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퀘스트2 (EverQuest2)
요 며칠 '에버퀘스트2'를 플레이하는 동안 내 머리 속을 맴돈 것은 '이 다음에 무엇을 해야하는가?'라는 질문이었다. 초반부터 튀어나와 귀찮도록 친절한 튜트리얼 모드와는 별개로 이 질문은 흔히 게임을 처음 접할 때의 과다한 정보량으로 인한 정신적 패닉 상태로 보기에도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는데. 무엇보다 나를 더욱 혼란스럽게 한건 이게 초보자 섬에 상륙한 시점부터 키노스 시민권을 얻을 때까지 사라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는 거다.
◆ 'Ever' 퀘스트
이미 정해진 수순대로 '에버퀘스트2'는 시작부터 많은 분량의 퀘스트를 게이머에게 던진다. 초보자 섬에 들어서면 기본적인 직업 선택 퀘스트 외에 마을에 흩어진 NPC가 플레이어에게 말을 건넨다. -어느정도 접근한 상태에서- 플레이어를 부르는 행위는 '에버퀘스트2'에서 '내가 당신이 할 일을 가지고 있소.'라는 의미로 만일 캐릭터의 레벨이 적정선이라면 간단한 대화를 통해 퀘스트를 받고 그렇지 않다면 의미심장한 말로 끝을 맺는다.
좋은 비교 대상으로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머리 위 '느낌표'는 '에버퀘스트2'에서 'NPC의 말 건네기'와 같다. '느낌표'가 갖는 전달의 직관성이 부럽기는 하지만 '에버퀘스트2'의 퀘스트 부여 방식 역시 꽤 매력적이다. 물론 퀘스트가 있는지 없는지 알기 위해 이곳저곳 NPC를 면담하며 돌아다니는 점만 빼면 - 와우는 멀리서도 퀘스트 NPC를 확인할 수 있다 - 두 게임 모두 플레이어에게 할 일을 정해주는 방법은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퀘스트를 통해 플레이어를 점진적으로 이끌어주는 와우와 다르게 '에버퀘스트2'는 일단 '다 돌아봐라'는 식으로 여기저기 바쁘게 퀘스트와 태스크를 선물하니 '에버루키(건전지 이름이 아니다)'인 나로서는 조금 버겁기도 하더라.
실제적인 차이는 퀘스트의 진행 과정이다. '월드워브워크래프트'는 퀘스트를 진행하기 위한 루트와 힌트를 포함시켜 플레이어가 내용을 숙지하고 근처까지만 이동한다면 무리없는 해결이 가능하다. 예를 들어 '톱니항 서쪽 고목나무 근처에서 생강의 목을 따와라.'의 경우를 보면 그 내용 속에 이미 플레이어가 이동할 루트와 목표를, 추가적으로 '근처에 양파와 무우를 조심하게, 생강을 호위하는 놈들이니까.'라는 내용을 포함시켜 퀘스트 해결의 실마리를 던져주는 셈이다.
와우의 퀘스트 시스템을 벤치마킹한 '아크로드'는 조금 다르다. '땅의 사원 근처에서 보물상자 하나를 찾아오게.'라고 퀘스트를 주는데 막상 그 장소에 가면 누구나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아이템이 떡하니 존재한다. 말하자면 '아크로드'의 퀘스트는 어떤 도전을 해볼 기회도 없이 '문제와 정답'을 알려주는 셈이고 플레이어는 그냥 이동하는게 일이 되버린다. - 말하자면 퀘스트가 아니라 태스크(심부름)라 불러야 적당하다. -
◆ 인색하다
앞서 얘기한 두 게임의 퀘스트 시스템이 플레이어에게 비교적 관대(?)한 반면 '에버퀘스트2'는 인색하다. '에빅의 세 가지 잃어버린 부품' 퀘스트를 보자. NPC는 '어떤 것에 쫒기다 떨어뜨렸다.'라고 말하는데 일반적인 싱글 롤플레잉 게임이라면야 마을 사람 중 누가 소문 형식으로 힌트라도 주겠지만 '에버퀘스트2'에서 플레이어는 어디서 그 부품을 찾아야 하는지 도무지 알지 못한다. 결국 이를 완료한 것은 다른 플레이어의 정보를 입수한 다음 날이었고 이로인해 해결 후의 만족감과 보상에 대한 기대는 줄어들 수 밖에 없다.
예상할 수 있겠지만 게임 초반부터 이런 불친전한 의뢰는 플레이어의 흥미를 떨어뜨릴 수 있다. 나야 의무감에서 어쩔 수 없이 플레이 하기는 했으나 다른 사람도 그럴 것이라 장담할 수 없는 것이다. 여기서 고려해 볼 사항은 혹여 '에버퀘스트2'가 바라는 게이머상은 보다 '능동적인 플레이어'가 아닌가 하는 점이다. 그리고 '월드오브워크래프트'의 그 친절하면서 깊이있는 플레이에 길들여진건 아닌지 또한 생각해봄직 하다.
확실히 이 퀘스트를 진행하는 동안만은 '능동적인 플레이어'였다는 게 사실이다. 단지 하나의 퀘스트를 위해 패쓰파인딩에 스프린트까지 시전하고 초보자 섬을 두 시간여 방황한 것을 보면 분명 그러했으리라. 그런데 간과해서는 안될 게 그 과정이 '즐거웠는가'이다. '월드오브워크래프트'가 플레이어에게 관대하기 하나 바보가 아닌 이상 그 친절함에 제한을 두고 나머지는 플레이어의 몫으로 남겨놓았을 터.
과연 어떤 할 일의 크기를 모두 플레이어에게 전가하는 게 능동적인 플레이인가. 그런데 왜 와우의 상대적으로 소극적인 플레이는 나를 비롯해 여러 게이머를 심취하게 만든 것인가. 오히려 적극적인 플레이를 원했다면 그 과정이 더 흥미진진해야 할 것이다. 결론은 전혀 즐겁지 않았다는 거다. 그리고 이건 '에버퀘스트2'가 바라는 게이머상이 아닐거라는 추측이다. - 동원 가능한 충분한 방법으로 문제가 풀리지 않을 때의 그 허탈함이란.. -
한편 '에버퀘스트2'는 전작이 갖고 있던 하드코어 플레이어를 위한 '편애'를 없애기 위해 노력한 흔적이 보인다. 순차적으로 퀘스트의 목표를 표시해주고 -썩 훌륭하지 않은- '길잡이'를 이용해 특정 장소까지 길 안내를 하는 등, 전작이 재밌는 게임이라며 침 튀기는 설명을 듣고도 손가락만 빨던 게이머와 '월드오브워크래프트'로 어느정도 외산게임을 알아가는 국내 게이머의 입맛을 맞추기 위한 위한 작전 말이다. 물론 이는 특정 국가를 염두했다고 보기 보다 전작의 특징이자 문제점을 제작진 스스로 파괴하기 위한 행동의 결과라 봐야 할 것이다.
그래서 초반부터 중간중간 튀어나오는 이런 '인색한 퀘스트'는 전작에서 일정 단계를 '버틴' 플레이어만이 맛 볼수 있었던 엄청난 중독성에 대한 기대에 걸림돌이다. 심리스가 아닌 존로딩 방식의 지역이동 또한 '에버퀘스트2'의 매끄러운 흐름을 방해한다. 많은 퀘스트의 수락과 해결 단계에서 수시로 볼 수 있는 로딩화면보다야 노라쓰를 돌아다니며 자연스럽게 퀘스트를 연결시키는게 더 좋지 않았을까.
물론 이미 바꿀 수 없다는 걸 잘 알기에 쾌적한 플레이와 멋진 게임월드 사이에 전자를 택한 것이 진정 합리적인 판단이었는가는 공개 테스트 시점에서 명확해질 것이다.
※ 에버퀘스트2 이스트의 비공개 테스트 버전을 토대로 작성한 글임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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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러 BEST 11.12.19 10:39 삭제 공감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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