어가 되는 부분은 최소한 작게 만들었다. 엔진의 소스마저 코어 외적인 부분에 두고 있어 확장이 쉽다.
한 마디로 말하자면 비전 엔진은 처음부터 개발자들이 ‘뜯어서 고치는 것’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이는 오랫동안 우리 고객들과 대화를 통해 엔진 디자인에 반영됐고 서서히 진화돼 왔다.
TIG: 엔진과 함께 프리미엄 서포트를 제공한다고 했는데 어떤 뜻인가?
트리니지는 처음 창업할 때부터 엔진의 개발과 서포트라는 두 개의 개념을 내세웠고, 창업자 역시 개발자와 서포터로 구분됐다. 즉 서포트라는 개념을 하나의 축으로 삼았다. 이에 따라 비전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사에서 문의가 들어오면 2~5일 이내에 전화통화를 하고 이어서 방문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들이 먼저 능동적으로 움직인다. 개발사로부터 문의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직접 찾아가서 피드백을 받는 개념이다. 기술 지원의 경우 트러블 슈팅과 최적화로 구분된다.
예를 들어 돌에 구멍을 뚫는다고 가정해 보자. 우리는 직접 돌을 뚫어 주기보다 그 과정에 대해 조언해 주고 작업의 밸런싱을 맞춰 준다. 개발사가 엔진 사업자에 기대지 않고 스스로 해결해 나갈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한국을 기반으로 아시아 진출 확대
TIG: 한국에는 이미 크라이텍과 에픽게임스가 진출해 있다. 트리니지는 언제부터 한국 진출을 준비해 왔나?
한국 진출을 생각하고 처음 만남을 가진 것은 5년 전이고, 준비한 것은 1년 정도 됐다. 올해 한국 사무실을 개설할 예정이다.
우리는 한국 진출이 또 다른 시작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는 역사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있다. 이제 게임의 플랫폼은 온라인으로 넘어가고 있고, 우리도 온라인게임 시장을 주시하고 있다.
TIG: 한국 지사를 설립할 예정이라고 이해해도 되는가?
트리니지는 미국 오스틴에 100% 지분을 가진 지사를 설립했다. 한국의 경우 현재 지사 설립이라고 확정하기는 이르지만 한국 사무실을 개설하냐고 묻는다면 물론 그렇다고 말할 수 있다.
고객의 요구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우리 회사의 철학에 비추어볼 때, 한국에 현지 사무소를 설치하는 것은 다음 단계의 당연한 논리적인 귀결이다.
중요한 것인 한국 사무실인가, 지사인가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얼마나 서포트를 잘 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가에 달렸다. 머지않아 자세한 사항을 발표하게 될 것이다.
TIG: 트리니지는 한국이나 아시아 시장에 대해 구체적인 전략을 가지고 있는가?
한국과 한국의 개발자 커뮤니티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우리의 최우선 관심 대상으로 남을 것이다. 또한, 한국에서 우리의 계획에 대한 일련의 활동들이 이미 준비되어 있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서울에 설치될 트리니지 현지 사무소는 아시아 시장을 겨냥한 큰 전략의 일부분이 될 것이다.
서울 사무실은 처음에는 연락 사무소와 같은 작은 규모로 시작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마케팅은 물론 기술 지원자가 상주하면서 각종 서포트에 만전을 기하게 된다.
TIG: 현재 국내에서 비전 엔진으로 진행되고 있는 프로젝트가 있는가? 있다면 그 규모는 얼마나 되나?
계약상 자세히 밝힐 수는 없다. 현재 한국에서 6~7개의 타이틀이 비전 엔진으로 개발되고 있다. 지금은 적지만 점점 성장하고 있는 단계인 셈이다. 1년 전을 생각해 본다면 향후 비전 엔진을 사용하는 개발사가 폭발적으로 증가해 우리의 영역을 넓히게 될 것으로 본다. 지금은 시작일뿐이다.
가격대비 성능은 물론 웹으로의 확장도 가능
TIG: 상용 엔진의 경우 가격대비 효율이 중요하다. 물론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가격 조건이기도 하다. 비전 엔진은 어떤가?
통상 메이저 상용 엔진을 라이선스 받아 개발하는 데 드는 비용은 5~20억 사이이다. 이런 비용 지불은 게임을 개발하는 비용과 다양한 파트너쉽에 따른 기회비용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개인이 지불하는 것이 아니라 회사가 지불한다는 점에서 판단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현재 비전 엔진의 라이선스 비용에 대해서 단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다. 확실한 것은 저렴하다는 것이다. 기존 게임 엔진과 비교할 경우 리소스 등의 모든 점을 감안한다면 비용의 반을 절약할 수 있을 것이다.
비전 엔진은 게임브리오나 주피터 엔진보다 저렴할 수 있다. 여기에 능동적인 서포트도 포함된다. 한 마디로 가격과 기술적으로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비소프트의 신작 <세틀러 7>도 비전 엔진으로 개발되고 있다.
TIG: 사실상 한국 시장에서 비전 엔진은 언리얼이나 크라이가 아닌 게임브리오, 또는 주피터 엔진과 경쟁하는 구도로 생각된다.
맞다. 게임브리오 엔진이 주요 경쟁 상대가 될 것이다. 비전 엔진은 저렴하면서 다양한 장르를 개발할 수 있는 범용성을 장점으로 갖추고 있다.
특히 2월 23일 발표한 비전 엔진 8은 게임의 웹 버전 코딩도 가능해졌다. 비전 엔진으로 작업한 후 즉시 웹 브라우저 기반의 코딩을 하는 웹비전(WebVision)을 활용하면 웹게임을 쉽게 만들어 낼 수 있다. 이는 C++만을 이용한 플러그인 프로그래밍으로 누구나 쉽게 작업할 수 있다.
TIG: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먼저 한국의 파트너들이 보내 준 신뢰와 협력에 대해 감사의 뜻을 표하고 싶다. 한국의 스튜디오들에서 느낀 창조성, 열정, 근면함을 그들의 타이틀에 녹여내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또한 그들이 얼마나 빨리 콘셉트를 현실로 바꿀 수 있는지에 대해서 우리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우리는 한국 개발자 커뮤니티가 가까운 미래에 보다 나은 게임을 만들기 위해 필요한 창조적 자유와 도구, 지원 등을 한국에 제공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한국 개발자 커뮤니티와 보다 넓고 깊은 협력관계를 구축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리처드 래드매셔와의 인터뷰는 이른 아침 호텔에서 진행됐다.
인터뷰를 마친 그는 바로 공항으로 가서 새로운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한 다음 독일로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