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0일, <사이버펑크 2077>이 출시된다. 이번엔 정말로 연기가 없다고 한다.
지난 한글날 CDPR은 게임의 한국어 더빙 소식을 공개했다. 이미 몇몇 성우의 라인업이 공개됐는데, 게임의 감초 역할을 맡을 재키 웰즈의 목소리는 베테랑 성우 임채헌이 맡았다. 많은 이들에게 <오버워치> 윈스턴의 목소리로 익숙할 것이다.
게임의 현지화를 맡은 무사이 스튜디오에서 임채헌 성우를 만났다. 어떻게 결과물을 만들어냈는지, 힘든 점과 흥미로웠던 점은 무엇인지 들을 수 있었다. 인터뷰 말미에는 독자들을 위해서 흔쾌히 재키의 목소리로 메시지를 전달하기도 했다.
인터뷰는 방역 수칙을 준수한 상태에서 진행됐다.
디스이즈게임: <사이버펑크 2077>의 한국어 더빙 소식을 많은 이들이 반기고 있다. 소감이 어떤지?
임채헌 성우: 과거 (무사이 스튜디오의) 감독님이 한 번 언급을 한 적이 있다. '대작'의 한국어 더빙을 할 수도 있다고. 그 정도의 언급만 들었는데, 막상 참여하고 보니 어마어마한 대작이었다. 재키 웰즈라는 등장인물의 배역을 맡았다. 나름 게임 안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있는 편이었다. 한 편으로는 뿌듯함이 들었지만, 걱정도 됐다. 이런 대작이 우리말로 나올 때 팬들의 반응이 어떨까.
영어판 예고편만 봐도 비속어가 무지 많이 나온다.
그렇다. <사이버펑크 2077>는 욕을 굉장히 자유롭게 쓰는 편이다. 다른 프로젝트는 현지화 과정이나 심의 과정에서 그런 비속어들을 걸러내는 편인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은 것 같다.
그간 목소리를 연기하면서 이렇게 욕을 많이 쓴 프로젝트가 있었나?
굉장히 드물다. (웃음) 전에도 간혹 있긴 했는데, '젠장'이나 '제길' 정도였다.
이번에는?
그걸 넘어서서 좀 더 다양한 욕들이 등장한다.
<사이버펑크 2077>에 대한 인상은 어땠는지?
퀄리티 측면에서 기대를 해도 좋을 거 같다. 굉장히 디테일하게 자기 캐릭터를 설정할 수 있는데, 그런 부분이 재밌을 것 같았다. 반응이 좋을 것 같고, 재미있게 즐길 만하다.
게임 화면을 보면서 작업했나?
그렇지 않다. 영어 연기를 듣고, 다른 배우의 연기도 들으면서 했다.
성우 본인이 본 재키 웰즈는 어떤 인물인가?
<사이버펑크 2077>의 배경인 나이트시티의 토박이다. 그 동네 하층민으로 거칠고 힘들게 살아왔다. 마초적인 느낌이 강하면서도 귀여운 구석이 되게 많다. 순정이라고 해야 하나? 그런 것들도 느껴진다. 악한 사람은 아닌 것 같다. 주인공 V와 함께 게임 전반부의 이야기를 이끌어나간다.
재키의 목소리를 한국어로 녹음하는 데 특별히 유의했던 점은?
거친 인물을 구현하는 데 포인트를 뒀다. 마초적인 부분도 강조했다. 그러면서도 또 귀여운 대사를... 해야 했다. (웃음) 악하지 않고 거친 느낌을 표현하기에 애를 먹었던 것 같다.
무사이로부터 어떤 디렉션을 받았는지?
너무 멋있게 하지 말라는 주문을 받았다. (웃음)
영문판 트레일러를 보면 재키의 영어가 아메리칸 잉글리시보다는 스팽글리시(Spanglish) 느낌이 많이 난다. 어떻게 해석했나?
실제 대사를 보면 재키는 스페인어를 섞어서 이야기한다. 긴 대사를 치면 짤막짤막하게 스페인어가 나온다. 그런 부분을 우리말로 100% 살릴 수는 없다. 모두 영어인 셈 치고 우리말로 옮겼다. 지방 사람이 서울말을 쓰다가도 급하거나 감정 폭이 커질 땐 자기도 모르게 방언이 나오는 느낌으로 해석했다. 재키는 스페인어를 모국어로 생각하는 듯한데, 원어의 말맛을 완전히 살리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렇지만 굳이 사투리를 집어넣거나 그러지는 않았다. 대신 감정을 살리려고 했다.
굉장히 타이트한 일정을 두고 녹음했다고 들었다. 어려운 점은 없었는지?
아마 두 주인공 V의 분량이 워낙 많으니까 그분들 일정을 기본으로 잡고, 우리가 중간중간 들어가서 작업했다. 재키의 경우 그렇게까지 타이트하게 진행되지는 않았던 것 같다. 보통 작업을 하면 자기가 맡은 캐릭터 대사를 듣고 더빙을 한다. 각자 따로 다른 상황에서 녹음하기 때문에 감정 연결이 매끄럽지 않은 때가 많은데, 이번에는 주인공 2명의 진도를 빼고 뒤에 녹음하는 성우들은 그 주인공의 음성을 듣고 거기에 맞춰서 했다. 리액션을 주는 느낌이었다.
더빙 분량이 대략 어느 정도나 됐나?
윈스턴(오버워치) 정도는 되는 것 같다. 한 14~15시간 정도?
재키 웰즈는 욕을 많이 하지 않는 캐릭터라고 들었다.
다른 배역에 비해서 욕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적과 다투는 격한 상황일 때 "야 이 씨발 개새끼들아" 하거나 벽을 넘으면서 "아, 존나 높네" 하는 정도다.
오히려 아까 말한 대로 귀여운 면이 돋보였는데 여자친구 미스티에게 잘 보이려고 아양을 떤다. 여자친구에게는 약간 소심하면서 다정하게 군다. 어머니와 통화하는 씬이 나오는데, 걱정 말라고 툴툴대면서도 다정게 챙기는 면모도 있다.
재키를 연기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씬이 있다면?
아라사카 건물에 잠입해서 티-버그랑 V랑 셋이 통신으로 이야기하는 장면이다. 중간에 아리스토텔레스 이야기가 나오는데, 재키가 제대로 못 알아듣고 "아리스 뭐?" 라고 반응한다. 괜히 아는 척을 하다가 들통이 나는데 재밌었다.
무사이와는 몇 번째 협업인가?
여러 번 했다. 크게 했던 건 <기어스 오브 워>의 기관사 콜(거스 콜)과 <콜 오브 듀티: 블랙 옵스 콜드 워>의 심즈다. 그밖에 짧게 등장하는 배역도 많이 맡았다.
그중 가장 기억에 남는 배역은?
제일 큰 거는 윈스턴이다. 많은 분이 아껴주고 계신다. 별개로 제일 힘들었던 것은 콜이다. 덩치가 정말 큰 흑인인데 한국인 성대 구조로는 도저히 내기 어려운 목소리다. 비슷한 목소리를 내기 위해 최대한 깔았다. 또 워낙 콜이 오버하면서 소리 지르는 캐릭터였기 때문에 목소리를 깔면서 또 지르는 경우도 많아 더욱 힘들었다.
몇몇 스토리 게임의 목소리를 연기했는데, <사이버펑크 2077>은 선택 분기가 등장해서 조금 다를 것 같다.
맞다. 처음부터 끝까지 쭉 하나의 스토리가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여러 상황을 녹음해야 했다. 다른 녹음은 전투 상황에 집중적으로 대사가 배치된다면, 이번 게임은 스토리를 쭉 풀어나가야 하고, 잡담도 많이 한다. 그런데 A-1 상황을 진행하다가, 다시 돌아와 A-2 상황을 진행하고 그런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쉽지 않았다.
윈스턴의 인기가 워낙 많고, 단편 애니메이션(소집)도 주목을 받다 보니, 배역의 틀에 갇히지 않을까 걱정된다.
직업의 특성상 한 배역에 완전히 빠져서 갇히는 것은 굉장히 드문 일이다. 배우 같은 경우엔 한 배역에 몇 달에서 몇 년까지 맡지만 우리는 오전에 가서 애니메이션 녹음하고, 오후에 <사이버펑크 2077> 하는 식으로 일한다. 하루에도 몇 번씩 페르소나가 바뀌기 때문에 한 배역만 생각하고 있으면 다른 걸 못 한다. 계속 바꿔야 여러 일을 할 수 있다. 짧고 깊게 들어갔다가 빨리 빠져나와서 다음을 준비해야 하는 직업이다. 하나만 가지고 오래 끌고 가기 어렵다.
그렇게 한 캐릭터에 몰입되는 게 권장되지 않는구나.
그렇다. 맡는 캐릭터들이 저마다 다 다르니까. 만약 내가 윈스턴에 갇힌다면, 그건 마이너스다. 일이 하나만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거꾸로 팬분들이 보셨을 때 내가 다른 배역을 해도 "윈스턴 같네" 피드백이 나와버리면 문제가 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배역을 맡을 때 "옛날에 그것처럼 해주세요"라는 요청이 오지 않는 한 다른 톤을 잡으려고 한다.
끝으로 재키의 느낌으로 TIG 독자들에게 인사 전해주실 수 있을까?
무사이에 재키 녹음을 하러 올 때마다 차에서 재키 목소리를 듣는다. 트레일러에 나온 재키의 원래 목소리를 계속 돌려 들을 수 있도록 직접 편집해놨다. 그걸 좀 듣고 인사를 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